미국 자이나교의 특징은 인도 자이나교 전통이 가진 재가자와 출가자의 밀접한 상호작용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 자이나교 출가자 조직의 분파적 성격은 미국 자이나교의 통합과 연대라는 중요한 특성에 의해 사라져 버렸습니다.
1991년 7월 4일 주말에 스탠포드대학교 캠퍼스에 3천 명이 넘는 자이나교도들이 JAINA, 즉 북미 자이나교 연합회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전 지역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주요 행사가 행해진 강당은 자이나 전통의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를 기려 “마하비라 홀”(Mahavira Hall)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아힘사 홀(비폭력 홀)과 사티야 홀(진실 홀)에서도 모임이 있었습니다. 야외에는 참석자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로 텐트가 쳐졌습니다. 자이나 전통의 모든 부파에 속한 자이나교도들이 워크샵과 강연과 문화 행사를 위해 다 같이 모인 것입니다.
자이나교도의 수는 인도 인구의 1%에 못 미치지만, 이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영향력 있고 큰 목소리의 소수자들입니다. 신도의 수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자이나 전통 안에는 여러 부파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분류는 출가자들이 흰색 면으로 된 단순한 옷을 입는 쉬베땀바라 전통과 출가자들이 옷을 입지 않는 디감바라 전통입니다. 인도에서 이 두 분파는 더 작은 부파로 나뉘어집니다. 예를 들어 쉬베땀바라 전통에는 지나들의 형상 앞에서 뿌자를 행하는 무르띠푸자크(Murtipujak) 파도 있고, 푸자를 하지 않는, 사실 형상의 사용을 아예 거부하는 스타나크바시(Sthanakvasi) 파와 테라판트(Therapanth) 파도 있다. 그런데 자이나교 내에 부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도 이 부파들은 자이나 전통 안에서 매우 강한 교리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맥락에서 이들의 통일성은 주된 역할을 합니다. 쉬베탐바라나 다감바라의 출가자들 모두 일단 완전한 계를 받고 나면 인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미국의 자이나교 공동체는 신도와 출가자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의 전통을 잃어버렸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자이나교도들은 이천 년 동안 인도에서 중시되었던 자이나교 부파 각각의 전통이 20세기 미국에서는 급속히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심지어 사원 내에서의 관습과 종교의식에서의 차이점들도 미국의 새로운 자이나교 공동체에서는 다 같이 수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시카고에 있는 새로운 자이나교 사원의 중심 성소에는 아홉 개의 띠르탕까라 형상들이 있습니다. 마하비라와 다른 다섯 명의 티르탕카라의 흰 대리석 형상들은 이마와 어깨와 다른 부분들에 백단유 반죽으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형상들은 장미들과 심지어 은으로 된 왕관으로도 장식되어 있고, 에나멜로 된 큰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쪽에 있는 디감바라 분파에서 특히 존경을 받는 세 명의 티르탕카라의 형상들은 매끄러운 대리석으로만 되어있고 아무 장식도 없습니다. 종교의례(ritual)의 다른 두 전통이 한 사원의 내부 성소에서 만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에 있는 많은 자이나교 사원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의 자이나교 대회에서는 디감바라와 쉬베탐바라 스승들의 가르침과 강연이 있었는데, 이 스승들 중 여러 명은 인도에서 온 방문자들로 아직 마지막 서약을 하지 않아 해외에 있는 자이나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학 캠퍼스의 마하비라 홀 바깥에 있는 로비는 이 새로운 미국 자이나교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들을 나타내는 부스들과 책과 테이프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자이나교의 아주 명성있는 스승들인 구루뎁 치트라바누(Gurudev Ghitrabhanu)와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Acharya Sushil Kumar)가 쓴 소책자들도 있었습니다. 아니타 자인(Anita Jain)이 부른 성가 테이프들도 있었는데, 그는 대회 내내 정기적으로 바잔(bhajan, 성가)을 불렀습니다. 가정 신전에 알맞는 크기의 작은 띠르탕까라들 형상들도 있었습니다. 또 환경보존과 채식주의와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에 대한 엄청난 양의 자료들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은 자이나교의 목소리가 새롭고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인식하게 된 미국 사회가 가지게 된 관심사들입니다.
대회의 전체 주제는 “자이나교 유산의 후속 세대로의 확장”이었습니다. 만약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이 모두 동의하는 것이 있다면 이 주제가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청년들이 이 대회의 발표들에서 단지 발표 주제로만 다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600명 정도의 청년들이 대회에 참가했고, 그들은 “동료와 부모가 주는 압박”, “미국과 인도 문화가 청년들에게 끼치는 영향”, “서구에서 자라나고 살아남기”와 같은 패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청년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자이나 랩”(The Jain Rap)이라고 부르는 무대 공연이 장식했는데, 이 공연에서 한 랩 그룹은 “미국 자이나, 베이비!, 우리는 미국 자이나, 베이비!”(Jain American, Baby. We are Jain American, Baby)라는 후렴구를 불렀습니다. 공연 마지막의 가사는 어른들에게 “우리는 모두 하나, 이것에 주목하라! 쉬베탐바르이건 디감바르이건 그리고 또 어떤 이름이건”을 상기시켰습니다.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이 자이나 전통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어려운 임무에 집중함에 따라 자이나 전통의 분파 구별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승단이 부재한 미국의 상황에서, 미국의 자이나교계는 개혁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무니 치트라바누와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의 운동이 그것입니다.
1973년 12월 18일에 뉴욕타임즈는 “우상파괴주의 자이나교 지도자가 요한 교황으로 비유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는 자이나교 출가자였던 무니 치트라바누(Muni Chitrabhanu)가 미국으로 이민한 것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과의 비교는 그의 지지자들이 주장한 것인데, 그들은 무니 치트라바누가 교황처럼 “그의 믿음의 창문을 열어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도록 했다”고 말합니다.
“창문을 여는 개혁”이란 무니 치트라바누가 1970년에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는 자이나교 탁발승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버리고, 운송수단을 이용해서 여행하는 것을 금하는 계를 깼으며, 브라흐마차리야(brahmacharya)의 서약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을 말한다. 그가 인도를 떠나는 상황은 극적이었습니다. 자이나 신도들은 그가 인도와 정통 자이나교를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비행기 앞의 땅에 드러누웠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무니 치트라바누는 1942년에 쉬베탐바라 출가자가 되었고, 전통에 따르는 삶을 살며 31년 동안 맨발로 인도를 유행하였는데, 51세에 미국 뉴욕으로 가서 정착하고 그의 제자 중 한 명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74년에 스타낙바시 쉬베탐바라(Sthanakvasi Shvetambara) 출가자인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Acharya Sushil Kumar) 역시 미국으로 이민갈 것을 결정했습니다. 하리야나(Hariyana)의 힌두교 가족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자이나교 출가자가 되었고 인도를 떠날 결정을 하기까지 33년을 인도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결혼을 하거나 가정이 있는 삶을 살지 않았고, 1994년에 죽을 때까지 자신을 출가자라 여겼는데, 이는 그도 인정했듯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짜랴 수쉴 쿠마르와 무니 치트라바누 둘 다 영향력이 있었고, 서로 다른 방식을 취하기는 했으나 미국에 있는 자이나교 공동체에서 우상타파를 주장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자이나교 전통에 있는 완전한 탈세속을 요구하는 제한적인 계율과 서약들 때문에 불교나 힌두교 이민자들과는 달리 자이나교도들은 온전히 계를 받은 출가자나 고행자들을 미국으로 모시고 올 수 없었습니다. 이 서약들 중에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죽이지 않고 살겠다는 서약이 있는데, 이것은 걸을 때, 물건을 주워 올리거나 내려놓을 때, 그리고 먹거나 마실 때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지 않도록 아주 많이 조심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것으로 이동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많은 작은 생명체들을 무차별적으로 밟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이나교 탁발승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도에서 일년 내내 일어나는 신도들과 출가자 공동체 간의 상호작용은, 인도 밖에서 사는 자이나교 이민자들에게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온 방문 설교자들은 어느 정도의 완충지대를 제공했습니다. 판디트(pandit), 즉 전통적인 스승들뿐만 아니라 아직 완전히 계를 받지 않은, 따라서 짧은 기간 동안 인도 바깥으로 여행할 수 있는 출가자들이 있습니다. 디감바라 전통에서 “바타라크”(bhattarak)라 불리는 이러한 부류의 몇몇 수도승들은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관과 가르침의 맥락이 완전히 인도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 젊은이들과 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들보다 더 성공적인 사람들은 쉬베탐바라 수도회의 테라판타 전통에 속하는 사만(saman)과 사마니(samani)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인도에서 아차리야 툴시(Acharya Tulsi)가 해외에서 자이나교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해 특별하게 만든 교단입니다. 이들은 프렉샤 명상(Preksha Meditation)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자이나교 명상법을 가르치는 것에 집중했는데, 이 명상법은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에게 젊은이나 노령층 모두 상관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요컨대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자이나교 전통에서 “권위”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인도에서 신도들은 경전을 이해하고 그것의 의미를 전통적 기준에 따라 설명할 수 있는 출가자나 전통적인 스승들을 권위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특히나 전문가들의 세계에서는, “권위”는 그 사람의 가르침이 합리성과 논리에 기반해 있고 일상 생활의 경험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며 학술적으로 인정받은 전문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자이나교도들에게 그러한 태도는 “과학적인” 것이고 자이나교 교리를 이러한 시각과 같은 선상에 놓으려하는 강한 열망이 있어 왔습니다. 얻을 수 있는 자료를 모으고, 도서관을 만들고,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하고, 인터넷을 사용하려는 청소년들과 성인들의 활기찬 노력은 미국 문화에서 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새로운 종류의 권위를 확립해야 하는 필요에 대한 대응입니다.
무니 치트라바누와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 둘 모두는 새로운 형태의 자이나교 리더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들은 자이나교의 가르침을 서구에 알려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미국의 문화적 맥락을 익혔습니다. 사실 유럽계 미국인들도 그들의 첫 추종자들 중에 있었습니다. 맨해튼에서 무니 치트라바누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자이나교 사원을 건립하고 그것을 국제 자이나교 명상센터라 불렀습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그의 가르침은 아힘싸(비폭력)와 아네칸타바다(anekantavada, 관점의 상대성)과 같은 개념을 취해서 그것들의 의미와 메시지를 보편화시켰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도 1975년에 미국에 도착한 후 미국을 널리 여행하며 강연을 했는데, 주로 자이나교도들이나 다종교 학술행사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목표 중의 하나는 “인도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인도 밖에서 사는 젊은 자이나교도들과 힌두교도들에게 삼스카라(samskara, 통과의례: 출생, 성인됨, 결혼 등 인생의 단계를 거칠 때 수행하는 의식)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1983년에 그가 세운 조직인 국제 마하비르 자이나교 미션(International Mahavir Jain Mission)은 포코노 산맥(Pocono Mountains) 기슭에 있는 오래된 야영장을 구입해서 자이나교 순례센터인 아슈람(ashram)으로 만들었고 “싯다찰람”(Siddhachalam)이라 불리는 여름 캠프를 만들었습니다. 이 장소에는 1991년 언덕 위에 세워진 커다란 사원을 포함해 여러 개의 사원들이 지어졌습니다.
수쉴 쿠마르와 치트라바누 두 사람의 가르침은 “혁신정통”(neo-orthodox)이라 불리는데, 이는 전통적인 인도 자이나교 정통 가르침보다는 더 열려있고, 현실적이고 실천가능한 개혁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자이나교 전통의 깊은 정신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와 자연과 폭력에 대한 자이나교의 시각은 자이나교도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며 자유를 가져다 준다고 가르칩니다. 자이나교도는 그러한 보편적 진리를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부파의 분열과 카스트의 차이는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자이나교 수행자가 자리에 있는 것과 정교한 의례를 행하는 것은 자이나교의 가르침에 대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접근 방식에 의해 밀려났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치뜨라바누와 쑤쉴 꾸마르는 1973년 뉴욕 타임즈가 적었듯이 “제약으로부터의 상쾌한 결별”을 이룬 이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이 두 지도자는 전통에서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와 버렸다고 여겨집니다. 그들의 수도승 시절에 쌓은 자이나교 전통에 대한 학식과 통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구에서 수행자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도에서 출가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가지는 성스러운 지위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그들이 서구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데 따르는 불가피한 부작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와 1990년대 내내 이 두 지도자들은 미국 자이나교의 고유한 기반을 세우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 달라고 계속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원 기공식과 헌당식에 참석했고, 마하비라 자얀티를 기념하거나 파류샤나 기간 동안 가르침을 주기 위해 새로 구성되는 자이나교 공동체와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어린이 캠프와 학생 발표회를 조직하고 지도했습니다. 인도에서는 우상타파주의자인 이들은 미국에서는 조직의 건립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이민자 공동체에서든 결혼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소수인 자이나 공동체에서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모여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것과 관련된 전통과 정체성을 논하였습니다.
결혼할 상대방을 결정하는 것은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에게뿐 아니라 대부분의 새로운 이민 공동체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자이나 공동체처럼 작은 공동체에게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미국의 젊은 사람들은 오직 “사랑에 의한 결혼”만이 용인되는 문화 안에 살면서도 대부분의 경우에 “중매 결혼”만이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족들과 살고 있습니다.
JAINA(북미 자이나교 연합회)의 한 대회에서 23세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합니다. “저는 19살에 부모님과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부모님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고, 만약 부모님께서 당신들 생각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먼저 찾으면 내가 열린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몇 년 후에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위해 한 청년을 찾았고, 그녀는 그와 5개월 만난 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그들의 결혼에 가족이 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타협이 쉽지는 않습니다. 1991년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열린 JAINA 대회에서 젊은 사람들이 “이름에 대한 연극”이라는 제목의 촌극을 공연했습니다. 이 촌극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부모가 가지고 있는 피상적인 선입견들을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촌극은 두 명의 여자 친구를 가진 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 번째 여자 친구는 “샬와 커미즈”(shalwar kameez)라고 불리는 바지 위에 드레스를 입은 인도 전통 의상을 하고 등장합니다. 그녀는 구자라띠 음식을 잘 만들고 인도 춤을 잘 추고 인도 이름을 사용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다른 여자친구는 청바지를 입고 등장합니다. 그녀는 재즈 수업을 들으며 영어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의 부모는 첫 번째 여자친구를 훨씬 더 좋아하며 두 번째 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연극 마지막에 관람객들은 외관상 “전통적인” 여자 친구가 어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제멋대로 살고 부모가 가진 가치들이나 문화에 전혀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반대로 외관상으로는 인도 전통과 아주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인 두 번째 여자 친구가 사실 부모의 관점과 자이나교의 사상과 윤리 전통을 마음 깊이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 모두 대화의 장을 필요로 합니다. 미국 자이나 공동체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인 다이제스트』지를 통해 결혼 정보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이 서비스는 관심 있는 양측의 소개글을 실어 줍니다.
“1960년 1월 출생. 지적이고 잘 생신 채식주의 의사. 몸무게 180파운드, 키 6피트 2 인치, 운동, 독서와 음악을 즐김. 적합한 상대를 구함.”
“1970년 9월 출생으로 교양있고 채식주의자이며 MBA 공부를 하고있는 딸을 위해 구자라티 부모가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직인 사람으로부터 답을 기다림.”
자이나교 공동체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온라인 데이팅의 장점을 활용합니다. 지금은 자이나교도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많은 웹사이트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Jeevansathi.com과 Jain4Jain.com이 그러한 사이트입니다. JAINA 후원자들의 말에 따르면 “결혼과 가족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에서건 우리 문화와 종교의 제도적 기반이 될 것입니다.” 멀리 떨어진 미국에 있는 작은 자이나 공동체에서 자이나 가족의 성장을 어떻게 촉진할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인도에서처럼 자이나교 신도와 출가자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불가능했던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은 그들 전통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고안했습니다. 북미 전역에서 자이나교도들은 스바디야야(공부 모임)을 만들고 경전에 대한 토론을 위해 해외에서 학자들을 초청합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자이나교도들은 자이나교에 관한 기초 지식을 그들이 어린 시절 인도에서 살 때 접한 자이나교 문화에서 습득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성인 자이나교도가 자신의 종교에 대한 보다 넓은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그들은 인도에서보다는 더 능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러 도시에서 성인 자이나교도들은 스바디야야(svadhyaya, 공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스바디야야는 가정이나 자이나교 센터에서 만나서 자이나교 학자들과 출가자들이 쓴 자이나교 경전에 대한 주석서를 읽고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성인들은 그들의 자식들과는 달리 인도어들로 씌여진 많은 자이나교 문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점차 증가하고 있는 인도 출신 자이나교 방문학자들은 미국의 성인 자이나교도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입니다. 이 학자들이 가진 언어(보통 구자라티나 힌디)와 문화적 맥락은 미국의 젊은 자이나교도들에게는 장애물일 수 있지만, 성인 자이나교도들은 쉽게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 할수 있는 것입니다.
쓰바댜야 모임과 학문적 토론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이 미국의 맥락에서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재가자와 출가자가 일상적으로 교유하는 인도에서 신도들은 주로 출가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적어도 자이나교 주류 전통에서 신자들이 공부 그룹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사례는 보기 드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이나교 출가자가 없는 미국의 상황에서, 성인 자이나교도들은 스스로가 종교 교육자를 자임해야만 했습니다.
미국 자이나 공동체들은 종교 교육에 투자해 왔고 “파트샬라”(배움의 장소)라 불리는 자이나교 학교에서 다음 세대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한 대학생 나이의 자이나교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이민 공동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미국 자이나교도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문화가 뒤섞여 있는 신비로운 용광로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며 그 안으로 떨어지지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다음 세대, 우리의 세대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큰 고통을(혹은 기쁨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자이나교를 믿는 인도의 청년들은 대부분 종교적으로 충만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출가자들, 사원, 경전, 주변 사람들과의 일상적 교류를 통해 자신의 종교에 대한 지식을 얻습니다. 이처럼 일상적인 문화 교육, 그리고 젊은이들이 언제나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원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은 자이나교의 적절한 토대가 되어왔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에서 사는 자이나교도들의 환경은 종교적으로 희석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자이나교도들은 너무 넓게 흩어져 있어서 젊은 세대들의 교육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접근 가능한 자료들은 엄청나게 큰 언어 장벽과 공간적 거리감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자이나교 스승들이 인도에서 왔을 때에도 그들의 언어와 맥락은 미국 이민 2세대 자이나교도들의 경험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미국 전역의 자이나 공동체들은 이 딜레마에 파트샬라(pathshala) 프로그램으로 대응했습니다. 파트샬라는 “배우는 장소”를 의미하며, 전통적으로는 그 지역의 구루가 가르치는 종교 수업을 지칭합니다. 인도에서는 이것이 유일한 공식적인 자이나교 교육입니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주로 경전과 만뜨라를 외우며, 이를 터득하기 위한 보조 자료들도 제공됩니다. 미국의 빠앝샬라는 이 오래된 제도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부활시킨 것입니다.
부모들은 대개 몇몇 어린이들과 함께 집의 지하 공간에서 기도책을 가지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거의 전례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실험적이고 진화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은 그들이 직면했던 특수한 도전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실제로는 대부분 부모인 파트샬라의 스승들은 종교적 지식을 전달할 때 무엇이 중요하다고 느낄까? 종교 교육에서 문화와 언어의 역할은 무엇인가? 파트샬라가 어떻게 종교의례나 철학 같은 요소들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파트샬라가 어떻게 아이들이 자이나교의 세계관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것을 도울 수 있을까?
파트샬라 프로그램들은 급성장하며 여러 수준의 커리큘럼을 발전시키고 상당히 많은 양의 교육 자료를 축적했습니다. 영어로 씌여진 어린이용 자이나교 책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에 사는 자이나 젊은이들이 인도어들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것은 대단한 도전이었습니다. 옛것과 새것의 교차점에 놓인 파트샬라의 발전은 자이나교의 빠른 진화 양상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노스캐롤라이나의 학생들은 기도나 노래를 암기할 때마다 포인트를 얻는데,이 포인트는 나중에 현금으로(그것도 상당히 높은 교환율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포인트를 얻고 현금으로 교환하는 것이 아파리그라하(aparigraha, 집착이 없음)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한 학생은 대학에서 배운 수준높은 관점에서 이 경험을 회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생님인 프라빈 샤(Pravin Shah)는 그것이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스스로 돈을 벌어 스니커즈를 사고 싶은 우리 미국 자이나교 신세대들은 포인트를 통해서 종교적 열정에 불을 붙일 수 있었지요. 그리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파트샬라 프로그램은 배움의 다양한 종류와 방식을 강조합니다. 워싱턴 디씨 지역의 학생들은 “자이나교 제퍼디”(Jain Jeopardy) 방식으로 그들의 지식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커네티컷에 있는 학생들은 여러 공동체 봉사에 참여했는데, 그 중에는 브리지포트(Bridgeport) 급식 시설에서 채식으로된 아침을 배급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어떤 공동체들은 미국 자이나교도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언어인 구자라트어를 그들의 파트샬라 커리큘럼의 주요 과목으로 지정했고, 또 다른 공동체들은 자이나교의 근본적 가르침을 고수하며 미국적 맥락에서 그들의 신앙을 담지하는 언어로 영어를 선택했습니다.
파트샬라 프로그램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자이나교의 기초 교리들과 프라크리트어로 된 여러 기본 기도들을 가르칩니다. 젊은이들이 자이나교 교리들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더 다양합니다. 채식의 중요성을 미국적 생활 양식에 녹여내는 것은 보다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젊은이들이 친구들에게 그들이 왜 채식을 하는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떤 패스트푸드 음식점이 채식을 제공하는가?) 몇몇 수업들은 윤리적 직업 선택과 동물 권리의 문제에 관해 토론을 합니다. 또 다른 수업들은 전통적인 자이나교 의례들과 생활방식을 새로운 맥락에서 재조명합니다.
파트샬라 운동에 덧붙여, 젊은 자이나교도들은 스스로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1992년 피츠버그에서 열린 제7회 연례 JAINA 대회에서 “미국의 젊은 자이나교도”(YJA: Young Jains of America)라는 상위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그 다음 해에 YJA는 시카고에서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대회를 개최했는데, 무니 치트라바누가 참석했고, 종교 교육을 화두로 토론하였습니다. 그 후로 2년에 한 번씩 개최되고 있는 YJA 대회는 2020년에 28번째 대회를 맞았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부모 세대와 주도적으로 자신들의 운동을 만드는 젊은 세대의 결합은 미국에서 자이나교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이나교의 특징은 인도 자이나교 전통이 가진 재가자와 출가자의 밀접한 상호작용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 자이나교 출가자 조직의 분파적 성격은 미국 자이나교의 통합과 연대라는 중요한 특성에 의해 사라져 버렸습니다.
1991년 7월 4일 주말에 스탠포드대학교 캠퍼스에 3천 명이 넘는 자이나교도들이 JAINA, 즉 북미 자이나교 연합회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전 지역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주요 행사가 행해진 강당은 자이나 전통의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를 기려 “마하비라 홀”(Mahavira Hall)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아힘사 홀(비폭력 홀)과 사티야 홀(진실 홀)에서도 모임이 있었습니다. 야외에는 참석자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로 텐트가 쳐졌습니다. 자이나 전통의 모든 부파에 속한 자이나교도들이 워크샵과 강연과 문화 행사를 위해 다 같이 모인 것입니다.
자이나교도의 수는 인도 인구의 1%에 못 미치지만, 이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영향력 있고 큰 목소리의 소수자들입니다. 신도의 수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자이나 전통 안에는 여러 부파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분류는 출가자들이 흰색 면으로 된 단순한 옷을 입는 쉬베땀바라 전통과 출가자들이 옷을 입지 않는 디감바라 전통입니다. 인도에서 이 두 분파는 더 작은 부파로 나뉘어집니다. 예를 들어 쉬베땀바라 전통에는 지나들의 형상 앞에서 뿌자를 행하는 무르띠푸자크(Murtipujak) 파도 있고, 푸자를 하지 않는, 사실 형상의 사용을 아예 거부하는 스타나크바시(Sthanakvasi) 파와 테라판트(Therapanth) 파도 있다. 그런데 자이나교 내에 부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도 이 부파들은 자이나 전통 안에서 매우 강한 교리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맥락에서 이들의 통일성은 주된 역할을 합니다. 쉬베탐바라나 다감바라의 출가자들 모두 일단 완전한 계를 받고 나면 인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미국의 자이나교 공동체는 신도와 출가자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의 전통을 잃어버렸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자이나교도들은 이천 년 동안 인도에서 중시되었던 자이나교 부파 각각의 전통이 20세기 미국에서는 급속히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심지어 사원 내에서의 관습과 종교의식에서의 차이점들도 미국의 새로운 자이나교 공동체에서는 다 같이 수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시카고에 있는 새로운 자이나교 사원의 중심 성소에는 아홉 개의 띠르탕까라 형상들이 있습니다. 마하비라와 다른 다섯 명의 티르탕카라의 흰 대리석 형상들은 이마와 어깨와 다른 부분들에 백단유 반죽으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형상들은 장미들과 심지어 은으로 된 왕관으로도 장식되어 있고, 에나멜로 된 큰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쪽에 있는 디감바라 분파에서 특히 존경을 받는 세 명의 티르탕카라의 형상들은 매끄러운 대리석으로만 되어있고 아무 장식도 없습니다. 종교의례(ritual)의 다른 두 전통이 한 사원의 내부 성소에서 만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에 있는 많은 자이나교 사원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의 자이나교 대회에서는 디감바라와 쉬베탐바라 스승들의 가르침과 강연이 있었는데, 이 스승들 중 여러 명은 인도에서 온 방문자들로 아직 마지막 서약을 하지 않아 해외에 있는 자이나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학 캠퍼스의 마하비라 홀 바깥에 있는 로비는 이 새로운 미국 자이나교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들을 나타내는 부스들과 책과 테이프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자이나교의 아주 명성있는 스승들인 구루뎁 치트라바누(Gurudev Ghitrabhanu)와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Acharya Sushil Kumar)가 쓴 소책자들도 있었습니다. 아니타 자인(Anita Jain)이 부른 성가 테이프들도 있었는데, 그는 대회 내내 정기적으로 바잔(bhajan, 성가)을 불렀습니다. 가정 신전에 알맞는 크기의 작은 띠르탕까라들 형상들도 있었습니다. 또 환경보존과 채식주의와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에 대한 엄청난 양의 자료들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은 자이나교의 목소리가 새롭고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인식하게 된 미국 사회가 가지게 된 관심사들입니다.
대회의 전체 주제는 “자이나교 유산의 후속 세대로의 확장”이었습니다. 만약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이 모두 동의하는 것이 있다면 이 주제가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청년들이 이 대회의 발표들에서 단지 발표 주제로만 다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600명 정도의 청년들이 대회에 참가했고, 그들은 “동료와 부모가 주는 압박”, “미국과 인도 문화가 청년들에게 끼치는 영향”, “서구에서 자라나고 살아남기”와 같은 패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청년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자이나 랩”(The Jain Rap)이라고 부르는 무대 공연이 장식했는데, 이 공연에서 한 랩 그룹은 “미국 자이나, 베이비!, 우리는 미국 자이나, 베이비!”(Jain American, Baby. We are Jain American, Baby)라는 후렴구를 불렀습니다. 공연 마지막의 가사는 어른들에게 “우리는 모두 하나, 이것에 주목하라! 쉬베탐바르이건 디감바르이건 그리고 또 어떤 이름이건”을 상기시켰습니다.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이 자이나 전통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어려운 임무에 집중함에 따라 자이나 전통의 분파 구별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승단이 부재한 미국의 상황에서, 미국의 자이나교계는 개혁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무니 치트라바누와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의 운동이 그것입니다.
1973년 12월 18일에 뉴욕타임즈는 “우상파괴주의 자이나교 지도자가 요한 교황으로 비유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는 자이나교 출가자였던 무니 치트라바누(Muni Chitrabhanu)가 미국으로 이민한 것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과의 비교는 그의 지지자들이 주장한 것인데, 그들은 무니 치트라바누가 교황처럼 “그의 믿음의 창문을 열어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도록 했다”고 말합니다.
“창문을 여는 개혁”이란 무니 치트라바누가 1970년에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는 자이나교 탁발승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버리고, 운송수단을 이용해서 여행하는 것을 금하는 계를 깼으며, 브라흐마차리야(brahmacharya)의 서약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을 말한다. 그가 인도를 떠나는 상황은 극적이었습니다. 자이나 신도들은 그가 인도와 정통 자이나교를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비행기 앞의 땅에 드러누웠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무니 치트라바누는 1942년에 쉬베탐바라 출가자가 되었고, 전통에 따르는 삶을 살며 31년 동안 맨발로 인도를 유행하였는데, 51세에 미국 뉴욕으로 가서 정착하고 그의 제자 중 한 명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74년에 스타낙바시 쉬베탐바라(Sthanakvasi Shvetambara) 출가자인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Acharya Sushil Kumar) 역시 미국으로 이민갈 것을 결정했습니다. 하리야나(Hariyana)의 힌두교 가족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자이나교 출가자가 되었고 인도를 떠날 결정을 하기까지 33년을 인도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결혼을 하거나 가정이 있는 삶을 살지 않았고, 1994년에 죽을 때까지 자신을 출가자라 여겼는데, 이는 그도 인정했듯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짜랴 수쉴 쿠마르와 무니 치트라바누 둘 다 영향력이 있었고, 서로 다른 방식을 취하기는 했으나 미국에 있는 자이나교 공동체에서 우상타파를 주장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자이나교 전통에 있는 완전한 탈세속을 요구하는 제한적인 계율과 서약들 때문에 불교나 힌두교 이민자들과는 달리 자이나교도들은 온전히 계를 받은 출가자나 고행자들을 미국으로 모시고 올 수 없었습니다. 이 서약들 중에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죽이지 않고 살겠다는 서약이 있는데, 이것은 걸을 때, 물건을 주워 올리거나 내려놓을 때, 그리고 먹거나 마실 때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지 않도록 아주 많이 조심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것으로 이동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많은 작은 생명체들을 무차별적으로 밟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이나교 탁발승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도에서 일년 내내 일어나는 신도들과 출가자 공동체 간의 상호작용은, 인도 밖에서 사는 자이나교 이민자들에게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온 방문 설교자들은 어느 정도의 완충지대를 제공했습니다. 판디트(pandit), 즉 전통적인 스승들뿐만 아니라 아직 완전히 계를 받지 않은, 따라서 짧은 기간 동안 인도 바깥으로 여행할 수 있는 출가자들이 있습니다. 디감바라 전통에서 “바타라크”(bhattarak)라 불리는 이러한 부류의 몇몇 수도승들은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관과 가르침의 맥락이 완전히 인도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 젊은이들과 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들보다 더 성공적인 사람들은 쉬베탐바라 수도회의 테라판타 전통에 속하는 사만(saman)과 사마니(samani)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인도에서 아차리야 툴시(Acharya Tulsi)가 해외에서 자이나교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해 특별하게 만든 교단입니다. 이들은 프렉샤 명상(Preksha Meditation)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자이나교 명상법을 가르치는 것에 집중했는데, 이 명상법은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에게 젊은이나 노령층 모두 상관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요컨대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자이나교 전통에서 “권위”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인도에서 신도들은 경전을 이해하고 그것의 의미를 전통적 기준에 따라 설명할 수 있는 출가자나 전통적인 스승들을 권위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특히나 전문가들의 세계에서는, “권위”는 그 사람의 가르침이 합리성과 논리에 기반해 있고 일상 생활의 경험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며 학술적으로 인정받은 전문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자이나교도들에게 그러한 태도는 “과학적인” 것이고 자이나교 교리를 이러한 시각과 같은 선상에 놓으려하는 강한 열망이 있어 왔습니다. 얻을 수 있는 자료를 모으고, 도서관을 만들고,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하고, 인터넷을 사용하려는 청소년들과 성인들의 활기찬 노력은 미국 문화에서 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새로운 종류의 권위를 확립해야 하는 필요에 대한 대응입니다.
무니 치트라바누와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 둘 모두는 새로운 형태의 자이나교 리더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들은 자이나교의 가르침을 서구에 알려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미국의 문화적 맥락을 익혔습니다. 사실 유럽계 미국인들도 그들의 첫 추종자들 중에 있었습니다. 맨해튼에서 무니 치트라바누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자이나교 사원을 건립하고 그것을 국제 자이나교 명상센터라 불렀습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그의 가르침은 아힘싸(비폭력)와 아네칸타바다(anekantavada, 관점의 상대성)과 같은 개념을 취해서 그것들의 의미와 메시지를 보편화시켰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아차리야 수쉴 쿠마르도 1975년에 미국에 도착한 후 미국을 널리 여행하며 강연을 했는데, 주로 자이나교도들이나 다종교 학술행사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목표 중의 하나는 “인도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인도 밖에서 사는 젊은 자이나교도들과 힌두교도들에게 삼스카라(samskara, 통과의례: 출생, 성인됨, 결혼 등 인생의 단계를 거칠 때 수행하는 의식)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1983년에 그가 세운 조직인 국제 마하비르 자이나교 미션(International Mahavir Jain Mission)은 포코노 산맥(Pocono Mountains) 기슭에 있는 오래된 야영장을 구입해서 자이나교 순례센터인 아슈람(ashram)으로 만들었고 “싯다찰람”(Siddhachalam)이라 불리는 여름 캠프를 만들었습니다. 이 장소에는 1991년 언덕 위에 세워진 커다란 사원을 포함해 여러 개의 사원들이 지어졌습니다.
수쉴 쿠마르와 치트라바누 두 사람의 가르침은 “혁신정통”(neo-orthodox)이라 불리는데, 이는 전통적인 인도 자이나교 정통 가르침보다는 더 열려있고, 현실적이고 실천가능한 개혁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자이나교 전통의 깊은 정신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와 자연과 폭력에 대한 자이나교의 시각은 자이나교도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며 자유를 가져다 준다고 가르칩니다. 자이나교도는 그러한 보편적 진리를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부파의 분열과 카스트의 차이는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자이나교 수행자가 자리에 있는 것과 정교한 의례를 행하는 것은 자이나교의 가르침에 대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접근 방식에 의해 밀려났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치뜨라바누와 쑤쉴 꾸마르는 1973년 뉴욕 타임즈가 적었듯이 “제약으로부터의 상쾌한 결별”을 이룬 이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이 두 지도자는 전통에서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와 버렸다고 여겨집니다. 그들의 수도승 시절에 쌓은 자이나교 전통에 대한 학식과 통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구에서 수행자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도에서 출가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가지는 성스러운 지위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그들이 서구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데 따르는 불가피한 부작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와 1990년대 내내 이 두 지도자들은 미국 자이나교의 고유한 기반을 세우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 달라고 계속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원 기공식과 헌당식에 참석했고, 마하비라 자얀티를 기념하거나 파류샤나 기간 동안 가르침을 주기 위해 새로 구성되는 자이나교 공동체와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어린이 캠프와 학생 발표회를 조직하고 지도했습니다. 인도에서는 우상타파주의자인 이들은 미국에서는 조직의 건립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이민자 공동체에서든 결혼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소수인 자이나 공동체에서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모여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것과 관련된 전통과 정체성을 논하였습니다.
결혼할 상대방을 결정하는 것은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에게뿐 아니라 대부분의 새로운 이민 공동체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자이나 공동체처럼 작은 공동체에게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미국의 젊은 사람들은 오직 “사랑에 의한 결혼”만이 용인되는 문화 안에 살면서도 대부분의 경우에 “중매 결혼”만이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족들과 살고 있습니다.
JAINA(북미 자이나교 연합회)의 한 대회에서 23세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합니다. “저는 19살에 부모님과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부모님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고, 만약 부모님께서 당신들 생각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먼저 찾으면 내가 열린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몇 년 후에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위해 한 청년을 찾았고, 그녀는 그와 5개월 만난 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그들의 결혼에 가족이 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타협이 쉽지는 않습니다. 1991년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열린 JAINA 대회에서 젊은 사람들이 “이름에 대한 연극”이라는 제목의 촌극을 공연했습니다. 이 촌극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부모가 가지고 있는 피상적인 선입견들을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촌극은 두 명의 여자 친구를 가진 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 번째 여자 친구는 “샬와 커미즈”(shalwar kameez)라고 불리는 바지 위에 드레스를 입은 인도 전통 의상을 하고 등장합니다. 그녀는 구자라띠 음식을 잘 만들고 인도 춤을 잘 추고 인도 이름을 사용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다른 여자친구는 청바지를 입고 등장합니다. 그녀는 재즈 수업을 들으며 영어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의 부모는 첫 번째 여자친구를 훨씬 더 좋아하며 두 번째 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연극 마지막에 관람객들은 외관상 “전통적인” 여자 친구가 어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제멋대로 살고 부모가 가진 가치들이나 문화에 전혀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반대로 외관상으로는 인도 전통과 아주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인 두 번째 여자 친구가 사실 부모의 관점과 자이나교의 사상과 윤리 전통을 마음 깊이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 모두 대화의 장을 필요로 합니다. 미국 자이나 공동체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인 다이제스트』지를 통해 결혼 정보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이 서비스는 관심 있는 양측의 소개글을 실어 줍니다.
“1960년 1월 출생. 지적이고 잘 생신 채식주의 의사. 몸무게 180파운드, 키 6피트 2 인치, 운동, 독서와 음악을 즐김. 적합한 상대를 구함.”
“1970년 9월 출생으로 교양있고 채식주의자이며 MBA 공부를 하고있는 딸을 위해 구자라티 부모가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직인 사람으로부터 답을 기다림.”
자이나교 공동체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온라인 데이팅의 장점을 활용합니다. 지금은 자이나교도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많은 웹사이트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Jeevansathi.com과 Jain4Jain.com이 그러한 사이트입니다. JAINA 후원자들의 말에 따르면 “결혼과 가족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에서건 우리 문화와 종교의 제도적 기반이 될 것입니다.” 멀리 떨어진 미국에 있는 작은 자이나 공동체에서 자이나 가족의 성장을 어떻게 촉진할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인도에서처럼 자이나교 신도와 출가자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불가능했던 미국의 자이나교도들은 그들 전통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고안했습니다. 북미 전역에서 자이나교도들은 스바디야야(공부 모임)을 만들고 경전에 대한 토론을 위해 해외에서 학자들을 초청합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자이나교도들은 자이나교에 관한 기초 지식을 그들이 어린 시절 인도에서 살 때 접한 자이나교 문화에서 습득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성인 자이나교도가 자신의 종교에 대한 보다 넓은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그들은 인도에서보다는 더 능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러 도시에서 성인 자이나교도들은 스바디야야(svadhyaya, 공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스바디야야는 가정이나 자이나교 센터에서 만나서 자이나교 학자들과 출가자들이 쓴 자이나교 경전에 대한 주석서를 읽고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성인들은 그들의 자식들과는 달리 인도어들로 씌여진 많은 자이나교 문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점차 증가하고 있는 인도 출신 자이나교 방문학자들은 미국의 성인 자이나교도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입니다. 이 학자들이 가진 언어(보통 구자라티나 힌디)와 문화적 맥락은 미국의 젊은 자이나교도들에게는 장애물일 수 있지만, 성인 자이나교도들은 쉽게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 할수 있는 것입니다.
쓰바댜야 모임과 학문적 토론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이 미국의 맥락에서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재가자와 출가자가 일상적으로 교유하는 인도에서 신도들은 주로 출가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적어도 자이나교 주류 전통에서 신자들이 공부 그룹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사례는 보기 드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이나교 출가자가 없는 미국의 상황에서, 성인 자이나교도들은 스스로가 종교 교육자를 자임해야만 했습니다.
미국 자이나 공동체들은 종교 교육에 투자해 왔고 “파트샬라”(배움의 장소)라 불리는 자이나교 학교에서 다음 세대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한 대학생 나이의 자이나교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이민 공동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미국 자이나교도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문화가 뒤섞여 있는 신비로운 용광로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며 그 안으로 떨어지지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다음 세대, 우리의 세대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큰 고통을(혹은 기쁨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자이나교를 믿는 인도의 청년들은 대부분 종교적으로 충만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출가자들, 사원, 경전, 주변 사람들과의 일상적 교류를 통해 자신의 종교에 대한 지식을 얻습니다. 이처럼 일상적인 문화 교육, 그리고 젊은이들이 언제나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원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은 자이나교의 적절한 토대가 되어왔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에서 사는 자이나교도들의 환경은 종교적으로 희석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자이나교도들은 너무 넓게 흩어져 있어서 젊은 세대들의 교육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접근 가능한 자료들은 엄청나게 큰 언어 장벽과 공간적 거리감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자이나교 스승들이 인도에서 왔을 때에도 그들의 언어와 맥락은 미국 이민 2세대 자이나교도들의 경험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미국 전역의 자이나 공동체들은 이 딜레마에 파트샬라(pathshala) 프로그램으로 대응했습니다. 파트샬라는 “배우는 장소”를 의미하며, 전통적으로는 그 지역의 구루가 가르치는 종교 수업을 지칭합니다. 인도에서는 이것이 유일한 공식적인 자이나교 교육입니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주로 경전과 만뜨라를 외우며, 이를 터득하기 위한 보조 자료들도 제공됩니다. 미국의 빠앝샬라는 이 오래된 제도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부활시킨 것입니다.
부모들은 대개 몇몇 어린이들과 함께 집의 지하 공간에서 기도책을 가지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거의 전례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실험적이고 진화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은 그들이 직면했던 특수한 도전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실제로는 대부분 부모인 파트샬라의 스승들은 종교적 지식을 전달할 때 무엇이 중요하다고 느낄까? 종교 교육에서 문화와 언어의 역할은 무엇인가? 파트샬라가 어떻게 종교의례나 철학 같은 요소들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파트샬라가 어떻게 아이들이 자이나교의 세계관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것을 도울 수 있을까?
파트샬라 프로그램들은 급성장하며 여러 수준의 커리큘럼을 발전시키고 상당히 많은 양의 교육 자료를 축적했습니다. 영어로 씌여진 어린이용 자이나교 책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에 사는 자이나 젊은이들이 인도어들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것은 대단한 도전이었습니다. 옛것과 새것의 교차점에 놓인 파트샬라의 발전은 자이나교의 빠른 진화 양상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노스캐롤라이나의 학생들은 기도나 노래를 암기할 때마다 포인트를 얻는데,이 포인트는 나중에 현금으로(그것도 상당히 높은 교환율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포인트를 얻고 현금으로 교환하는 것이 아파리그라하(aparigraha, 집착이 없음)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한 학생은 대학에서 배운 수준높은 관점에서 이 경험을 회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생님인 프라빈 샤(Pravin Shah)는 그것이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스스로 돈을 벌어 스니커즈를 사고 싶은 우리 미국 자이나교 신세대들은 포인트를 통해서 종교적 열정에 불을 붙일 수 있었지요. 그리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파트샬라 프로그램은 배움의 다양한 종류와 방식을 강조합니다. 워싱턴 디씨 지역의 학생들은 “자이나교 제퍼디”(Jain Jeopardy) 방식으로 그들의 지식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커네티컷에 있는 학생들은 여러 공동체 봉사에 참여했는데, 그 중에는 브리지포트(Bridgeport) 급식 시설에서 채식으로된 아침을 배급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어떤 공동체들은 미국 자이나교도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언어인 구자라트어를 그들의 파트샬라 커리큘럼의 주요 과목으로 지정했고, 또 다른 공동체들은 자이나교의 근본적 가르침을 고수하며 미국적 맥락에서 그들의 신앙을 담지하는 언어로 영어를 선택했습니다.
파트샬라 프로그램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자이나교의 기초 교리들과 프라크리트어로 된 여러 기본 기도들을 가르칩니다. 젊은이들이 자이나교 교리들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더 다양합니다. 채식의 중요성을 미국적 생활 양식에 녹여내는 것은 보다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젊은이들이 친구들에게 그들이 왜 채식을 하는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떤 패스트푸드 음식점이 채식을 제공하는가?) 몇몇 수업들은 윤리적 직업 선택과 동물 권리의 문제에 관해 토론을 합니다. 또 다른 수업들은 전통적인 자이나교 의례들과 생활방식을 새로운 맥락에서 재조명합니다.
파트샬라 운동에 덧붙여, 젊은 자이나교도들은 스스로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1992년 피츠버그에서 열린 제7회 연례 JAINA 대회에서 “미국의 젊은 자이나교도”(YJA: Young Jains of America)라는 상위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그 다음 해에 YJA는 시카고에서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대회를 개최했는데, 무니 치트라바누가 참석했고, 종교 교육을 화두로 토론하였습니다. 그 후로 2년에 한 번씩 개최되고 있는 YJA 대회는 2020년에 28번째 대회를 맞았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부모 세대와 주도적으로 자신들의 운동을 만드는 젊은 세대의 결합은 미국에서 자이나교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