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나교

자이나교는 마하비라(Mahavira)가 창시한 인도의 민족 종교 중 하나입니다. 비폭력과 금욕주의를 내세우며 금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마스카라 만트라는 자이나 전통에서 숭앙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다섯 찬양으로, 많은 종교 행사에서 암송되어집니다. 이 만뜨라는 아침 저녁으로 되풀이되고, 임종시에도 기억합니다.

 


 

자이나교의 제일 잘 알려진 찬양 암송은 “나모 아리한타남”(Namo Arihantanam)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아리한타들에게 경배”를 의미하는데, 아리한타는 문자 그대로는 “가치 있는 사람들” 또는 “적을 이긴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적은 특히 분노, 욕심, 거짓, 아만심 등 영적 삶의 길을 가장 방해하는 내적인 적들을 의미합니다. 지나와 티르탕카라들은 위대한 아리한타들입니다. 자이나교도들은 어릴 때 나마쓰카라 만트라(Namaskara Mantra)를 배우고 아침 저녁으로 반복하며 죽음의 순간에는 그것을 기억합니다.


완성된 영혼들, 아리한타들에게 경배.

해방된 영혼들, 싯다(siddha)들에게 경배.

우리의 영적 지도자, 아차리야(acharya)들에게 경배.

우리의 성스러운 스승들, 우파댜야(upadhyaya)들에게 경배.

세상 모든 성직자(sadhu)들에게 경배.

이 다섯 경배는

모든 죄를 없애며

모든 상서로운 것들 중에서

제일 상서로운 것이다.

 

다섯 경배를 담고 있는 이 나마스카라 만트라는 자이나교도들이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 암송되는데, 사원에서 하는 기도나 일상 생활 혹은 특별한 일이나 모임에 대한 축복으로 사용됩니다. 이것은 이 존재들에게 바쳐지는 찬양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경배를 받는 대상인 존재들이 사람들의 찬양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또한 빛나는 자아인식을 얻은 존재들은 심지어 그 찬양을 들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그 어느 자이나교도라도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찬양은 대상이 되는 존재들에게 바쳐지는 찬양이 아니라, 그들에 관한 찬양인 셈입니다. 출가의 삶을 택함으로써 자유를 향한 길을 시작한 사람들에 대한, 많은 스승들에 대한, 그리고 마침내 해방된 영혼들에 관한 찬양입니다. 한 자이나교도는 말합니다. “찬양을 할 때, 우리 자신들은 우리가 찬양하는 특성들을 상기하게 되고, 우리 자신들은 변해갑니다.”






1993년에서 1995년 사이에 스물 네 개의 자이나교 티르탕카라 상(像)들이 자이뿌르에서 시카고의 사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형상들은 축성되었고 그리하여 티르탕카라들이 공식적으로 사원에 모셔졌습니다.



 

1993년 봄, 아홉 개의 대리석으로 된 자이나교 티르탕카라의 상(像)들이 화물 상자에 담겨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인도 자이푸르에서 제작된 이 형상들은 메트로폴리탄 시카고의 자이나협회가 바틀렛(Bartlett) 서쪽 외곽에 지은 새 사원에 놓일 예정이었습니다.

 

시카고의 자이나교도들은 20년 동안 모임을 가져오면서 시카고 지역에 있는 여러 학교 강당이나 연회장을 빌려서 연례 축제를 해오던 차였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사원을 짓기 위해 바틀렛에 15에이커의 땅을 살 수 있었습니다. 땅에 대한 뿌자, 즉 기공식은 1990년 11월에 이루어졌습니다. 중앙 건물은 1992년 5월에 개관했는데, 사원과 강당과 주방 설비와 회합실들을 갖춘 고급 벽돌과 대리석으로 된 건물입니다. 그러나 형상들은 1993년 6월이 되어서야 거치되고 축성되었습니다. 1995년 6월에 스물네 명을 다 채운 티르탕카라 형상들이 중심 성소를 둘러싸고 있는 작은 방들에 모셔졌습니다. 이는 인도에 있는 자이나교 사원의 특징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축성의식은 “프라티스타”(pratishtha, 세우기)라 불립니다. 사원의 공식 출간물에는 “프라티스타는 새로 지은 자이나교 사원에 절대자(Lord)의 형상을 모시는 의식의 명칭입니다. 형상을 모시는 것은 상징적으로 마음에 절대자(Lord)의 존재를 모시는 일이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우리 자신 안에 성스러운 존재들이 자리 잡는다는 내면적 측면도 있지만, 일단 이 형상들이 프라티스타 의식을 거치고 나면, 형상들은 매일매일 푸자―경배, 찬양 그리고 돌봄―를 받아야 합니다. 푸자는 그 의식을 수행하는 재가자인 푸자리(pujari)가 준비해야 합니다. 이 의식이 거행되기 전에는 이 신상들은 그저 돌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해됩니다. 그러나 자이나교도들은 프라띠스타 의식 후에 “성스러운 진동”이 존재하게 되고 형상들도 “내재적인 생명”을 가지게 된다고 믿습니다.

 

형상을 축성하는 의식은 다섯 개 그룹의 성자들이 찬양을 받는 나마스카라 만트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서 축성을 받는 형상들이 나타내는 특정한 성자들을 경배하기 위하여 물, 백단향(sandalwood), 꽃, 음식, 향, 기름 램프, 과일을 사용하는 뿌자가 행해집니다. 이 의식은 형상들을 씻기고, 만트라와 찬송을 암송하고, 형상들의 아홉 군데―발, 무릎, 팔, 어깨, 배꼽, 심장, 목, 이마, 정수리―를 만지는 행위를 포함합니다. 이 긴 의식의 몇 부분은 재가자들, 보통 그 특권을 위해 제일 높은 가격을 제시한 가족이나 부부가 수행합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의식이나 축제 기간에 열리는 의식에서 다양한 제의적인 역할을 맡기 위해 “호가 경쟁”을 하는 것은 자이나교 전통에서 자금조달을 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카고에 모셔진 세 개의 주요 형상들은 내부 성소의 가운데에 놓인 스물네 번째이자 마지막 티르탕카라인 마하비라, 왼쪽에 놓인 첫 번째 티르탕카라인 아디나트, 그리고 오른쪽에 놓인 스물세 번째 티르탕카라인 파르쉬바나트입니다. 이들은 사실 영적 선구자들의 형상들이 다 그러하듯이 비슷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형상은 각자와 연관된 상징적 동물들로 구별됩니다. 마하비라는 사자와 함께, 아디낱는 황소와 함께, 그리고 빠르쉬바낱는 머리 위에 부채 모양으로 펼쳐진 뱀과 함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2년 후에 시카고 사원에 모셔진 나머지 티르탕카라들의 형상들도 각각 연결된 상징물들―보통 동물이거나 자연의 구성 요소―로 구별됩니다.

 

자이나교 신도들은 사원에 들러 이 형상들 앞에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하는데, 아마도 염주를 돌리며 기도를 반복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사원은 빛나는 스승들이 상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앞에서 명상 수행을 할 수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자이나교도들은 또한 다양한 형태의 경배, 즉 푸자—물, 과일, 꽃, 그리고 “아라티”(arati)라 불리는 램프 공양 등—를 행합니다. 이런 경배와 동시에 그들은 만트라를 암송하거나 잘 알려진 바브나(bhavna), 즉 찬송가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형상물들의 작은 복제품을 은으로 된 판 위에 놓고 물을 뿌리는 상징적 목욕 의식을 하거나 성소에 들어가 지나의 아홉 개의 신체 부분에 백단향 반죽을 붙이는 일 등 특별한 의식들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형상들을 장식하는 것은 오직 쉬베탐바라 자이나교도들만의 역할입니다. 디감바라 신도들은 그들의 고행자들이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티르탕카라 형상들을 꽃이나 백단향 반죽으로 장식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한 깨달음에서 사는 마하비라는 이 공양물들을 받는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20대의 한 여성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신심으로 공양물을 바칩니다. 그러나 절대자(Lord)는 이것들을 받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 않아요. 이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으로, 영적 정화와 집착을 여의는 일로 나아가는 한 걸음입니다.”






마하비라 자얀티 축일은 마하비라의 탄생을 기념하며, 그의 형상을 목욕시키는 의식이 행해집니다. 디발리는 마하비라의 해탈을 빛을 밝힘으로써 기념합니다.



 

많은 경우에, 자이나교도들은 그들이 각 띠르탕까라의 삶에서 “상서로운 순간”이라 부르는 다섯 개의 순간들, 즉 잉태, 탄생, 출가, 깨닮음, 죽음에 따른 마지막 해방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자이나교의 축제 중에서 두 개의 큰 축제는 특히 티르탕카라 마하비라의 삶과 성취에 바쳐집니다. 마하비라 자얀티(Mahavira Jayanti)는 그의 탄생을, 디발리(Divali)는 그의 마지막 해방, 즉 열반(nirvana)을 경축합니다.

 

1994년 4월 24일에 자이나교도들은 마하비라의 2,592번째 탄생일을 기념했습니다. 요즘 인도에서 마하비라 자얀티는 국경일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날은 국경일과는 거리가 먼 날이지만, 자이나교 공동체의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축일입니다. 오클라호마의 털사에서 털사 자이나 상가(Tulsa Jain Sangha)의 아이들은 스나트라 푸자(Snatra Puja), 마하비라의 형상을 목욕시키는 의식을 돕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아이들이 마하비라의 어머니가 마하비라가 태어나기 직전에 꾸었던 열네 개의 꿈을 무용극으로 공연합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는 아이들은 낭송과 춤을 포함한 문화 프로그램에 참가합니다. 플로리다에서는 마이애미, 포트 마이어스(Fort Myers), 잭슨빌(Jacksonville)의 자이나교도들이 코럴 스프링(Coral Spring)에 있는 램블우드 중학교(Ramblewood Middle School)에 모여 함께 경축행사를 합니다. 이날의 설교자는 많은 전쟁과 갈등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마하비라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쉬베탐바라 자이나교들도 마하비라의 탄생을 매년 열리는 8일에 걸친 파류샤나(Paryushana) 축제에서 기념하는데, 이 축제는 8월이나 9월에 열립니다. 이때, 마하비라의 어머니가 꾼 열네 개의 꿈을 표현한 은으로 된 조형물들에 경배를 올립니다. 무르띠푸자크 쉬베탐바라(Murtipujak Shvetambara) 교도들은 경전에 나오는 마하비라의 탄생 이야기인 『칼파 수트라(Kalpa Sutra)』를 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해 3월이나 4월에 열리는 마하비라 자얀티가 공식적인 탄생일로 여겨집니다.

 

마하비라의 열반은 “디발리”라 불리는 축제로 기념되는데, 이는 가을에 열리는 빛의 축제입니다. 힌두 전통에서 이 축제는 부와 번영의 여신인 락슈미(Lakshmi)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가정과 회사에서는 그곳이 락스미가 방문할 만한 훌륭한 거주처가 될 수 있도록 수많은 빛을 밝힙니다. 자이나교도들도 디발리 빛을 밝히는데, 그들에게 이 빛들의 의미는 티르탕카라 마하비라의 깨달음(illumination)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임종 당시 열반의 상태에 들어갈 때, 그는 영혼의 밝은 빛으로 비춰진 완전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자이나교도들이 디발리 축제에서 경배하는 “부”(wealth)입니다. 파류샤나가 보다 진지한 영적 축일이라면, 디발리는 진정으로 축제에 해당하는 자이나교 축일입니다. 자이나교도들은 밤에 모여 램프를 밝히고 만트라를 외우며 같이 노래합니다.

 

『자인 다이제스트』(Jain Digest)에 실린 논문에서 어느 미국 자이나교도는 “사마이크”(samayik)이라 불리는 형태의 명상 수행을 독려했는데, 이를 마하비라의 열반을 따르는 일의 타당한 일부로 여겼습니다. 사마이크 명상 수행은 48분 동안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고 평정심을 얻는 수행입니다. 이것은 자이나교의 오래된 수행법으로 영혼으로 다가가는 내적인 길로 여겨집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의 사마이크 수행은 평정심을 수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하비라의 열반일을 빛과 기타 다른 것들로 축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 안에 있는 빛이 밝혀지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봅시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열반일 전날 저녁에 진정한 사마이크를 수행하고 평화와 평정을 얻도록 마음먹읍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이나교가 단순히 기계적인 종교의식들의 묶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절대자 마하비라에 대한 가장 올바른 경배일 것입니다.”





자이나교의 연중 종교의식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인 빠류사나는 문자 그대로 “머무르기” 또는 “함께 모이기”를 의미합니다. 8일 또는 10일 동안 행해지는 빠류사나 기간은 강도 높은 공부와 명상과 정화의 시간입니다. 파류샤나는 마지막 날에 고해를 하고 용서를 비는 의식에서 정점에 달합니다.




파류샤나(Paryushana)는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자이나교의 행사일입니다. 이 축제를 8일에 걸쳐 거행하는 쉬베탐바라들과 10일 동안 하는 다감바라들 모두에게 이 시기는 공부와 명상과 정화를 집중해서 행하는 기간입니다. 이 축제는 인도에서는 출가자들이 유행하는 생활을 멈추고 한 장소에서 공동체와 같이 지내는 넉 달간의 우기 중간에 행해집니다. 파류샤나는 문자 그대로 “머무르기” 또는 “함께 모이기”를 의미합니다. 우기 동안 고정 거주지에 머물러야 하는 출가자들은 신도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합니다. 이 시기는 또한 신도들이 공부와 금식에 관련된 일시적인 서약을 하는 때로, 일시적인 승려생활과 비슷한 강한 영적 집중의 시기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빠류샤나는 기독교의 사순절과 같이 다른 종교들의 엄격한 종교 활동 기간들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파류샤나는 지난 일 년 동안 범했던 것들에 대한 고해와 용서의 시간으로 마무리됩니다.

 

미국에서 자이나교도들은 종종 쉬베탐바라 전통의 8일 행사에 이어 디감바라 전통의 10일 행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두 개의 일정을 결합합니다. 무니 치트라바누(Muni Chitrabhanu)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빠류샤나 기간 동안에 자이나교센터에 머무르고, 신도들은 이 때 그들을 영접하는 관행이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만나는 자리는 사전에 신도들에게 참석 확인을 받은 후에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이 모든 센터들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몇몇 센터들은 인도에서 출가자들을 초대합니다. 이들은 아직 온전한 출가 서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탈것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수행자의 삶에 대한 타협을 통해서 미국에 머물 수 있습니다. 어떤 센터는 사만(saman)과 사마니(samani)들을 초대하는데, 이들은 인도 외의 지역에서 자이나교 공동체를 만날 수 있도록 새로 만들어진 부파에 속하는 남성 출가자와 여성 출가자입니다.

 

체류하는 종교 지도자가 없더라도, 파류샤나 기간 동안 신도들은 매일 저녁 만나서 이때만큼은 자신들의 영혼에 집중합니다. 파류샤나의 제일 중요한 부분은 매일 행하는 명상과 기도로, 이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띠르탕까라들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파류샤나의 네 번째 날에 무르띠뿌작 쉬베땀바라들은 전통적으로 『깔빠쑤뜨라』(Kalpa Sutra)를 읽습니다. 『깔빠쑤뜨라』는 마하비라의 일생을 담고 있는 성전으로 그가 태어나기 전에 그의 어머니가 꾼 열네 개의 꿈과 그의 탄생, 일생, 그리고 그의 해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깔빠쑤뜨라』는 다른 띠르탕까라들의 일생과 파류샤나의 규칙 또한 담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경전이 의례적으로 길을 따라 운반되며, 그 여정에 물을 뿌려 마을 전체를 정화합니다.

 

자이나교도들은 종종 이 기간 동안 일을 쉬고 아주 간소한 음식만을 섭취합니다. 그들은 일상적인 채식 식단에 더하여 감자, 양파, 마늘 같은 음식도 먹지 않는데, 이러한 채소를 먹는 일은 단순히 열매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 자체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자이나교도들은 파류샤나 기간에 금식을 하기도 하는데, 어떤 이들은 기간 내내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파류샤나가 끝나면 8일이나 10일 동안 금식을 한 사람들은 금식을 마치고 특별한 식사를 하는데, 이때 그들은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그들이 금식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는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여줍니다.

 

쉬베땀바라 교도들은 파류샤나의 마지막 날에 연례적으로 하는 고해인 삼밧사리 프라티크라만(Samvatsari Pratikraman)을 행합니다. 다섯 개의 위대한 서약을 깬 행동을 스승에게 고백하는 것은 신실한 자이나교도의 한 해 동안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 전체가 하는 고해의 시간입니다. 스승에게 사죄를 구하는 의식은 범위를 넓혀 가족과 친구와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을 포함합니다. 고해 의식의 정점은 모든 생명체로부터 용서를 받고 또한 모든 생명체들에게 용서를 행하는 부분입니다.

 

용서 의식은 때대로 보편적 우정의 의식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자이나센터들은 청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용서의 의식을 영어로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세인트루이스와 샌디에고의 자이나교 공동체들은 영어로 된 쁘라띠끄라만 소책자들을 발간했습니다. 이 날의 정신을 아래의 시에 담겨 진정성 있게 암송됩니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나를 용서하기를,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의 친구이며,

나에게 적대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화합과 번성이 있기를.

 





자이나교도들의 비폭력은 가장 구체적으로 그들이 택하는 채식 식단에서 드러납니다. 신도들 역시 그들의 개인적 활동과 직업에서 비폭력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아힘사(Ahimsa)는 비폭력 또는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자이나교 전통의 세계관과 윤리관에서 중심적인 요소입니다. 자이나교가 가지는 생명체의 범위에 대한 관점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모든 식물과 동물을 포함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그것은 단순히 생명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다른 생명체들에게 완전히 폭력을 가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자이나교도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에 폭력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이것은 자이나교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윤리적 선택과 어려움을 의식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제일 첫 번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는가일 것입니다.

 

한 자이나교도는 “사람들이 나의 종교에 대해 물을때, 내가 보통 첫 번째로 말하는 것은 우리가 채식을 한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비폭력을 믿고, 그것은 동물을 죽이지도 먹지도 않는 것을 포함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자이나교도들에게 이것은 동물 전체를 식단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음식이 준비되느라 동물들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채소들도 생명체들이지만, 그들의 지각 능력은 온전한 지각 능력을 갖춘 동물들보다는 덜 발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나 콩깍지 같은 과일과 식물 부산물들을 먹는 것이 감자나 당근 같은 살아있는 유기체 전체를 먹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출가자들은 식단에 있어서 신도들보다 훨씬 더 엄격하지만, 모든 자이나교도들은 식단이 영적이고 도덕적인 중요성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자이나교리 회람』(Jain Study Circular)의 페이지들은 채식주의에 대한 기고문과 편지로 가득 차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하이오주 데이턴(Dayton)의 여덟 살짜리 아쉬쉬(Ashishi)는 “학교에서 점심시간 때 나는 가끔 자이나교도가 아닌 학생들 앞에서 곤경을 겪곤 해요. 학교에서 주는 점심식사에는 항상 고기가 나오기 때문에 엄마는 매일 채식 도시락을 싸서 줘요. 자이나교도가 아닌 학생들이 가끔 나를 놀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애들을 되쏘아보면서 계속 먹는 것뿐이에요. 나는 또 그 아이들에게 동물을 먹기 위해서 죽이는 것을 옳지 않고, 채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더 건강하다고 말해요.”라고 썼습니다.

 

한 십대 학생은 “파티에 가거나 친구들의 집을 방문할 때는 어떻게 채식을 실천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파티 주최자들에게 모든 음식들의 재료들, 그것이 고기, 생선, 달걀, 동물 지방, 젤라틴 등등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은 난감한 일입니다. ” 자이나 공동체는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오아시스 같은 지지와 동료의식을 제공한다.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건강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채식주의자들의 상황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한 편지에는 “우리는 파티나 사무실, 학교, 소풍에서 우리의 채식주의 식단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채식이 훨씬 더 건강에 좋다는 것은 과학이 증명합니다.”

 

물론 식단은 인간이 가지는 폭력의 가능성 중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폭력은, 예를 들면,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에 있는 자이나교도들이 해결해야 할 아힘사 윤리의 다른 측면입니다. 식당을 소유한 사업가는 고기를 팔지 아닐지를 조심스럽게 선택해야 합니다. 기술자들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과 관련된 직업을 택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은 동물실험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 사이에서 협상을 해야만 합니다. 다른 이들은 그들의 벤처 사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동물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며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개발된 화장품과 세제를 고르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공공 정책을 만드는 것 또한 아힘사를 강조하는 자이나교도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입니다. 자이나교도들은 국제적 분쟁, 경제적 공정, 낙태, 시민권에 대한 토론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특히 환경보호주의의 많은 이슈들에 대한 종교적 담론을 만들어 왔습니다. 예를 들면 “자이나교 자연 선언”(Jain Declaration on Nature)은 인간 공동체가 생명 공동체 전체, 다시 말해서 식물과 동물을 포함한 공동체 전체의 부분이라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종종 일관성이 없고 서로 충돌하는 우선권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자이나교도들은 아힘사의 원칙을 지키려고 분투하고 있습니다.

 





자이나교는 미국이라는 환경에서 놀라운 방식들로 나타나곤 합니다. 자이나 사원을 티크 목재로 만든 모형은 1904-5년에 개최된 세인트 루이스 박람회에서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더 카스터웨이즈 호텔로 옮겨졌고, 최종적으로는 1988년에 남캘리포니아의 자이나교센터에 안치되었습니다.



1998년에 숨마 코퍼레이션(Summa Corporation)이 회사 소유의 유명한 라스베이거스의 스트립쇼 호텔인 “더 카스터웨이즈”(The Castaways)를 부수고 새로운 “미라지 호텔”(Mirage Hotel)을 짓기로 결정했을 때, 더 카스터웨이즈가 팔려고 내놓은 가구 중에는 티크 목재로 된 14톤 무게의 자이나 사원 모형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50만 달러에 응하는 구매자가 없자, 쑴마 코퍼레이션은 그것을 남캘리포니아의 자이나교센터 라스베이거스 지부인 ‘인도의 친구’(The Friends of India)에 기부했습니다.

 

사원 모형은 원래 20세기 초에 65명의 자이나교 장인들이 2년 넘게 걸려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자이나교가 주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영국 정부가 1904-5년의 세인트 루이스 박람회(St. Louis Fair)에서 동인도 전시관에 전시하려고 사원 복제품을 만들도록 의뢰한 것이었습니다. 박람회가 끝났을 때, 사원 모형은 분해되고 포장되어 영국으로 가는 배에 실릴 예정이었습니다만 어째선지 영국으로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사원 모형 부품들을 구입한 미국 예술작품 수집가는 그것을 재조립하지 않았고, 1970년대 초에 그가 죽을 때까지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그의 소장품이 경매에 나왔을 때 사원 모형은 예술 판매상의 손에 들어갔고, 그는 그것을 하워드 휴(Howard Hugh)의 쑴마 코퍼레이션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14년 동안 복제품은 더 카스터웨이즈 호텔의 정원에서 장식 예술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호텔 경영진은 복제품을 “행운으로 가는 입구”(Gateway to Luck)이라고 불렀고, 그 옆에 도박하는 사람들이나 다른 손님들이 행운을 빌며 동전을 던져 넣을 수 있도록 소원을 비는 작은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더 카스터웨이즈의 후원자들 중에 자이나 사원에 도박의 행운을 비는 큰 아이러니를 알아챈 사람은 거의 없었겠죠.

 

흰색 대리석이 아닌 티크 목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형은 구자랃에 있는 제일 오래되고 신성시되는 자이나교 티르타(tirtha) 중의 하나인 팔리타나(Palitana) 사원을 본뜬 것입니다. 모형 중심부에 있는 탑은 35피트 높이이고 바닥은 20제곱피트이며 무게는 거의 1만 파운드에 육박합니다. 사원 모형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열두 개의 기둥, 윗층으로 올라가는 조각된 나선형 계단들, 위층의 아름다운 난간 벽들이 있고, 열두 개의 기둥 위에는 동상들이 있습니다. 사원 모형의 돔은 중간 부분에 있고 위층에는 두 개의 조각된 덮개 지붕이 있습니다.

 

남캘리포니아의 자이나교센터는 1988년에 사원 모형을 인수받은 후에 인도의 장인들을 불러 모형의 깨진 부분들을 고치고 없어진 조각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부에나공원(Buena Park)에 있는 자이나 사원(Jain Bhavan)에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질 때까지 창고에 보관하고 당시에 모형을 이루던 세 개의 커다란 판을 센터에서 전시했습니다. 모형이 복원되는 동안 2004년에 자이나교센터는 공간을 바꾸는 큰 규모의 공사를 했습니다. 지금 이 복제품은 2008년에 만들어진 자이나교센터의 새로운 건물의 중앙부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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