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두 가지 개별적인, 그러나 상호 연관된 불교가 있습니다. 이민자들의 불교와 미국인 개종자들의 불교가 그것입니다. 이 두 집단의 존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습니다: 이민자들의 불교와 미국인 개종자들의 불교는 무엇이 다른가?
일견하기에 미국의 불교는 두 가지 분리된 역사, 즉 아시아 이민자들과 미국인 개종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들이 서로 얼마만큼의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두 공동체 사이에는 격차가 있었습니다. 중국인과 일본인이 만든 첫 번째 물결이든 동남아시아인들이 만든 두 번째 물결이든 간에, 아시아에서 온 이민불교도들은 그들의 민족적 불교를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문화적응의 문제와 주류로의 편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 개종자 불교도들은 개인적, 사회적 변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종종 새로운 이민자들이 선망하는 끈질기고 야심찬 문화인 “아메리칸 드림”을 비판합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사찰은 종종 예술, 춤, 음악 등의 문화적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보존 특화 시설로 기능합니다. 젊은이들에게 태국어나 만다린어를 가르치고, 특히 그 문화의 형태를 가진 불교 축제와 기념행사를(심지어는 특정 문화의 비-불교 기념행사도) 개최합니다. 이러한 사찰들은 종교적인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문화공동체의 센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문화에서는 생존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작은 절을 만들고, 스님들을 모집하고, 베트남이나 일본의 불교 관습을 세우는 것은 이러한 공동체들에게 있어 전력을 기울어야 하는 일입니다. 많은 일본 이민자 공동체는 이제 5세대에 접어들었고 그 안에서 공유해야 할 오랜 경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토진종(淨土眞宗 : 일본의 불교 종파) 계열의 사찰 대부분에는 여전히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신도들이 있으며, 일본어와 영어로 법회를 열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자라면서 이러한 사찰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장소가 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불교인이자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캄보디아인과 미국인은? 중국인과 미국인은? 일부 집단에서는 ‘캄보디아인’과 ‘미국인’ 중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도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주 린에서는 이 문제로 공동체가 양극화되었는데, 한쪽에서는 주지 스님과 그의 지지자들이 지역 공동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캄보디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지도자가 말했듯이, “만약 우리가 사찰을 지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성전을 지을까?’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스님들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사람들과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서 올바르게 자랄 수 있을까요? 만약 아이들이 캄보디아어를 말하지 못하고 읽지 못한다면 10년 후나 20년 후에 이 절은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이 다 떠나가면 이 절은 어떻게 될까요?”
불법(佛法)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하다 해도, 미국인 개종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특정 형태의 ‘아시아적’ 불교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사회, 심지어 불교 자체의 변화입니다. 아시아 사찰에서 행해지는 붓다와 승려에 대한 헌신은 강조되지 않습니다. 재가신자가 승가 공동체를 후원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에게 미래의 이익을 얻는 ‘공덕의 회향’은 민족적 불교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 관행이지만, 대부분의 미국인 개종자들에게 주요 관심사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미국인 개종자들에게 있어 불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지배계층의 문화에 대항함을 의미합니다. 미국인 개종자 중심의 불교가 어느 정도는 주류 문화에 동화되었다 하더라도, 최초 불교 개종자였던 신학자 헨리 스틸 올콧(Henry Steel Olcott)에서부터 선불교를 유행시킨 앨런 왓츠(Alan Watts)까지, 역사적으로 개종자들의 불교는 반체제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많은 미국인 개종자들은 불교를 대개 홀로 수행하는 명상을 핵심으로 하는 DIY(Do-it-yourself : 직접 혼자서 하는) 종교로 봅니다. 이 새로운 불교도들이 가정을 꾸리고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아이들을 키울 방법을 모색하게 되면서, 많은 고독한 명상가들 가운데 승가 공동체를 조직하는 것이 미국인 불교 공동체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민자 불교도들의 보존 욕구와 새로운 미국인 개종자 불교도들의 변화 욕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적 또는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유산은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세대를 육성해야 합니다. 많은 이민자 불교 단체들은 사찰의 사회 활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 오기 전 재가신도들의 성향과는 대조적으로 명상 수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인 개종자 불교 공동체는 명상 프로그램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조직된 공동체의 사회 활동은, 특히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공동체의 일부로 인식키시게 하기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미국 불교 신자들이 등장하고 번창함에 따라 기존의 손쉬운 범주화는 저항받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분명 새롭고, 다르고, 불교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로서, 어떤 형태의 ‘미국 불교’로 향하고 있습니다. 다만 당분간은 ‘미국 불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미국 불교의 수도원주의에 대한 월폴라 피야난다(Walpola Piyananda) 스님의 성찰은 이민자 불교가 아시아와 다른 미국의 사회적 관습을 만났을 때 발생하는 긴장을 보여줍니다.
월폴라 피야난다 스님은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Dharma Vijaya Buddhist Vihara의 원장입니다. 그는 1976년 7월 4일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중국 불교 수도원인 금산성사(金山聖寺, Gold Mountain Monastery) 200주년을 축하하는 날에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스님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습니다. 19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종교 의회(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의 강연에서 미국에 사는 불교 승려로서 스님의 삶이 소개되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겪었던 몇 가지 도전과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로스엔젤레스는 분명 상좌부(Theravada) 승려에게는 맞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때, 음식이 큰 문제였습니다. 물론 저는 돈도 없었고 요리를 할 줄도 몰랐지요. 제가 굶어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말도 통하지 않는 승려에게 공양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는 몇몇 태국인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의 첫 경험은 괴롭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 힌두교 종교 단체)의 추종자로 오해받고, 누군가는 침을 뱉기도 하고, 비웃고, 언어폭력을 당하였습니다. 미국 문화와 지리에 대한 무지로 전통 승복과 샌들만을 신은 채 크리스마스에 시카고에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배움이 빠릅니다!
이곳 스리랑카인들은 자신들의 자유 의지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들이 지금 스리랑카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지만, 제가 이상적인 완벽한 마을 승려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스님이 신발, 양말, 스웨터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승려가 여자들과 악수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미국인을 대할 때 악수를 거부하면 사람들은 화를 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의 승려상에 부응하려는 노력과, 제 신앙의 핵심을 미국에 전파하려는 노력 사이의 갈등은 결국 제가 처음으로 몸담았던 절과의 결별로 이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재가 신도들은 그들의 이미지에 맞는 수도승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제가 다른 불교 신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침내, 저는 동료인 판닐라 아난다(Pannila Ananda) 스님, 하반폴라 라트나사라(Havanpola Ratanasara) 박사 스님과 함께 새로 사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미국의 사회적 관습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고, 불교 수도원 규율인 비나야의 구절과 나와 있지 않은 것들을 다루어야 했습니다. 저는 운전을 배워야 했습니다. 로스엔젤레스는 돌아다닐 수 없다면 살 수 없는 곳이고, 승려가 그의 공동체에 접근할 수 없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여러 대학에서 공부했고, 저 자신도 종종 불교가 아닌 단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이것은 대개 성별에 관계없이 청중들 모두와 악수를 나누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저는 이곳의 현실적인 생활에 저의 규율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합리적인 태도를 취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주변에 기독교인과 유대인이 있다는 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만큼이나 독특한 불교집단의 다원성 - 상좌부와 대승불교, 태국, 캄보디아, 버마, 라오스, 베트남,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 불교 –을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평신도 운영진들로 구성된 일본 정토진종과 같은 단체들과 접촉했습니다. 언어, 민족, 국가, 교단의 차이를 극복하고 모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불교도로서 공통점을 찾는 것이 갑자기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야의 많은 선구적인 작업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불교 승가 평의회(Buddhist Sangha Council) 설립자이자 회장인 하반폴라 라트나사라 박사 스님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받은 따뜻한 환영에 고무된 우리 상좌부 불교인들은 분명히 문화적인 제약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불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20세기 후반의 미국의 일부가 되도록 도울 용기를 얻었습니다. 예를 들어, 상좌부 전통에서는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비구니라고 불리는 여성 승려 제도는 사라졌습니다. 계율적 해석 때문에 비구니 수계를 내리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상좌부 불교 국가의 여성들은 수세기 동안 종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다소 제한적이었습니다. 반면 대승불교 전통에서 여성 승려의 전통은 굳건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많은 전향적인 상좌부 지도자들이 여성 승려 제도를 재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초기 문헌에 따르면 이는 허용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고위 승가 구성원들은 기껏해야 마지못한 지지를 표명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절의 라트나사라 박사 스님, 벤 웨스트 버지니아의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박사 스님, 뉴욕의 쿠루네고다 피야팃사 스님과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상좌부 스님들은 모두 여성의 출가에 찬성하였고 우리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우리 절 뿐 아니라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Bhavana Society에서도 신입 여성들이 수계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첫 단계이며 아직 완전한 성공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큰 재정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통에 따르면, 비구니들은 자신의 수도원에 거처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러한 시도를 위한 자금이나 직원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얼음은 깨졌고, 상좌부 불교도가 종교 조직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해 변명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인간의 능력을 충분히 존중하셨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미국의 사회적 요구에 따른 또 다른 혁신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구의 취향과 법적 요건을 충족하면서도 불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결혼식을 만드는 간단한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불교적인 맥락에서 미국식 커플이 결혼하는 매우 단순하지만 신실한 의식을 치릅니다.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Anagarika Dharmapala)는 100년 전 세계 종교 의회에서 미국에 상좌부의 씨앗을 심었지만, 이러한 즉각적인 노력으로 뿌리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66년 이후, 미국 최초의 상좌부 사찰인 Washington Buddhist Vihara가 설립되면서, 그 진전은 긍정적이었습니다. 현재 북미에는 약 12개의 스리랑카 센터를 포함하여 200개 이상의 테라바다 센터가 있으며, 다른 센터들은 주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입니다.
제가 1976년 독립기념일에 ‘붉게 타오르는 포화(rocket’s red glare – 미국 국가의 가사)’에 맞춰 도착한 지, 그리고 시카고가 크리스마크에 얼마나 추운지를 알게 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갑니다. 우리는 불교를 미국의 일부로 만드는 것, 그리고 신도들이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게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게 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세계 종교 의회의 정신을 위해, 그리고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를 추모하기 위해, 저는 짧은 불교의 축복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미국인 개종자 불교와 이민자 아시아 불교는 권위와 제도적 위계와 관련해 극적으로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불교 조직과 공동체는 영적, 사회적, 재정적, 조직적 권위가 지도자와 구성원들 사이에 어떻게 분산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계가 직면한 핵심 질문 중 하나는 아시아의 전통적인 권위 패턴이 미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불교 단체에서 승려들의 전통적으로 요구되었던 역할은 불가피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피닉스의 한 승려가 말했듯이, "우리는 불교라는 식물을 아시아라는 항아리에서 꺼내어 미국이라는 땅에 심어야 합니다." - 그리고 미국이라는 땅은 독립과 민주주의이라는 강력한 영양분을 가득 담고 있지요.
많은 아시아 이민자들의 사찰에는 한 명 이상의 승려가 상주하고 있지만, 이러한 승려들에게 전통적으로 요청되었던 역할이 미국적 맥락에서는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마을에서 승려가 걸식을 할 수 있을까요? 승복을 착용해야 하는 규정을 완화하고 더 따듯한 옷을 입을 수 있을까요? 승려들이 운전을 해도 될까요? 승려들이 돈을 들고 쇼핑을 갈 수 있을까요? 승려들이 사찰 밖에서 직장을 가져도 될까요? 이러한 질문들은 대부분의 아시아 사회에서 요구되었던 승려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에 도전합니다. 일부 나이든 신도들은 승려들이 모임에 차를 몰고 가거나 지역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원에서 재가신자의 역할도 바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이민자 승려들은 사찰 관리에 있어 미국적 양상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도시와 마을에서, 종교사원은 일반적으로 시의회, 계획 위원회, 그리고 구역 관리 위원회를 상대해야 합니다. 미국적 맥락에서 종교 단체는 비영리 단체로 규정되고, 반드시 국세청이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그들은 수도승들을 포함할 수도 있고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임원과 간부 집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재가신도의 리더십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결정을 내릴 법적 책임과 권한을 가진 이사회와 전통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권한을 가진 승려들은 종종 복잡한 관계에 있으며 심지어 대립하기도 합니다.
물론, 미국인 개종자의 불교 센터도 이사회와 미국의 민주적 이상에 대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젠(Zen) 센터에서는 상주하는 센터장(혹은 roshi, 노사老師)이 깨달음에 대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적극적이고 때로는 비판적인 투표 위원들은 평범한 통찰력을 가진 재가신자들입니다. 일본에서 온 존경받는 스승이나 그 스승의 미국 태생 법제자들의 판단을 의심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스승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이사진과 센터 구성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는 스즈키 로시의 법제자 리차드 베이커(Richard Baker) 로시가 연루된 스캔들이 발생한 이후 두 명의 센터장을 4년 임기로 선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센터장을 선출하는 아이디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수세기 동안 지속된 종교적 권위의 패턴에 미국적 혁신이 일어난 것입니다.
위빠사나 전통과 같이 상좌부 불교에 기원한 미국인 개종자 공동체에서도 아시아 승려들이 환대받고 미국 위빠나사 센터에 자주 방문하지만, 그 수계나 사찰 생활 등에는 모두 뚜렷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완전한 사찰 생활은 미국적 맥락에서 비실용적인 것이었고, 이것은 완전히 헌신적인 재가신자의 리더십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나아갔습니다. 권위의 상징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장 존경받는 스승에게조차 가사(袈裟)나 특별한 옷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위빠사나를 지도하는 가장 저명한 미국인 선생들은 수계를 받지 않았으며 불교 생활과 일상 생활의 분리가 아닌 통합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통찰 명상 협회(Insight Meditation Society)의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과 섀런 샐즈버그(Sharon Salzberg)와 같이 주요 기관의 거주자이자 지도자일 수도 있고,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Spirit Rock Center의 잭 콘필드(Jack Kornfield)와 실비아 부어스타인(Sylvia Boorstein)과 같이 불교 교사직을 전문 심리 치료사 또는 의사직과 결합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시아의 불교 전통은 이제 미국 땅에 단단히 심어져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민주주의화가 그 전통의 미국적인 발전 중 하나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국 불교는 불교 전통 안에서 여성에게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냈습니다. 미국인 여성 불교도는 상좌부 전통과 밀교 전통에서 비구니의 법맥을 되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불교에서 현재진행 중인 특징적인 변화 중 하나는 미국인 개종자 불교 공동체에서 여성이 수행자로서. 그리고 점점 스승으로서 가시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여성 불교도들은 불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여성들은 이 집단에서 이루어진 의례 활동, 불법의 연구, 영적이고 제도적인 리더십 등 모든 범위에서 동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1970년대까지 많은 미국 여성들은 아시아와 미국 모두에서 아시아 불교 스승들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전법(傳法)을 받아 기억되는 한 오직 배타적으로 남성만에게만 전해졌던 불법의 계보에 속하게 된 첫 여성들이 되었습니다. 미국인 여성 카루나 다르마(Karuna Dharma) 스님은 미국 최초의 베트남 승려 중 한 명이자 로스앤젤레스의 International Buddhist Meditation Center를 설립한 틱 티엔안(Thich Thien-an) 스님의 직전제자가 되었습니다. 샌디에이고의 젠 센터를 시작한 샬럿 조코 벡(Charlotte Joko Beck)과 오리건주 젠 커뮤니티의 교사 얀 초젠 베이스(Jan Chozen Bays)는 모두 로스앤젤레스 젠 센터의 마에즈미 로시의 법제자들입니다. 케임브리지 젠 센터에서 수년간 상주 교사로 근무한 모린 스튜어트(Maurine Stuart) 로시는 일본인 교사 소엔 나카가와 로시에게 인가받았습니다. 루스 데니슨(Ruth Denison)은 버마인 명상 스승인 우 바 킨(U Ba Khin)의 위빠사나 전통을 조슈아 트리 사막의 담마 데나(Dhamma Dena)라고 불리는 그녀의 휴양 센터로 가져왔고, 그곳은 특히 여성들을 위한 휴양지로 유명해졌습니다. 고엔카(Goenka), 무닌드라(Munindra) 등과 함께 공부한 후 인도에서 돌아온 섀런 샐즈버그는 현재 매사추세츠주 바레에 있는 통찰 명상 협회의 지도 교사 중 한 명입니다. 티벳 전통의 경우, 미국 출신의 페마 최된(Pema Chodron)이 티벳 스승인 16대 카르마파(Karmapa)와 최걈 둥파 린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재 노바스코샤에 위치한 감포 수도원의 원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 선종(禪宗)의 경우, 숭산 스님은 그의 미국인 제자들 중 세 명의 선사를 만들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은 Providence Zen Center의 선구적인 스승이었던 바바라 로즈(Barbara Rhodes)입니다.
미국 불교 전통의 여러 흐름 중에서 유력한 스승이 된 여성은 소수의 몇몇 뿐입니다. 그들은 미국에 새로운 불교 단체를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성을 위한 수련회, 여성과 불교에 대한 전국적인 회의, Kahawai: A Journal of Women and Zen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은 불교의 가르침과 실천의 표현에 어느 정도의 신선함과 즉각성을 주었습니다. 페마 최된의 책 “The Wisdom of No Escape(피할 길 없음의 지혜)”, 조코벡의 “Everyday Zen(일상의 선)”, 섀런 샐즈버그의 “Lovingkindness: The Revolutionary Art of Happiness(자비: 행목을 위한 혁명적 기술)”은 모두 일상적인 관용구와 내용으로 엮어낸 실천적이고 소박한 불교의 가르침을 줍니다. 불교의 “여성화”는 미국에서 형성되고 있는 독특하고 새로운 형태의 불교 전통의 지속적인 특징 중 하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또한 아시아, 북미, 유럽의 불교 여성들은 지난 25년 동안 상호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전체 승단 체제 내에 여성의 수계를 편입시키느 것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아시아 불교 전통의 지도자들은 남성들, 특히 남성 승려들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초기 승단은 붓다의 명에 따라 여성을 받아들였지만, 상좌부와 티베트 전통에는 비구니 승단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비구니의 법맥이 이어져 왔으며, 주로 일본, 한국, 대만에서 현재까지도 비구니 승단이 존속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세계적인 불교 여성 운동인 국제 여성 불교 대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Women)는 동서양의 불교 여성들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여성 불교도들과 전 세계의 여성 불교도들 사이의 연결은 방콕 탐마삿 대학의 종교 및 철학 교수로서 종종 미국 불교 학회에서도 활동하는 찻수마른 카빌싱(Chatsumarn Kabilsingh)이 발행한 Newsletter on International Buddhist Women’s Activity(NIBWA)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2003년, 카빌싱은 스리랑카에서 열린 상좌부 불교 행사에서 비구니 담마난다(Dhammananda)로 수계를 받았고, 오늘날 그녀는 태국 사찰의 주지스님이 이 되었습니다. 좀 더 최근에는 2007년 함부르크에서 승단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관한 제1차 국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의 목표는 한 마디로 비구니의 법맥이 실전된 불교 전통에서 비구니 수계를 재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구니들의 수계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으며, 전 세계 불교계에서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70년대에 베트남 승려 틱낫한(Thich Nhat Hanh)이 창시한 ‘참여 불교’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사회와 환경의 정의를 위한 투쟁에 불교적 관점을 부여합니다.
어떤 관찰자들은 불교, 특히 불교 명상을 세상을 벗어나 내면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과 연관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고통의 본질을 명확하게 들여다보고, 따라서 자비심을 기르는 것을 강조하는 불교 전통이 외부세계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활동적인 불교의 흐름은 “참여 불교(Engaged Buddhism)”, 즉 사회적 관심사와 정력적으로 참여하는 불교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승려 틱낫한은 미국에서 참여 불교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한 스님은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는 사이공 정부에 대해 불교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저항과 시위의 의미를 설명하고 평화를 제안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틱낫한의 활동에 영감을 얻어, 1978년에는 불교 평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전체 불교도들에게까지 확장시키기 위한 불교 평화 우의회(Buddhist Peace Fellowship)가 결성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네트워크는 국가적인 동시에 국제적이며, 평화의 방법으로서 불교 수행의 관점에서 평화, 환경 및 사회 정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미국에서 불교 평화 우의회는 반핵 운동, 교소도 개선, 그리고 고대 산림을 구하는 데 참여한 불교 신자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미국 내 참여 불교의 발전은 다수의 사례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영감을 받아 주도된 많은 프로그램들이 말기 환자에 대한 보호 치료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1987년 프랭크 오스타세스키(Frank Ostaseski)의 주도로 시작된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 호스피스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암과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병상으로 훈련된 자원봉사자들을 파견합니다. 하트포드 스트리트 젠 센터는 1990년 에이즈로 사망하기 전까지 센터장을 지낸 아이산 도시(Issan Dorsey)가 설립한 Maitri AIDS Hospice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리치먼드에서는 American Buddhist Congregation, Inc.라고도 불리는 Metta Vihara가 1990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센터장 수히타 다르마(Suhita Dharma) 스님의 주도 하에 호스피스 하우스로 시작되었습니다. 뉴욕에서는 뉴욕 젠 센터의 마이트리 하우스가 호스피스 치료를 위해 문을 열었습니다. 이것은 버나드 테츠겐 글래스맨(Bernard Tetsugen Glassman) 로시가 이끄는 공동체의 여러 비영리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는 조안 핼리팩스(Joan Halifax)가 이끄는 불교 공동체 Upaya의 “Being With Dying(죽음과 함께하기)” 프로젝트가 명상을 통해 존재와 관심의 실천을 계발하도록 주류 간병인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불교의 참여는 교도소 제도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조동종(曹洞宗)의 비구니 다이-엔 베너지(Dai-En Bennage)는 23년간 일본에서 훈련과 수행을 쌓은 후, 펜실베니아 루이스버그 에퀴티 젠도 산에 있는 그녀의 본거지에서 교도소 제도에서의 불교 수행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에서는 Mt. Tremper Zen Center의 존 다이도 루리(John Daido Loori) 로시가 뉴욕 주 교도소에서 불교 명상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로스엔젤레스에서는 “이 땅에 정토를 짓기”위해 전념하는 서래사(西來寺)가 매주 감옥 방문 프로그램을 열곤 했습니다.
흔히들 고통은 자비의 관문이라고 말합니다. 개인과 사회적 고통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불교의 수행은 봉사의 삶을 유지하는 관심, 자비, 내적 개선이라는 자질을 계발합니다. 틱난한은 상호 의존성, 즉 인간, 국가 및 자연 세계의 전체 생태학적 구조의 “상호 존재성”을 우주에 대한 불교적 관점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올바른 통찰력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상호 존재성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비난하고 다투고 죽이는 것을 멈추고,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것입니다. 비폭력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 대해 평화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평화 만들기’가 아니라 ‘평화 되기’가 불교의 핵심입니다. 보살들의 이상은 보시(dana)와 자비(metta 또는 maitri)의 교양을 포함하며, 둘 다 여덟 갈래의 성스러운 길, 팔정도(八正道)를 통해서 길러집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참여불교는 불교 학술 연구의 하위 분야로 성장했고, 전 세계 불교 공동체로 확산되었습니다. 현재 참여불교 활동가들이 문제의 범위는 평화, 환경(특히 미국), 소비주의, 인종차별, 교도소, 호스피스 치료, 세계화, 성별, 윤리 등을 포함합니다. 1997년에 설립된 Think Sangha는 현대적 문제에 불교의 사상, 방법 및 가치를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 참여불교의 싱크탱크입니다. 참여불교는 다양한 전통에서 온 불교 신자들이 함께 모여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부분적으로, 참여 불교는 미국 불교계에서 성장 중인 세계교회운동(ecumenical movement)의 주요 구성 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다양한 전통의 불교 지도자들은 북미에서 널리 퍼져 있는 불교에 대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교회주의 의회와 단체들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행사들은 과거에 서로 접촉이 제한적이었던 불교 전통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게다가, 이 단체들은 특히 기독교와 유대교 단체들과의 종교 간 상호 교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본 로스엔젤레스의 불교 지도자들은 부처님오신날인 베삭(Vesak)을 축하하기 위해 모입니다. 동아시아의 불교 신자들은 아기 붓다를 감차로 목욕시키는 의식을 주로 행하는 반면, 여기 미국, 예를 들어 로스앤젤레스의 남아시아 승려들과 재가신자들은 기쁨과 경의의 마음으로 참가하며, 각각 나무 고삐를 잡고 갓 태어난 붓다에게 절을 합니다. 그 승려들은 모두 Sangha Council of Southern California 회원들입니다. 이러한 “Sangha Council(승단 평의회)”는 오랜 불교 역사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Sangha Council은 본래 스리랑카 출신이었던 승려 하반폴라 라트나사라(Havanpola Ratanasara)의 주도로 설립되었습니다. 창립 대표들 중에는 한국 사찰인 관음사의 김도안 스님, 베트남 최초 불교 사원의 틱 티엔안 스님, 다르마 비자야 불교 사원의 월폴라 피야난다 스님, 툽뗀 다르계 링 티베트 사원의 라마 게셰 곌첸, 그리고 정토진종의 센신사(専心寺) 마사오 코다니 목사님 등이 있었습니다. 이 평의회에는 불교 전통의 모든 주요 종파 및 학파, 즉 남아시아의 상좌부 전통, 동아시아의 대승불교 전통, 티베트의 밀교 전통, 그리고 비구가 아닌 결혼한 성직자가 있는 정토진종의 대표들이 모여있습니다. 또한 Zen Center of Los Angeles, Dharmadhatu Center, International Buddhist Meditation Center와 같이 아시아 종파에 뿌리를 두되 독특하게 미국에서 자생한 불교 공동체의 대표들도 있습니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승단 평의회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범불교 의원회 중 하나일 뿐입니다. 시카고에서는 1978년 5개의 상좌부 국가, 4개의 대승불교 국가, 티베트, 그리고 미국의 전통을 포함한 12개의 불교 계보를 이은 시카고 지역 28개의 불교 센터가 모여 중서부 불교 평의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의회는 매년 베삭(혹은 비사카Visakha)의 행사를 주최합니다. 시카고의 Midwest Buddhist Temple에서 열린 2013년 축제에서는 협력 29주년을 기념했습니다. 휴스턴에 본부를 둔 Texas Buddhist Association, 버클리 소재 Buddhist Council of Northern California, 워싱턴과 오리건주에 있는 Pacific Northwest Buddhist Association도 있습니다.
Buddhist Coalition of New England는 스스로를 “우정의 정신으로 서로에게서 배우고 불교의 가르침을 더 넓은 뉴잉글랜드 공동체와 공유하기 위해 함께 모인 불교 공동체와 개인들의 조직”이라고 부릅니다. 이 단체의 비전 선언은 그러한 연합의 목적으로 확장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점을 찾고 우리의 가르침과 수행의 차이를 탐구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서로의 불교 전통에 대해 더 깊은 존중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불교도 개인과 불교도 공동체 사이에서 종파를 초월하고 문화를 초월한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처럼 전 세계의 불교 신자들을 모으는 “세계교회주의” 불교는 미국 내에서 점점 더 흔해지고 있습니다. 회색 승복을 입은 한국 승려들, 진홍색 승복의 티베트 승려들, 밝은 황색 승복을 입은 태국 승려들, 청바지, 치마, 그리고 사업용 정장을 입은 새로운 미국 불교 지도자들과 선생들 – 이 모든 불교 신자들은 의상 뿐만 아니라 중요시 여기는 경전, 찬송하는 언어와 스타일, 붓다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방식까지 다 다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아주 간단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베삭과 같은 범불교의 많은 행사들이 다소 형식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행사가 상징하는 공유는 조용한 불교 혁명의 모태가 될 수 있습니다.
전국적인 차원에서, American Buddhist Congress가 1986년 8월 콜로라도 주 볼더에서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그곳에서 불교인들이 미국이라는 토양에서 더 강하게 자라도록 단결하고, 미국 사회에 불교를 알리며, 사회와 정치적 문제에 협력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여기, 오늘날 북미의 역사에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불교 전통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 100년도 전에 미합중국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이래 다른 나라에서 이주한 불교 신자들의 수와 다양한 형태로 불교를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의 수 모두가 성장하고 번창해 왔다...”
이 문서는 불교 신자들이 미국 불교 회의를 구성하는 데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고 시기적절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1987년 여름, “World Buddhism in North America(북미 안의 세계 불교)” 학술회의가 미시간 주 앤아버에서 열렸고, 불교 학자들과 다양한 미국 불교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모여 북미에서 불교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 태생과 미국 태생의 불교 신자들 - 이제 모두 미국적인 맥락에서 불교 생활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 의 광범위하고 뛰어난 모임이었습니다. 8일 동안 그들은 앤아버에 있는 선종 사찰의 정원에 거대한 텐트를 펼치고 모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서로 연결될까요? 어떤 형태의 교육과 문화가 미국 문맥에 적합할까요? 불교는 미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며, 미국은 어떻게 불교를 변화시킬까요? 불교학 수업에서 비수행자가 가르치는 불교는 이런 저런 종파의 가르침을 전승받은 이가 가르치는 불교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승려와 재가신도는 어떤가요? 여자랑 남자는? 모두 이 회의에서 논의한 질문들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작성 중입니다.
아시아의 불교 전통은 이제 정말로 미국 전역에 퍼졌습니다. 새로운 선생들 중 많은 수가 가정주부이자 재가신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미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의 선생들 중 일부는 하나 이상의 계보에서 훈련받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선을 가르치는 선생은 티벳인 라마와 함께 수행을 연장합니다. 위빠사나를 가르치는 선생이 정토경전을 외웁니다. 많은 불교 조류의 ‘직조’와 혼합이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독특한 ‘미국’ 불교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미국 불교도들은 또한 그들의 새로운 불교 이웃을 아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 불교도들과 교류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미국의 지배적인 종교는 기독교이며, 대부분의 불교 간 종교 활동은 불교와 기독교 사이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1987년부터, 불교-기독교 연구는 하와이 대학에 기반을 둔 불교-기독교학회의 공식 학술지가 되었고, 기사, 서평, 발표 및 불교-기독교 간 작업에 관련된 모든 것을 위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교류의 한 가지 구체적인 측면은 트라피스트 수도사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이 장려한 불교-기독교 간의 수도승 대화였습니다. 이는 현재 반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996년, 티베트 불교, 선종, 상좌부, 로마 가톨릭과 및 여타의 기독교에서 수도승들과 선생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뛰어넘어 가로질러 참여하기 위해 고인이 된 머튼의 고향인 켄터키에 있는 게체마니 수도원에 모였습니다.
또한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조셉 골드스타인, 섀런 샐즈버그와 같이 유대교 배경을 가지고 불교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에 의해 많은 불교-유대인 대화가 열립니다. 흥미롭게도, “Jewbu(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 불교로 개종한 사람들)”라는 용어는 1960년대 이후로 불교 공동체에 속한 유대인을 묘사하는 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불교-유대인 대화는 유대교가 불교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불교가 유대교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유대인 불교도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미국과 개인의 다종교적 정체성이 점점 더 고찰되고 불교가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증가함에 따라, 불교도들은 계속해서 전국적으로 종교를 넘어선 집단과 계획의 필수적인 부분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불교도들은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새로운 세대에 어떻게 전할까요? 일본의 정토진종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주일학교 수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종교적 교육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특히 아이들에게 그들의 전통을 교육하는 데 미국적 접근법을 제공합니다.
정토진종 사찰에서 운영하는 Sunday Dharma school에서 2학년과 3학년 학생들이 “나의 오부츠단”이라는 제목의 워크북 페이지에 색칠을 하고 있습니다. 오부츠단(おぶつだん, 御佛壇)은 모든 정토진종의 사찰과 신도의 가정에서 가지고 있는 붓다를 모시는 제단입니다. 중앙에는 아미타불의 입상이 있고 향로, 꽃, 초, 쌀이 담긴 작은 접시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불단을 색칠하고 오린 후 아미타불과 다양한 공물을 올바른 자리에 놓으면습니다. 아이들은 갓쇼(がっしょう, 合掌)이라 불리는 경건한 몸짓으로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외웁니다.
“아미타 부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향을 피웁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아름다운 꽃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초에 불을 붙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선생님은 말합니다 “아미타불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이 부처님께 감사를 전하는 방법이란다.”
아이들에게 종교적 전통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며, 소수 종교라는 지위는 이것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정토진종은 현재 미국에서 4대째, 심지어 5대째로 내려가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불교의 모습을 가르치는 데 있어 약간의 경험을 쌓았습니다. 아미타불의 은혜와 자비를 강조하는 종교의식의 형태는 이 ‘무한한 빛의 부처(無量光佛)’가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움직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이 사랑을 느낀 우리 인간의 반응은, 그러므로, 감사입니다. 감사의 종교적 표현은 다르마 학교 초등 워크북의 첫 번째 장에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을 찬미합니다” 이것은 “감사합니다”를 의미합니다.
“미국 불교 교회(Buddhist Churches of America, BCA)”로서 조직된 정토진종은 일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Dharma school의 교육 과정을 개발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전국 본부의 교육 부서는 불교 교육 자료를 개발하고 미국 전역의 사찰에 공급합니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습시키는 특징적인 미국식 교육 과정을 본뜬 것입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아미타 부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떠올립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우리를 모두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빛은 우리 세상을 밝힙니다.
그분은 따듯하게 빛나시며, 모든 사람을 돕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나무아미타불”
신앙에 대한 개인적인 간증 또한 정토진종의 전통에 통합되어 어린이들이 불교 전통에서 자신의 역할을 적절한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르마 학교와 주일 예배에서는 매주 “금빛 사슬”를 낭송하는데, 이는 미국의 젊은 불교도 세대들에게 첫 번째 신앙의 확증이 되었습니다.
나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아미타불의 금빛 사랑의 사슬에 있는 고리입니다.
저는 제 고리를 밝고 튼튼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저는 모든 생명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고 나보다 약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미국에는 두 가지 개별적인, 그러나 상호 연관된 불교가 있습니다. 이민자들의 불교와 미국인 개종자들의 불교가 그것입니다. 이 두 집단의 존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습니다: 이민자들의 불교와 미국인 개종자들의 불교는 무엇이 다른가?
일견하기에 미국의 불교는 두 가지 분리된 역사, 즉 아시아 이민자들과 미국인 개종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들이 서로 얼마만큼의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두 공동체 사이에는 격차가 있었습니다. 중국인과 일본인이 만든 첫 번째 물결이든 동남아시아인들이 만든 두 번째 물결이든 간에, 아시아에서 온 이민불교도들은 그들의 민족적 불교를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문화적응의 문제와 주류로의 편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 개종자 불교도들은 개인적, 사회적 변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종종 새로운 이민자들이 선망하는 끈질기고 야심찬 문화인 “아메리칸 드림”을 비판합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사찰은 종종 예술, 춤, 음악 등의 문화적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보존 특화 시설로 기능합니다. 젊은이들에게 태국어나 만다린어를 가르치고, 특히 그 문화의 형태를 가진 불교 축제와 기념행사를(심지어는 특정 문화의 비-불교 기념행사도) 개최합니다. 이러한 사찰들은 종교적인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문화공동체의 센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문화에서는 생존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작은 절을 만들고, 스님들을 모집하고, 베트남이나 일본의 불교 관습을 세우는 것은 이러한 공동체들에게 있어 전력을 기울어야 하는 일입니다. 많은 일본 이민자 공동체는 이제 5세대에 접어들었고 그 안에서 공유해야 할 오랜 경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토진종(淨土眞宗 : 일본의 불교 종파) 계열의 사찰 대부분에는 여전히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신도들이 있으며, 일본어와 영어로 법회를 열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자라면서 이러한 사찰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장소가 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불교인이자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캄보디아인과 미국인은? 중국인과 미국인은? 일부 집단에서는 ‘캄보디아인’과 ‘미국인’ 중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도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주 린에서는 이 문제로 공동체가 양극화되었는데, 한쪽에서는 주지 스님과 그의 지지자들이 지역 공동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캄보디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지도자가 말했듯이, “만약 우리가 사찰을 지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성전을 지을까?’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스님들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사람들과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서 올바르게 자랄 수 있을까요? 만약 아이들이 캄보디아어를 말하지 못하고 읽지 못한다면 10년 후나 20년 후에 이 절은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이 다 떠나가면 이 절은 어떻게 될까요?”
불법(佛法)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하다 해도, 미국인 개종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특정 형태의 ‘아시아적’ 불교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사회, 심지어 불교 자체의 변화입니다. 아시아 사찰에서 행해지는 붓다와 승려에 대한 헌신은 강조되지 않습니다. 재가신자가 승가 공동체를 후원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에게 미래의 이익을 얻는 ‘공덕의 회향’은 민족적 불교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 관행이지만, 대부분의 미국인 개종자들에게 주요 관심사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미국인 개종자들에게 있어 불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지배계층의 문화에 대항함을 의미합니다. 미국인 개종자 중심의 불교가 어느 정도는 주류 문화에 동화되었다 하더라도, 최초 불교 개종자였던 신학자 헨리 스틸 올콧(Henry Steel Olcott)에서부터 선불교를 유행시킨 앨런 왓츠(Alan Watts)까지, 역사적으로 개종자들의 불교는 반체제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많은 미국인 개종자들은 불교를 대개 홀로 수행하는 명상을 핵심으로 하는 DIY(Do-it-yourself : 직접 혼자서 하는) 종교로 봅니다. 이 새로운 불교도들이 가정을 꾸리고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아이들을 키울 방법을 모색하게 되면서, 많은 고독한 명상가들 가운데 승가 공동체를 조직하는 것이 미국인 불교 공동체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민자 불교도들의 보존 욕구와 새로운 미국인 개종자 불교도들의 변화 욕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적 또는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유산은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세대를 육성해야 합니다. 많은 이민자 불교 단체들은 사찰의 사회 활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 오기 전 재가신도들의 성향과는 대조적으로 명상 수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인 개종자 불교 공동체는 명상 프로그램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조직된 공동체의 사회 활동은, 특히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공동체의 일부로 인식키시게 하기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미국 불교 신자들이 등장하고 번창함에 따라 기존의 손쉬운 범주화는 저항받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분명 새롭고, 다르고, 불교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로서, 어떤 형태의 ‘미국 불교’로 향하고 있습니다. 다만 당분간은 ‘미국 불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미국 불교의 수도원주의에 대한 월폴라 피야난다(Walpola Piyananda) 스님의 성찰은 이민자 불교가 아시아와 다른 미국의 사회적 관습을 만났을 때 발생하는 긴장을 보여줍니다.
월폴라 피야난다 스님은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Dharma Vijaya Buddhist Vihara의 원장입니다. 그는 1976년 7월 4일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중국 불교 수도원인 금산성사(金山聖寺, Gold Mountain Monastery) 200주년을 축하하는 날에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스님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습니다. 19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종교 의회(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의 강연에서 미국에 사는 불교 승려로서 스님의 삶이 소개되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겪었던 몇 가지 도전과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로스엔젤레스는 분명 상좌부(Theravada) 승려에게는 맞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때, 음식이 큰 문제였습니다. 물론 저는 돈도 없었고 요리를 할 줄도 몰랐지요. 제가 굶어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말도 통하지 않는 승려에게 공양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는 몇몇 태국인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의 첫 경험은 괴롭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 힌두교 종교 단체)의 추종자로 오해받고, 누군가는 침을 뱉기도 하고, 비웃고, 언어폭력을 당하였습니다. 미국 문화와 지리에 대한 무지로 전통 승복과 샌들만을 신은 채 크리스마스에 시카고에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배움이 빠릅니다!
이곳 스리랑카인들은 자신들의 자유 의지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들이 지금 스리랑카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지만, 제가 이상적인 완벽한 마을 승려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스님이 신발, 양말, 스웨터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승려가 여자들과 악수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미국인을 대할 때 악수를 거부하면 사람들은 화를 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의 승려상에 부응하려는 노력과, 제 신앙의 핵심을 미국에 전파하려는 노력 사이의 갈등은 결국 제가 처음으로 몸담았던 절과의 결별로 이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재가 신도들은 그들의 이미지에 맞는 수도승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제가 다른 불교 신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침내, 저는 동료인 판닐라 아난다(Pannila Ananda) 스님, 하반폴라 라트나사라(Havanpola Ratanasara) 박사 스님과 함께 새로 사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미국의 사회적 관습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고, 불교 수도원 규율인 비나야의 구절과 나와 있지 않은 것들을 다루어야 했습니다. 저는 운전을 배워야 했습니다. 로스엔젤레스는 돌아다닐 수 없다면 살 수 없는 곳이고, 승려가 그의 공동체에 접근할 수 없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여러 대학에서 공부했고, 저 자신도 종종 불교가 아닌 단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이것은 대개 성별에 관계없이 청중들 모두와 악수를 나누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저는 이곳의 현실적인 생활에 저의 규율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합리적인 태도를 취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주변에 기독교인과 유대인이 있다는 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만큼이나 독특한 불교집단의 다원성 - 상좌부와 대승불교, 태국, 캄보디아, 버마, 라오스, 베트남,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 불교 –을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평신도 운영진들로 구성된 일본 정토진종과 같은 단체들과 접촉했습니다. 언어, 민족, 국가, 교단의 차이를 극복하고 모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불교도로서 공통점을 찾는 것이 갑자기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야의 많은 선구적인 작업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불교 승가 평의회(Buddhist Sangha Council) 설립자이자 회장인 하반폴라 라트나사라 박사 스님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받은 따뜻한 환영에 고무된 우리 상좌부 불교인들은 분명히 문화적인 제약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불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20세기 후반의 미국의 일부가 되도록 도울 용기를 얻었습니다. 예를 들어, 상좌부 전통에서는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비구니라고 불리는 여성 승려 제도는 사라졌습니다. 계율적 해석 때문에 비구니 수계를 내리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상좌부 불교 국가의 여성들은 수세기 동안 종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다소 제한적이었습니다. 반면 대승불교 전통에서 여성 승려의 전통은 굳건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많은 전향적인 상좌부 지도자들이 여성 승려 제도를 재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초기 문헌에 따르면 이는 허용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고위 승가 구성원들은 기껏해야 마지못한 지지를 표명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절의 라트나사라 박사 스님, 벤 웨스트 버지니아의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박사 스님, 뉴욕의 쿠루네고다 피야팃사 스님과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상좌부 스님들은 모두 여성의 출가에 찬성하였고 우리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우리 절 뿐 아니라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Bhavana Society에서도 신입 여성들이 수계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첫 단계이며 아직 완전한 성공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큰 재정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통에 따르면, 비구니들은 자신의 수도원에 거처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러한 시도를 위한 자금이나 직원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얼음은 깨졌고, 상좌부 불교도가 종교 조직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해 변명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인간의 능력을 충분히 존중하셨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미국의 사회적 요구에 따른 또 다른 혁신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구의 취향과 법적 요건을 충족하면서도 불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결혼식을 만드는 간단한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불교적인 맥락에서 미국식 커플이 결혼하는 매우 단순하지만 신실한 의식을 치릅니다.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Anagarika Dharmapala)는 100년 전 세계 종교 의회에서 미국에 상좌부의 씨앗을 심었지만, 이러한 즉각적인 노력으로 뿌리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66년 이후, 미국 최초의 상좌부 사찰인 Washington Buddhist Vihara가 설립되면서, 그 진전은 긍정적이었습니다. 현재 북미에는 약 12개의 스리랑카 센터를 포함하여 200개 이상의 테라바다 센터가 있으며, 다른 센터들은 주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입니다.
제가 1976년 독립기념일에 ‘붉게 타오르는 포화(rocket’s red glare – 미국 국가의 가사)’에 맞춰 도착한 지, 그리고 시카고가 크리스마크에 얼마나 추운지를 알게 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갑니다. 우리는 불교를 미국의 일부로 만드는 것, 그리고 신도들이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게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게 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세계 종교 의회의 정신을 위해, 그리고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를 추모하기 위해, 저는 짧은 불교의 축복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아픈 이들이 병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비탄에 잠긴 자들이 비탄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모든 이들이 안녕과 행복을 얻기를
고통받는 이들이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미국인 개종자 불교와 이민자 아시아 불교는 권위와 제도적 위계와 관련해 극적으로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불교 조직과 공동체는 영적, 사회적, 재정적, 조직적 권위가 지도자와 구성원들 사이에 어떻게 분산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계가 직면한 핵심 질문 중 하나는 아시아의 전통적인 권위 패턴이 미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불교 단체에서 승려들의 전통적으로 요구되었던 역할은 불가피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피닉스의 한 승려가 말했듯이, "우리는 불교라는 식물을 아시아라는 항아리에서 꺼내어 미국이라는 땅에 심어야 합니다." - 그리고 미국이라는 땅은 독립과 민주주의이라는 강력한 영양분을 가득 담고 있지요.
많은 아시아 이민자들의 사찰에는 한 명 이상의 승려가 상주하고 있지만, 이러한 승려들에게 전통적으로 요청되었던 역할이 미국적 맥락에서는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마을에서 승려가 걸식을 할 수 있을까요? 승복을 착용해야 하는 규정을 완화하고 더 따듯한 옷을 입을 수 있을까요? 승려들이 운전을 해도 될까요? 승려들이 돈을 들고 쇼핑을 갈 수 있을까요? 승려들이 사찰 밖에서 직장을 가져도 될까요? 이러한 질문들은 대부분의 아시아 사회에서 요구되었던 승려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에 도전합니다. 일부 나이든 신도들은 승려들이 모임에 차를 몰고 가거나 지역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원에서 재가신자의 역할도 바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이민자 승려들은 사찰 관리에 있어 미국적 양상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도시와 마을에서, 종교사원은 일반적으로 시의회, 계획 위원회, 그리고 구역 관리 위원회를 상대해야 합니다. 미국적 맥락에서 종교 단체는 비영리 단체로 규정되고, 반드시 국세청이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그들은 수도승들을 포함할 수도 있고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임원과 간부 집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재가신도의 리더십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결정을 내릴 법적 책임과 권한을 가진 이사회와 전통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권한을 가진 승려들은 종종 복잡한 관계에 있으며 심지어 대립하기도 합니다.
물론, 미국인 개종자의 불교 센터도 이사회와 미국의 민주적 이상에 대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젠(Zen) 센터에서는 상주하는 센터장(혹은 roshi, 노사老師)이 깨달음에 대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적극적이고 때로는 비판적인 투표 위원들은 평범한 통찰력을 가진 재가신자들입니다. 일본에서 온 존경받는 스승이나 그 스승의 미국 태생 법제자들의 판단을 의심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스승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이사진과 센터 구성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는 스즈키 로시의 법제자 리차드 베이커(Richard Baker) 로시가 연루된 스캔들이 발생한 이후 두 명의 센터장을 4년 임기로 선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센터장을 선출하는 아이디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수세기 동안 지속된 종교적 권위의 패턴에 미국적 혁신이 일어난 것입니다.
위빠사나 전통과 같이 상좌부 불교에 기원한 미국인 개종자 공동체에서도 아시아 승려들이 환대받고 미국 위빠나사 센터에 자주 방문하지만, 그 수계나 사찰 생활 등에는 모두 뚜렷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완전한 사찰 생활은 미국적 맥락에서 비실용적인 것이었고, 이것은 완전히 헌신적인 재가신자의 리더십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나아갔습니다. 권위의 상징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장 존경받는 스승에게조차 가사(袈裟)나 특별한 옷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위빠사나를 지도하는 가장 저명한 미국인 선생들은 수계를 받지 않았으며 불교 생활과 일상 생활의 분리가 아닌 통합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통찰 명상 협회(Insight Meditation Society)의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과 섀런 샐즈버그(Sharon Salzberg)와 같이 주요 기관의 거주자이자 지도자일 수도 있고,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Spirit Rock Center의 잭 콘필드(Jack Kornfield)와 실비아 부어스타인(Sylvia Boorstein)과 같이 불교 교사직을 전문 심리 치료사 또는 의사직과 결합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시아의 불교 전통은 이제 미국 땅에 단단히 심어져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민주주의화가 그 전통의 미국적인 발전 중 하나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국 불교는 불교 전통 안에서 여성에게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냈습니다. 미국인 여성 불교도는 상좌부 전통과 밀교 전통에서 비구니의 법맥을 되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불교에서 현재진행 중인 특징적인 변화 중 하나는 미국인 개종자 불교 공동체에서 여성이 수행자로서. 그리고 점점 스승으로서 가시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여성 불교도들은 불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여성들은 이 집단에서 이루어진 의례 활동, 불법의 연구, 영적이고 제도적인 리더십 등 모든 범위에서 동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1970년대까지 많은 미국 여성들은 아시아와 미국 모두에서 아시아 불교 스승들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전법(傳法)을 받아 기억되는 한 오직 배타적으로 남성만에게만 전해졌던 불법의 계보에 속하게 된 첫 여성들이 되었습니다. 미국인 여성 카루나 다르마(Karuna Dharma) 스님은 미국 최초의 베트남 승려 중 한 명이자 로스앤젤레스의 International Buddhist Meditation Center를 설립한 틱 티엔안(Thich Thien-an) 스님의 직전제자가 되었습니다. 샌디에이고의 젠 센터를 시작한 샬럿 조코 벡(Charlotte Joko Beck)과 오리건주 젠 커뮤니티의 교사 얀 초젠 베이스(Jan Chozen Bays)는 모두 로스앤젤레스 젠 센터의 마에즈미 로시의 법제자들입니다. 케임브리지 젠 센터에서 수년간 상주 교사로 근무한 모린 스튜어트(Maurine Stuart) 로시는 일본인 교사 소엔 나카가와 로시에게 인가받았습니다. 루스 데니슨(Ruth Denison)은 버마인 명상 스승인 우 바 킨(U Ba Khin)의 위빠사나 전통을 조슈아 트리 사막의 담마 데나(Dhamma Dena)라고 불리는 그녀의 휴양 센터로 가져왔고, 그곳은 특히 여성들을 위한 휴양지로 유명해졌습니다. 고엔카(Goenka), 무닌드라(Munindra) 등과 함께 공부한 후 인도에서 돌아온 섀런 샐즈버그는 현재 매사추세츠주 바레에 있는 통찰 명상 협회의 지도 교사 중 한 명입니다. 티벳 전통의 경우, 미국 출신의 페마 최된(Pema Chodron)이 티벳 스승인 16대 카르마파(Karmapa)와 최걈 둥파 린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재 노바스코샤에 위치한 감포 수도원의 원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 선종(禪宗)의 경우, 숭산 스님은 그의 미국인 제자들 중 세 명의 선사를 만들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은 Providence Zen Center의 선구적인 스승이었던 바바라 로즈(Barbara Rhodes)입니다.
미국 불교 전통의 여러 흐름 중에서 유력한 스승이 된 여성은 소수의 몇몇 뿐입니다. 그들은 미국에 새로운 불교 단체를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성을 위한 수련회, 여성과 불교에 대한 전국적인 회의, Kahawai: A Journal of Women and Zen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은 불교의 가르침과 실천의 표현에 어느 정도의 신선함과 즉각성을 주었습니다. 페마 최된의 책 “The Wisdom of No Escape(피할 길 없음의 지혜)”, 조코벡의 “Everyday Zen(일상의 선)”, 섀런 샐즈버그의 “Lovingkindness: The Revolutionary Art of Happiness(자비: 행목을 위한 혁명적 기술)”은 모두 일상적인 관용구와 내용으로 엮어낸 실천적이고 소박한 불교의 가르침을 줍니다. 불교의 “여성화”는 미국에서 형성되고 있는 독특하고 새로운 형태의 불교 전통의 지속적인 특징 중 하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또한 아시아, 북미, 유럽의 불교 여성들은 지난 25년 동안 상호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전체 승단 체제 내에 여성의 수계를 편입시키느 것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아시아 불교 전통의 지도자들은 남성들, 특히 남성 승려들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초기 승단은 붓다의 명에 따라 여성을 받아들였지만, 상좌부와 티베트 전통에는 비구니 승단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비구니의 법맥이 이어져 왔으며, 주로 일본, 한국, 대만에서 현재까지도 비구니 승단이 존속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세계적인 불교 여성 운동인 국제 여성 불교 대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Women)는 동서양의 불교 여성들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여성 불교도들과 전 세계의 여성 불교도들 사이의 연결은 방콕 탐마삿 대학의 종교 및 철학 교수로서 종종 미국 불교 학회에서도 활동하는 찻수마른 카빌싱(Chatsumarn Kabilsingh)이 발행한 Newsletter on International Buddhist Women’s Activity(NIBWA)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2003년, 카빌싱은 스리랑카에서 열린 상좌부 불교 행사에서 비구니 담마난다(Dhammananda)로 수계를 받았고, 오늘날 그녀는 태국 사찰의 주지스님이 이 되었습니다. 좀 더 최근에는 2007년 함부르크에서 승단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관한 제1차 국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의 목표는 한 마디로 비구니의 법맥이 실전된 불교 전통에서 비구니 수계를 재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구니들의 수계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으며, 전 세계 불교계에서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70년대에 베트남 승려 틱낫한(Thich Nhat Hanh)이 창시한 ‘참여 불교’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사회와 환경의 정의를 위한 투쟁에 불교적 관점을 부여합니다.
어떤 관찰자들은 불교, 특히 불교 명상을 세상을 벗어나 내면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과 연관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고통의 본질을 명확하게 들여다보고, 따라서 자비심을 기르는 것을 강조하는 불교 전통이 외부세계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활동적인 불교의 흐름은 “참여 불교(Engaged Buddhism)”, 즉 사회적 관심사와 정력적으로 참여하는 불교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승려 틱낫한은 미국에서 참여 불교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한 스님은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는 사이공 정부에 대해 불교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저항과 시위의 의미를 설명하고 평화를 제안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틱낫한의 활동에 영감을 얻어, 1978년에는 불교 평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전체 불교도들에게까지 확장시키기 위한 불교 평화 우의회(Buddhist Peace Fellowship)가 결성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네트워크는 국가적인 동시에 국제적이며, 평화의 방법으로서 불교 수행의 관점에서 평화, 환경 및 사회 정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미국에서 불교 평화 우의회는 반핵 운동, 교소도 개선, 그리고 고대 산림을 구하는 데 참여한 불교 신자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미국 내 참여 불교의 발전은 다수의 사례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영감을 받아 주도된 많은 프로그램들이 말기 환자에 대한 보호 치료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1987년 프랭크 오스타세스키(Frank Ostaseski)의 주도로 시작된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 호스피스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암과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병상으로 훈련된 자원봉사자들을 파견합니다. 하트포드 스트리트 젠 센터는 1990년 에이즈로 사망하기 전까지 센터장을 지낸 아이산 도시(Issan Dorsey)가 설립한 Maitri AIDS Hospice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리치먼드에서는 American Buddhist Congregation, Inc.라고도 불리는 Metta Vihara가 1990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센터장 수히타 다르마(Suhita Dharma) 스님의 주도 하에 호스피스 하우스로 시작되었습니다. 뉴욕에서는 뉴욕 젠 센터의 마이트리 하우스가 호스피스 치료를 위해 문을 열었습니다. 이것은 버나드 테츠겐 글래스맨(Bernard Tetsugen Glassman) 로시가 이끄는 공동체의 여러 비영리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는 조안 핼리팩스(Joan Halifax)가 이끄는 불교 공동체 Upaya의 “Being With Dying(죽음과 함께하기)” 프로젝트가 명상을 통해 존재와 관심의 실천을 계발하도록 주류 간병인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불교의 참여는 교도소 제도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조동종(曹洞宗)의 비구니 다이-엔 베너지(Dai-En Bennage)는 23년간 일본에서 훈련과 수행을 쌓은 후, 펜실베니아 루이스버그 에퀴티 젠도 산에 있는 그녀의 본거지에서 교도소 제도에서의 불교 수행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에서는 Mt. Tremper Zen Center의 존 다이도 루리(John Daido Loori) 로시가 뉴욕 주 교도소에서 불교 명상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로스엔젤레스에서는 “이 땅에 정토를 짓기”위해 전념하는 서래사(西來寺)가 매주 감옥 방문 프로그램을 열곤 했습니다.
흔히들 고통은 자비의 관문이라고 말합니다. 개인과 사회적 고통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불교의 수행은 봉사의 삶을 유지하는 관심, 자비, 내적 개선이라는 자질을 계발합니다. 틱난한은 상호 의존성, 즉 인간, 국가 및 자연 세계의 전체 생태학적 구조의 “상호 존재성”을 우주에 대한 불교적 관점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올바른 통찰력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상호 존재성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비난하고 다투고 죽이는 것을 멈추고,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것입니다. 비폭력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 대해 평화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평화 만들기’가 아니라 ‘평화 되기’가 불교의 핵심입니다. 보살들의 이상은 보시(dana)와 자비(metta 또는 maitri)의 교양을 포함하며, 둘 다 여덟 갈래의 성스러운 길, 팔정도(八正道)를 통해서 길러집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참여불교는 불교 학술 연구의 하위 분야로 성장했고, 전 세계 불교 공동체로 확산되었습니다. 현재 참여불교 활동가들이 문제의 범위는 평화, 환경(특히 미국), 소비주의, 인종차별, 교도소, 호스피스 치료, 세계화, 성별, 윤리 등을 포함합니다. 1997년에 설립된 Think Sangha는 현대적 문제에 불교의 사상, 방법 및 가치를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 참여불교의 싱크탱크입니다. 참여불교는 다양한 전통에서 온 불교 신자들이 함께 모여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부분적으로, 참여 불교는 미국 불교계에서 성장 중인 세계교회운동(ecumenical movement)의 주요 구성 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다양한 전통의 불교 지도자들은 북미에서 널리 퍼져 있는 불교에 대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교회주의 의회와 단체들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행사들은 과거에 서로 접촉이 제한적이었던 불교 전통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게다가, 이 단체들은 특히 기독교와 유대교 단체들과의 종교 간 상호 교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본 로스엔젤레스의 불교 지도자들은 부처님오신날인 베삭(Vesak)을 축하하기 위해 모입니다. 동아시아의 불교 신자들은 아기 붓다를 감차로 목욕시키는 의식을 주로 행하는 반면, 여기 미국, 예를 들어 로스앤젤레스의 남아시아 승려들과 재가신자들은 기쁨과 경의의 마음으로 참가하며, 각각 나무 고삐를 잡고 갓 태어난 붓다에게 절을 합니다. 그 승려들은 모두 Sangha Council of Southern California 회원들입니다. 이러한 “Sangha Council(승단 평의회)”는 오랜 불교 역사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Sangha Council은 본래 스리랑카 출신이었던 승려 하반폴라 라트나사라(Havanpola Ratanasara)의 주도로 설립되었습니다. 창립 대표들 중에는 한국 사찰인 관음사의 김도안 스님, 베트남 최초 불교 사원의 틱 티엔안 스님, 다르마 비자야 불교 사원의 월폴라 피야난다 스님, 툽뗀 다르계 링 티베트 사원의 라마 게셰 곌첸, 그리고 정토진종의 센신사(専心寺) 마사오 코다니 목사님 등이 있었습니다. 이 평의회에는 불교 전통의 모든 주요 종파 및 학파, 즉 남아시아의 상좌부 전통, 동아시아의 대승불교 전통, 티베트의 밀교 전통, 그리고 비구가 아닌 결혼한 성직자가 있는 정토진종의 대표들이 모여있습니다. 또한 Zen Center of Los Angeles, Dharmadhatu Center, International Buddhist Meditation Center와 같이 아시아 종파에 뿌리를 두되 독특하게 미국에서 자생한 불교 공동체의 대표들도 있습니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승단 평의회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범불교 의원회 중 하나일 뿐입니다. 시카고에서는 1978년 5개의 상좌부 국가, 4개의 대승불교 국가, 티베트, 그리고 미국의 전통을 포함한 12개의 불교 계보를 이은 시카고 지역 28개의 불교 센터가 모여 중서부 불교 평의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의회는 매년 베삭(혹은 비사카Visakha)의 행사를 주최합니다. 시카고의 Midwest Buddhist Temple에서 열린 2013년 축제에서는 협력 29주년을 기념했습니다. 휴스턴에 본부를 둔 Texas Buddhist Association, 버클리 소재 Buddhist Council of Northern California, 워싱턴과 오리건주에 있는 Pacific Northwest Buddhist Association도 있습니다.
Buddhist Coalition of New England는 스스로를 “우정의 정신으로 서로에게서 배우고 불교의 가르침을 더 넓은 뉴잉글랜드 공동체와 공유하기 위해 함께 모인 불교 공동체와 개인들의 조직”이라고 부릅니다. 이 단체의 비전 선언은 그러한 연합의 목적으로 확장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점을 찾고 우리의 가르침과 수행의 차이를 탐구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서로의 불교 전통에 대해 더 깊은 존중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불교도 개인과 불교도 공동체 사이에서 종파를 초월하고 문화를 초월한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처럼 전 세계의 불교 신자들을 모으는 “세계교회주의” 불교는 미국 내에서 점점 더 흔해지고 있습니다. 회색 승복을 입은 한국 승려들, 진홍색 승복의 티베트 승려들, 밝은 황색 승복을 입은 태국 승려들, 청바지, 치마, 그리고 사업용 정장을 입은 새로운 미국 불교 지도자들과 선생들 – 이 모든 불교 신자들은 의상 뿐만 아니라 중요시 여기는 경전, 찬송하는 언어와 스타일, 붓다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방식까지 다 다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아주 간단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베삭과 같은 범불교의 많은 행사들이 다소 형식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행사가 상징하는 공유는 조용한 불교 혁명의 모태가 될 수 있습니다.
전국적인 차원에서, American Buddhist Congress가 1986년 8월 콜로라도 주 볼더에서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그곳에서 불교인들이 미국이라는 토양에서 더 강하게 자라도록 단결하고, 미국 사회에 불교를 알리며, 사회와 정치적 문제에 협력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여기, 오늘날 북미의 역사에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불교 전통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 100년도 전에 미합중국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이래 다른 나라에서 이주한 불교 신자들의 수와 다양한 형태로 불교를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의 수 모두가 성장하고 번창해 왔다...”
이 문서는 불교 신자들이 미국 불교 회의를 구성하는 데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고 시기적절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1987년 여름, “World Buddhism in North America(북미 안의 세계 불교)” 학술회의가 미시간 주 앤아버에서 열렸고, 불교 학자들과 다양한 미국 불교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모여 북미에서 불교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 태생과 미국 태생의 불교 신자들 - 이제 모두 미국적인 맥락에서 불교 생활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 의 광범위하고 뛰어난 모임이었습니다. 8일 동안 그들은 앤아버에 있는 선종 사찰의 정원에 거대한 텐트를 펼치고 모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서로 연결될까요? 어떤 형태의 교육과 문화가 미국 문맥에 적합할까요? 불교는 미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며, 미국은 어떻게 불교를 변화시킬까요? 불교학 수업에서 비수행자가 가르치는 불교는 이런 저런 종파의 가르침을 전승받은 이가 가르치는 불교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승려와 재가신도는 어떤가요? 여자랑 남자는? 모두 이 회의에서 논의한 질문들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작성 중입니다.
아시아의 불교 전통은 이제 정말로 미국 전역에 퍼졌습니다. 새로운 선생들 중 많은 수가 가정주부이자 재가신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미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의 선생들 중 일부는 하나 이상의 계보에서 훈련받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선을 가르치는 선생은 티벳인 라마와 함께 수행을 연장합니다. 위빠사나를 가르치는 선생이 정토경전을 외웁니다. 많은 불교 조류의 ‘직조’와 혼합이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독특한 ‘미국’ 불교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미국 불교도들은 또한 그들의 새로운 불교 이웃을 아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 불교도들과 교류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미국의 지배적인 종교는 기독교이며, 대부분의 불교 간 종교 활동은 불교와 기독교 사이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1987년부터, 불교-기독교 연구는 하와이 대학에 기반을 둔 불교-기독교학회의 공식 학술지가 되었고, 기사, 서평, 발표 및 불교-기독교 간 작업에 관련된 모든 것을 위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교류의 한 가지 구체적인 측면은 트라피스트 수도사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이 장려한 불교-기독교 간의 수도승 대화였습니다. 이는 현재 반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996년, 티베트 불교, 선종, 상좌부, 로마 가톨릭과 및 여타의 기독교에서 수도승들과 선생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뛰어넘어 가로질러 참여하기 위해 고인이 된 머튼의 고향인 켄터키에 있는 게체마니 수도원에 모였습니다.
또한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조셉 골드스타인, 섀런 샐즈버그와 같이 유대교 배경을 가지고 불교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에 의해 많은 불교-유대인 대화가 열립니다. 흥미롭게도, “Jewbu(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 불교로 개종한 사람들)”라는 용어는 1960년대 이후로 불교 공동체에 속한 유대인을 묘사하는 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불교-유대인 대화는 유대교가 불교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불교가 유대교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유대인 불교도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미국과 개인의 다종교적 정체성이 점점 더 고찰되고 불교가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증가함에 따라, 불교도들은 계속해서 전국적으로 종교를 넘어선 집단과 계획의 필수적인 부분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불교도들은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새로운 세대에 어떻게 전할까요? 일본의 정토진종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주일학교 수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종교적 교육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특히 아이들에게 그들의 전통을 교육하는 데 미국적 접근법을 제공합니다.
정토진종 사찰에서 운영하는 Sunday Dharma school에서 2학년과 3학년 학생들이 “나의 오부츠단”이라는 제목의 워크북 페이지에 색칠을 하고 있습니다. 오부츠단(おぶつだん, 御佛壇)은 모든 정토진종의 사찰과 신도의 가정에서 가지고 있는 붓다를 모시는 제단입니다. 중앙에는 아미타불의 입상이 있고 향로, 꽃, 초, 쌀이 담긴 작은 접시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불단을 색칠하고 오린 후 아미타불과 다양한 공물을 올바른 자리에 놓으면습니다. 아이들은 갓쇼(がっしょう, 合掌)이라 불리는 경건한 몸짓으로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외웁니다.
“아미타 부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향을 피웁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아름다운 꽃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초에 불을 붙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선생님은 말합니다 “아미타불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이 부처님께 감사를 전하는 방법이란다.”
아이들에게 종교적 전통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며, 소수 종교라는 지위는 이것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정토진종은 현재 미국에서 4대째, 심지어 5대째로 내려가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불교의 모습을 가르치는 데 있어 약간의 경험을 쌓았습니다. 아미타불의 은혜와 자비를 강조하는 종교의식의 형태는 이 ‘무한한 빛의 부처(無量光佛)’가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움직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이 사랑을 느낀 우리 인간의 반응은, 그러므로, 감사입니다. 감사의 종교적 표현은 다르마 학교 초등 워크북의 첫 번째 장에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을 찬미합니다” 이것은 “감사합니다”를 의미합니다.
“미국 불교 교회(Buddhist Churches of America, BCA)”로서 조직된 정토진종은 일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Dharma school의 교육 과정을 개발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전국 본부의 교육 부서는 불교 교육 자료를 개발하고 미국 전역의 사찰에 공급합니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습시키는 특징적인 미국식 교육 과정을 본뜬 것입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아미타 부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떠올립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우리를 모두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빛은 우리 세상을 밝힙니다.
그분은 따듯하게 빛나시며, 모든 사람을 돕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나무아미타불”
신앙에 대한 개인적인 간증 또한 정토진종의 전통에 통합되어 어린이들이 불교 전통에서 자신의 역할을 적절한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르마 학교와 주일 예배에서는 매주 “금빛 사슬”를 낭송하는데, 이는 미국의 젊은 불교도 세대들에게 첫 번째 신앙의 확증이 되었습니다.
나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아미타불의 금빛 사랑의 사슬에 있는 고리입니다.
저는 제 고리를 밝고 튼튼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저는 모든 생명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고 나보다 약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미타불의 금빛 사랑의 사슬에 있는 모든 고리가
밝아지고 튼튼해지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가 완전한 평화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