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전통은 인도 안의 다양한 지역에 걸쳐 존재하는 하랍파(Harappa) 문명, 아리안(Aryan) 문명, 드라비다(Dravidian) 문명과 여러 부족 문화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힌두교”라 불리게 된 전통은 종교 생활의 다양한 색조와 결을 지닌 다채로운 직물과 같은 문명입니다. 힌두교 전통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형상의 신을 숭배하는 여러 민족의 종교 문화로 짜여져 있습니다.
남아시아에서 제일 오래된 문화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대략 기원전 2500년부터 1500년까지 천 년 동안 번성한 인더스 문명입니다. 정교하게 계획된 도시 모헨조다로와 하랍파의 유적은 한때 널리 퍼져있던 문명의 종교의식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으로 된 종교의식용 물웅덩이는 사원이 가지고 있던 물 수조와 목욕 의식이 있었음을 시사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힌두교 전통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리안 민족들은 약 기원전 1500년에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의 북서쪽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갠지스강의 넓은 평원에 정착했습니다. 아리안 민족이 남긴 유산은 언어인 산스크리트와 “베다”(Veda)라 불리는 막대한 양의 종교적 찬가와 시들입니다. 베다 종교의식은 불의 제단을 중심으로 하여 행해졌는데, 이는 안녕을 기원하며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과 연관된 것입니다. 아리안 민족의 네 개의 계급인 사제, 왕, 상인, 노예 계급은 인도 카스트 제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리안 민족은 하랍파 문화나 드라비다 문화로 상정되는 고대 인도의 토착 문명과 남인도의 언어들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리안 문화는 인도의 많은 부족 전통들을 전멸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아리안 문화와 드라비다 문화와 인도의 부족 문화는 “힌두교 전통”이라 불리는 역동적 과정을 만들어냈습니다. 전통을 재구성하는 과정은 수 세기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이 과정은 현재 인도의 도시에 사는 힌두교도들이 산업과 도시 문화의 맥락에서 전통을 재탄생시키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힌두교 전통은 각기 고유한 언어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인도의 여러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제일 널리 분포되어 사용되는 언어들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것들인데, 이 언어들은 아리안들이 사용한 고전 산스크리트와 연관된 것들입니다. 이것에서 파생된 현대어들로는 북동지역의 벵골어, 북서지역의 뻔잡어, 동쪽 연안의 오리야어, 서쪽 연안의 마라티어와 구자라트어, 그리고 인도 북부와 중부에서 사용되는 힌디어가 있습니다. 이 언어들은 남인도에서 사용되는 텔루구어, 타밀어, 칸나다어, 말라얄람어와 같은 드라비다어족의 언어보다는 언어적으로 사촌격이라 할 수 있는 영어와 구조적으로 더 비슷합니다.
이러한 지역어들로 말하고, 노래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힌두교 전통이라는 직물에 자신들 고유의 색채와 질감을 입혔습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는 힌두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함에 따라 이 지역의 종교 전통들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힌두”라는 용어는 힌두 전통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특히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 인더스강/신두(Sindhu)강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힌두교도들은 각기 다른 신들을 숭배하며, 복잡한 구조의 사회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힌두교도 사이에서 공유되는 종교적 믿음은 브라흐만, 즉 신들이 우주에 다양한 형태로 항상 존재한다는 것, 자아 실현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현생을 거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행동은 내세에서의 영혼의 여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힌두”는 원래는 인도어가 아니었습니다. 이 용어는 처음에는 그리스인들이, 그리고 이어서 페르시아인들이 인더스강, 즉 신두강 건너편의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힌두교”(Hinduism)라는 용어는 19세기가 되어서야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용어 역시 처음에는 힌두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힌두교도들의 특징(-ism)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용어는 힌두교도가 무슬림들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힌두교는 힌두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과 관습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양상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하는 게 맞다. 힌두교 전통은 종교적 믿음의 집합체라기보다는 정신(ethos)이며, 복잡한 사회 체계이자 정교하게 표현된 종교적 감수성입니다.
현재 인도와 인도 외의 지역에서 스스로를 “힌두”라 부르는 사람들은 많은 형태의 종교적 관행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라나시(Banaras)의 브라흐만들, 보스턴의 사업가들, 히말라야의 고행자와 요기들, 펜실베니아의 스와미(힌두교 출가고행자)들, 인도 중부의 마을 사람들, 그리고 시카고 교외의 거주자들, 이들은 모두 각자의 고유한 종교 관행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슈누(Vishnu) 신을 섬기는 바이슈나바(Vaishnava)들이 있고, 쉬바(Shiva)를 섬기는 샤이바(Shaiva)들이 있으며, 샥티(Shakti) 여신을 섬기는 샥타(Shakta)들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들 중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른 종교 관행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가끔씩 충돌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이들은 모두 서로 서로의 사원에서 각자의 신을 섬긴다. 사실, 최근에 세워진 사원 중 몇 곳에서는, 그것이 뉴델리에 있든 내쉬빌(Nashville)에 있든 상관없이, 한 지붕 아래에 모든 힌두 신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종파적 다양성에서 불구하고 힌두교도들이 공통적으로 -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전제 사항들이 있습니다. 이 사항들은 우주가 신(the Divine)―종종 브라흐만(Brahman)이라고 설명되는 실재(reality)―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신은 많은 이름과 형상으로 알려진다는 것, 이 실재는 인간의 영혼에 깊고 가득히 들어차 있다는 것, 자아실현으로 향한 영혼의 여정은 한 번의 인생에서 완성되지 않고 여러 번의 생에 거쳐서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한 생과 뒤따르는 생을 통한 영혼의 여정은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인, 그리고 많은(The One and The Many)”은 인도의 힌두교 철학뿐만 아니라 인도와 서양의 교류를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힌두교 전통은 인도의 다른 종교 전통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반대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들이 갖고 있는 다양성은 끊임없는 상호관계의 역동적인 양상을 빚어냅니다.
오랜 시간 동안 힌두교 전통은 다른 종교 전통들과 같은 공간에서 공존해왔습니다. 인도는 불교가 발생한 곳으로, 불교는 붓다가 생존했던 기원전 6세기부터 약 11세기경까지 1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도에서 번창했습니다. 불교와 대략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자이나교는 지금도 인도에서 번창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 또한 고대부터 인도에 뿌리내리고 있었는데,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시조를 기원후 1세기 사도 성 토마스라 여깁니다. 유대인들은 인도 남부의 케랄라(Kerala) 주와 뭄바이(Mumbai)의 상인들이 만든 오래된 공동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르씨(Parsi)들은 현재의 이란에서 시작된 조로아스터교의 후손들입니다.
11세기에 무슬림들은 인도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고유한 인도-무슬림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1947년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이전에는 인도인의 약 3분의 1이 무슬림이었고, 지금도 인구의 약 13퍼센트가 무슬림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씨크(Sikh)교는 16세기에 인도 북서부 지역에서 구루 나낙(Guru Nanak)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여 생동감 넘치고 독특한 종교 공동체로 발전했습니다. 17세기 후반에는 대영제국과 함께 개신교와 선교 운동이 인도에 들어왔습니다. 인도와 서구의 교역이 발전함에 따라, 지식과 종교 사상의 흐름이 양방향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일부 힌두교도들은 인도가 가지고 있는 다종교적 맥락 전체가 기본적으로 “힌두교” 전통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교리가 아닌 폭넓은 정신 또는 세계관에 의해 정의된 관용성 있는 문화적 환경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힌두교 세계관이 갈등이 아닌 조화의 세계관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러한 힌두교 환경은 많은 민족과 많은 전통들을 받아들여 왔고, 계속하여 궁극적 실재(Reality)의 완전한 하나임(integral oneness)과 같은 실재에 대한 수많은 종류의 인식 가능성을 인정해왔습니다. 무슬림, 씨크, 기독교 공동체들은 이 넓은 맥락의 “힌두교” 배경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해 오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이처럼 광범위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인, 그리고 많은”이라는 주제는 마치 끊임없이 전개되는 라가(raga: 인도 전통 음악의 선율 양식)처럼 수없이 많은 변주를 가진 음계와도 같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문화도 인간과 신의 ‘많음’(manyness)이라는 복합적인 이해의 틀을 가지고 발전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양성에 대한 힌두교의 해결책은 모든 것을 한데 녹여버리는 용광로 같은 방식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힌두교적 해결책은 차라리 개별적인 조각들이 패턴을 가진 전체 안으로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반복해서, 그리고 계속해서 들어가는 만화경(kaleidoscope)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양성은 유연하고 역동적인 상호 관계의 패턴 안에서 보존되고, 가치를 가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원주의가 힌두교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토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계관에서 ‘차이’는 ‘하나임’(oneness)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하나임’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전체는 차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전체를 구성하는 많은 부분들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직 하나이고 유일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다른 문화에서는 중요한 표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힌두교 인도는 오랫동안 많은 다양성의 의미에 대한 다른 기준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세기에 다원주의보다 더 좁게 정의되고 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힌두교 세계관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종종 “힌두 국수주의”(Hindu nationalism)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시각은 인도의 힌두교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용어로 정의하며, 외부인―대부분 무슬림들―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배제합니다. 이 세계관을 주창하는 정당들과 민병대들은 라마신의 출생지라 여겨지는 곳에 힌두 사원을 다시 짓거나 소를 도축하는 것과 소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는 것과 같은 문제를 계속 이슈화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이 국가와 지방 선거와 관련된 정치 구도 안으로 들어가면서 많은 인도인에게 “힌두”라는 개념의 의미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힌두교 전통은 신의 여러 형상과 표상들을 인정하며, 이 모든 것들은 최고신 브라흐만과의 관계를 통해 이해됩니다. 예를 들어, 한 개의 사원에 쉬바신이나 비스누신에게 바쳐진 중앙 성소(聖所)가 있고 그 주변에 다른 신들을 모시는 사당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부인들에게 있어서 힌두교의 다양성을 제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힌두교에는 소문자 ‘g’로 시작하는 ‘신’(god)이 적합한 영역이 있고, 대문자 ‘G’로 시작하는 ‘신’(God), 즉 모든 것을 아우르는 최고의 신이 적합한 영역이 있습니다. 힌두교 사원이라면 어디에서나 중심이 되는 신의 형상은 쉬바신이나 비슈누신의 형상이지만, 거기에 더해서 다른 신들을 나타내는 형상들, 즉 무르티(murti)들이 많이 있습니다. 쉬바신의 사원을 예로 들자면, 중앙의 성소에는 돌로 된 기둥인 쉬바 링가(linga)가있고, 그곳에는 꽃, 과자, 곡물, 물과 같은 공양물들이 놓여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앙 성소를 둘러싸고, 다양한 신들의 사당이 여러 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쉬바신의 한 쪽 옆에는 쉬바신의 아들인,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스칸다”(Skanda) 또는 “카르티케야”(Karttikey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쉬바신의 다른 아들인 무루간(Murugan)의 형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라마(Rama)와 그의 아내 씨따(Sita)에게 바쳐진 사당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스러운 물로 가득 찬 항아리를 들고 있는 갠지스 강의 형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피리를 불며 사랑의 곡조로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는 크리슈나(Krishna)의 형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힌두교 전통은 가지각색의 다양한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각각의 신은 많은 이름과 형상을 가집니다. 그러나 힌두교도라면 누구나 많은 신들은 대문자 “G”로 시작하는 “신”(God)의 유일자라는 사실(oneness)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옛날의 현자들은 모든 개인의 이름들을 초월하는 실재(Reality)를 묘사할 때 “브라흐만”(Brahma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브라흐만은, 비록 “이름과 형상”(추상적 대상과 물리적 대상, 名色)들이 다를지라도, 하나입니다. 『릭베다』(Rig Veda)는 “실재는 하나다. 현자들은 그것을 여러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라고 단언합니다. 이 믿음은 힌두교의 전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주장되었습니다. 현재에도,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Nashville)에 있는 가네샤 사원에 있는 형상들에 대해 한 젊은 힌두교 여성은 “이 모든 무르티들은 하나의 최고신의 다른 모습들로, 이것들은 각각 고유한 성격과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아그니와 불의 제단은 힌두교 전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가정의 의식뿐만 아니라 신전을 봉헌하는 의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베다는 역사적으로 브라흐만 사제들이 불을 붙이고 다루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아리아인들의 첫 번째 제단은 불의 의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그니, 즉 '불'은 베다 찬가(Vedic hymns)에서 찬양되었고 기도와 제물을 천상 제일 높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 지상에서 피워졌습니다. 한 가정의 중요한 의식들―매일매일 하는 의식, 결혼 의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례 의식―은 불의 제단에서 행해졌습니다. 불의 제단을 놓고 의식에 따라 불을 붙이는 것은 브라흐만 사제들의 몫입니다. 고대 인도에서 “야즈냐”(yajna)라 불리는 성대한 의식은 왕의 후원을 받았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해져서 종종 여러 개의 불을 사용하고 많은 전문 사제들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베다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리아인들의 세계에는 악니와 다른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가 있었지만, 사원도, 신들의 무르티들도 없었습니다. 베다 시대에 신들은 오직 말로써만 표현되었습니다. 아그니는 불꽃을 내는 머리카락과 금으로 된 턱을 지닌 신들의 전령으로 아그니를 통해 제물이 지상에서 하늘로 전해지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아주 복잡하게 구성된 불의 제단조차도 영원하게 남아있지는 않았으며, 야즈냐샬라(yajnashala)라 불리는 임시로 의식을 위해 마련된 제단에 세워졌습니다. 예를 들어, 아그니차야나(agnicayana)에는 커다란 새의 형상을 한 벽돌로 만들어진 제단이 만들어졌었는데, 의식이 끝났을 때 그 장소는 태워지고 버려졌습니다.
3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불의 제단은 가정 내의 의식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거나, 아이가 처음으로 머리를 자를 때나, 남자아이가 성스러운 실을 받을 때나, 아니면 가족의 구성원이 결혼을 할 때, 불의 제단은 그 의식의 중심에 있습니다. 인도 남부나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사원이 만들어질 때, 불의 제단은 여전히 사원을 헌당하는 의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깜박거리고, 이동할 수 있으며,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는 불은 신성(divine)의 첫 번째 아이콘이자 제단입니다.
베다(“지혜”라는 뜻)는 핵심적인 종교 텍스트들입니다. 베다는 찬가, 철학적 가르침과 지침들로 이루어진 네 개의 텍스트로 구성되며 소리 내어 암송됩니다. 베다를 구성하는 네 개의 텍스트는 곡조(chant)와 선율인 『싸마 베다』(Sama Veda), 다양한 신에게 바쳐지는 찬가들인 『리그 베다』(Rig Veda), 종교 의식 지침서인 『야유르 베다』(Yajur Veda), 널리 알려진 주문들과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아타르바 베다』(Atharva Veda)입니다. 『마하바라따』(Mahabharata) 서사시와 같은 다른 유명한 종교 텍스트들은 종종 “다섯 번째 베다”라 불리기도 합니다.
베다는 힌두교 전통과 관련된 제일 오래된 문헌으로 고대 아리아인들이 남긴 유산입니다. “베다”라는 단어는 “지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독자적인 의미와 일반적인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의미에서 “베다”는 고대 현자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고대 찬가와 곡조 모음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슈루티”(shruti)라 불리는데, 문자 그대로 “들려진 것”을 뜻합니다. 베다는 기록된 텍스트를 읽는 방식이 아니라, 운율에 따라 운문들이 암송되는 방식으로 전승되었습니다. 베다 전통에 속하는 네 개의 텍스트들은 브라흐만 사제들이 대를 이어 완벽하게 암기하면서 전승되었습니다.
네 개의 베다 텍스트들은 다양한 신들에게 바쳐진 찬가들로 구성된 『리그 베다』, 곡조와 선율로 구성된 『사마 베다』, 종교 의식에 대한 지침들과 가르침으로 구성된 『야주르 베다』, 그리고 성가와 인기 있는 주문, 이야기들로 구성된 『아타르바 베다』입니다. 각각의 베다 텍스트에는 종교의식과 특히 관련되어 있는 『브라흐마나』(Brahmana)와 우주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철학적 이해를 탐구하는 『우파니샤드』(Upanishad)과 같은 텍스트들이 각 전통에 맞게 첨부되어 있습니다. 우빠니샫과 그에 대한 해석들은 가끔씩 “베단타”(Vedanta)라 불리는데, 베단따는 문자 그대로 “베다의 끝”을 뜻합니다.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베다”는 힌두교 전통 전체의 지혜와 권위를 의미합니다. 많은 대중적인 종교 텍스트들이 지혜와 권위를 지녔다고 주장하는 방법이 그 텍스트들을 “제5의 베다”라 부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사시 『마하바라타』는 가끔 “다섯 번째 베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가장 대중적인 힌두교 문헌의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즉 “신의 노래”는 『마하바라타』의 서사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로 씌여진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도 지혜와 권위의 원천이라 간주되며, 『라마야나』를 힌디어로 번역한 『람차리트마나스』(Ramcharitmanas) 역시 그렇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도 남부에서는 “타밀 베다”라 불리는, 9세기에 만들어진 알바르(Alvar)들의 헌신의 시 모음집인 『디비야 프라반담』(Divya Prabandham)을 고대 산스크리트 베다와 마찬가지로 숭배합니다.
『우파니샤드』(Upanishad)는 베다의 “지혜를 담은 텍스트”(wisdom literature)로서 우주의 원천과 본질에 대한 가르침들입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형식을 취하면서, 우파니샤드들은 아트만(인간의 궁극적 자아)이 동시에 브라흐만(초월적 존재)이라는 실재를 지적합니다.
대부분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우파니샤드』(Upanishad)는 베다의 “지혜를 담은 텍스트”입니다. 대부분의 『우프니샤드』 텍스트들은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고, 스승들과 제자들은 불의 제단을 사용한 제사의식에서 그 의식의 더 깊고, 더 내적인 의미를 질문하는 것으로 옮아갑니다. 그들은 우주의 기원과 토대, 그리고 우주를 지탱하는 것들에 대한 사변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쉬베타쉬바라타 우파니샤드』(Svetasvatara Upanishad)에 등장하는 탐구자는 “원인(cause)은 무엇인가? 브라흐만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부터 태어났는가? 우리는 무엇에 의해 사는가? 우리는 무엇 위에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들을 던집니다.
『우파니샤드』의 스승들은 깊은 자각의 길을 가리킵니다: 궁극적 자아 또는 생명의 숨인 아트만은 또한 우주 전체에 내재되어 있는 궁극의 실재인 브라흐만입니다. 실재는 초월적이지만 또한 내면적입니다. 『우파니샤드』의 스승들은 예와 비유를 통해 가르칩니다. 한 스승이 그의 제자에게 무화과를 가지고 오라고 시킨다.
스승이 말하기를
“그것을 열어라. 너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 “아주 작은 씨 몇 개가 보입니다, 스승님.”
“그 작은 씨 한 개를 열어보아라. 너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스승님.”
“진실로 네가 볼 수 없는 그것으로부터 무화과 나무 전체가 자라난다. 그것이 실재이다. 그것이 아트만이다. 그것이 그대이다.”
브라흐만은 우주 전체의 근본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의 미세한 본질인 생명력입니다. 사람은 무화과 작은 씨앗의 내부를 볼 수 없듯이 브라흐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치 씨앗이 무화과나무를 만들어내듯이 브라흐만은 그곳에 존재하면서 모두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것이 무화과 씨앗의 안에 있든 사람의 안에 있든 간에, 그것은 생명의 동일한 원천입니다.
다른 스승들은 브라흐만을 설명하는 데에 또 다른 교육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브라흐만이 우주에 내재한다고 보기보다는 브라흐만이 전적으로 초월적이며, 인간의 용어로는 브라흐만이 ‘무엇이 아닌지’를 말하는 것으로만 브라흐만을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거칠지 않고, 섬세하지 않고, 짧지 않고, 길지 않고, 냄새가 없으며, 맛이 없고, 눈이 없고, 귀가 없고, 목소리가 없고, 이름이 없고, 나이가 들지 않으며, 죽지 않으며, 크기가 없고, 안쪽이 없고, 바깥쪽이 없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세상에 존재하는 범주 너머로 확장시켜 인간이 만든 범주들에 담을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역사적으로 “베단타”는 『우빠니샫』이나 또는 “베다의 끝에 있는” 지혜를 가리킵니다. 베단타는 스승(guru)의 인도 하에 변혁적인 지식(jnana)을 전수할 것을 요구하는 철학 체계이기도 합니다.
“베단타”(Vedanta)라는 용어는, 우선 『우파니샤드』 텍스트들, 즉 “베다의 끝”에 있는 가르침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들은 인도의 철학적 사유 전통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철학 체계는 여럿으로 나뉘는데, 이것들은 다르샤나(darshana), 즉 “관점”이라 불립니다. 이것들 중의 하나로 아마 제일 영향력 있는 것이 “베단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베단타를 주창한 유명한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은 샹카라(Shankara, 약 기원후 8세기)입니다. 『우파니샤드』는 “무엇이 이 모든 것의 근본인가?”, “무엇이 영혼의 본질인가?”, “이 영혼과 저 근본의 관계는 무엇인가?” 라고 묻습니다. 샹카라는 브라흐만-근본적인 실재-이 아트란-영혼-과 같다는, 혹은 최소한 서로 다른 둘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그는 현상적인 우주는, 마치 파도가 바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실재의 하나임(the oneness)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단타에 따르자면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에 대한 참된 ‘대답’들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깊은 통찰력을 요구합니다. 이 통찰을 “즈냐나”(jnana, 인식)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의식을 브라흐만에게로 돌리는 변혁적인 지혜로, 깨우침을 가져오고 변화를 일으키는 지혜입니다. 이것만이 “목샤”(moksha), 즉 “해방”(liberation)이라 불리는, 영적 자유에 이를 수 있는 길입니다.
지혜는 혼자서는 얻기 어렵습니다. 영적인 길을 따라 이끌어 주는 사람은 스승, 구루(guru)입니다.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은 누구나 사서 볼 수 있도록 출간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며, 『우파니샤드』는 도서관이나 집의 거실에서 읽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가르침들은 오직 진지한 영적 훈육을 받는 삶의 맥락에서만, 오직 제대로 준비된 사람들에 의해서만, 그리고 오직 자격이 있는 스승과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프라슈나 우파니샤드』(Prashna Upanishad)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구루를 찾아간 여섯 명의 열정적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구루는 학생들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자신과 함께 1년 동안 훈육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그 학생들이 가르칠만한 자질을 지녔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구루는 지혜와 실천에 관한 힌두교 전통을 전승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구루는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자격을 인정받는데, 이는 구루의 가르침 계보를 의미합니다. 구루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통에 따르는 영적 실천의 삶으로의 입문의식, 즉 딕샤(diksha)를 치뤄 줍니다. 만트라(mantra)를 주는 것도 입문 의식의 하나가 될 수 있는데, 만뜨라는 명상 수행에서 사용되며 영적 수행의 지표가 되는 이름이나 문구나 단어입니다. 구루는 영적 가르침에 더해 제자의 건강, 가족, 결혼 등의 문제에 대한 조언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영적 지도자로서의 구루는 “스와미”(swami)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베단타의 가르침은 19세기 후반에 스와미 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에 의해 서구로 전해졌습니다. 그는 현재 미국의 여러 도시들에 있는 베단타 협회를 처음으로 설립했습니다. 친마야 선교회(Chinmaya Mission)의 스와미 친마야난다(Swami Chinmayananda)와 스와미 테조마야난다(Swami Tejomayananda), 펜실베니아에 있는 아르샤 비디야 구루쿨람(Arsha Vidya Gurukulam)의 스와미 디야난다(Swami Dayananda)와 스와미 비디타트마난다(Swami Viditatmanada)와 같은 이들은 1970년대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활동한 베단따 전통의 유명한 스승들입니다.
박티(Bhakti)―신에게의 헌신―은 베단따에 대한 또다른 해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해석은 영혼과 신이 하나가 아니지만, 표현할 수도 없고 불가사의하게도 하나이자 동시에 구별되는 것이어서 사랑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인 박티는 노래, 찬가, 제물, 춤, 연극 등을 통해 표현됩니다.
“박티”(Bhakti)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들이 지혜를 추구하는 것에 고취되듯이,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길로서의 헌신에 보다 더 자연스럽게 끌립니다. “나누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뿌리에서 만들어진 단어인 “박티”는 신을 향한 사랑에 내재해 있는 “나눔”의 의미를 가집니다. 신자들만 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 신자들을 사랑한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박티는 다양한 방식―노래, 찬가, 사원 참배, 춤, 연극 등―으로 표현됩니다.
예를 들어, 크리슈나에 대한 사랑은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크리슈나를 찬양하라!”와 같은 잘 알려진 찬가, 즉 바잔(bhajan)들로 표현된니다.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서 크리스나는 신을 경배하는 데에 값비싼 불의 제단 의식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나는 나에게 나뭇잎 한 개, 꽃 한 송이, 과일 한 개, 또는 약간의 물이라도 신심을 가지고 바치는 사람들의 것들을 받는다.”라고 크리슈나는 말합니다. 온 세계에서 매일 사원이나 집에서 힌두교 신자들은 이러한 간단한 공양물들을 크리슈나와 다른 신들에게 바칩니다. 그들은 과일, 꽃, 물, 과자들을 바치고, 이 선물들을 신의 프라샤드(prashad)인 은총과 은혜로 다시 돌려받습니다.
이러한 헌신은 지역 언어들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라마차리트마나스』(Ramcharitmanas)에 나오는 라마신에 대한 찬양을 북인도에서는 툴시다스(Tulsidas)의 힌디어로 노래합니다. 두르가(Durga) 여신은 람프라사드 센(Ramprasad Sen)의 벵갈어로 찬양되었습니다. 남인도에서는 성인이자 시인으로 불리는 나얀마르(Nayanmar)가 쉬바신에 대한 찬양을 노래하였고, 알바르(Alvar)들은 비스누신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보다 최근에 스와미나라얀 운동(Swaminarayan movement)과 같은 단체들은 쓰와미나라얀에 대한 헌신에 촛점을 두고 있습니다.
춤 역시 헌신의 한 형태입니다. 인도와 미국의 크리슈나 신자들은 종종 키르탄(kirtan)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인도의 고전무용 역시 헌신의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쉬바는 나타라자(Nataraja), 즉 춤의 신이며 때때로 힘있고 균형잡힌 아름다운 무용수의 자세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쉬바의 춤에서 쉬바는 우주를 창조하고 또 다양한 창조물을 다시 자기 안으로 빨아들여 우주를 파괴합니다. 인도무용을 시작할 때, 무용수는 여러 신들 중 한 신에게 기도를 하며 그 신을 찬양하기도 합니다. 무용수는 몸짓과 움직임으로 끄리스나의 형상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이는 관객들이 헌신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는 무용수가 크리슈나의 사랑을 받는 여자가 되어 그녀가 크리슈나에 대해 가지는 갈망을 관객들에게 맛보게 하기도 합니다.
카르마(Karma, 문자 그대로 “행위”)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자국”, 다시 말해서 결과를 남깁니다. 『바가받기따』와 마하뜨마 간디가 가르치는 카르마의 길은 힌두교도들이 세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도 무욕의 삶을 살 것을 가르칩니다.
“카르마”(Karma)는 단순히 “행위”를 의미합니다. 모든 행위는 결과를 낳습니다. 선을 위한 것이거나 악을 위한 것이거나 각각의 행위는 세상에서, 그리고 행위자의 내면에서 영향을 끼칩니다. 카르마는 종종 서구에서 대중적으로 전생에서 물려받은 “과거 행동의 결과”, 즉, 사건들에 영향을 끼치는 불가사의한 상황들을 의미합니다. “이건 내 카르마야” 또는 “이것은 나쁜 카르마야”와 같은 외침은 종종 운명론이나 행운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카르마는 인간의 행동과 그것의 결과 둘 다를 의미하고, 이 결과는 세상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남는 결과입니다. 행위는 진실로 결과를 수반하고 “카르마의 법칙”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것으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행위는 자국을 남깁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행위의 결과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욕(renunciation)의 정신으로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활동적인 사람들에게, 행위의 길은 영적인 길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기질은 내적인 자아실현(jnana)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헌신(bhakti)이 아닌 활발한 활동을 지향합니다. 행위의 길이란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가진 관여입니다. 그러나 『바가받기따』의 가르침이 분명히 하고 있듯이, 카르마의 길은 사심 없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집착하거나 심지어는 그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도 말고 훌륭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열정적으로 행하면서도 그 행동의 결과에 개인적이거나 자아 중심적인 집착을 가지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 이것이 행동의 길이 제시하는 과제입니다. 『바가받기따』에서 크리슈나는 전사 아르주나(Arjuna)에게 “미덕의 전쟁터”에서 영웅의 심장이 아닌 출가자의 심장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라고 충고합니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도 종종 자신의 길을 행위의 길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일과 전적으로 관계되어 있으면서도 무욕의 삶을 사는 것, 나아가서는 고행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르마는 사회적 질서와 의무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이러한 질서와 의무는 우주 전체를 지탱합니다. 한 사람이 카스트(varna)나 출생 집단(jati)에 속하는 것은 다르마의 한 요소입니다. 또, 다르마가 일상 생활의 모든 측면을 관할하듯이, 자띠는 역사적으로 사회적 교류와 결혼을 결정하는 데에 사용되어왔습니다.
다른 종교 전통에 속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힌두교도들에게 “종교”는 삶의 한 부분으로 국한시켜 이해될 수 없습니다. “다르마”(dharma)라는 용어는 “종교”, “법”, “질서”, “의무” 또는 “윤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르마는 “종교”라고 묘사될 수 있는 특정한 행위들 어느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다르마는 모든 행동들의 중심에 있으며, 그것을 지탱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으로,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에서 행해지는 행위들에만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Dharma”라는 단어는 “지지하다, 지탱하다, 지니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말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서부터 양심의 내적 작용들까지, 세계 전체를 지탱하는 질서입니다.
다르마는 종교 의식의 행위를 포함합니다. 종교 의식을 올바르게 치르는 것은 개인들의 삶과 공통체의 삶을 질서 있게 만드는 데에 중요합니다. 『다르마샤쓰뜨라(Dharmashastra)라 불리는 텍스트들은 종교 의식의 다양한 종류들을 상세히 서술합니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축복하는 것, 아이의 교육과정을 시작하는 일, 부모의 장례 의식을 수행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르마입니다. 종교 의식은 단순히 중요한 변화의 시점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행동만이 아니고, 세상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방식으로 세상의 질서를 성립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행동입니다.
또한 다르마는 사회적 질서입니다. 인도에서 다르마는 전통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지위, 카스트(varna) 또는 출생 집단(jati)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의 의무를 포함합니다. 창조에 대한 찬가인 『릭베다』 X.90에서 네 개의 바르나(varna)는 그로부터 우주가 생겨난 신적인 존재를 이루는 몸의 각 부분들에서 기원합니다. “그의 머리에서 사제와 학자들(brahmin)들이 생겨나고, 그의 팔에서 왕과 전사들(kshatriya)이 생겨나고, 그의 허벅지에서는 농부와 상인(vaishay)이 생겨나며, 그의 발에서는 노예와 노동자들(shudra)이 생겨났다.” 사회의 위계질서와 계층은 이렇게 우주의 청사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카스트들 간의 상호의존성도 인정되었는데, 왜냐하면 카스트들은 완전한 유기체인 몸의 부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르마는 각각의 카스트에게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의무, 직업, 심지어는 도덕적 책무도 브라흐만 사제와 왕에게 있어서 각기 다릅니다. 다르마는 여성과 남성에게도 서로 다르고, 젊은이와 연장자들에게도 서로 다릅니다. 『바가받기따』에서 끄리스나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다르마가 잘 수행된 다른이의 다르마보다 낫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르마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이라기보다는 상당히 맥락에 의존해 있는 정해지는 것입니다.
힌두교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데에 있어서 네 개의 일반적 카스트보다는 자띠, 즉 “출생 집단”이라 불리는 수천 개의 하위 카스트들이 오랫동안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자띠는 사람의 직업을 결정하고, 어떤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결혼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자띠의 위계질서는 의례적(ritual)인 “순수함”과 “불결함”의 잣대로 결정됩니다. 브라흐만은 위계질서의 맨 꼭대기에 있으며, 가죽, 세탁물, 쓰레기와 같은 의례적으로 불결한 것들을 다루는 “불가촉천민”은 맨 아래에 있습니다.
이 사회적 위계질서는 수백 년 동안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힌두교 성자들과 시인들, 반군, 개혁 운동가들은 카스트 제도에 이의를 제기해왔습니다. 영혼은 카스트를 가지고 있지 않고, 신은 카스트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의 역동적인 완강함은 너무 강해서 오직 도시화, 현대적 일터와 자유시장의 강력한 힘만이 그 견고함을 흔들 수 있었습니다. 이민 역시 카스트의 정체성을 약화시켰고, 미국의 많은 힌두교도들은 미국의 맥락에서 카스트에 대한 의식이 사라질 것이라 예견하고 있습니다.
힌두교 사원들은 신들의 형상(murti)를 모시고 있습니다. 사원들은 일상적인 예배, 축제, 순례, 그리고 신의 형상들을 보기(darshan) 위해 사용됩니다. 언덕 꼭대기나 “띠르타”(tirtha, 교차점 혹은 여울목)라고 불리는 강과 같은 신성한 장소들은 힌두교도들이 순례를 가는 장소들입니다.
힌두교도들은 오랫동안 길가의 사당들, 우거진 나무 아래나 물웅덩이 옆에서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약 4세기 경에 그들은 영구적이고 웅장한 석조 사원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원들은 정확한 수학적 계산에 따른 크기와 비율에 따라 지상에 사는 신의 상징적 거처가 될 수 있도록 세워졌습니다. 사원이 헌납되는 대상이 되는 신의 형상은 사원의 중심부에 “자궁의 방”(garbha griha)이라 불리는 더 작은 성소 안에 모셔졌습니다.
물론 힌두교도들은 신은 마치 태양의 빛처럼 도처에 존재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은 지상에 놓여있는 종이 한 조각에 불을 붙이지 못합니다. 오직 렌즈가 태양의 힘을 모으는 데에 사용되고 그 힘이 굴절될 때에만 종이에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원들과 신의 형상들은 신의 존재를 집중시키고 집약합니다. 신들을 구현하는 데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종교 의식에 연관된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은 전문적인 텍스트, 즉 샤스트라(shastra)들을 사용합니다.
사원은 신들의 형상인 무르띠를 하나 혹은 여러 개 모시고 있습니다. 마치 옹기장이가 진흙으로 벽돌, 토기, 항아리, 접시를 만들 때 진흙이 각각의 여러 이름과 형상으로 만들어지듯이, 신은 많은 형상으로 표현됩니다. 이 형상들 중 몇몇은 일시적인 것들인데, 예를 들자면 석고로 된 가네샤의 작은 형상이나 다색으로 그린 비쉬누의 그림과 같은 것들입니다. 신도들은 우선 신이 그 형상에 자리 잡도록 초대하고, 제사 의식의 마지막에는 그 신이 다시 떠나도록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원에는 봉헌 의식을 통해 세워진, 더 영원한 형상들이 있습니다. “숨을 불어넣는” 의식을 통해 형상은 신의 숨결로 가득하고, “눈을 뜨게 하는” 의식을 통해, 눈이 종교 의례 상으로 열리게 되어 신의 강력한 눈빛을 내뿜습니다. 이러한 신의 형상들은 아침, 정오, 저녁에 하는 하루의 제례 의식에서 경배됩니다.
힌두교도들은 매일 하는 기도나 주일 모임, 기도와 가르침, 대형 축제와 순례 때문에 사원에 갑니다. 그러나 힌두교 예배는 단지 기도, 찬송, 봉헌의 의식이 아니라 신의 형상이라는 렌즈를 통해 신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이런 식으로 신을 보는 것이 다르샨(darshan)인데, 신의 형상을 “보는 것”과 신에게 “보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힌두교도들은 종종 다르샨을 위해 먼 곳에 있는 사원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인도에서 순례자들이 찾는 커다란 사원들 중 몇 개는 언덕 꼭대기나 성스러운 강의 원류 부분에, 그리고 성스러운 강들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성스러운 장소들은 “티르타”(tirtha)라 부르는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성스러운 “교차점” 또는 “여울”을 뜻합니다. 힌두교도들에게 인도의 풍경이란 영적인 여울로 덮인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미국에서 힌두교도들은 인도의 유명한 순례 사원들을 본떠 똑같은 형상으로 사원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힌두교는 전 세계에 걸쳐 살아 있고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트리니닫 토바고 공화국, 모리셔스, 호주,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에 힌두교도들이 살고 있습니다.
힌두교는 인도와 거의 동일시되는데, 인도에는 세계의 힌두교도들의 95퍼센트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힌두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이 존재합니다. 5, 6세기에 남인도인들이 무역인과 상인으로 동남아시아로 갔고, 그들은 현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알려진 나라들에서 수 세기동안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태평양의 피지와 아프리카 동부 해안가에 있는 모리셔스에도 강한 힌두 전통들이 존재합니다. 19세기에는 힌두교도들은 남아프리카에 계약 노동자로 유입되었습니다. 사실 젊은 시절의 간디(M.K. Gandhi)도 인도로 돌아가 인도의 해방 운동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남아프리카의 인도인 공동체에서 20년 동안 살고 일했었습니다.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간 힌두들 역시 계약 노동자들이었고, 그들은 19세기에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 섬들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이주가 많아짐에 따라 영국에도 힌두교 공동체가 있는데, 주로 레스터, 런던, 버밍엄에 많이 분포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힌두교 공동체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피츠버그, 뉴욕, 로스앤젤러스, 시카고, 보스톤, 내쉬빌 그리고 다른 많은 도시들에 인상적인 힌두교 사원을 지었습니다. 전지구적 교류와 인식이 커짐에 따라, 힌두들은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 맞추어 그들의 전통을 실천하고,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힌두교 전통은 인도 안의 다양한 지역에 걸쳐 존재하는 하랍파(Harappa) 문명, 아리안(Aryan) 문명, 드라비다(Dravidian) 문명과 여러 부족 문화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힌두교”라 불리게 된 전통은 종교 생활의 다양한 색조와 결을 지닌 다채로운 직물과 같은 문명입니다. 힌두교 전통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형상의 신을 숭배하는 여러 민족의 종교 문화로 짜여져 있습니다.
남아시아에서 제일 오래된 문화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대략 기원전 2500년부터 1500년까지 천 년 동안 번성한 인더스 문명입니다. 정교하게 계획된 도시 모헨조다로와 하랍파의 유적은 한때 널리 퍼져있던 문명의 종교의식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으로 된 종교의식용 물웅덩이는 사원이 가지고 있던 물 수조와 목욕 의식이 있었음을 시사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힌두교 전통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리안 민족들은 약 기원전 1500년에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의 북서쪽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갠지스강의 넓은 평원에 정착했습니다. 아리안 민족이 남긴 유산은 언어인 산스크리트와 “베다”(Veda)라 불리는 막대한 양의 종교적 찬가와 시들입니다. 베다 종교의식은 불의 제단을 중심으로 하여 행해졌는데, 이는 안녕을 기원하며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과 연관된 것입니다. 아리안 민족의 네 개의 계급인 사제, 왕, 상인, 노예 계급은 인도 카스트 제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리안 민족은 하랍파 문화나 드라비다 문화로 상정되는 고대 인도의 토착 문명과 남인도의 언어들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리안 문화는 인도의 많은 부족 전통들을 전멸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아리안 문화와 드라비다 문화와 인도의 부족 문화는 “힌두교 전통”이라 불리는 역동적 과정을 만들어냈습니다. 전통을 재구성하는 과정은 수 세기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이 과정은 현재 인도의 도시에 사는 힌두교도들이 산업과 도시 문화의 맥락에서 전통을 재탄생시키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힌두교 전통은 각기 고유한 언어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인도의 여러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제일 널리 분포되어 사용되는 언어들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것들인데, 이 언어들은 아리안들이 사용한 고전 산스크리트와 연관된 것들입니다. 이것에서 파생된 현대어들로는 북동지역의 벵골어, 북서지역의 뻔잡어, 동쪽 연안의 오리야어, 서쪽 연안의 마라티어와 구자라트어, 그리고 인도 북부와 중부에서 사용되는 힌디어가 있습니다. 이 언어들은 남인도에서 사용되는 텔루구어, 타밀어, 칸나다어, 말라얄람어와 같은 드라비다어족의 언어보다는 언어적으로 사촌격이라 할 수 있는 영어와 구조적으로 더 비슷합니다.
이러한 지역어들로 말하고, 노래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힌두교 전통이라는 직물에 자신들 고유의 색채와 질감을 입혔습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는 힌두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함에 따라 이 지역의 종교 전통들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힌두”라는 용어는 힌두 전통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특히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 인더스강/신두(Sindhu)강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힌두교도들은 각기 다른 신들을 숭배하며, 복잡한 구조의 사회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힌두교도 사이에서 공유되는 종교적 믿음은 브라흐만, 즉 신들이 우주에 다양한 형태로 항상 존재한다는 것, 자아 실현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현생을 거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행동은 내세에서의 영혼의 여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힌두”는 원래는 인도어가 아니었습니다. 이 용어는 처음에는 그리스인들이, 그리고 이어서 페르시아인들이 인더스강, 즉 신두강 건너편의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힌두교”(Hinduism)라는 용어는 19세기가 되어서야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용어 역시 처음에는 힌두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힌두교도들의 특징(-ism)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용어는 힌두교도가 무슬림들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힌두교는 힌두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과 관습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양상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하는 게 맞다. 힌두교 전통은 종교적 믿음의 집합체라기보다는 정신(ethos)이며, 복잡한 사회 체계이자 정교하게 표현된 종교적 감수성입니다.
현재 인도와 인도 외의 지역에서 스스로를 “힌두”라 부르는 사람들은 많은 형태의 종교적 관행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라나시(Banaras)의 브라흐만들, 보스턴의 사업가들, 히말라야의 고행자와 요기들, 펜실베니아의 스와미(힌두교 출가고행자)들, 인도 중부의 마을 사람들, 그리고 시카고 교외의 거주자들, 이들은 모두 각자의 고유한 종교 관행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슈누(Vishnu) 신을 섬기는 바이슈나바(Vaishnava)들이 있고, 쉬바(Shiva)를 섬기는 샤이바(Shaiva)들이 있으며, 샥티(Shakti) 여신을 섬기는 샥타(Shakta)들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들 중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른 종교 관행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가끔씩 충돌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이들은 모두 서로 서로의 사원에서 각자의 신을 섬긴다. 사실, 최근에 세워진 사원 중 몇 곳에서는, 그것이 뉴델리에 있든 내쉬빌(Nashville)에 있든 상관없이, 한 지붕 아래에 모든 힌두 신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종파적 다양성에서 불구하고 힌두교도들이 공통적으로 -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전제 사항들이 있습니다. 이 사항들은 우주가 신(the Divine)―종종 브라흐만(Brahman)이라고 설명되는 실재(reality)―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신은 많은 이름과 형상으로 알려진다는 것, 이 실재는 인간의 영혼에 깊고 가득히 들어차 있다는 것, 자아실현으로 향한 영혼의 여정은 한 번의 인생에서 완성되지 않고 여러 번의 생에 거쳐서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한 생과 뒤따르는 생을 통한 영혼의 여정은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인, 그리고 많은(The One and The Many)”은 인도의 힌두교 철학뿐만 아니라 인도와 서양의 교류를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힌두교 전통은 인도의 다른 종교 전통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반대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들이 갖고 있는 다양성은 끊임없는 상호관계의 역동적인 양상을 빚어냅니다.
오랜 시간 동안 힌두교 전통은 다른 종교 전통들과 같은 공간에서 공존해왔습니다. 인도는 불교가 발생한 곳으로, 불교는 붓다가 생존했던 기원전 6세기부터 약 11세기경까지 1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도에서 번창했습니다. 불교와 대략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자이나교는 지금도 인도에서 번창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 또한 고대부터 인도에 뿌리내리고 있었는데,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시조를 기원후 1세기 사도 성 토마스라 여깁니다. 유대인들은 인도 남부의 케랄라(Kerala) 주와 뭄바이(Mumbai)의 상인들이 만든 오래된 공동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르씨(Parsi)들은 현재의 이란에서 시작된 조로아스터교의 후손들입니다.
11세기에 무슬림들은 인도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고유한 인도-무슬림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1947년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이전에는 인도인의 약 3분의 1이 무슬림이었고, 지금도 인구의 약 13퍼센트가 무슬림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씨크(Sikh)교는 16세기에 인도 북서부 지역에서 구루 나낙(Guru Nanak)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여 생동감 넘치고 독특한 종교 공동체로 발전했습니다. 17세기 후반에는 대영제국과 함께 개신교와 선교 운동이 인도에 들어왔습니다. 인도와 서구의 교역이 발전함에 따라, 지식과 종교 사상의 흐름이 양방향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일부 힌두교도들은 인도가 가지고 있는 다종교적 맥락 전체가 기본적으로 “힌두교” 전통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교리가 아닌 폭넓은 정신 또는 세계관에 의해 정의된 관용성 있는 문화적 환경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힌두교 세계관이 갈등이 아닌 조화의 세계관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러한 힌두교 환경은 많은 민족과 많은 전통들을 받아들여 왔고, 계속하여 궁극적 실재(Reality)의 완전한 하나임(integral oneness)과 같은 실재에 대한 수많은 종류의 인식 가능성을 인정해왔습니다. 무슬림, 씨크, 기독교 공동체들은 이 넓은 맥락의 “힌두교” 배경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해 오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이처럼 광범위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인, 그리고 많은”이라는 주제는 마치 끊임없이 전개되는 라가(raga: 인도 전통 음악의 선율 양식)처럼 수없이 많은 변주를 가진 음계와도 같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문화도 인간과 신의 ‘많음’(manyness)이라는 복합적인 이해의 틀을 가지고 발전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양성에 대한 힌두교의 해결책은 모든 것을 한데 녹여버리는 용광로 같은 방식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힌두교적 해결책은 차라리 개별적인 조각들이 패턴을 가진 전체 안으로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반복해서, 그리고 계속해서 들어가는 만화경(kaleidoscope)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양성은 유연하고 역동적인 상호 관계의 패턴 안에서 보존되고, 가치를 가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원주의가 힌두교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토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계관에서 ‘차이’는 ‘하나임’(oneness)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하나임’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전체는 차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전체를 구성하는 많은 부분들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직 하나이고 유일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다른 문화에서는 중요한 표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힌두교 인도는 오랫동안 많은 다양성의 의미에 대한 다른 기준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세기에 다원주의보다 더 좁게 정의되고 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힌두교 세계관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종종 “힌두 국수주의”(Hindu nationalism)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시각은 인도의 힌두교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용어로 정의하며, 외부인―대부분 무슬림들―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배제합니다. 이 세계관을 주창하는 정당들과 민병대들은 라마신의 출생지라 여겨지는 곳에 힌두 사원을 다시 짓거나 소를 도축하는 것과 소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는 것과 같은 문제를 계속 이슈화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이 국가와 지방 선거와 관련된 정치 구도 안으로 들어가면서 많은 인도인에게 “힌두”라는 개념의 의미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힌두교 전통은 신의 여러 형상과 표상들을 인정하며, 이 모든 것들은 최고신 브라흐만과의 관계를 통해 이해됩니다. 예를 들어, 한 개의 사원에 쉬바신이나 비스누신에게 바쳐진 중앙 성소(聖所)가 있고 그 주변에 다른 신들을 모시는 사당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부인들에게 있어서 힌두교의 다양성을 제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힌두교에는 소문자 ‘g’로 시작하는 ‘신’(god)이 적합한 영역이 있고, 대문자 ‘G’로 시작하는 ‘신’(God), 즉 모든 것을 아우르는 최고의 신이 적합한 영역이 있습니다. 힌두교 사원이라면 어디에서나 중심이 되는 신의 형상은 쉬바신이나 비슈누신의 형상이지만, 거기에 더해서 다른 신들을 나타내는 형상들, 즉 무르티(murti)들이 많이 있습니다. 쉬바신의 사원을 예로 들자면, 중앙의 성소에는 돌로 된 기둥인 쉬바 링가(linga)가있고, 그곳에는 꽃, 과자, 곡물, 물과 같은 공양물들이 놓여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앙 성소를 둘러싸고, 다양한 신들의 사당이 여러 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쉬바신의 한 쪽 옆에는 쉬바신의 아들인,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스칸다”(Skanda) 또는 “카르티케야”(Karttikey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쉬바신의 다른 아들인 무루간(Murugan)의 형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라마(Rama)와 그의 아내 씨따(Sita)에게 바쳐진 사당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스러운 물로 가득 찬 항아리를 들고 있는 갠지스 강의 형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피리를 불며 사랑의 곡조로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는 크리슈나(Krishna)의 형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힌두교 전통은 가지각색의 다양한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각각의 신은 많은 이름과 형상을 가집니다. 그러나 힌두교도라면 누구나 많은 신들은 대문자 “G”로 시작하는 “신”(God)의 유일자라는 사실(oneness)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옛날의 현자들은 모든 개인의 이름들을 초월하는 실재(Reality)를 묘사할 때 “브라흐만”(Brahma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브라흐만은, 비록 “이름과 형상”(추상적 대상과 물리적 대상, 名色)들이 다를지라도, 하나입니다. 『릭베다』(Rig Veda)는 “실재는 하나다. 현자들은 그것을 여러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라고 단언합니다. 이 믿음은 힌두교의 전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주장되었습니다. 현재에도,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Nashville)에 있는 가네샤 사원에 있는 형상들에 대해 한 젊은 힌두교 여성은 “이 모든 무르티들은 하나의 최고신의 다른 모습들로, 이것들은 각각 고유한 성격과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아그니와 불의 제단은 힌두교 전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가정의 의식뿐만 아니라 신전을 봉헌하는 의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베다는 역사적으로 브라흐만 사제들이 불을 붙이고 다루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아리아인들의 첫 번째 제단은 불의 의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그니, 즉 '불'은 베다 찬가(Vedic hymns)에서 찬양되었고 기도와 제물을 천상 제일 높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 지상에서 피워졌습니다. 한 가정의 중요한 의식들―매일매일 하는 의식, 결혼 의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례 의식―은 불의 제단에서 행해졌습니다. 불의 제단을 놓고 의식에 따라 불을 붙이는 것은 브라흐만 사제들의 몫입니다. 고대 인도에서 “야즈냐”(yajna)라 불리는 성대한 의식은 왕의 후원을 받았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해져서 종종 여러 개의 불을 사용하고 많은 전문 사제들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베다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리아인들의 세계에는 악니와 다른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가 있었지만, 사원도, 신들의 무르티들도 없었습니다. 베다 시대에 신들은 오직 말로써만 표현되었습니다. 아그니는 불꽃을 내는 머리카락과 금으로 된 턱을 지닌 신들의 전령으로 아그니를 통해 제물이 지상에서 하늘로 전해지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아주 복잡하게 구성된 불의 제단조차도 영원하게 남아있지는 않았으며, 야즈냐샬라(yajnashala)라 불리는 임시로 의식을 위해 마련된 제단에 세워졌습니다. 예를 들어, 아그니차야나(agnicayana)에는 커다란 새의 형상을 한 벽돌로 만들어진 제단이 만들어졌었는데, 의식이 끝났을 때 그 장소는 태워지고 버려졌습니다.
3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불의 제단은 가정 내의 의식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거나, 아이가 처음으로 머리를 자를 때나, 남자아이가 성스러운 실을 받을 때나, 아니면 가족의 구성원이 결혼을 할 때, 불의 제단은 그 의식의 중심에 있습니다. 인도 남부나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사원이 만들어질 때, 불의 제단은 여전히 사원을 헌당하는 의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깜박거리고, 이동할 수 있으며,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는 불은 신성(divine)의 첫 번째 아이콘이자 제단입니다.
베다(“지혜”라는 뜻)는 핵심적인 종교 텍스트들입니다. 베다는 찬가, 철학적 가르침과 지침들로 이루어진 네 개의 텍스트로 구성되며 소리 내어 암송됩니다. 베다를 구성하는 네 개의 텍스트는 곡조(chant)와 선율인 『싸마 베다』(Sama Veda), 다양한 신에게 바쳐지는 찬가들인 『리그 베다』(Rig Veda), 종교 의식 지침서인 『야유르 베다』(Yajur Veda), 널리 알려진 주문들과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아타르바 베다』(Atharva Veda)입니다. 『마하바라따』(Mahabharata) 서사시와 같은 다른 유명한 종교 텍스트들은 종종 “다섯 번째 베다”라 불리기도 합니다.
베다는 힌두교 전통과 관련된 제일 오래된 문헌으로 고대 아리아인들이 남긴 유산입니다. “베다”라는 단어는 “지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독자적인 의미와 일반적인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의미에서 “베다”는 고대 현자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고대 찬가와 곡조 모음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슈루티”(shruti)라 불리는데, 문자 그대로 “들려진 것”을 뜻합니다. 베다는 기록된 텍스트를 읽는 방식이 아니라, 운율에 따라 운문들이 암송되는 방식으로 전승되었습니다. 베다 전통에 속하는 네 개의 텍스트들은 브라흐만 사제들이 대를 이어 완벽하게 암기하면서 전승되었습니다.
네 개의 베다 텍스트들은 다양한 신들에게 바쳐진 찬가들로 구성된 『리그 베다』, 곡조와 선율로 구성된 『사마 베다』, 종교 의식에 대한 지침들과 가르침으로 구성된 『야주르 베다』, 그리고 성가와 인기 있는 주문, 이야기들로 구성된 『아타르바 베다』입니다. 각각의 베다 텍스트에는 종교의식과 특히 관련되어 있는 『브라흐마나』(Brahmana)와 우주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철학적 이해를 탐구하는 『우파니샤드』(Upanishad)과 같은 텍스트들이 각 전통에 맞게 첨부되어 있습니다. 우빠니샫과 그에 대한 해석들은 가끔씩 “베단타”(Vedanta)라 불리는데, 베단따는 문자 그대로 “베다의 끝”을 뜻합니다.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베다”는 힌두교 전통 전체의 지혜와 권위를 의미합니다. 많은 대중적인 종교 텍스트들이 지혜와 권위를 지녔다고 주장하는 방법이 그 텍스트들을 “제5의 베다”라 부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사시 『마하바라타』는 가끔 “다섯 번째 베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가장 대중적인 힌두교 문헌의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즉 “신의 노래”는 『마하바라타』의 서사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로 씌여진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도 지혜와 권위의 원천이라 간주되며, 『라마야나』를 힌디어로 번역한 『람차리트마나스』(Ramcharitmanas) 역시 그렇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도 남부에서는 “타밀 베다”라 불리는, 9세기에 만들어진 알바르(Alvar)들의 헌신의 시 모음집인 『디비야 프라반담』(Divya Prabandham)을 고대 산스크리트 베다와 마찬가지로 숭배합니다.
『우파니샤드』(Upanishad)는 베다의 “지혜를 담은 텍스트”(wisdom literature)로서 우주의 원천과 본질에 대한 가르침들입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형식을 취하면서, 우파니샤드들은 아트만(인간의 궁극적 자아)이 동시에 브라흐만(초월적 존재)이라는 실재를 지적합니다.
대부분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우파니샤드』(Upanishad)는 베다의 “지혜를 담은 텍스트”입니다. 대부분의 『우프니샤드』 텍스트들은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고, 스승들과 제자들은 불의 제단을 사용한 제사의식에서 그 의식의 더 깊고, 더 내적인 의미를 질문하는 것으로 옮아갑니다. 그들은 우주의 기원과 토대, 그리고 우주를 지탱하는 것들에 대한 사변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쉬베타쉬바라타 우파니샤드』(Svetasvatara Upanishad)에 등장하는 탐구자는 “원인(cause)은 무엇인가? 브라흐만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부터 태어났는가? 우리는 무엇에 의해 사는가? 우리는 무엇 위에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들을 던집니다.
『우파니샤드』의 스승들은 깊은 자각의 길을 가리킵니다: 궁극적 자아 또는 생명의 숨인 아트만은 또한 우주 전체에 내재되어 있는 궁극의 실재인 브라흐만입니다. 실재는 초월적이지만 또한 내면적입니다. 『우파니샤드』의 스승들은 예와 비유를 통해 가르칩니다. 한 스승이 그의 제자에게 무화과를 가지고 오라고 시킨다.
스승이 말하기를
“그것을 열어라. 너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
“아주 작은 씨 몇 개가 보입니다, 스승님.”
“그 작은 씨 한 개를 열어보아라. 너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스승님.”
“진실로 네가 볼 수 없는 그것으로부터 무화과 나무 전체가 자라난다.
그것이 실재이다. 그것이 아트만이다. 그것이 그대이다.”
브라흐만은 우주 전체의 근본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의 미세한 본질인 생명력입니다. 사람은 무화과 작은 씨앗의 내부를 볼 수 없듯이 브라흐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치 씨앗이 무화과나무를 만들어내듯이 브라흐만은 그곳에 존재하면서 모두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것이 무화과 씨앗의 안에 있든 사람의 안에 있든 간에, 그것은 생명의 동일한 원천입니다.
다른 스승들은 브라흐만을 설명하는 데에 또 다른 교육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브라흐만이 우주에 내재한다고 보기보다는 브라흐만이 전적으로 초월적이며, 인간의 용어로는 브라흐만이 ‘무엇이 아닌지’를 말하는 것으로만 브라흐만을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거칠지 않고, 섬세하지 않고, 짧지 않고, 길지 않고, 냄새가 없으며, 맛이 없고, 눈이 없고, 귀가 없고, 목소리가 없고, 이름이 없고, 나이가 들지 않으며, 죽지 않으며, 크기가 없고, 안쪽이 없고, 바깥쪽이 없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세상에 존재하는 범주 너머로 확장시켜 인간이 만든 범주들에 담을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역사적으로 “베단타”는 『우빠니샫』이나 또는 “베다의 끝에 있는” 지혜를 가리킵니다. 베단타는 스승(guru)의 인도 하에 변혁적인 지식(jnana)을 전수할 것을 요구하는 철학 체계이기도 합니다.
“베단타”(Vedanta)라는 용어는, 우선 『우파니샤드』 텍스트들, 즉 “베다의 끝”에 있는 가르침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들은 인도의 철학적 사유 전통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철학 체계는 여럿으로 나뉘는데, 이것들은 다르샤나(darshana), 즉 “관점”이라 불립니다. 이것들 중의 하나로 아마 제일 영향력 있는 것이 “베단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베단타를 주창한 유명한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은 샹카라(Shankara, 약 기원후 8세기)입니다. 『우파니샤드』는 “무엇이 이 모든 것의 근본인가?”, “무엇이 영혼의 본질인가?”, “이 영혼과 저 근본의 관계는 무엇인가?” 라고 묻습니다. 샹카라는 브라흐만-근본적인 실재-이 아트란-영혼-과 같다는, 혹은 최소한 서로 다른 둘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그는 현상적인 우주는, 마치 파도가 바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실재의 하나임(the oneness)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단타에 따르자면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에 대한 참된 ‘대답’들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깊은 통찰력을 요구합니다. 이 통찰을 “즈냐나”(jnana, 인식)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의식을 브라흐만에게로 돌리는 변혁적인 지혜로, 깨우침을 가져오고 변화를 일으키는 지혜입니다. 이것만이 “목샤”(moksha), 즉 “해방”(liberation)이라 불리는, 영적 자유에 이를 수 있는 길입니다.
지혜는 혼자서는 얻기 어렵습니다. 영적인 길을 따라 이끌어 주는 사람은 스승, 구루(guru)입니다.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은 누구나 사서 볼 수 있도록 출간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며, 『우파니샤드』는 도서관이나 집의 거실에서 읽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가르침들은 오직 진지한 영적 훈육을 받는 삶의 맥락에서만, 오직 제대로 준비된 사람들에 의해서만, 그리고 오직 자격이 있는 스승과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프라슈나 우파니샤드』(Prashna Upanishad)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구루를 찾아간 여섯 명의 열정적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구루는 학생들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자신과 함께 1년 동안 훈육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그 학생들이 가르칠만한 자질을 지녔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구루는 지혜와 실천에 관한 힌두교 전통을 전승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구루는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자격을 인정받는데, 이는 구루의 가르침 계보를 의미합니다. 구루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통에 따르는 영적 실천의 삶으로의 입문의식, 즉 딕샤(diksha)를 치뤄 줍니다. 만트라(mantra)를 주는 것도 입문 의식의 하나가 될 수 있는데, 만뜨라는 명상 수행에서 사용되며 영적 수행의 지표가 되는 이름이나 문구나 단어입니다. 구루는 영적 가르침에 더해 제자의 건강, 가족, 결혼 등의 문제에 대한 조언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영적 지도자로서의 구루는 “스와미”(swami)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베단타의 가르침은 19세기 후반에 스와미 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에 의해 서구로 전해졌습니다. 그는 현재 미국의 여러 도시들에 있는 베단타 협회를 처음으로 설립했습니다. 친마야 선교회(Chinmaya Mission)의 스와미 친마야난다(Swami Chinmayananda)와 스와미 테조마야난다(Swami Tejomayananda), 펜실베니아에 있는 아르샤 비디야 구루쿨람(Arsha Vidya Gurukulam)의 스와미 디야난다(Swami Dayananda)와 스와미 비디타트마난다(Swami Viditatmanada)와 같은 이들은 1970년대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활동한 베단따 전통의 유명한 스승들입니다.
박티(Bhakti)―신에게의 헌신―은 베단따에 대한 또다른 해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해석은 영혼과 신이 하나가 아니지만, 표현할 수도 없고 불가사의하게도 하나이자 동시에 구별되는 것이어서 사랑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인 박티는 노래, 찬가, 제물, 춤, 연극 등을 통해 표현됩니다.
“박티”(Bhakti)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들이 지혜를 추구하는 것에 고취되듯이,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길로서의 헌신에 보다 더 자연스럽게 끌립니다. “나누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뿌리에서 만들어진 단어인 “박티”는 신을 향한 사랑에 내재해 있는 “나눔”의 의미를 가집니다. 신자들만 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 신자들을 사랑한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박티는 다양한 방식―노래, 찬가, 사원 참배, 춤, 연극 등―으로 표현됩니다.
예를 들어, 크리슈나에 대한 사랑은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크리슈나를 찬양하라!”와 같은 잘 알려진 찬가, 즉 바잔(bhajan)들로 표현된니다.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서 크리스나는 신을 경배하는 데에 값비싼 불의 제단 의식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나는 나에게 나뭇잎 한 개, 꽃 한 송이, 과일 한 개, 또는 약간의 물이라도 신심을 가지고 바치는 사람들의 것들을 받는다.”라고 크리슈나는 말합니다. 온 세계에서 매일 사원이나 집에서 힌두교 신자들은 이러한 간단한 공양물들을 크리슈나와 다른 신들에게 바칩니다. 그들은 과일, 꽃, 물, 과자들을 바치고, 이 선물들을 신의 프라샤드(prashad)인 은총과 은혜로 다시 돌려받습니다.
이러한 헌신은 지역 언어들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라마차리트마나스』(Ramcharitmanas)에 나오는 라마신에 대한 찬양을 북인도에서는 툴시다스(Tulsidas)의 힌디어로 노래합니다. 두르가(Durga) 여신은 람프라사드 센(Ramprasad Sen)의 벵갈어로 찬양되었습니다. 남인도에서는 성인이자 시인으로 불리는 나얀마르(Nayanmar)가 쉬바신에 대한 찬양을 노래하였고, 알바르(Alvar)들은 비스누신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보다 최근에 스와미나라얀 운동(Swaminarayan movement)과 같은 단체들은 쓰와미나라얀에 대한 헌신에 촛점을 두고 있습니다.
춤 역시 헌신의 한 형태입니다. 인도와 미국의 크리슈나 신자들은 종종 키르탄(kirtan)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인도의 고전무용 역시 헌신의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쉬바는 나타라자(Nataraja), 즉 춤의 신이며 때때로 힘있고 균형잡힌 아름다운 무용수의 자세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쉬바의 춤에서 쉬바는 우주를 창조하고 또 다양한 창조물을 다시 자기 안으로 빨아들여 우주를 파괴합니다. 인도무용을 시작할 때, 무용수는 여러 신들 중 한 신에게 기도를 하며 그 신을 찬양하기도 합니다. 무용수는 몸짓과 움직임으로 끄리스나의 형상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이는 관객들이 헌신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는 무용수가 크리슈나의 사랑을 받는 여자가 되어 그녀가 크리슈나에 대해 가지는 갈망을 관객들에게 맛보게 하기도 합니다.
카르마(Karma, 문자 그대로 “행위”)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자국”, 다시 말해서 결과를 남깁니다. 『바가받기따』와 마하뜨마 간디가 가르치는 카르마의 길은 힌두교도들이 세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도 무욕의 삶을 살 것을 가르칩니다.
“카르마”(Karma)는 단순히 “행위”를 의미합니다. 모든 행위는 결과를 낳습니다. 선을 위한 것이거나 악을 위한 것이거나 각각의 행위는 세상에서, 그리고 행위자의 내면에서 영향을 끼칩니다. 카르마는 종종 서구에서 대중적으로 전생에서 물려받은 “과거 행동의 결과”, 즉, 사건들에 영향을 끼치는 불가사의한 상황들을 의미합니다. “이건 내 카르마야” 또는 “이것은 나쁜 카르마야”와 같은 외침은 종종 운명론이나 행운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카르마는 인간의 행동과 그것의 결과 둘 다를 의미하고, 이 결과는 세상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남는 결과입니다. 행위는 진실로 결과를 수반하고 “카르마의 법칙”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것으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행위는 자국을 남깁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행위의 결과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욕(renunciation)의 정신으로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활동적인 사람들에게, 행위의 길은 영적인 길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기질은 내적인 자아실현(jnana)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헌신(bhakti)이 아닌 활발한 활동을 지향합니다. 행위의 길이란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가진 관여입니다. 그러나 『바가받기따』의 가르침이 분명히 하고 있듯이, 카르마의 길은 사심 없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집착하거나 심지어는 그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도 말고 훌륭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열정적으로 행하면서도 그 행동의 결과에 개인적이거나 자아 중심적인 집착을 가지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 이것이 행동의 길이 제시하는 과제입니다. 『바가받기따』에서 크리슈나는 전사 아르주나(Arjuna)에게 “미덕의 전쟁터”에서 영웅의 심장이 아닌 출가자의 심장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라고 충고합니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도 종종 자신의 길을 행위의 길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일과 전적으로 관계되어 있으면서도 무욕의 삶을 사는 것, 나아가서는 고행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르마는 사회적 질서와 의무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이러한 질서와 의무는 우주 전체를 지탱합니다. 한 사람이 카스트(varna)나 출생 집단(jati)에 속하는 것은 다르마의 한 요소입니다. 또, 다르마가 일상 생활의 모든 측면을 관할하듯이, 자띠는 역사적으로 사회적 교류와 결혼을 결정하는 데에 사용되어왔습니다.
다른 종교 전통에 속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힌두교도들에게 “종교”는 삶의 한 부분으로 국한시켜 이해될 수 없습니다. “다르마”(dharma)라는 용어는 “종교”, “법”, “질서”, “의무” 또는 “윤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르마는 “종교”라고 묘사될 수 있는 특정한 행위들 어느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다르마는 모든 행동들의 중심에 있으며, 그것을 지탱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으로,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에서 행해지는 행위들에만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Dharma”라는 단어는 “지지하다, 지탱하다, 지니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말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서부터 양심의 내적 작용들까지, 세계 전체를 지탱하는 질서입니다.
다르마는 종교 의식의 행위를 포함합니다. 종교 의식을 올바르게 치르는 것은 개인들의 삶과 공통체의 삶을 질서 있게 만드는 데에 중요합니다. 『다르마샤쓰뜨라(Dharmashastra)라 불리는 텍스트들은 종교 의식의 다양한 종류들을 상세히 서술합니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축복하는 것, 아이의 교육과정을 시작하는 일, 부모의 장례 의식을 수행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르마입니다. 종교 의식은 단순히 중요한 변화의 시점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행동만이 아니고, 세상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방식으로 세상의 질서를 성립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행동입니다.
또한 다르마는 사회적 질서입니다. 인도에서 다르마는 전통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지위, 카스트(varna) 또는 출생 집단(jati)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의 의무를 포함합니다. 창조에 대한 찬가인 『릭베다』 X.90에서 네 개의 바르나(varna)는 그로부터 우주가 생겨난 신적인 존재를 이루는 몸의 각 부분들에서 기원합니다. “그의 머리에서 사제와 학자들(brahmin)들이 생겨나고, 그의 팔에서 왕과 전사들(kshatriya)이 생겨나고, 그의 허벅지에서는 농부와 상인(vaishay)이 생겨나며, 그의 발에서는 노예와 노동자들(shudra)이 생겨났다.” 사회의 위계질서와 계층은 이렇게 우주의 청사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카스트들 간의 상호의존성도 인정되었는데, 왜냐하면 카스트들은 완전한 유기체인 몸의 부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르마는 각각의 카스트에게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의무, 직업, 심지어는 도덕적 책무도 브라흐만 사제와 왕에게 있어서 각기 다릅니다. 다르마는 여성과 남성에게도 서로 다르고, 젊은이와 연장자들에게도 서로 다릅니다. 『바가받기따』에서 끄리스나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다르마가 잘 수행된 다른이의 다르마보다 낫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르마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이라기보다는 상당히 맥락에 의존해 있는 정해지는 것입니다.
힌두교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데에 있어서 네 개의 일반적 카스트보다는 자띠, 즉 “출생 집단”이라 불리는 수천 개의 하위 카스트들이 오랫동안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자띠는 사람의 직업을 결정하고, 어떤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결혼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자띠의 위계질서는 의례적(ritual)인 “순수함”과 “불결함”의 잣대로 결정됩니다. 브라흐만은 위계질서의 맨 꼭대기에 있으며, 가죽, 세탁물, 쓰레기와 같은 의례적으로 불결한 것들을 다루는 “불가촉천민”은 맨 아래에 있습니다.
이 사회적 위계질서는 수백 년 동안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힌두교 성자들과 시인들, 반군, 개혁 운동가들은 카스트 제도에 이의를 제기해왔습니다. 영혼은 카스트를 가지고 있지 않고, 신은 카스트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의 역동적인 완강함은 너무 강해서 오직 도시화, 현대적 일터와 자유시장의 강력한 힘만이 그 견고함을 흔들 수 있었습니다. 이민 역시 카스트의 정체성을 약화시켰고, 미국의 많은 힌두교도들은 미국의 맥락에서 카스트에 대한 의식이 사라질 것이라 예견하고 있습니다.
힌두교 사원들은 신들의 형상(murti)를 모시고 있습니다. 사원들은 일상적인 예배, 축제, 순례, 그리고 신의 형상들을 보기(darshan) 위해 사용됩니다. 언덕 꼭대기나 “띠르타”(tirtha, 교차점 혹은 여울목)라고 불리는 강과 같은 신성한 장소들은 힌두교도들이 순례를 가는 장소들입니다.
힌두교도들은 오랫동안 길가의 사당들, 우거진 나무 아래나 물웅덩이 옆에서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약 4세기 경에 그들은 영구적이고 웅장한 석조 사원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원들은 정확한 수학적 계산에 따른 크기와 비율에 따라 지상에 사는 신의 상징적 거처가 될 수 있도록 세워졌습니다. 사원이 헌납되는 대상이 되는 신의 형상은 사원의 중심부에 “자궁의 방”(garbha griha)이라 불리는 더 작은 성소 안에 모셔졌습니다.
물론 힌두교도들은 신은 마치 태양의 빛처럼 도처에 존재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은 지상에 놓여있는 종이 한 조각에 불을 붙이지 못합니다. 오직 렌즈가 태양의 힘을 모으는 데에 사용되고 그 힘이 굴절될 때에만 종이에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원들과 신의 형상들은 신의 존재를 집중시키고 집약합니다. 신들을 구현하는 데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종교 의식에 연관된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은 전문적인 텍스트, 즉 샤스트라(shastra)들을 사용합니다.
사원은 신들의 형상인 무르띠를 하나 혹은 여러 개 모시고 있습니다. 마치 옹기장이가 진흙으로 벽돌, 토기, 항아리, 접시를 만들 때 진흙이 각각의 여러 이름과 형상으로 만들어지듯이, 신은 많은 형상으로 표현됩니다. 이 형상들 중 몇몇은 일시적인 것들인데, 예를 들자면 석고로 된 가네샤의 작은 형상이나 다색으로 그린 비쉬누의 그림과 같은 것들입니다. 신도들은 우선 신이 그 형상에 자리 잡도록 초대하고, 제사 의식의 마지막에는 그 신이 다시 떠나도록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원에는 봉헌 의식을 통해 세워진, 더 영원한 형상들이 있습니다. “숨을 불어넣는” 의식을 통해 형상은 신의 숨결로 가득하고, “눈을 뜨게 하는” 의식을 통해, 눈이 종교 의례 상으로 열리게 되어 신의 강력한 눈빛을 내뿜습니다. 이러한 신의 형상들은 아침, 정오, 저녁에 하는 하루의 제례 의식에서 경배됩니다.
힌두교도들은 매일 하는 기도나 주일 모임, 기도와 가르침, 대형 축제와 순례 때문에 사원에 갑니다. 그러나 힌두교 예배는 단지 기도, 찬송, 봉헌의 의식이 아니라 신의 형상이라는 렌즈를 통해 신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이런 식으로 신을 보는 것이 다르샨(darshan)인데, 신의 형상을 “보는 것”과 신에게 “보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힌두교도들은 종종 다르샨을 위해 먼 곳에 있는 사원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인도에서 순례자들이 찾는 커다란 사원들 중 몇 개는 언덕 꼭대기나 성스러운 강의 원류 부분에, 그리고 성스러운 강들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성스러운 장소들은 “티르타”(tirtha)라 부르는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성스러운 “교차점” 또는 “여울”을 뜻합니다. 힌두교도들에게 인도의 풍경이란 영적인 여울로 덮인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미국에서 힌두교도들은 인도의 유명한 순례 사원들을 본떠 똑같은 형상으로 사원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힌두교는 전 세계에 걸쳐 살아 있고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트리니닫 토바고 공화국, 모리셔스, 호주,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에 힌두교도들이 살고 있습니다.
힌두교는 인도와 거의 동일시되는데, 인도에는 세계의 힌두교도들의 95퍼센트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힌두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이 존재합니다. 5, 6세기에 남인도인들이 무역인과 상인으로 동남아시아로 갔고, 그들은 현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알려진 나라들에서 수 세기동안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태평양의 피지와 아프리카 동부 해안가에 있는 모리셔스에도 강한 힌두 전통들이 존재합니다. 19세기에는 힌두교도들은 남아프리카에 계약 노동자로 유입되었습니다. 사실 젊은 시절의 간디(M.K. Gandhi)도 인도로 돌아가 인도의 해방 운동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남아프리카의 인도인 공동체에서 20년 동안 살고 일했었습니다.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간 힌두들 역시 계약 노동자들이었고, 그들은 19세기에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 섬들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이주가 많아짐에 따라 영국에도 힌두교 공동체가 있는데, 주로 레스터, 런던, 버밍엄에 많이 분포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힌두교 공동체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피츠버그, 뉴욕, 로스앤젤러스, 시카고, 보스톤, 내쉬빌 그리고 다른 많은 도시들에 인상적인 힌두교 사원을 지었습니다. 전지구적 교류와 인식이 커짐에 따라, 힌두들은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 맞추어 그들의 전통을 실천하고,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