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행해지는 힌두교 의식은 아주 다양하지만, 가정의 제단은 미국의 힌두교 가정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가정 제단은 경전을 공부하고, 푸자(puja)를 행하며, 작은 힌두교 모임을 가지거나 축일이나 결혼과 같은 특별한 행사들을 축하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힌두교 전통이란 한 집안의 전통이기에, 가정 제단은 힌두교 집안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메사추세츠 웰슬리(Wellesley, Massachusetts)의 교외에 있는 한 집안에서, 힌두교 여성이 집안의 중심부이자 그녀가 일하는 곳인 부엌에 있는 커다란 장을 제단으로 만들어 그곳에 발라지(Balaji)와 다른 신들을 모셨습니다. 피츠버그에서는 신실한 부부가 부엌에서 이어지는 별도의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이 별도의 가정 성소로 통하는 곳에 놓기 위해 신들의 형상이 새겨진 나무로 된 문들을 남인도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매일 이곳에서 기도를 하며 몇 분을 보냅니다. 루이스빌(Louiusville)의 한 생화학자와 그의 아내는 가족들이 사는 공간과 분리된 지하의 벽장을 가정 제단으로 만들었습니다. 많은 가정에서는 거실에 작은 제단 탁자가 놓여있을 것입니다.
집의 거실에서 경전을 공부하고 바잔(bhajan, 힌두 찬송가)을 노래하는 것은 여전히 힌두교 생활의 제일 중요한 보편적인 표현 방식의 하나입니다. 몇몇의 경우에는, 매우 신실한 사람―아주 자주 여성인데―의 가정 제단이 소규모 비공식적인 신도들의 모임을 갖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가정 제단에서 여성은 영적인 지도자와 사제의 역할 둘 다를 담당합니다.
가정 제단에서 행해지는 힌두교 의식은 힌두교 전통만큼이나 다양합니다. 힌두교도는 아침과 저녁에 소박한 기름 램프에 불을 붙여 락슈미(Lakshmi) 여신의 상서로운 현존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향을 피우고 푸자(puja), 즉 신에게 신선한 꽃을 바치거나 가족이 모시는 스승의 사진을 꽃으로 장식하는 의식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짧은 기도를 위해 잠시 멈추거나 반시간 정도 명상을 하기도 합니다. 마이애미에 있는 쉬바-비스누 사원의 한 독실한 신자는 그의 일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씻고, 기름 램프를 밝히고 기도를 합니다. 가끔씩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에 가족 전체가 모입니다. 집에서 매일 신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가정 제단의 중요성입니다.”
어떤 가정 제단들은 축일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나바라트리(Navaratri) 기간 동안 남인도의 많은 힌두 여성들은 작은 색 전등과 신, 구루, 사람, 동물, 집, 차, 기차 등의 아주 많은 작은 형상들로 가정 제단을 장식하며 꾸밉니다. 이 축제의 제일 중요한 날들 중 하나는 사라스바티 푸자(Saraswati Puja)인데, 학문의 여신이 집으로 초대되는 날입니다. 이때 사라스바티 여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학교 교재들을 제단에 쌓아 놓습니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집에서 행해지던 제사 의식들이 일반적으로 사원에서 행해집니다. 우파나야나(upanayana) 의식과 결혼 의식이 여기에 속합니다. 힌두교 공동체들이 흩어져있고 사제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사원은 힌두교도의 삶에서 점차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원들이 큰 부엌과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원 공동체의 삶이 갖는 새로운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제단은 아직도 많은 미국 힌두교 가정의 사적인 신앙생활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원을 세우는 것은 자신들의 아이와 손자, 손녀들이 힌두교의 가르침과 가치를 알기를 원하는 미국 이민 1세대 힌두교도들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비록 사원을 세울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난제이기는 하지만, 힌두교 공동체들은 접근 용이성(고속도로 근처)와 자연의 아름다움(언덕 기슭이나 꼭대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인도에서 자라면서 우리는 힌두교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힌두교 전통과 사원은 도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민 첫 세대인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 전통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사원을 건립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테네시주의 힌두 문화 센터(Hindu Cultural Center of Tennessee)의 창립자 중의 한 명인 B. N. 소마야지 박사(Dr. B.N. Somayaji)의 이 말은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 사는 힌두교 이민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어 왔습니다. 25년 동안, 이민 첫 세대에 의해 스물네 개가 넘는 주요 힌두교 사원들이 완전히 건립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의 힌두교 공동체들은 축일에 사람들의 집에서 만나는 비공식적인 작은 모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공동체가 커짐에 따라, 그들은 더 정기적인 모임과 축제를 위해 장소를 빌렸습니다. 피츠버그 식료품 가게의 지하, 보스톤의 니덤 빌리지 클럽(Needham Village Club), 내쉬빌의 유니태리안 유니버설리스트 교회(Unitarian Universalist Church)와 같은 장소가 그에 속합니다. 일반적으로 열성적인 핵심 멤버들로 구성된 힌두 사원 협회(Hindu Temple Society)를 구성하는 것이 사원을 건립하는 첫 번째 단계였습니다.
사원을 지을 적합한 장소를 찾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아름다울 뿐더러 동시에 고속도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들이 많이 선택되었습니다. 피츠버그의 두 사원은 언덕 꼭대기의 장소를 선택하였습니다. 로스앤젤러스 공동체는 말리부 해안가의 언덕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선택했습니다. 시카고 공동체는 러몬(Lemont) 근교에 있는 언덕 꼭대기에 라마에게 바치는 사원을 짓기 전에 서른 개가 넘는 장소를 보러 다녔습니다. 내쉬빌의 힌두교도들은 벨뷰(Bellevue) 교외의 언덕 비탈에 있는 장소를 사서 사원이 정확히 동쪽을 향할 수 있도록 언덕 비탈의 중간 지점에 사원을 세웠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사원전들, 특히 남인도 스타일로 만들어진 것들은 “스타파띠”(sthapati)라 불리는 힌두교의 제의 건축가들에 의해 디자인되었습니다. 힌두교 사원들은 우주 전체를 이 지구상에 재현한 축소판으로 데바라야(devalaya), “신의 처소”라 불립니다. 사원은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원의 비율은 성스러운 균형에 따라 설계되며, 사원의 부분들은 상징적으로 신의 몸에 해당합니다. 남인도 스타일의 사원은 돔 모양의 둥근 지붕이 신들의 성소 위로 솟아올라 있습니다. 종종 “고푸람”(gopuram)이라 불리는, 높고 장식이 된 탑 모양의 문이 사원 입구 위에 세워지기도 합니다. 제의 건축가들은 『쉴파 샤스트라』(Shilpa Shastra)라 불리는 힌두교 텍스트에 따라 사원들을 디자인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 종교적인 공간들은 미국 건축사 사무소에서 설계도로 만들어집니다.
첫 번째 제사 의식은 부미 푸자(bhumi puja)로 땅에게 경배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동체 일원들이 사원이 지어질 새로운 장소에 처음 모일 때에 행해질 수 있습니다. 이 장소에서 처음 땅을 파기 시작할 때에는 바스투 푸자(vastu puja)가 행해집니다. 이 의식에서, 사원의 제의적 공간들이 나뉘어지고, 상징적인 주춧돌이 놓여집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사원들은 단계에 따라 건설됩니다. 맨 처음에, 건물은 그저 시멘트 덩어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신들의 주요 성소 위로 올라온 탑(vimana)들도 처음에는 시멘트로 된 계단이 있는 굴뚝처럼 보입니다. 힌두교 사원의 고유한 특성을 구성하도록 벽돌을 만들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장식을 하고, 정교한 조각을 하는 것은 인도 출신의, “쉴피”(shilpi)라 불리는 장인들의 몫입니다. 결국, 사원의 외부 전체는 신들과 장식적인 상징물들로 생생하게 살아 숨쉽니다. 마지막으로, 사원은 흰색 페인트로 칠해집니다. 어떤 사원들에는 마지막으로 사원의 주 출입구 위에 “왕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라자고푸람(rajagopuram)이 세워지기도 합니다.
미국의 힌두교 사원들에는 공동체를 위한 넓은 부엌과 식당이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성소가 모두 완성되면, 결혼식, 춤, 음악을 위한 강당과 회관을 짓습니다. 이 건물들을 짓는 활동에 들어가는 노력들은 미국의 도시에 사는 힌두교도 사이에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기여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에서 사원을 지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만약 그들이 인도에 있었다면, 사원의 활동적인 후원자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들은 직업 때문에 미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은 스스로를 세속적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며, 그들이 여기 미국에서 힌두교 사원 공동체와 같이 일하게 되면서 훨씬 더 종교적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예외 없이, 사원을 짓는 사람들은 제의 건축가와 사원의 모습에 대하여 토론하고, 공동체와 함께 계획을 짜며, 심지어는 건설을 감독하는 데에 긴 시간을 보냅니다.
사원은 미국의 힌두교 공동체가 소중한 전통을 계승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전통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시카고 지역에 사는 한 여인은 광역 시카고(Greater Chicago)에 힌두교 사원이 건립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사원을 짓고 헌당하는 것은 우리의 종교를 우리 자신들에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에게 이해시키고 설명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사원과 사원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역시 우리에게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전해 받은 전통을 이국에서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우리 종교가 가지고 있는 내적이고 사색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최소로 줄이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종교 의식을 경험하는 것의 가치를 인정해야만 하는데, 특히 인도에서의 경험에 대한 기억에 기댈 수 없는 이민 2세대와 3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사원은 우리가 전통을 기억하고 동시에 그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쿰바비셰캄(Kumbhabhishekam)은 힌두교 사원을 헌당하는 제사 의식으로 물항아리(kumbha)에 담긴 신성한 물을 사원에 뿌리는 것(abhishekam)입니다. 헌당 의식은 가네샤신을 경배하고 땅에 기도를 하는 것(bhumi puja)으로 시작해서 수일 동안 계속됩니다. 주요 제의는 사원 근처에 세워진 커다란 천막에서 행해지는데, 불의 제단 의식과, 말(word)과 공물을 바치는 것, 마무리 의식인 푸르나후티(purnahuti)로 이루어집니다.
사원 헌당식은 “쿰바비셰캄”(Kumbhabhishekam)이라 불립니다. 이 무지막지하게 보이는 단어는 “물항아리”(kumbha)에 담긴 성스러운 물을 사원에 “뿌리는”(abhishekam)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 건축된 사원의 일대기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원 헌당식은 특히 미국에서 새 사원을 지은 많은 인도 공동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매해 그들은 이 날을 사원의 주요 축제 중의 하나로 기념합니다.
사원 헌당 제사 의식은 몇 일 동안 계속됩니다. 첫 번째 제사는 시작의 신이자 장애물을 제거하는 신인 가네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입니다. 이때 새 건물을 보호하고 축복해 달라고 땅에게 기도(bhumi puja)를 올릴 수도 있습니다. 사제들은 제사 의식에 앞서 손목에 축복과 보호를 상징하는 실(raksha bandhanam)을 두릅니다. 가끔씩은 곡식을 심고 싹을 피워 제사 의식이 좋은 결실을 가지고 올 수 있도록 기원하기도 합니다.
가장 주된 제사는 새 사원 근처에 세워진 커다란 천막에서 행해집니다. 이 천막은 야즈냐샬라(yajnashala), “불을 바치는 제사의 전당”이 되는데, 여기에서 이 제사를 위해 만들어진 벽돌로 된 불의 제단에서 인상적인 헌당 의식이 행해집니다. 불의 제단들 주변에는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들이 후원한 동으로 된 항아리들인 꿈바들이 놓입니다. 꿈바에는 갠지스 강의 물이나, 종종 미주리 강이나 미시시피 강과 같은 미국 강들의 물로 채워집니다. 쌀을 깔아 만든 바닥에 항아리들을 놓고 각 항아리 맨 위에 망고잎과 코코넛을 놓는데, 이는 아주 인상적인 모습입니다.
벽돌로 된 불의 제단에는 제사를 집전하는 브라흐만 사제들이나 아차리야(acharya, 학식이 있는 자들)들이 둘러앉아 불을 피우고 제물을 바치며 불에 헌액을 뿌립니다. 이들은 만트라와 경전을 암송하며 불의 제단과 물 항아리들이 축성받을 수 있도록 신의 현현을 불러냅니다. 바로 이 강력한 단어들인 만트라를 통해 신이 그곳에 와서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근원 만트라”(mula mantra)들은 사원에 자리 잡은 각각의 신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원 헌당을 위해 만뜨라와 찬가들을 암송하는 것은 종종 몇 시간 동안 계속되며, 이것은 젊은 미국인들에게 사제들이 보존하고 있는 성스러운 기억의 전통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말로 된 만트라를 바치는 것과 함께, 곡물, 꽃, 향료, 꿀,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바쳐집니다. 이 공물들은 종종 인도의 전통 식용유인 기(ghee) 대신에 사용되는 식물성 기름과 함께 불꽃 안으로 던져집니다. 공물이 다 바쳐지고 만트라 암송이 끝나면, 사제와 공동체 일원들은 제사의 마지막 의식인 푸르나후티(purnahuti)를 하기 위해 일어섭니다. 그들은 함께 『이샤 우파니샤드』(Isha Upanishad)에 나오는 오래된 기도를 암송하며 제사가 완전해지는 것, 즉 영원한 브라흐만이 완성되는 것을 기원합니다.
저 멀리에 완전함이 있다.
여기 이곳에 완전함이 있다.
완전함은 완전함에서 나오고
완전함에서 완전함을 만들지만
완전함은 남아있다.
옴, 평화, 평화, 평화.
사원 헌당 제사 의식은 신들의 주요 형상인 무르띠들을 신에게 바치는 제의를 포함합니다. 제사의 마지막에, 사제들은 제일 큰 쿰바를 머리에 지고 사원을 도는 축하 행진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유압식 승강기를 타고 사원의 지붕에 올라가 사원의 둥근 지붕과 그 아래에 모여 있는 열렬한 대중들에게 봉헌의 물을 뿌립니다.
힌두교에서 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그들이 상상하는 신의 모습에 따라 돌을 조각하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많은 제사 의식이 단계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돌을 성스러운 물로 씻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신의 눈을 만들어 숨을 불어넣는 의식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사원에 있는 돌로 만들어진 힌두교 신들의 형상은 인도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흰색 대리석으로 된 형상들은 보통 인도 북부 라자스탄(Rajasthan)주 자이푸르(Jaipur)에 있는 예술가 정착촌에서 만들어지고, 검은 화강암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Tamilnadu)주의 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의 공작소에서 만들어집니다. 흰색 대리석으로 된 것이건 아니면 검은 화강함으로 된 것이건, 돌들은 제의 건축가들이 신경 써서 선택하고 그들이 조각할 돌판들을 일일이 재고 표시합니다. 이 과정은 돌 안에 숨겨져 있는 신의 형상을 밖으로 꺼내는 것입니다. 신의 형상들이 커다란 나무 상자에 담겨 뉴저지나 갤버스턴(Galveston)의 부두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이 형상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며 사원으로 가져갑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완전히 축성을 받기 전까지는 돌에 불과합니다.
돌로 된 형상을 신의 현현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한 제의 과정입니다. 이 제사 의식을 실행하는 것은 사원 자체에 대해 그리고 사원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린 것에 대해 힌두들이 영원히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을 함의하는 주요한 한 걸음이 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에 한 공동체가 아직 신들에게 봉헌을 하지 않았다면, 사제는 그들이 모였을 때 신을 불러오는 기도를 해서 예배의 시간동안 신이 그곳에 존재하고 예배가 끝나면 떠날 것을 허락할 수 있습니다. 힌두교도들이 사원을 짓고, 봉헌의식을 마치고 나면, 신의 형상은 영원한 신의 존재로 채워질 것입니다. 이 일이 마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간에 사제는 사원에서 살면서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신에게 경배를 올리고 찬양을 하며 응대하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
사원이 “성스러운 물을 뿌리는” 쿰바비셰캄의 의식을 통해 봉헌되듯이, 신상들도 마찬가지 과정을 밟습니다. 성스러운 불들이 밝혀지고 신의 현존이 불과 물항아리들로 호출됩니다. 그러는 동안, 신상은 축성을 받기 위해 정화됩니다. 신상은 커다란 통 안에 넣어져 하루 밤은 물에 잠겨있고, 그다음 밤에는 곡식에 담겨있고, 그다음 밤에는 꽃잎들에 잠겨 있게 됩니다. 이 축성 기간 동안 사원의 평신도들은 그 신상을 제의적으로 목욕을 시킬 수도 있는데, 이것이 사제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신의 형상에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첫 번째이자 유일한 기회입니다.
신의 현현화 과정에는 항상 눈을 여는 것과 숨을 불어넣는 두 개의 제사 의식이 중요합니다. 개안(開眼) 의식에서 조각가는 화강암으로 된 형상에 눈의 동공을 조각하는데, 이는 종교 의례적으로 신의 눈을 여는 것입니다. 힌두교 숭배에서는 다르샨(darshan)이라는 용어가 중심적인데, 문자 그대로 신의 형상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르샨을 위해 사원에 갑니다. 신의 형상을 보고 그리고 반대로 신이 그들을 보는 것입니다. 신의 첫 번째 응시는 극도로 강력해서 인간은 신의 눈빛의 충격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해집니다. 그래서, 신의 눈이 떠질 때, 사제는 신의 얼굴 앞에 거울을 놓아 첫 번째 눈빛이 다시 그 형상으로 비춰지게 합니다. 신들의 다르샨을 위해 처음으로 성소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신의 형상을 거울을 통해서 보고, 그리고 나서 신의 얼굴을 직접 보라고 가르쳐집니다.
눈이 새롭게 열렸을 때, 사제는 암소를 성소로 데리고 들어가 신의 눈빛의 첫 번째 상서로운 대상이 되도록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신의 시야는 상서로운 젊은 처녀들에게 떨어집니다. 보스턴에 있는 사원에서는 그 의례에 참석한 여학생들이 개안 의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프라사드(prashad, 신의 축복)으로 수전 B. 앤써니 은화 달러(Susan B. Anthony silver dollar)를 하나씩 받았습니다.
두 번째 의식은 “숨을 불어넣는”(prama pratishtha)의식입니다. 일반적으로, 봉헌 의식 전체가 신상에 신의 숨결을 불어넣는 의식입니다. 그러나 보다 좁은 의미에서, 이 제의는 행사의 마지막 날, 신상이 내실로 옮겨진 다음에 실시됩니다. 신의 현현은 바깥에 있는 불의 제단에서 기도를 함에 따라 소환되고, 신의 능력은 불의 제단에서 형상까지 이어진 은이나 금으로 된 실을 통해 전파됩니다. 일단 제사를 통해 신의 숨과 눈이 만들어지고 나면, 이제 돌로 된 형상은 신의 숨과 눈빛을 가진 존재로서 사람들의 경배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생명을 불어넣는 정교한 제의의 정점은 암송된 만뜨라의 힘을 가지고 있는 꿈바에 있는 물을 형상들 위로 쏟아 붓는 것입니다. 이 물과 함께, 사제들은 많은 양의 우유와 정제된 꿀과 요거트와 백단향 반죽을 쏟아 붓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의례적 목욕”, 아비셰캄(abhishekam)인데 이후부터는 매주 치러질 것입니다.
물론 힌두교에서 신은 돌로 된 형상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힌두들은 최상의 존재인 신이 은혜롭게도 힌두교 가족들과 공동체의 세상에 아주 가깝게 있고자 신상 안으로 내려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축성을 받은 신상들은 신에게로 열리는 창문이 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하는 제사와 공양은 자신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에게 그들이 바치는 접대와 경배와 찬양의 기술을 배양하고 다듬을 수 있게 합니다.
푸자(puja)에서 바쳐지는 공양물들은 우주의 다섯 개의 요소를 나타냅니다. (향이 나는 백단향 반죽으로 표현되는) 흙, 물, (만뜨라와 찬가로 표현되는) 공간, (부는 바람으로 움직이는 공기에 의해 표현되는) 바람, (기름 램프로 표현되는) 불입니다. 기도와 사제의 봉헌 의식 후에, 이 요소들은 경배자들에게 나누어집니다.
사원에서든 가정의 성소에서든, 힌두교 예배는 신에게 다양하고 감각적인 제물들을 연이어 바치고, 보답으로 신이 사람들에게 은총을 내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예배를 의미하는 제일 일반적인 용어는 “푸자”(puja)인데, 미국의 사원에서는 일주일 중에서 특정한 시간에 다양한 신에게 온전한 푸자를 행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뿌자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부부로, 아니면 가족과 친구로 이루어진 작은 모임으로 올 때에 바쳐집니다.
일리노이의 러몬(Lemont)의 언덕 위에 있는, 광역 시카고의 힌두교 사원에서 한 사제가 뿌자에서 신에게 바쳐진 공물을 설명합니다. 공물들은 우주의 다섯 개의 요소인 흙, 물, 공간, 바람, 불을 나타냅니다. 땅과 땅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은 향이나는 백단향 반죽과 과일과 꽃으로 바쳐집니다. 물은 마시고 목욕하기 위해 바쳐집니다. 공간은 만뜨라와 찬가, 종소리로 채워집니다. 공기 또는 바람은 신의 형상 앞에서 은은히 퍼지는 향으로 제공됩니다. 마지막으로, 불은 “아라티”(arati)라 불리는 기름 램프의 형태로 바쳐집니다. 이 마지막 공물은 신의 얼굴과 신체의 각 부분을 밝히기 위해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둥글게 움직여집니다. 램프 공물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아라티”라는 용어는 더 일반적으로 숭배 의식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선물들은 그것을 바친 사람들에게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진 축복은 신의 “은총”을 의미하는 “프라사드”(prashad)라 불립니다. 사제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신에게 바쳐졌던 물을 나누어줍니다. 그는 컵모양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물을 조금씩 나누어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감사히 마십니다. 손바닥에 남아있는 물방울로는 이마와 눈, 또는 머리를 만집니다. 사제는 경배자들에게 신에게 바쳐졌던 바나나, 꽃, 사과 등을 나누어줍니다. 이것들도 역시 프라사드, 신의 은총 있는 선물로 여겨집니다. 마지막으로, 사제는 경배자들에게 신의 얼굴을 비추었던 기름 램프를 제공합니다. 그가 램프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오갈 때, 사람들은 램프의 불꽃에 손을 갖다 대어 불꽃의 은총이 자신에게로 오게 합니다.
힌두교 경배는 일반적으로 여럿이 모여서 하는 것이 아니지만, 특히 아비셰카(abhisheka), 즉 신들 중 하나를 목욕시키는 의례 행사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입니다. 미국의 많은 사원에서는 중요한 신들의 아비셰카 의식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행해지는데, 이는 미국에서는 “주말” 일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교한 의식에서는 신의 형상들을 물, 강황, 꿀, 요거트, 우유로 목욕시킵니다. 신들이 옷을 입고 장식이 되는 동안에는 내소에 커튼을 칩니다. 방이 다시 열렸을 때, 사람들은 신과의 상서로운 시선을 통한 접촉, 다르샨을 위해 모여듭니다.
요약: 가네샤는 “시작의 신”과 “장애물 제거자”로 숭배되는 잘 알려진 힌두의 신입니다. 가네샤의 모습은 코끼리 머리를 한 사람으로 표현되는데, 보통 책과 부러진 상아로 만든 펜을 들고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가네샤의 신전은 사원 입구나 사원의 중앙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세워진 최초기 대신전 중 하나가 시작의 신인 가네샤에게 바쳐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사원은 1977년 7월 4일에 뉴욕의 자치시 퀸즈(New York borough of Queens)에 설립되었습니다. 비록 가네샤는 쉬바(Shiva)와 파르바티(Parvati)의 아들로 여겨지지만, 모든 힌두들은—바이스나바(Vaishnava)나 샤이바(Shaiva)나—가네샤를 섬깁니다. 사실, 가네샤는 널리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모든 힌두교 사원들은 가네샤의 형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코끼리 머리를 가진 신은 “시작의 신”이자 “장애물을 제거하는 신”입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 결혼식을 할 때, 모든 제사와 일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그의 축복을 구합니다. 기록의 신으로서, 가네샤는 종종 책을 가지고 다니고 그의 부러진 상아를 펜으로 사용합니다. 학생들은 학년을 시작할 때나 시험이 다가올 때 그에게 예배합니다. 가네샤의 툭 튀어나온 배는 그가 단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는 이동할 때에는 놀랍게도 잰걸음으로 걷는 쥐를 타고 다닙니다.
문지방의 수호자로, 가네샤의 성소는 출입구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퀸즈에서는 그의 신전은 사원의 주요 성소로 경배의 중심에 있고, 신전의 가장자리에는 다른 힌두교 신들의 작은 성소들이 수없이 많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쉬빌에서도 가네샤는 벨뷔(Bellevue) 교외의 언덕 비탈에 세워진 넓은 새 사원의 가운데 성소에 거처합니다. 이 성소의 한쪽 편에는 쉬바에게 바쳐진 여러 개의 신전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비스누에게 바쳐진 신전들이 있습니다. 내쉬빌에 사는 힌두들은 북인도 출신과 남인도 출신과 모든 종파의 전통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있는데, 이들이 가네샤를 그들의 사원 중앙에 놓을 것을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정했습니다.
내쉬빌 사원에서 활동하는 한 여인은 이처럼 설명합니다. “가네샤는 현실적인 의미에서, 또 영적인 의미에서 장애를 제거하는 데에 책임이 있는, 최고 존재의 한 면입니다. 영적인 길에서, 우리의 나약함이나 우리의 에고(ego)가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네샤에게 기도를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그러한 장애물들을 없애는 데에 도움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의 탄생에 대한 신화가 있는데, 어떻게 파르바티 여신이 가네샤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쉬바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가네샤를 침입자라 생각하고 그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쉬바가 자신의 끔찍한 잘못을 알아차렸을 때, 쉬바는 가네샤의 머리를 코끼리의 머리로 대신했습니다. 이것은 이야기일 뿐이지만, 내 생각에는 옛날에 힌두교도들이 길에서 장애물을 제거할 신의 형상을 상상했을 때, 그들이 그러한 형태의 힘이 센 코끼리를 보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가네샤 축제, 가네샤 차투르티(Ganesha Chaturthi)는 여름이 끝나는 무렵에 열립니다. 가네샤 차투르티 기간 동안 많은 사원에서는 진흙으로 가네샤의 형상들을 만들어 축성합니다. 1995년에 마이애미의 플로리다에서 힌두교 사원 협회는 200 파운드 무게의 가네샤 진흙 형상을 만들어 사원의 여신도들이 아주 정교하게 색을 칠했습니다. 거의 2주에 거친 특별한 경배 의식 후에, 가네샤는 그 진흙 형상에서 떠나라고 부탁받았고, 그 형상은 인도에서 그렇게 했을 것처럼 바다에 잠겨 원래의 요소로 돌아갔습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축제 행진에 모여 가네샤의 형상을 화려하게 장식된 평대 트럭에 실어 마이애미 북쪽의 해안으로 가져가 바다에 가라앉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San Francisco Bay Area)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힌두들은 가네샤 차투르티의 마지막에 가네샤 형상을 바다로 가져갈 행렬을 만들었습니다. 축제가 끝나고 나서 그 행렬은 가네샤 형상을 베이커 비치(Baker Beach)로 가져가 바다에 가라앉혔습니다. 1992년에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처음으로 “가네샤 황금문”의 날(Golden Gate Ganesha day)을 공표했습니다.
퀸즈에서 가네샤 차투르티 축제는 9일 동안 계속되는데, 그 기간 동안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원을 방문합니다. 중심에 있는 가네샤 무르티는 꽃과 백단향 반죽과 진주로 정교하게 장식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린이 푸자”가 있어서 그들이 경배도 하고 배울 수도 있도록 합니다. 이 축제의 정점은 라타 야트라(Ratha Yatra), “전차 순례”입니다. 사원에 있는 거대한 화강암 형상의 움직일 수 있는 복제본이 행렬을 위해 사원 밖으로 꺼내집니다. 이것은 라타, 즉 “전차”에 올려지는데, 이 전차는 플러싱(Flushing)의 길거리를 가로지르기 위한 이동용 사원처럼 장식됩니다. 그 외의 날에는 사람들이 가네샤를 보러 사원으로 오는데, 오늘 하루만은 가네샤가 사람들에게 찾아옵니다. 신자들은 백 명씩 신의 전차를 긴 밧줄로 잡아당겨 전차가 움직이는 것을 돕습니다. 행렬이 지나는 길에는 춤과 낭송, 성가 바잔(bhajan) 부르기가 계속됩니다. 이민 첫 세대들에게, 이날은 마치 인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뿌자를 행하고, 가네샤에게 공물을 바치고, 흥분해서 행렬을 따라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이 연례 축제는 그들이 아는 미국의 일부입니다.
비스누는 많은 힌두들에 의해 최고 신으로 숭앙됩니다. 인도에서 제일 인기 있는 비스누 순례지는 안드라 프라데쉬(Andhra Pradesh)주에 있는 쉬리 벤카테쉬와라(Sri Venkateswara)입니다. 이곳에서 비스누는 발라지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피츠버그에 있는 쉬리 벤카테쉬와라 사원은 미국에 세워진 첫 번째 커다란 사원들 중의 하나인데, 여기에 많은 미국 힌두교 순례자들이 찾아와 발라지에게 경배합니다.
피츠버그는 미국에서 첫 번째로 주요한 힌두교의 순례지입니다. 그곳에는, 펜 힐(the Penn Hills) 꼭대기에 사원이 있는데, 친근한 이름으로 “발라지”(Balaji)라 불리기도 합니다. 인도에서 안드라 프라데쉬(Andhra Pradesh)주 남부 티루파티(Tirupati)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쉬리 벤타케쉬와라는 제일 인기 있는 순례지 중의 하나입니다. 발라지는 순례자들이 그의 존재로부터 받는 강력한 축복으로 특히 유명합니다. 미국의 힌두교 이민자들은 인도의 성스러운 지형을 가져와서 발라지를 미국 풍경의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었습니다.
수백만의 힌두교도들이 매년 티루파티를 방문합니다. 사원 건물들을 관리하는 회사인 티루파티 티루말라이 데바스타남스(Tirupati Tirumalai Devasthanams)는 인도에서 제일 부유한 회사 중의 하나입니다. 피츠버그의 사원은 인도의 이 사원의 신탁회사에서 돈을 빌려 설립되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6천 명이 넘는 힌두교도들―이들 중 대다수는 이민 첫 세대인데―이 사원 설립에 힘을 보탰습니다. 1977년 6월에 사원이 헌당식을 마쳤을 때, 이 사원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힌두교 사원이었습니다. 사원의 인기 덕분에―심지어 피츠버그 지역에서 아주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는데―인도 티루파티에 있는 어머니 사원에 진 빚을 단 2년만에 갚을 수 있었습니다.
“쉬리 벤카테쉬와라”(Sri Venkateswara)를 약어로 “S.V. 사원”이라고 하는데, 이 사원은 오늘날 매해 수 만명의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사원은 미국의 휴일과 사흘에 걸친 주말 패턴에 맞추어 종교 행사를 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 방식은 미국에 있는 힌두교 공동체뿐만 아니라, 자이나, 시크(Sikh), 불교 이민 공동체들에게도 공통적인 패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S.V. 사원은 미국에 설립된 다른 사원들의 모델이 되었고, 공동체는 쿰바비셰캄(Kumbhabhishekam)을 위해 사제들을 파견하는 등 다른 사원들을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사원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라즈쉬리 고팔(Mrs. Rajshri Gopal)은 “여기 이 사원에는 우리가 다소 무모하게 꿈꿨던 것보다 더 성공적인 무언가가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 사원은 피츠버그 외의 지역의 사람에게도 인기가 아주 많아요. 시카고, 미시간, 토론토, 뉴욕, 심지어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오지요. 사람들이 휴가를 맞는 여름철에, 피츠버그를 거쳐 가려 하는 것 같아요.”
발라지는 미국의 여러 곳에 거처합니다. 시카고 서부 교외의 오로라(Aurora)에, 켄터키의 루이스빌(Louisville, Kentucky)에, 세인트 루이스(St. Louis) 교외에 발라지 사원이 있습니다. 로스 앤젤러스 바로 북쪽에 있는 칼라바사스(Calabasas)에 있는 말리부 사원(Malibu Temple)은 발라지를 중앙 성소에 모시고 있는 쉬리 벤까떼쉬와라 사원입니다. 사원의 중앙에 있지는 않지만 발라지의 형상은 보스톤의 쉬리 락스미 사원(Sri Lakshmi Temple), 내쉬빌의 가네샤 사원, 그리고 워싱턴 D.C.의 쉬바-비스누 사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발라지의 축복은 미국 전체에서 늘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라마(Rama)와 시타(Sita)와 하누만(Hanuman)은 『라마야나』(Ramayana)에 나오는 신적인 등장인물들입니다. 라마는 정의로운 왕이자 비스누 신의 인간 모습을 한 현현으로 간주되어 숭배되고 찬양됩니다. 라마 나바미(Rama Navami) 축제 동안 라마의 탄생이 축하되고 라마와 시타의 결혼이 재현됩니다. 결혼할 나이의 딸을 둔 가족들이 신성한 결혼식의 후원자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딸이 미래에 좋을 결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미시간의 트로이(Troy)에 있는 바라티야(Bharatiya) 사원에는 매년 열리는 라마신을 경배하는 축제인 라마 나바미(Rama Navami)를 위해 힌두교 공동체가 위해 모입니다. “바라티야”는 “인도의 사원”을 의미하는데, 이 사원이 특정한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힌두교 전체를 아우르는 사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바라띠야는 디트로이트 교외 북부의 나무가 울창한 언덕 기슭에 서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네 개의 거대한 아치모양의 기둥이 카페트가 깔린 성소의 지붕을 지탱하고 있고, 그곳에 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라마야나』(Ramayana)에 나오는 영웅과 여주인공인 “라마와 시타의 결혼”을 위해 모입니다. 라마와 시타의 형상들은 사원의 제단으로 사용되는 높이 올려진 제단에 놓여 있습니다.
라마는 정의로운 왕이자 비스누신의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한 현현으로 간주되어 숭배되고 찬양됩니다. 오늘 라마의 탄생이 경축되며 그와 시타의 결혼이 다시 거행됩니다. 공동체 중의 두 가족이 사제와 함께 제단 근처에 앉아 있는데, 제단 위에는 노란색 실크 도티(dhoti)를 입은 라마와 붉은색 실크 사리(sari)를 입은 시타의 작은 형상들이 있습니다. “선물인 딸”(Kanyadanam)이라 불리는 상서로운 순간이 오면, 사제들은 신도들에게 그 유명한 말인 “나는 내 딸을 결혼의 선물로 준다. 카냐다남 아함 카리셰(Kanyadanam aham karishye).”를 같이 반복하도록 청합니다. 그리고 상서로운 결혼 목걸이인 망갈라 수트라(mangala sutra)를 씨타의 머리 위에 놓습니다. 많은 힌두교도들은 이 목걸이를, 마치 결혼반지처럼 결혼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힌두교도들의 결혼식에서 망갈라 수트라를 주는 것은 라마와 시타의 결혼을 환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여기, 디트로이트 북부 교외에서 결혼 적령기의 딸을 둔 가족들은 일상적으로 이 신의 결혼을 시타의 가족이 되어 후원합니다. 결혼 의식이 끝나면 사제는 교인 모두에게 기도에 동참할 것을 요청합니다. 사제는 “만약 당신의 딸이나 아들이 결혼을 할 것이라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이 좋은 배필을 만나 좋은 결혼의 축복을 받도록 기도하십시오.” 이 기도는 디트로이트에 정착하기를 선택했지만 이것이 그들의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어떤 것을 의미할지 아직 확신이 없는 1세대 인도 이민 부모들에게는 무척 가슴에 와 닿는 기도입니다.
결혼 의식 후에, 공동체는 사원의 강당에 모여 라마와 시타를 경배하기 위한 장기자랑을 본다. 이 중에는 하누만(Hanuman)에게 바치는 것도 있는데, 하누만은 라마에게 제일 헌신하는 하인인 원숭이입니다. 신의 제일 가까운 하인과 헌신자를 통해 경배를 올리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하누만은 라마보다 더 널리, 여러 방식으로 경배됩니다. 하누만은 라마의 제단에 항상 무릎을 꿇은 자세로 함께 있습니다. 트로이에 있는 바라티야 사원에서 힌두교 전통 학교(Hindu Heritage Class)의 중학생 모임이 “하누만이 수퍼맨을 만나다”(Hanuman meets Superman)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제작했습니다. 이 연극 공연은 이 사원의 라마 나바미 문화 행사에서 최고로 인기가 좋았다.
아룬 메타(Arun Mehta)가 멋진 하누만의 의상을 입고, 원숭이 꼬리를 뒤에 늘어뜨리며 등장합니다. 모한 카푸르(Mohan Kapur)는 수퍼맨인데, 가슴에 크고 빨갛고 노란 S자를 달고 온통 파란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Play it cool(쿨하게 하자)”라는 이름의 학생 모임이 마이크 앞에 서서 두 명의 영웅을 보고 있습니다. 모임을 이끄는 학생이, “하누만과 수퍼맨이 정말 뭐가 다르지?”라고 묻습니다.
한 자원봉사자 소녀가 대답합니다. “하누만은 바람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어. 어쨌거나 그는 바람의 아들이야. 그는 씨따를 찾으러 랑카(Lanka) 섬으로 단번에 점프할 수 있어. 그는 전투가 한창일 때 라마의 죽어가는 군대를 위해 치료하는 허브의 산에 가려고 히말라야로 날아갔지.”
“하지만 수퍼맨도 하늘을 빠르게 날 수 있어.” 다른 학생이 말합니다. “‘나는 총알보다 더 빨리’라는 말이 있지.”
“글쎄, 하누만은 놀라운 힘을 가졌어. 아무튼, 그가 어떤 허브를 라마에게 가져가야 할 지 모를 때, 그는 허브의 산 전체를 라마에게 가져갔거든.”
“그래도, 수퍼맨은 정말 놀라워. 그는 높은 빌딩을 한 번에 뛰어올라.”
이들은 하누만과 수퍼맨을 비교하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그 모임 중에서 제일 어린 학생이 까치발로 서서 간신히 마이크 앞에 입을 대고는 외친다. “봐! 나는 수퍼맨에게는 없지만 하누만은 가지고 있는 하나를 알고 있어! 하누만은 심장에 라마신을 가지고 있어!” 그러자 하누만은 무릎을 꿇고 가슴을 열어 그의 심장에 있는 라마와 시타를 보여줍니다. 하누만의 힘보다, 속도보다, 영웅심보다 하누만을 하누만으로 만드는 것은 라마신에 대한 그의 사랑입니다.
라마 나바미 행사가 끝나갑니다. 신의 결혼식이 완성되었습니다. 강당에서의 장기자랑도 막을 내립니다. 이제 공동체는 근처에 있는 식당에 식사를 하기 위해 모입니다. 쌀과 커리, 망고 처트니(mango chutney)와 레몬 피클, 디트로이트 타이거즈(the Detroit Tigers)의 배지가 새겨진 텀블러가 차려집니다.
쉬바 또는 마하데바(Mahadeva)는 최고의 신이며 창조와 파괴의 신입니다. 남성이며 동시에 여성인 몸으로 묘사되는 쉬바는 대부분 돌로 된 단순한 기둥(Shiva linga)의 형태로 경배되는데, 쉬바 링가는 우주의 완전함에 대한 남성-여성의 상징입니다. 쉬바는 또한 다리를 꼬고 앉은 요기의 형태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힌두교 공동체들은 쉬바 경배 의식인 마하 쉬바라트리(Maha shivaratri, 쉬바의 위대한 밤)를 매년 거행합니다.
쉬바는 최고 신입니다. 그는 마하데바(Mahadeva), “위대한 신”, 또는 비쉬바나타(Vishvanatha), “우주의 지배자”라 불립니다. 그는 창조자와 파괴자, 자신에게서 우주를 끌어내고 궁극에는 그것을 다시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는 자로 여겨집니다. 춤의 신 나타라자(Nataraja)로서의 그가 추는 춤의 에너지와 균형은 우주를 뿜어내고 끌어당기는 쉬바의 가차없는 행동의 완벽한 상징입니다. “그”는 때때로 인간의 형상을 한,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한 존재로 표상됩니다. 그의 몸의 오른쪽 반은 남성이고 왼쪽 반은 여성입니다. 추상적인 모습에서도, 링가(linga)라 불리는 단순한 돌 기둥은 완전한 우주의 남성-여성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미국에는 쉬바에게 바쳐진 중앙 성소들을 가지고 있는 사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의 신 쉬바 비쉬바나타를 위한 이름을 가진 까쉬 비쉬바나타(Kashi Vishvanata) 사원은 미시간의 플린트(Flint)에 있습니다. 이 이름은 인도의 성스러운 도시 카쉬(Kashi) 또는 바라나시(Banaras)의 이름을 가져온 것이기도 합니다. 트리니다드의 힌두교도들이 플로리다의 포트 로더데일(Ft. Lauderdale)에 세운 쉬바 만디르(Shiva Mandir)에서는 쉬바를 제단의 제일 중앙 부분에 놓고 그 주변으로 다른 신들의 형상들을 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쉬바는 다리를 꼬고 앉은 요기와 쉬바 링가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사원에는 쉬바에게 바치는 신전이 적어도 한 개는 있는데, 종종 링가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쉬바가 많은 형상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링가는 모든 인간 형상을 초월하는 신을 표시합니다. 전설에 따르자면, 한 번은 신들이 자신들 중에 누가 제일 위대한지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땅이 쫙 갈라지면서 지구 저 아래 밑바닥에서 한 줄기의 빛이 올라와 하늘을 뚫고 제일 높은 곳의 천상 위로 올라갔다. 신들은 그 빛줄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고, 그것의 꼭대기에 닿지도 못했습니다. 마침내, 쉬바가 그 빛으로부터 나타나서 위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빛이 링가가 되었고, 그들은 이 형태로 신의 빛을 숭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하 쉬바라뜨리(Maha Shivaratri), “쉬바의 위대한 밤”은 한 해 중 제일 중요한 쉬바 경축 행사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빛의 링가가 이날 밤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자면, 이 날 밤을 새며 쉬바를 경배하는 사람들은 많은 생에서 지은 죄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뉴욕에 있는 가네샤 사원에서는 쉬바라뜨리 밤에 링가를 씻기고(abhisheka) 장식시키는 온전한 제사 의식을 치르며 밤을 샙니다. 성가의 노래에 맞추어 사제들은 링가에 우유, 요거트, 꿀, 강황 등의 공물을 차례로 하나씩 붓습니다. 긴 의식의 마지막에는 커튼이 닫히고 사제들은 링가를 꽃으로 아주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그리고 이 제일 아름다운 형태로 쉬바신을 사람들이 경배토록 합니다.
보스턴의 쉬리 락스미(Sri Lakshmi) 사원의 힌두교 공동체는 춤의 신인 쉬바에게 “춤을 바치는(Nrityanjali)” 의식을 추가하여 쉬바라뜨리 전통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공동체가 사용하는 공간에는 청동으로 만든 쉬바 나타라자(Shiva Nataraja)의 형상이 제단에 놓여있습니다. 쉬바는 제일 보편적으로는 링가의 형태로 경배되지만, 이곳에서는 불의 주변을 돌며 춤을 추는 무용수로 표현됩니다. 이날 오후에는 어린 소녀들이 쉬바에게 그들의 춤을 바치기 위해 왔습니다. 몇 명은 아직 초보여서 많은 인도 춤의 기초가 되는 목과 어깨와 손목의 움직임을 신 앞에서 연습하고 보여줍니다. 몇 명은 고등학교 학생들인데, 이들은 바랃 나티얌(Bharat Natyam)이라 불리는 춤의 한 형태를 수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네이틱 고등학교(Natick High School)에 다니는 두 자매는 겨우 몇 달 전에 그들의 춤으로 데뷔를 했는데, 이제는 쉬바신 앞에서 그들의 춤을 공물로 올립니다.
춤은 오후 내내 계속됩니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테두리가 쳐진 싸리―핑크색 둘레가 쳐진 녹색 사리, 붉은색 둘레가 있는 베이지 사리(sari)―를 입고 길게 딴 머리를 꽃과 진주가 박힌 핀으로 장식한 젊고, 나이든 수십 명의 무용수들이 계속해서 춤을 춥니다. 이들은 모두 제단으로 다가가 쉬바의 발에 꽃을 우아하게 떨어뜨리면서 춤을 시작하고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그 공간을 메우고 있는 약 이백 명의 기쁜 관중들은 박수를 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이 춤의 날은 공연이 아니라 경배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라타 야트라 (크리슈나신의 “전차 여행”)이라 불리는 크리슈나 축제는 여름에 크리슈나신과 누이 수바드라와 형제 발라람의 형상을 태운, 손으로 만든 크고 다채로운 색상의 전차 행진이 주를 이룹니다. 축제는 도시의 거리에서 크리슈나신의 형상을 “보는” 다르샨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름철 시카고나 덴버의 길거리에서 우리는 갑자기 거대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크리슈나신의 전차가 노래하고 북을 치며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 천천히 흔들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크리슈나신의 축제로 인도 전체에서, 그리고 지금은 미국 전체에서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축제는 자간나타(Jagannatha), “우주의 신”이라 불리는 끄리스나신의 라타 야트라(Ratha Yatra), “전차 여행”입니다. 이 여행에는 크리슈나의 누이 수바드라(Subhadra)와 형제 발라라마(Balarama)가 같이 합니다.
커다란 나무 바퀴를 가진 세 대의 전차는 손으로 직접 만듭니다. “라타”(ratha)라 불리는 전차는 사실 바퀴 위에 있는 사원으로, 밝은 붉은색이나 녹색 실크로 만들어진 뾰족한 첨탑이 전차 사원 위에 뻗쳐 있습니다. 첨탑 아래에 있는 덮개와 받침들 사이에는 크리슈나신과 그의 수행원들의 축제 형상이 놓여 있습니다. 라타 야트라에서 크리슈나신은 사원에서 나와 성소가 아닌 도시의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여행합니다. 그의 전차는 신자들이 길고 두꺼운 밧줄로 급니다. 신의 전차를 끄는 것은 기쁘고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크리슈나의 신도들이 신의 전차를 보스턴의 주의회의사당을 지나 비컨 힐(Beacon Hill) 위로 끌고 올라갈 때, 로스앤젤러스의 베니스 비치(Venice Beach)를, 시카고의 데번 애비뉴(Devon Avenue)를 따라 끌고 갈 때, 그리고 뉴욕의 5번가(Fifth Avenue)를 따라 아래쪽으로 끌고 갈 때, 그들은 참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 라타 야트라의 자간나타 축제는 오리사(Orissa)주의 서부 해안가에 있는 푸리(Puri)에서 행해집니다. 끄리스나의 사원 중 제일 큰 사원이 그곳에 있습니다. 자간나타로서의 크리슈나 형상은 아주 큰 눈과, 미소와, 왕관과 화환을 두른 독특한 블록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 세기 전에, 어떤 왕이 공예가에게 크리슈나의 형상을 나무로 만들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왕은 호기심도 나고 빨리 보고 싶은 열망에 형상이 완성되기 전에 그것을 보려고 문을 열었고, 끄리스나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형상으로 현현했습니다. 끄리스나의 찻잔 같은 커다란 눈은 멀리에서도 보이는데, 이는 다르샨(darshan), 신의 “보는 일”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다르샨은 사람의 눈이 볼 수 있는 것 저 너머에 있는 영광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리슈나는 그가 사랑하는 라다(Radha)를 만나기 위해 무더운 여름의 우기에 매년 이 여행을 합니다. 크리슈나와 라다의 사랑은 신과 각각의 인간과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박티”(bhakti)라 불리는 이 사랑은 남자나 여자가 신을 사랑하는 것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신에 의해 보상을 받는 사랑입니다. 이 전차 여행에서 신은 인간에게로 향하는 동작을 시작합니다. 매해 열리는 자간나타 축제에서 사람들은 거대한 전차들을 뿌리의 주요 도로를 따라 끌고 내려와 2마일 떨어져 있는 도로의 맨 끝에 있는 라다의 정원 사원으로 갑니다. 며칠 후에 크리슈나는 그의 사원으로 돌아갑니다.
푸리의 자간나타 축제에서 사용되는 거대한 전차의 바퀴들은 직경이 3미터가 넘습니다. 수백 명의 신도들이 밧줄에 힘을 실으면, 전차는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푸리의 자간나타 축제는 세계에서 제일 큰 축제 중의 하나입니다. 거대한 전차와 어마어마한 숫자의 참가자들은 인도를 방문한 초기의 서구인들을 놀라게 했고, 아마도 겁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서구 방문자들이 전한 말로부터 영어의 “juggernaut”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는데, 이 단어는 그것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압도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바퀴축 위에서 삐걱거리는 거대한 바퀴들의 동력이 어마어마하기는 하지만, 자간나타 축제의 정신은 기쁨과 헌신입니다.
미국에서 첫 번째 전차 축제는 1967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습니다. 끄리스나 신자들의 첫 번째 공동체는 평상형 트럭에 꽃과 신들의 형상들을 올려놓고 헤이트 애쉬베리(Haight-Ashbury)에서 바닷가까지 갔습니다. 그들은 끄리스나 의식 국제 협회(International Society for Krishna Consciousness)를 창립한 스승인 스와미 A.C. 박티베단타(Swami A.C. Bhaktivedanta)의 학생들과 지지자들이었습니다. 다음 해에 신도들은 실크로 만든 지붕이 있는 카트에 크리슈나를 싣고 골든 게이트 파크(Golden Gate Park)를 통과해 행진했습니다. 해가 지나면서, 카트들은 커다란 전차로 바뀌었고 모이는 사람의 수는 이천 명까지 늘어났습니다. 오늘날 전차 축제는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해마다 열리는 행사입니다. 행진은 수 천 명의 사람들을 끌어 모았고, 행진 뒤에 열리는 장터와 축연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채식주의 음식과 과자를 나누어주는 부스도 있고 『바가받기따』나 환생에 대해 가르치기 위한 포스터들을 가지고 있는 부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라타 야트라는 도시의 거리에서 끄리스나의 다르샨을 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 신자는 뉴욕의 전차 축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퍼레이드로 5번가(Fifth Avenue)만한 곳은 없습니다. 그곳은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거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카트를 집으로 끌고 가기 위해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로 갔을 때, 퍼레이드가 끝나고 몇 시간이 지난 후인데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직 그곳에 노래를 부르며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집에서 나오며, 술집에서 나오며 “하레 크리슈나”를 외쳤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간나타신이 자신들에게 미소를 짓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내가 단언컨데, 처음에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그들이 25년간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그리고 나서는 유리에 금이 가는 것처럼 갑자기, 얼굴 전체가 단 몇 분간의 결합에 의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힌두교에서 여신은 많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르바티(쉬바의 아내), 락스미 또는 부 데비(비스누의 아내), 두르가 또는 깔리, 샥티(“힘”을 의미) 등등. 그녀가 기도에서 제일 자주 불려지는 이름은 마(Ma), “어머니”입니다. 여신의 주요 축제는 두르가 푸자로, 이 축제는 “나바라트리”라고도 불리는데, 이 축제가 “아홉 밤” 동안 열리기 때문입니다. 마, 즉 어머니는 힌두교 공동체에서 여신의 능력을 현현하고 살아가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힌두 전통에서 여신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쉬바의 아내 파르바티(Parvati)이고, 비스누의 아내 락슈미(Lakshmi) 또는 부 데비 (Bhu Devi)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라는 그녀의 역할은 거의 완전히 사라지고, 그녀는 독자적으로 “두르가”(Durga)나 또는 “칼리”(Kali)라 불리는데, 이 때 그녀의 많은 팔과 많은 손에는 남성 신들의 무기들이 들려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제일 보편적인 이름은 단순히 “마”(Ma), 즉 어머니입니다.
힌두들은 여성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신의 강력한 존재를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최고의 신 앞에 와서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며 “오,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은 힌두교 전통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미국에서, 어머니 신은 많은 방식으로 경배됩니다. 어머니 신의 주요 축제는 두르가 여신의 이름을 따서 “두르가 푸자”(Durga Puja)라 불립니다. 이 축제는 “아홉 밤”에 걸쳐 계속되며 “나바라트리”(Navaratri)라 불리기도 합니다. 인도와 미국에서 이 시기 동안 여신의 아름다운 신상들이 만들어지고 경배됩니다. 이 형상들은 오직 축제 기간에만 사용되도록 만들어지고 봉헌된 임시 신상들입니다. 뉴저지의 에디슨(Edison)에서 열리는 두르가 뿌자는 미국에서 제일 큰 종교 축제 중 하나로 유명합니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래리턴 컨벤션 센터(Raritan Convention Center)에 세워진 거대한 천막들로 모여듭니다. 4주 동안 매 주말에 그들은 여신을 경배하고 전통적인 “막대기 춤”(garba, 막대기를 들고 추는 춤)을 춥니다.
여신의 존재와 능력을 구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여성들도 있는데, 이들도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마”(Ma)라고 불립니다. 예를 들어, 어느 베단타(Vedanta) 협회 사원에서나 우리는 성 라마크리슈나(Saint Ramakrishna)의 부인인 사라다 데비(Sarada Devi)의 형상을 볼 수 있는데, 그녀는 여신의 현현이라 여겨졌던 사람입니다. 현대에도 온 세계와 미국에서 추종자들을 만드는 많은 “마”들이 있습니다. 롱 아일랜드의 햄스테드(Hampstead)에서 구루 마아(Maa)는 신성한 어머니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스승이자 종교 지도자로, 그녀의 공동체 회원들은 그녀의 조언과 은총을 받기 위해서 그녀를 찾아갑니다. 플로리다의 아슈람(Ashram) 공동체의 마 자야 사티 바가바티(Ma Jaya Sati Bhagavati)도 마찬가지로 여신이 현현한 존재로서 그녀의 추종자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마 자야와 구루 마아 둘 다 신들에게 푸자를 행하는데, 특히 하누만, 쉬바, 데비에게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임에서 이 두 여성은 여신의 강력한 존재를 불러오고, 그렇게 함으로써 숭배를 받습니다.
미국에서 순회하는 “마”들 중의 한 명은 인도 케랄라(Kerala) 출신의 마타 암리타난다마이 (Mata Maritanandamayi)입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의 샌 라몬(San Ramon)에 아쉬람 공동체를 가지고 있고 미국 전역에 그녀의 추종자들로 구성된 많은 지역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신적 어머니의 보편적 현현”으로 여깁니다. 그녀는 여름에 주로 미국을 방문하는데, 그녀가 미국을 방문할 때 유럽계 미국인들과 인도 이민자들로 구성된 수백 명의 추종자들이 그녀와 함께 지내기 위해 모여듭니다. 그녀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은 종교적 바잔(bhajan)을 부르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다르샨을 받기 위해 종종 오랫동안 줄을 지어 앉아있는데, 그녀의 다르샨은 포옹과 축복을 내리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녀는 종종 “포옹하는 성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암마”(Amma) 또는 “암마치”(Ammachi)라 부르는데, 이 두 단어 모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데비 바바”(Devi Bhava)라 불리는 특정한 종류의 다르샨에서 그녀는 의상과 영혼 모두 여신의 현현으로 나타난다. 마이애미 지역에서 온 그녀의 추종자 중 한 명은 케랄라 출신의 이민자로 암마치를 만나러 멀리 뉴욕까지 왔는데, 그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암마치와는 언어 장벽도, 종교 장벽도 없습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아들과 딸이라고 불러요. 사람들이 그녀를 한 번 만나면,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머리를 그녀의 무릎에 놓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그 사람들을 어떤 언어로건, 모든 언어로 이해합니다. 암마치는 신의 현현이에요. 지금 그녀는 어머니의 형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파나야나는 주로 소년들을 위한 힌두교 통과 의례로 그들이 베다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고 전통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의례 중간에, 소년들은 전통적인 특별한 옷을 받는데, 이 옷은 종종 하얀색 실크로 된 새 도띠입니다. 보태어 소년들은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팔 아래로 매는 줄 모양의 “성스러운 실”도 받는다. 이것들은 소년들이 베다를 배우고 공부하며 제사 의식을 행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뉴저지의 브릿지워터(Bridgewater)에 있는 쉬리 벤카테쉬와라(Sri Venkateswara) 힌두교 사원의 일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쉬리다르(Shridhar)와 테자스(Tejas)는 3천년이 넘도록 힌두교 소년들의 귀에 속삭여진 성스러운 만트라를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가야트리 만트라”(gayatri mantra)라 불리는 것으로 내용은 “창조주 태양의 가장 뛰어난 빛에 대해 명상합시다. 부디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안내하고 깨닫게 해 주시길”. 이 만뜨라를 받는 것은 “우파나야나”(upanayana)라 불리는 종교 교육에 입문하는 특별한 의식의 정점입니다. 이 의식에서 소년들은 스승인 구루에게로 가르침을 받으러 인도됩니다. 이것은 베다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 탄생 의식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소년과 소녀들 모두 우파나야나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난 2500년간 이 의식은 우선적으로 남자 아이들을 위한 의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는 여자 아이들도 다시 우파나야나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쉬리 벤카테쉬와라 사원의 커다란 강당은 두 소년의 친족과 친구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 통과 의례의 첫 번째 단계에서 12살인 쉬리다르와 8살인 떼자스는 그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합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진짜로 남자 아이가 집을 떠나 구루와 공부를 하고 남자들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전 아이로서 어머니와 하는 마지막 식사였을 것입니다. 여기 브릿지워터에서는 이 마지막 식사는 종이 접시에 담긴 쌀 시리얼과 커리로 된 아침 식사로, 가족들이 모든 손님들과 함께 먹습니다.
의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에 앞서 소년들과 가족들은 홀을 가로질러 성소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바닥에 완전히 엎드려서 비스누신에게 그들의 경의를 표합니다. 그곳에서 소년들은 꽃 화환을 목에 걸고 머리카락 조금을 잘라내는데, 이것은 인도의 전통적인 우파나야나 의식에서는 머리를 다 깍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시 홀로 돌아와 소년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성스러운 불이 밝혀진 강연장의 앞에 설치된 대에 올라앉습니다. 구루는 불에 기름을 부으며 만트라를 암송하고 불꽃을 밝게 빛나게 합니다. 그리고 나면 의식이 시작되고 소년들이 성스러운 배움의 삶을 위하여 옷을 입는데, 이 옷들은 그들이 제자의 삶을 사는 기간 동안 입을 특별한 옷입니다. 구루와 아버지가 각 소년의 허리에 하얀색 새 실크 도띠를 둘러줍니다. 가장 중요하게, 소년들은 “성스러운 실”을 받아서, 그것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팔 아래로 내려뜨려 맵니다. 이것은 베다를 공부하고 많은 제사 의식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소년들은 그 실을 학생일 때, 그리고 나중에 가장이 되었을 때까지 평생 매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각 소년은 돌로 된 판에 올라가는데, 이것은 배움의 삶에 반드시 있어야할 굳건한 결심을 상징합니다.
의식은 성스러운 가야트리 만트라를 소년들에게 줄 때 정점에 달합니다. 이 만트라는 태양에게 깨달음을 주는 빛을 기원하는 것으로, 매일 암송해야만 합니다. 이 재탄생의 의식에서, 어머니, 아버지, 구루, 그리고 아들은 흰색 실크 덮개 아래로 모두 모여 앉습니다. 이때 성스러운 어구가 소년에게 가르쳐지고, 소년은 입문자로서 처음으로 그 어구를 욉니다.
우파나야나의 마지막 의례는 어린 소년들이 그들의 가족과 새롭게 가지는 관계를 표현합니다. 새로 입문한 브라흐마차리(Brahmachari), 성스러운 학문을 배우는 자는 탁발 그릇을 가지고 그들의 어머니에게로 가서 먹을 것을 보시해 달라고 합니다. 그들의 어머니들과 가족의 모든 여성들은 과일과 쌀을 가득 담아줍니다.
오늘날 우파나야나는 학생으로서의 고행의 삶을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파나야나는 성스러운 지식과 전통을 배우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조상의 전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파나야나는 많은 힌두교도들의 삶의 과정을 만드는 통과 의례인 상스카라(samskara) 중의 하나입니다. 상스카라에는 교육, 결혼, 노년의 완성을 위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의식을 치를 때, 힌두들은 인간 삶의 모든 단계에서 꽃피워야 할 성스러움을 강력하게 만들어냅니다.
집안에서 행해지는 힌두교 의식은 아주 다양하지만, 가정의 제단은 미국의 힌두교 가정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가정 제단은 경전을 공부하고, 푸자(puja)를 행하며, 작은 힌두교 모임을 가지거나 축일이나 결혼과 같은 특별한 행사들을 축하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힌두교 전통이란 한 집안의 전통이기에, 가정 제단은 힌두교 집안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메사추세츠 웰슬리(Wellesley, Massachusetts)의 교외에 있는 한 집안에서, 힌두교 여성이 집안의 중심부이자 그녀가 일하는 곳인 부엌에 있는 커다란 장을 제단으로 만들어 그곳에 발라지(Balaji)와 다른 신들을 모셨습니다. 피츠버그에서는 신실한 부부가 부엌에서 이어지는 별도의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이 별도의 가정 성소로 통하는 곳에 놓기 위해 신들의 형상이 새겨진 나무로 된 문들을 남인도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매일 이곳에서 기도를 하며 몇 분을 보냅니다. 루이스빌(Louiusville)의 한 생화학자와 그의 아내는 가족들이 사는 공간과 분리된 지하의 벽장을 가정 제단으로 만들었습니다. 많은 가정에서는 거실에 작은 제단 탁자가 놓여있을 것입니다.
집의 거실에서 경전을 공부하고 바잔(bhajan, 힌두 찬송가)을 노래하는 것은 여전히 힌두교 생활의 제일 중요한 보편적인 표현 방식의 하나입니다. 몇몇의 경우에는, 매우 신실한 사람―아주 자주 여성인데―의 가정 제단이 소규모 비공식적인 신도들의 모임을 갖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가정 제단에서 여성은 영적인 지도자와 사제의 역할 둘 다를 담당합니다.
가정 제단에서 행해지는 힌두교 의식은 힌두교 전통만큼이나 다양합니다. 힌두교도는 아침과 저녁에 소박한 기름 램프에 불을 붙여 락슈미(Lakshmi) 여신의 상서로운 현존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향을 피우고 푸자(puja), 즉 신에게 신선한 꽃을 바치거나 가족이 모시는 스승의 사진을 꽃으로 장식하는 의식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짧은 기도를 위해 잠시 멈추거나 반시간 정도 명상을 하기도 합니다. 마이애미에 있는 쉬바-비스누 사원의 한 독실한 신자는 그의 일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씻고, 기름 램프를 밝히고 기도를 합니다. 가끔씩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에 가족 전체가 모입니다. 집에서 매일 신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가정 제단의 중요성입니다.”
어떤 가정 제단들은 축일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나바라트리(Navaratri) 기간 동안 남인도의 많은 힌두 여성들은 작은 색 전등과 신, 구루, 사람, 동물, 집, 차, 기차 등의 아주 많은 작은 형상들로 가정 제단을 장식하며 꾸밉니다. 이 축제의 제일 중요한 날들 중 하나는 사라스바티 푸자(Saraswati Puja)인데, 학문의 여신이 집으로 초대되는 날입니다. 이때 사라스바티 여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학교 교재들을 제단에 쌓아 놓습니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집에서 행해지던 제사 의식들이 일반적으로 사원에서 행해집니다. 우파나야나(upanayana) 의식과 결혼 의식이 여기에 속합니다. 힌두교 공동체들이 흩어져있고 사제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사원은 힌두교도의 삶에서 점차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원들이 큰 부엌과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원 공동체의 삶이 갖는 새로운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제단은 아직도 많은 미국 힌두교 가정의 사적인 신앙생활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원을 세우는 것은 자신들의 아이와 손자, 손녀들이 힌두교의 가르침과 가치를 알기를 원하는 미국 이민 1세대 힌두교도들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비록 사원을 세울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난제이기는 하지만, 힌두교 공동체들은 접근 용이성(고속도로 근처)와 자연의 아름다움(언덕 기슭이나 꼭대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인도에서 자라면서 우리는 힌두교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힌두교 전통과 사원은 도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민 첫 세대인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 전통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사원을 건립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테네시주의 힌두 문화 센터(Hindu Cultural Center of Tennessee)의 창립자 중의 한 명인 B. N. 소마야지 박사(Dr. B.N. Somayaji)의 이 말은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 사는 힌두교 이민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어 왔습니다. 25년 동안, 이민 첫 세대에 의해 스물네 개가 넘는 주요 힌두교 사원들이 완전히 건립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의 힌두교 공동체들은 축일에 사람들의 집에서 만나는 비공식적인 작은 모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공동체가 커짐에 따라, 그들은 더 정기적인 모임과 축제를 위해 장소를 빌렸습니다. 피츠버그 식료품 가게의 지하, 보스톤의 니덤 빌리지 클럽(Needham Village Club), 내쉬빌의 유니태리안 유니버설리스트 교회(Unitarian Universalist Church)와 같은 장소가 그에 속합니다. 일반적으로 열성적인 핵심 멤버들로 구성된 힌두 사원 협회(Hindu Temple Society)를 구성하는 것이 사원을 건립하는 첫 번째 단계였습니다.
사원을 지을 적합한 장소를 찾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아름다울 뿐더러 동시에 고속도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들이 많이 선택되었습니다. 피츠버그의 두 사원은 언덕 꼭대기의 장소를 선택하였습니다. 로스앤젤러스 공동체는 말리부 해안가의 언덕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선택했습니다. 시카고 공동체는 러몬(Lemont) 근교에 있는 언덕 꼭대기에 라마에게 바치는 사원을 짓기 전에 서른 개가 넘는 장소를 보러 다녔습니다. 내쉬빌의 힌두교도들은 벨뷰(Bellevue) 교외의 언덕 비탈에 있는 장소를 사서 사원이 정확히 동쪽을 향할 수 있도록 언덕 비탈의 중간 지점에 사원을 세웠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사원전들, 특히 남인도 스타일로 만들어진 것들은 “스타파띠”(sthapati)라 불리는 힌두교의 제의 건축가들에 의해 디자인되었습니다. 힌두교 사원들은 우주 전체를 이 지구상에 재현한 축소판으로 데바라야(devalaya), “신의 처소”라 불립니다. 사원은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원의 비율은 성스러운 균형에 따라 설계되며, 사원의 부분들은 상징적으로 신의 몸에 해당합니다. 남인도 스타일의 사원은 돔 모양의 둥근 지붕이 신들의 성소 위로 솟아올라 있습니다. 종종 “고푸람”(gopuram)이라 불리는, 높고 장식이 된 탑 모양의 문이 사원 입구 위에 세워지기도 합니다. 제의 건축가들은 『쉴파 샤스트라』(Shilpa Shastra)라 불리는 힌두교 텍스트에 따라 사원들을 디자인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 종교적인 공간들은 미국 건축사 사무소에서 설계도로 만들어집니다.
첫 번째 제사 의식은 부미 푸자(bhumi puja)로 땅에게 경배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동체 일원들이 사원이 지어질 새로운 장소에 처음 모일 때에 행해질 수 있습니다. 이 장소에서 처음 땅을 파기 시작할 때에는 바스투 푸자(vastu puja)가 행해집니다. 이 의식에서, 사원의 제의적 공간들이 나뉘어지고, 상징적인 주춧돌이 놓여집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사원들은 단계에 따라 건설됩니다. 맨 처음에, 건물은 그저 시멘트 덩어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신들의 주요 성소 위로 올라온 탑(vimana)들도 처음에는 시멘트로 된 계단이 있는 굴뚝처럼 보입니다. 힌두교 사원의 고유한 특성을 구성하도록 벽돌을 만들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장식을 하고, 정교한 조각을 하는 것은 인도 출신의, “쉴피”(shilpi)라 불리는 장인들의 몫입니다. 결국, 사원의 외부 전체는 신들과 장식적인 상징물들로 생생하게 살아 숨쉽니다. 마지막으로, 사원은 흰색 페인트로 칠해집니다. 어떤 사원들에는 마지막으로 사원의 주 출입구 위에 “왕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라자고푸람(rajagopuram)이 세워지기도 합니다.
미국의 힌두교 사원들에는 공동체를 위한 넓은 부엌과 식당이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성소가 모두 완성되면, 결혼식, 춤, 음악을 위한 강당과 회관을 짓습니다. 이 건물들을 짓는 활동에 들어가는 노력들은 미국의 도시에 사는 힌두교도 사이에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기여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에서 사원을 지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만약 그들이 인도에 있었다면, 사원의 활동적인 후원자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들은 직업 때문에 미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은 스스로를 세속적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며, 그들이 여기 미국에서 힌두교 사원 공동체와 같이 일하게 되면서 훨씬 더 종교적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예외 없이, 사원을 짓는 사람들은 제의 건축가와 사원의 모습에 대하여 토론하고, 공동체와 함께 계획을 짜며, 심지어는 건설을 감독하는 데에 긴 시간을 보냅니다.
사원은 미국의 힌두교 공동체가 소중한 전통을 계승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전통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시카고 지역에 사는 한 여인은 광역 시카고(Greater Chicago)에 힌두교 사원이 건립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사원을 짓고 헌당하는 것은 우리의 종교를 우리 자신들에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에게 이해시키고 설명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사원과 사원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역시 우리에게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전해 받은 전통을 이국에서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우리 종교가 가지고 있는 내적이고 사색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최소로 줄이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종교 의식을 경험하는 것의 가치를 인정해야만 하는데, 특히 인도에서의 경험에 대한 기억에 기댈 수 없는 이민 2세대와 3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사원은 우리가 전통을 기억하고 동시에 그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쿰바비셰캄(Kumbhabhishekam)은 힌두교 사원을 헌당하는 제사 의식으로 물항아리(kumbha)에 담긴 신성한 물을 사원에 뿌리는 것(abhishekam)입니다. 헌당 의식은 가네샤신을 경배하고 땅에 기도를 하는 것(bhumi puja)으로 시작해서 수일 동안 계속됩니다. 주요 제의는 사원 근처에 세워진 커다란 천막에서 행해지는데, 불의 제단 의식과, 말(word)과 공물을 바치는 것, 마무리 의식인 푸르나후티(purnahuti)로 이루어집니다.
사원 헌당식은 “쿰바비셰캄”(Kumbhabhishekam)이라 불립니다. 이 무지막지하게 보이는 단어는 “물항아리”(kumbha)에 담긴 성스러운 물을 사원에 “뿌리는”(abhishekam)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 건축된 사원의 일대기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원 헌당식은 특히 미국에서 새 사원을 지은 많은 인도 공동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매해 그들은 이 날을 사원의 주요 축제 중의 하나로 기념합니다.
사원 헌당 제사 의식은 몇 일 동안 계속됩니다. 첫 번째 제사는 시작의 신이자 장애물을 제거하는 신인 가네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입니다. 이때 새 건물을 보호하고 축복해 달라고 땅에게 기도(bhumi puja)를 올릴 수도 있습니다. 사제들은 제사 의식에 앞서 손목에 축복과 보호를 상징하는 실(raksha bandhanam)을 두릅니다. 가끔씩은 곡식을 심고 싹을 피워 제사 의식이 좋은 결실을 가지고 올 수 있도록 기원하기도 합니다.
가장 주된 제사는 새 사원 근처에 세워진 커다란 천막에서 행해집니다. 이 천막은 야즈냐샬라(yajnashala), “불을 바치는 제사의 전당”이 되는데, 여기에서 이 제사를 위해 만들어진 벽돌로 된 불의 제단에서 인상적인 헌당 의식이 행해집니다. 불의 제단들 주변에는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들이 후원한 동으로 된 항아리들인 꿈바들이 놓입니다. 꿈바에는 갠지스 강의 물이나, 종종 미주리 강이나 미시시피 강과 같은 미국 강들의 물로 채워집니다. 쌀을 깔아 만든 바닥에 항아리들을 놓고 각 항아리 맨 위에 망고잎과 코코넛을 놓는데, 이는 아주 인상적인 모습입니다.
벽돌로 된 불의 제단에는 제사를 집전하는 브라흐만 사제들이나 아차리야(acharya, 학식이 있는 자들)들이 둘러앉아 불을 피우고 제물을 바치며 불에 헌액을 뿌립니다. 이들은 만트라와 경전을 암송하며 불의 제단과 물 항아리들이 축성받을 수 있도록 신의 현현을 불러냅니다. 바로 이 강력한 단어들인 만트라를 통해 신이 그곳에 와서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근원 만트라”(mula mantra)들은 사원에 자리 잡은 각각의 신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원 헌당을 위해 만뜨라와 찬가들을 암송하는 것은 종종 몇 시간 동안 계속되며, 이것은 젊은 미국인들에게 사제들이 보존하고 있는 성스러운 기억의 전통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말로 된 만트라를 바치는 것과 함께, 곡물, 꽃, 향료, 꿀,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바쳐집니다. 이 공물들은 종종 인도의 전통 식용유인 기(ghee) 대신에 사용되는 식물성 기름과 함께 불꽃 안으로 던져집니다. 공물이 다 바쳐지고 만트라 암송이 끝나면, 사제와 공동체 일원들은 제사의 마지막 의식인 푸르나후티(purnahuti)를 하기 위해 일어섭니다. 그들은 함께 『이샤 우파니샤드』(Isha Upanishad)에 나오는 오래된 기도를 암송하며 제사가 완전해지는 것, 즉 영원한 브라흐만이 완성되는 것을 기원합니다.
사원 헌당 제사 의식은 신들의 주요 형상인 무르띠들을 신에게 바치는 제의를 포함합니다. 제사의 마지막에, 사제들은 제일 큰 쿰바를 머리에 지고 사원을 도는 축하 행진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유압식 승강기를 타고 사원의 지붕에 올라가 사원의 둥근 지붕과 그 아래에 모여 있는 열렬한 대중들에게 봉헌의 물을 뿌립니다.
힌두교에서 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그들이 상상하는 신의 모습에 따라 돌을 조각하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많은 제사 의식이 단계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돌을 성스러운 물로 씻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신의 눈을 만들어 숨을 불어넣는 의식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사원에 있는 돌로 만들어진 힌두교 신들의 형상은 인도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흰색 대리석으로 된 형상들은 보통 인도 북부 라자스탄(Rajasthan)주 자이푸르(Jaipur)에 있는 예술가 정착촌에서 만들어지고, 검은 화강암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Tamilnadu)주의 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의 공작소에서 만들어집니다. 흰색 대리석으로 된 것이건 아니면 검은 화강함으로 된 것이건, 돌들은 제의 건축가들이 신경 써서 선택하고 그들이 조각할 돌판들을 일일이 재고 표시합니다. 이 과정은 돌 안에 숨겨져 있는 신의 형상을 밖으로 꺼내는 것입니다. 신의 형상들이 커다란 나무 상자에 담겨 뉴저지나 갤버스턴(Galveston)의 부두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이 형상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며 사원으로 가져갑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완전히 축성을 받기 전까지는 돌에 불과합니다.
돌로 된 형상을 신의 현현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한 제의 과정입니다. 이 제사 의식을 실행하는 것은 사원 자체에 대해 그리고 사원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린 것에 대해 힌두들이 영원히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을 함의하는 주요한 한 걸음이 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에 한 공동체가 아직 신들에게 봉헌을 하지 않았다면, 사제는 그들이 모였을 때 신을 불러오는 기도를 해서 예배의 시간동안 신이 그곳에 존재하고 예배가 끝나면 떠날 것을 허락할 수 있습니다. 힌두교도들이 사원을 짓고, 봉헌의식을 마치고 나면, 신의 형상은 영원한 신의 존재로 채워질 것입니다. 이 일이 마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간에 사제는 사원에서 살면서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신에게 경배를 올리고 찬양을 하며 응대하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
사원이 “성스러운 물을 뿌리는” 쿰바비셰캄의 의식을 통해 봉헌되듯이, 신상들도 마찬가지 과정을 밟습니다. 성스러운 불들이 밝혀지고 신의 현존이 불과 물항아리들로 호출됩니다. 그러는 동안, 신상은 축성을 받기 위해 정화됩니다. 신상은 커다란 통 안에 넣어져 하루 밤은 물에 잠겨있고, 그다음 밤에는 곡식에 담겨있고, 그다음 밤에는 꽃잎들에 잠겨 있게 됩니다. 이 축성 기간 동안 사원의 평신도들은 그 신상을 제의적으로 목욕을 시킬 수도 있는데, 이것이 사제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신의 형상에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첫 번째이자 유일한 기회입니다.
신의 현현화 과정에는 항상 눈을 여는 것과 숨을 불어넣는 두 개의 제사 의식이 중요합니다. 개안(開眼) 의식에서 조각가는 화강암으로 된 형상에 눈의 동공을 조각하는데, 이는 종교 의례적으로 신의 눈을 여는 것입니다. 힌두교 숭배에서는 다르샨(darshan)이라는 용어가 중심적인데, 문자 그대로 신의 형상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르샨을 위해 사원에 갑니다. 신의 형상을 보고 그리고 반대로 신이 그들을 보는 것입니다. 신의 첫 번째 응시는 극도로 강력해서 인간은 신의 눈빛의 충격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해집니다. 그래서, 신의 눈이 떠질 때, 사제는 신의 얼굴 앞에 거울을 놓아 첫 번째 눈빛이 다시 그 형상으로 비춰지게 합니다. 신들의 다르샨을 위해 처음으로 성소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신의 형상을 거울을 통해서 보고, 그리고 나서 신의 얼굴을 직접 보라고 가르쳐집니다.
눈이 새롭게 열렸을 때, 사제는 암소를 성소로 데리고 들어가 신의 눈빛의 첫 번째 상서로운 대상이 되도록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신의 시야는 상서로운 젊은 처녀들에게 떨어집니다. 보스턴에 있는 사원에서는 그 의례에 참석한 여학생들이 개안 의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프라사드(prashad, 신의 축복)으로 수전 B. 앤써니 은화 달러(Susan B. Anthony silver dollar)를 하나씩 받았습니다.
두 번째 의식은 “숨을 불어넣는”(prama pratishtha)의식입니다. 일반적으로, 봉헌 의식 전체가 신상에 신의 숨결을 불어넣는 의식입니다. 그러나 보다 좁은 의미에서, 이 제의는 행사의 마지막 날, 신상이 내실로 옮겨진 다음에 실시됩니다. 신의 현현은 바깥에 있는 불의 제단에서 기도를 함에 따라 소환되고, 신의 능력은 불의 제단에서 형상까지 이어진 은이나 금으로 된 실을 통해 전파됩니다. 일단 제사를 통해 신의 숨과 눈이 만들어지고 나면, 이제 돌로 된 형상은 신의 숨과 눈빛을 가진 존재로서 사람들의 경배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생명을 불어넣는 정교한 제의의 정점은 암송된 만뜨라의 힘을 가지고 있는 꿈바에 있는 물을 형상들 위로 쏟아 붓는 것입니다. 이 물과 함께, 사제들은 많은 양의 우유와 정제된 꿀과 요거트와 백단향 반죽을 쏟아 붓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의례적 목욕”, 아비셰캄(abhishekam)인데 이후부터는 매주 치러질 것입니다.
물론 힌두교에서 신은 돌로 된 형상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힌두들은 최상의 존재인 신이 은혜롭게도 힌두교 가족들과 공동체의 세상에 아주 가깝게 있고자 신상 안으로 내려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축성을 받은 신상들은 신에게로 열리는 창문이 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하는 제사와 공양은 자신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에게 그들이 바치는 접대와 경배와 찬양의 기술을 배양하고 다듬을 수 있게 합니다.
푸자(puja)에서 바쳐지는 공양물들은 우주의 다섯 개의 요소를 나타냅니다. (향이 나는 백단향 반죽으로 표현되는) 흙, 물, (만뜨라와 찬가로 표현되는) 공간, (부는 바람으로 움직이는 공기에 의해 표현되는) 바람, (기름 램프로 표현되는) 불입니다. 기도와 사제의 봉헌 의식 후에, 이 요소들은 경배자들에게 나누어집니다.
사원에서든 가정의 성소에서든, 힌두교 예배는 신에게 다양하고 감각적인 제물들을 연이어 바치고, 보답으로 신이 사람들에게 은총을 내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예배를 의미하는 제일 일반적인 용어는 “푸자”(puja)인데, 미국의 사원에서는 일주일 중에서 특정한 시간에 다양한 신에게 온전한 푸자를 행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뿌자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부부로, 아니면 가족과 친구로 이루어진 작은 모임으로 올 때에 바쳐집니다.
일리노이의 러몬(Lemont)의 언덕 위에 있는, 광역 시카고의 힌두교 사원에서 한 사제가 뿌자에서 신에게 바쳐진 공물을 설명합니다. 공물들은 우주의 다섯 개의 요소인 흙, 물, 공간, 바람, 불을 나타냅니다. 땅과 땅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은 향이나는 백단향 반죽과 과일과 꽃으로 바쳐집니다. 물은 마시고 목욕하기 위해 바쳐집니다. 공간은 만뜨라와 찬가, 종소리로 채워집니다. 공기 또는 바람은 신의 형상 앞에서 은은히 퍼지는 향으로 제공됩니다. 마지막으로, 불은 “아라티”(arati)라 불리는 기름 램프의 형태로 바쳐집니다. 이 마지막 공물은 신의 얼굴과 신체의 각 부분을 밝히기 위해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둥글게 움직여집니다. 램프 공물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아라티”라는 용어는 더 일반적으로 숭배 의식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선물들은 그것을 바친 사람들에게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진 축복은 신의 “은총”을 의미하는 “프라사드”(prashad)라 불립니다. 사제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신에게 바쳐졌던 물을 나누어줍니다. 그는 컵모양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물을 조금씩 나누어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감사히 마십니다. 손바닥에 남아있는 물방울로는 이마와 눈, 또는 머리를 만집니다. 사제는 경배자들에게 신에게 바쳐졌던 바나나, 꽃, 사과 등을 나누어줍니다. 이것들도 역시 프라사드, 신의 은총 있는 선물로 여겨집니다. 마지막으로, 사제는 경배자들에게 신의 얼굴을 비추었던 기름 램프를 제공합니다. 그가 램프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오갈 때, 사람들은 램프의 불꽃에 손을 갖다 대어 불꽃의 은총이 자신에게로 오게 합니다.
힌두교 경배는 일반적으로 여럿이 모여서 하는 것이 아니지만, 특히 아비셰카(abhisheka), 즉 신들 중 하나를 목욕시키는 의례 행사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입니다. 미국의 많은 사원에서는 중요한 신들의 아비셰카 의식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행해지는데, 이는 미국에서는 “주말” 일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교한 의식에서는 신의 형상들을 물, 강황, 꿀, 요거트, 우유로 목욕시킵니다. 신들이 옷을 입고 장식이 되는 동안에는 내소에 커튼을 칩니다. 방이 다시 열렸을 때, 사람들은 신과의 상서로운 시선을 통한 접촉, 다르샨을 위해 모여듭니다.
요약: 가네샤는 “시작의 신”과 “장애물 제거자”로 숭배되는 잘 알려진 힌두의 신입니다. 가네샤의 모습은 코끼리 머리를 한 사람으로 표현되는데, 보통 책과 부러진 상아로 만든 펜을 들고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가네샤의 신전은 사원 입구나 사원의 중앙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세워진 최초기 대신전 중 하나가 시작의 신인 가네샤에게 바쳐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사원은 1977년 7월 4일에 뉴욕의 자치시 퀸즈(New York borough of Queens)에 설립되었습니다. 비록 가네샤는 쉬바(Shiva)와 파르바티(Parvati)의 아들로 여겨지지만, 모든 힌두들은—바이스나바(Vaishnava)나 샤이바(Shaiva)나—가네샤를 섬깁니다. 사실, 가네샤는 널리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모든 힌두교 사원들은 가네샤의 형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코끼리 머리를 가진 신은 “시작의 신”이자 “장애물을 제거하는 신”입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 결혼식을 할 때, 모든 제사와 일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그의 축복을 구합니다. 기록의 신으로서, 가네샤는 종종 책을 가지고 다니고 그의 부러진 상아를 펜으로 사용합니다. 학생들은 학년을 시작할 때나 시험이 다가올 때 그에게 예배합니다. 가네샤의 툭 튀어나온 배는 그가 단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는 이동할 때에는 놀랍게도 잰걸음으로 걷는 쥐를 타고 다닙니다.
문지방의 수호자로, 가네샤의 성소는 출입구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퀸즈에서는 그의 신전은 사원의 주요 성소로 경배의 중심에 있고, 신전의 가장자리에는 다른 힌두교 신들의 작은 성소들이 수없이 많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쉬빌에서도 가네샤는 벨뷔(Bellevue) 교외의 언덕 비탈에 세워진 넓은 새 사원의 가운데 성소에 거처합니다. 이 성소의 한쪽 편에는 쉬바에게 바쳐진 여러 개의 신전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비스누에게 바쳐진 신전들이 있습니다. 내쉬빌에 사는 힌두들은 북인도 출신과 남인도 출신과 모든 종파의 전통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있는데, 이들이 가네샤를 그들의 사원 중앙에 놓을 것을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정했습니다.
내쉬빌 사원에서 활동하는 한 여인은 이처럼 설명합니다. “가네샤는 현실적인 의미에서, 또 영적인 의미에서 장애를 제거하는 데에 책임이 있는, 최고 존재의 한 면입니다. 영적인 길에서, 우리의 나약함이나 우리의 에고(ego)가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네샤에게 기도를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그러한 장애물들을 없애는 데에 도움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의 탄생에 대한 신화가 있는데, 어떻게 파르바티 여신이 가네샤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쉬바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가네샤를 침입자라 생각하고 그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쉬바가 자신의 끔찍한 잘못을 알아차렸을 때, 쉬바는 가네샤의 머리를 코끼리의 머리로 대신했습니다. 이것은 이야기일 뿐이지만, 내 생각에는 옛날에 힌두교도들이 길에서 장애물을 제거할 신의 형상을 상상했을 때, 그들이 그러한 형태의 힘이 센 코끼리를 보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가네샤 축제, 가네샤 차투르티(Ganesha Chaturthi)는 여름이 끝나는 무렵에 열립니다. 가네샤 차투르티 기간 동안 많은 사원에서는 진흙으로 가네샤의 형상들을 만들어 축성합니다. 1995년에 마이애미의 플로리다에서 힌두교 사원 협회는 200 파운드 무게의 가네샤 진흙 형상을 만들어 사원의 여신도들이 아주 정교하게 색을 칠했습니다. 거의 2주에 거친 특별한 경배 의식 후에, 가네샤는 그 진흙 형상에서 떠나라고 부탁받았고, 그 형상은 인도에서 그렇게 했을 것처럼 바다에 잠겨 원래의 요소로 돌아갔습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축제 행진에 모여 가네샤의 형상을 화려하게 장식된 평대 트럭에 실어 마이애미 북쪽의 해안으로 가져가 바다에 가라앉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San Francisco Bay Area)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힌두들은 가네샤 차투르티의 마지막에 가네샤 형상을 바다로 가져갈 행렬을 만들었습니다. 축제가 끝나고 나서 그 행렬은 가네샤 형상을 베이커 비치(Baker Beach)로 가져가 바다에 가라앉혔습니다. 1992년에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처음으로 “가네샤 황금문”의 날(Golden Gate Ganesha day)을 공표했습니다.
퀸즈에서 가네샤 차투르티 축제는 9일 동안 계속되는데, 그 기간 동안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원을 방문합니다. 중심에 있는 가네샤 무르티는 꽃과 백단향 반죽과 진주로 정교하게 장식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린이 푸자”가 있어서 그들이 경배도 하고 배울 수도 있도록 합니다. 이 축제의 정점은 라타 야트라(Ratha Yatra), “전차 순례”입니다. 사원에 있는 거대한 화강암 형상의 움직일 수 있는 복제본이 행렬을 위해 사원 밖으로 꺼내집니다. 이것은 라타, 즉 “전차”에 올려지는데, 이 전차는 플러싱(Flushing)의 길거리를 가로지르기 위한 이동용 사원처럼 장식됩니다. 그 외의 날에는 사람들이 가네샤를 보러 사원으로 오는데, 오늘 하루만은 가네샤가 사람들에게 찾아옵니다. 신자들은 백 명씩 신의 전차를 긴 밧줄로 잡아당겨 전차가 움직이는 것을 돕습니다. 행렬이 지나는 길에는 춤과 낭송, 성가 바잔(bhajan) 부르기가 계속됩니다. 이민 첫 세대들에게, 이날은 마치 인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뿌자를 행하고, 가네샤에게 공물을 바치고, 흥분해서 행렬을 따라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이 연례 축제는 그들이 아는 미국의 일부입니다.
비스누는 많은 힌두들에 의해 최고 신으로 숭앙됩니다. 인도에서 제일 인기 있는 비스누 순례지는 안드라 프라데쉬(Andhra Pradesh)주에 있는 쉬리 벤카테쉬와라(Sri Venkateswara)입니다. 이곳에서 비스누는 발라지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피츠버그에 있는 쉬리 벤카테쉬와라 사원은 미국에 세워진 첫 번째 커다란 사원들 중의 하나인데, 여기에 많은 미국 힌두교 순례자들이 찾아와 발라지에게 경배합니다.
피츠버그는 미국에서 첫 번째로 주요한 힌두교의 순례지입니다. 그곳에는, 펜 힐(the Penn Hills) 꼭대기에 사원이 있는데, 친근한 이름으로 “발라지”(Balaji)라 불리기도 합니다. 인도에서 안드라 프라데쉬(Andhra Pradesh)주 남부 티루파티(Tirupati)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쉬리 벤타케쉬와라는 제일 인기 있는 순례지 중의 하나입니다. 발라지는 순례자들이 그의 존재로부터 받는 강력한 축복으로 특히 유명합니다. 미국의 힌두교 이민자들은 인도의 성스러운 지형을 가져와서 발라지를 미국 풍경의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었습니다.
수백만의 힌두교도들이 매년 티루파티를 방문합니다. 사원 건물들을 관리하는 회사인 티루파티 티루말라이 데바스타남스(Tirupati Tirumalai Devasthanams)는 인도에서 제일 부유한 회사 중의 하나입니다. 피츠버그의 사원은 인도의 이 사원의 신탁회사에서 돈을 빌려 설립되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6천 명이 넘는 힌두교도들―이들 중 대다수는 이민 첫 세대인데―이 사원 설립에 힘을 보탰습니다. 1977년 6월에 사원이 헌당식을 마쳤을 때, 이 사원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힌두교 사원이었습니다. 사원의 인기 덕분에―심지어 피츠버그 지역에서 아주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는데―인도 티루파티에 있는 어머니 사원에 진 빚을 단 2년만에 갚을 수 있었습니다.
“쉬리 벤카테쉬와라”(Sri Venkateswara)를 약어로 “S.V. 사원”이라고 하는데, 이 사원은 오늘날 매해 수 만명의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사원은 미국의 휴일과 사흘에 걸친 주말 패턴에 맞추어 종교 행사를 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 방식은 미국에 있는 힌두교 공동체뿐만 아니라, 자이나, 시크(Sikh), 불교 이민 공동체들에게도 공통적인 패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S.V. 사원은 미국에 설립된 다른 사원들의 모델이 되었고, 공동체는 쿰바비셰캄(Kumbhabhishekam)을 위해 사제들을 파견하는 등 다른 사원들을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사원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라즈쉬리 고팔(Mrs. Rajshri Gopal)은 “여기 이 사원에는 우리가 다소 무모하게 꿈꿨던 것보다 더 성공적인 무언가가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 사원은 피츠버그 외의 지역의 사람에게도 인기가 아주 많아요. 시카고, 미시간, 토론토, 뉴욕, 심지어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오지요. 사람들이 휴가를 맞는 여름철에, 피츠버그를 거쳐 가려 하는 것 같아요.”
발라지는 미국의 여러 곳에 거처합니다. 시카고 서부 교외의 오로라(Aurora)에, 켄터키의 루이스빌(Louisville, Kentucky)에, 세인트 루이스(St. Louis) 교외에 발라지 사원이 있습니다. 로스 앤젤러스 바로 북쪽에 있는 칼라바사스(Calabasas)에 있는 말리부 사원(Malibu Temple)은 발라지를 중앙 성소에 모시고 있는 쉬리 벤까떼쉬와라 사원입니다. 사원의 중앙에 있지는 않지만 발라지의 형상은 보스톤의 쉬리 락스미 사원(Sri Lakshmi Temple), 내쉬빌의 가네샤 사원, 그리고 워싱턴 D.C.의 쉬바-비스누 사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발라지의 축복은 미국 전체에서 늘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라마(Rama)와 시타(Sita)와 하누만(Hanuman)은 『라마야나』(Ramayana)에 나오는 신적인 등장인물들입니다. 라마는 정의로운 왕이자 비스누 신의 인간 모습을 한 현현으로 간주되어 숭배되고 찬양됩니다. 라마 나바미(Rama Navami) 축제 동안 라마의 탄생이 축하되고 라마와 시타의 결혼이 재현됩니다. 결혼할 나이의 딸을 둔 가족들이 신성한 결혼식의 후원자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딸이 미래에 좋을 결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미시간의 트로이(Troy)에 있는 바라티야(Bharatiya) 사원에는 매년 열리는 라마신을 경배하는 축제인 라마 나바미(Rama Navami)를 위해 힌두교 공동체가 위해 모입니다. “바라티야”는 “인도의 사원”을 의미하는데, 이 사원이 특정한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힌두교 전체를 아우르는 사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바라띠야는 디트로이트 교외 북부의 나무가 울창한 언덕 기슭에 서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네 개의 거대한 아치모양의 기둥이 카페트가 깔린 성소의 지붕을 지탱하고 있고, 그곳에 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라마야나』(Ramayana)에 나오는 영웅과 여주인공인 “라마와 시타의 결혼”을 위해 모입니다. 라마와 시타의 형상들은 사원의 제단으로 사용되는 높이 올려진 제단에 놓여 있습니다.
라마는 정의로운 왕이자 비스누신의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한 현현으로 간주되어 숭배되고 찬양됩니다. 오늘 라마의 탄생이 경축되며 그와 시타의 결혼이 다시 거행됩니다. 공동체 중의 두 가족이 사제와 함께 제단 근처에 앉아 있는데, 제단 위에는 노란색 실크 도티(dhoti)를 입은 라마와 붉은색 실크 사리(sari)를 입은 시타의 작은 형상들이 있습니다. “선물인 딸”(Kanyadanam)이라 불리는 상서로운 순간이 오면, 사제들은 신도들에게 그 유명한 말인 “나는 내 딸을 결혼의 선물로 준다. 카냐다남 아함 카리셰(Kanyadanam aham karishye).”를 같이 반복하도록 청합니다. 그리고 상서로운 결혼 목걸이인 망갈라 수트라(mangala sutra)를 씨타의 머리 위에 놓습니다. 많은 힌두교도들은 이 목걸이를, 마치 결혼반지처럼 결혼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힌두교도들의 결혼식에서 망갈라 수트라를 주는 것은 라마와 시타의 결혼을 환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여기, 디트로이트 북부 교외에서 결혼 적령기의 딸을 둔 가족들은 일상적으로 이 신의 결혼을 시타의 가족이 되어 후원합니다. 결혼 의식이 끝나면 사제는 교인 모두에게 기도에 동참할 것을 요청합니다. 사제는 “만약 당신의 딸이나 아들이 결혼을 할 것이라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이 좋은 배필을 만나 좋은 결혼의 축복을 받도록 기도하십시오.” 이 기도는 디트로이트에 정착하기를 선택했지만 이것이 그들의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어떤 것을 의미할지 아직 확신이 없는 1세대 인도 이민 부모들에게는 무척 가슴에 와 닿는 기도입니다.
결혼 의식 후에, 공동체는 사원의 강당에 모여 라마와 시타를 경배하기 위한 장기자랑을 본다. 이 중에는 하누만(Hanuman)에게 바치는 것도 있는데, 하누만은 라마에게 제일 헌신하는 하인인 원숭이입니다. 신의 제일 가까운 하인과 헌신자를 통해 경배를 올리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하누만은 라마보다 더 널리, 여러 방식으로 경배됩니다. 하누만은 라마의 제단에 항상 무릎을 꿇은 자세로 함께 있습니다. 트로이에 있는 바라티야 사원에서 힌두교 전통 학교(Hindu Heritage Class)의 중학생 모임이 “하누만이 수퍼맨을 만나다”(Hanuman meets Superman)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제작했습니다. 이 연극 공연은 이 사원의 라마 나바미 문화 행사에서 최고로 인기가 좋았다.
아룬 메타(Arun Mehta)가 멋진 하누만의 의상을 입고, 원숭이 꼬리를 뒤에 늘어뜨리며 등장합니다. 모한 카푸르(Mohan Kapur)는 수퍼맨인데, 가슴에 크고 빨갛고 노란 S자를 달고 온통 파란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Play it cool(쿨하게 하자)”라는 이름의 학생 모임이 마이크 앞에 서서 두 명의 영웅을 보고 있습니다. 모임을 이끄는 학생이, “하누만과 수퍼맨이 정말 뭐가 다르지?”라고 묻습니다.
한 자원봉사자 소녀가 대답합니다. “하누만은 바람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어. 어쨌거나 그는 바람의 아들이야. 그는 씨따를 찾으러 랑카(Lanka) 섬으로 단번에 점프할 수 있어. 그는 전투가 한창일 때 라마의 죽어가는 군대를 위해 치료하는 허브의 산에 가려고 히말라야로 날아갔지.”
“하지만 수퍼맨도 하늘을 빠르게 날 수 있어.” 다른 학생이 말합니다. “‘나는 총알보다 더 빨리’라는 말이 있지.”
“글쎄, 하누만은 놀라운 힘을 가졌어. 아무튼, 그가 어떤 허브를 라마에게 가져가야 할 지 모를 때, 그는 허브의 산 전체를 라마에게 가져갔거든.”
“그래도, 수퍼맨은 정말 놀라워. 그는 높은 빌딩을 한 번에 뛰어올라.”
이들은 하누만과 수퍼맨을 비교하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그 모임 중에서 제일 어린 학생이 까치발로 서서 간신히 마이크 앞에 입을 대고는 외친다. “봐! 나는 수퍼맨에게는 없지만 하누만은 가지고 있는 하나를 알고 있어! 하누만은 심장에 라마신을 가지고 있어!” 그러자 하누만은 무릎을 꿇고 가슴을 열어 그의 심장에 있는 라마와 시타를 보여줍니다. 하누만의 힘보다, 속도보다, 영웅심보다 하누만을 하누만으로 만드는 것은 라마신에 대한 그의 사랑입니다.
라마 나바미 행사가 끝나갑니다. 신의 결혼식이 완성되었습니다. 강당에서의 장기자랑도 막을 내립니다. 이제 공동체는 근처에 있는 식당에 식사를 하기 위해 모입니다. 쌀과 커리, 망고 처트니(mango chutney)와 레몬 피클, 디트로이트 타이거즈(the Detroit Tigers)의 배지가 새겨진 텀블러가 차려집니다.
쉬바 또는 마하데바(Mahadeva)는 최고의 신이며 창조와 파괴의 신입니다. 남성이며 동시에 여성인 몸으로 묘사되는 쉬바는 대부분 돌로 된 단순한 기둥(Shiva linga)의 형태로 경배되는데, 쉬바 링가는 우주의 완전함에 대한 남성-여성의 상징입니다. 쉬바는 또한 다리를 꼬고 앉은 요기의 형태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힌두교 공동체들은 쉬바 경배 의식인 마하 쉬바라트리(Maha shivaratri, 쉬바의 위대한 밤)를 매년 거행합니다.
쉬바는 최고 신입니다. 그는 마하데바(Mahadeva), “위대한 신”, 또는 비쉬바나타(Vishvanatha), “우주의 지배자”라 불립니다. 그는 창조자와 파괴자, 자신에게서 우주를 끌어내고 궁극에는 그것을 다시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는 자로 여겨집니다. 춤의 신 나타라자(Nataraja)로서의 그가 추는 춤의 에너지와 균형은 우주를 뿜어내고 끌어당기는 쉬바의 가차없는 행동의 완벽한 상징입니다. “그”는 때때로 인간의 형상을 한,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한 존재로 표상됩니다. 그의 몸의 오른쪽 반은 남성이고 왼쪽 반은 여성입니다. 추상적인 모습에서도, 링가(linga)라 불리는 단순한 돌 기둥은 완전한 우주의 남성-여성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미국에는 쉬바에게 바쳐진 중앙 성소들을 가지고 있는 사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의 신 쉬바 비쉬바나타를 위한 이름을 가진 까쉬 비쉬바나타(Kashi Vishvanata) 사원은 미시간의 플린트(Flint)에 있습니다. 이 이름은 인도의 성스러운 도시 카쉬(Kashi) 또는 바라나시(Banaras)의 이름을 가져온 것이기도 합니다. 트리니다드의 힌두교도들이 플로리다의 포트 로더데일(Ft. Lauderdale)에 세운 쉬바 만디르(Shiva Mandir)에서는 쉬바를 제단의 제일 중앙 부분에 놓고 그 주변으로 다른 신들의 형상들을 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쉬바는 다리를 꼬고 앉은 요기와 쉬바 링가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사원에는 쉬바에게 바치는 신전이 적어도 한 개는 있는데, 종종 링가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쉬바가 많은 형상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링가는 모든 인간 형상을 초월하는 신을 표시합니다. 전설에 따르자면, 한 번은 신들이 자신들 중에 누가 제일 위대한지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땅이 쫙 갈라지면서 지구 저 아래 밑바닥에서 한 줄기의 빛이 올라와 하늘을 뚫고 제일 높은 곳의 천상 위로 올라갔다. 신들은 그 빛줄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고, 그것의 꼭대기에 닿지도 못했습니다. 마침내, 쉬바가 그 빛으로부터 나타나서 위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빛이 링가가 되었고, 그들은 이 형태로 신의 빛을 숭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하 쉬바라뜨리(Maha Shivaratri), “쉬바의 위대한 밤”은 한 해 중 제일 중요한 쉬바 경축 행사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빛의 링가가 이날 밤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자면, 이 날 밤을 새며 쉬바를 경배하는 사람들은 많은 생에서 지은 죄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뉴욕에 있는 가네샤 사원에서는 쉬바라뜨리 밤에 링가를 씻기고(abhisheka) 장식시키는 온전한 제사 의식을 치르며 밤을 샙니다. 성가의 노래에 맞추어 사제들은 링가에 우유, 요거트, 꿀, 강황 등의 공물을 차례로 하나씩 붓습니다. 긴 의식의 마지막에는 커튼이 닫히고 사제들은 링가를 꽃으로 아주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그리고 이 제일 아름다운 형태로 쉬바신을 사람들이 경배토록 합니다.
보스턴의 쉬리 락스미(Sri Lakshmi) 사원의 힌두교 공동체는 춤의 신인 쉬바에게 “춤을 바치는(Nrityanjali)” 의식을 추가하여 쉬바라뜨리 전통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공동체가 사용하는 공간에는 청동으로 만든 쉬바 나타라자(Shiva Nataraja)의 형상이 제단에 놓여있습니다. 쉬바는 제일 보편적으로는 링가의 형태로 경배되지만, 이곳에서는 불의 주변을 돌며 춤을 추는 무용수로 표현됩니다. 이날 오후에는 어린 소녀들이 쉬바에게 그들의 춤을 바치기 위해 왔습니다. 몇 명은 아직 초보여서 많은 인도 춤의 기초가 되는 목과 어깨와 손목의 움직임을 신 앞에서 연습하고 보여줍니다. 몇 명은 고등학교 학생들인데, 이들은 바랃 나티얌(Bharat Natyam)이라 불리는 춤의 한 형태를 수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네이틱 고등학교(Natick High School)에 다니는 두 자매는 겨우 몇 달 전에 그들의 춤으로 데뷔를 했는데, 이제는 쉬바신 앞에서 그들의 춤을 공물로 올립니다.
춤은 오후 내내 계속됩니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테두리가 쳐진 싸리―핑크색 둘레가 쳐진 녹색 사리, 붉은색 둘레가 있는 베이지 사리(sari)―를 입고 길게 딴 머리를 꽃과 진주가 박힌 핀으로 장식한 젊고, 나이든 수십 명의 무용수들이 계속해서 춤을 춥니다. 이들은 모두 제단으로 다가가 쉬바의 발에 꽃을 우아하게 떨어뜨리면서 춤을 시작하고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그 공간을 메우고 있는 약 이백 명의 기쁜 관중들은 박수를 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이 춤의 날은 공연이 아니라 경배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라타 야트라 (크리슈나신의 “전차 여행”)이라 불리는 크리슈나 축제는 여름에 크리슈나신과 누이 수바드라와 형제 발라람의 형상을 태운, 손으로 만든 크고 다채로운 색상의 전차 행진이 주를 이룹니다. 축제는 도시의 거리에서 크리슈나신의 형상을 “보는” 다르샨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름철 시카고나 덴버의 길거리에서 우리는 갑자기 거대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크리슈나신의 전차가 노래하고 북을 치며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 천천히 흔들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크리슈나신의 축제로 인도 전체에서, 그리고 지금은 미국 전체에서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축제는 자간나타(Jagannatha), “우주의 신”이라 불리는 끄리스나신의 라타 야트라(Ratha Yatra), “전차 여행”입니다. 이 여행에는 크리슈나의 누이 수바드라(Subhadra)와 형제 발라라마(Balarama)가 같이 합니다.
커다란 나무 바퀴를 가진 세 대의 전차는 손으로 직접 만듭니다. “라타”(ratha)라 불리는 전차는 사실 바퀴 위에 있는 사원으로, 밝은 붉은색이나 녹색 실크로 만들어진 뾰족한 첨탑이 전차 사원 위에 뻗쳐 있습니다. 첨탑 아래에 있는 덮개와 받침들 사이에는 크리슈나신과 그의 수행원들의 축제 형상이 놓여 있습니다. 라타 야트라에서 크리슈나신은 사원에서 나와 성소가 아닌 도시의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여행합니다. 그의 전차는 신자들이 길고 두꺼운 밧줄로 급니다. 신의 전차를 끄는 것은 기쁘고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크리슈나의 신도들이 신의 전차를 보스턴의 주의회의사당을 지나 비컨 힐(Beacon Hill) 위로 끌고 올라갈 때, 로스앤젤러스의 베니스 비치(Venice Beach)를, 시카고의 데번 애비뉴(Devon Avenue)를 따라 끌고 갈 때, 그리고 뉴욕의 5번가(Fifth Avenue)를 따라 아래쪽으로 끌고 갈 때, 그들은 참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 라타 야트라의 자간나타 축제는 오리사(Orissa)주의 서부 해안가에 있는 푸리(Puri)에서 행해집니다. 끄리스나의 사원 중 제일 큰 사원이 그곳에 있습니다. 자간나타로서의 크리슈나 형상은 아주 큰 눈과, 미소와, 왕관과 화환을 두른 독특한 블록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 세기 전에, 어떤 왕이 공예가에게 크리슈나의 형상을 나무로 만들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왕은 호기심도 나고 빨리 보고 싶은 열망에 형상이 완성되기 전에 그것을 보려고 문을 열었고, 끄리스나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형상으로 현현했습니다. 끄리스나의 찻잔 같은 커다란 눈은 멀리에서도 보이는데, 이는 다르샨(darshan), 신의 “보는 일”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다르샨은 사람의 눈이 볼 수 있는 것 저 너머에 있는 영광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리슈나는 그가 사랑하는 라다(Radha)를 만나기 위해 무더운 여름의 우기에 매년 이 여행을 합니다. 크리슈나와 라다의 사랑은 신과 각각의 인간과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박티”(bhakti)라 불리는 이 사랑은 남자나 여자가 신을 사랑하는 것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신에 의해 보상을 받는 사랑입니다. 이 전차 여행에서 신은 인간에게로 향하는 동작을 시작합니다. 매해 열리는 자간나타 축제에서 사람들은 거대한 전차들을 뿌리의 주요 도로를 따라 끌고 내려와 2마일 떨어져 있는 도로의 맨 끝에 있는 라다의 정원 사원으로 갑니다. 며칠 후에 크리슈나는 그의 사원으로 돌아갑니다.
푸리의 자간나타 축제에서 사용되는 거대한 전차의 바퀴들은 직경이 3미터가 넘습니다. 수백 명의 신도들이 밧줄에 힘을 실으면, 전차는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푸리의 자간나타 축제는 세계에서 제일 큰 축제 중의 하나입니다. 거대한 전차와 어마어마한 숫자의 참가자들은 인도를 방문한 초기의 서구인들을 놀라게 했고, 아마도 겁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서구 방문자들이 전한 말로부터 영어의 “juggernaut”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는데, 이 단어는 그것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압도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바퀴축 위에서 삐걱거리는 거대한 바퀴들의 동력이 어마어마하기는 하지만, 자간나타 축제의 정신은 기쁨과 헌신입니다.
미국에서 첫 번째 전차 축제는 1967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습니다. 끄리스나 신자들의 첫 번째 공동체는 평상형 트럭에 꽃과 신들의 형상들을 올려놓고 헤이트 애쉬베리(Haight-Ashbury)에서 바닷가까지 갔습니다. 그들은 끄리스나 의식 국제 협회(International Society for Krishna Consciousness)를 창립한 스승인 스와미 A.C. 박티베단타(Swami A.C. Bhaktivedanta)의 학생들과 지지자들이었습니다. 다음 해에 신도들은 실크로 만든 지붕이 있는 카트에 크리슈나를 싣고 골든 게이트 파크(Golden Gate Park)를 통과해 행진했습니다. 해가 지나면서, 카트들은 커다란 전차로 바뀌었고 모이는 사람의 수는 이천 명까지 늘어났습니다. 오늘날 전차 축제는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해마다 열리는 행사입니다. 행진은 수 천 명의 사람들을 끌어 모았고, 행진 뒤에 열리는 장터와 축연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채식주의 음식과 과자를 나누어주는 부스도 있고 『바가받기따』나 환생에 대해 가르치기 위한 포스터들을 가지고 있는 부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라타 야트라는 도시의 거리에서 끄리스나의 다르샨을 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 신자는 뉴욕의 전차 축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퍼레이드로 5번가(Fifth Avenue)만한 곳은 없습니다. 그곳은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거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카트를 집으로 끌고 가기 위해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로 갔을 때, 퍼레이드가 끝나고 몇 시간이 지난 후인데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직 그곳에 노래를 부르며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집에서 나오며, 술집에서 나오며 “하레 크리슈나”를 외쳤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간나타신이 자신들에게 미소를 짓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내가 단언컨데, 처음에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그들이 25년간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그리고 나서는 유리에 금이 가는 것처럼 갑자기, 얼굴 전체가 단 몇 분간의 결합에 의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힌두교에서 여신은 많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르바티(쉬바의 아내), 락스미 또는 부 데비(비스누의 아내), 두르가 또는 깔리, 샥티(“힘”을 의미) 등등. 그녀가 기도에서 제일 자주 불려지는 이름은 마(Ma), “어머니”입니다. 여신의 주요 축제는 두르가 푸자로, 이 축제는 “나바라트리”라고도 불리는데, 이 축제가 “아홉 밤” 동안 열리기 때문입니다. 마, 즉 어머니는 힌두교 공동체에서 여신의 능력을 현현하고 살아가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힌두 전통에서 여신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쉬바의 아내 파르바티(Parvati)이고, 비스누의 아내 락슈미(Lakshmi) 또는 부 데비 (Bhu Devi)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라는 그녀의 역할은 거의 완전히 사라지고, 그녀는 독자적으로 “두르가”(Durga)나 또는 “칼리”(Kali)라 불리는데, 이 때 그녀의 많은 팔과 많은 손에는 남성 신들의 무기들이 들려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제일 보편적인 이름은 단순히 “마”(Ma), 즉 어머니입니다.
힌두들은 여성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신의 강력한 존재를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최고의 신 앞에 와서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며 “오,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은 힌두교 전통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미국에서, 어머니 신은 많은 방식으로 경배됩니다. 어머니 신의 주요 축제는 두르가 여신의 이름을 따서 “두르가 푸자”(Durga Puja)라 불립니다. 이 축제는 “아홉 밤”에 걸쳐 계속되며 “나바라트리”(Navaratri)라 불리기도 합니다. 인도와 미국에서 이 시기 동안 여신의 아름다운 신상들이 만들어지고 경배됩니다. 이 형상들은 오직 축제 기간에만 사용되도록 만들어지고 봉헌된 임시 신상들입니다. 뉴저지의 에디슨(Edison)에서 열리는 두르가 뿌자는 미국에서 제일 큰 종교 축제 중 하나로 유명합니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래리턴 컨벤션 센터(Raritan Convention Center)에 세워진 거대한 천막들로 모여듭니다. 4주 동안 매 주말에 그들은 여신을 경배하고 전통적인 “막대기 춤”(garba, 막대기를 들고 추는 춤)을 춥니다.
여신의 존재와 능력을 구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여성들도 있는데, 이들도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마”(Ma)라고 불립니다. 예를 들어, 어느 베단타(Vedanta) 협회 사원에서나 우리는 성 라마크리슈나(Saint Ramakrishna)의 부인인 사라다 데비(Sarada Devi)의 형상을 볼 수 있는데, 그녀는 여신의 현현이라 여겨졌던 사람입니다. 현대에도 온 세계와 미국에서 추종자들을 만드는 많은 “마”들이 있습니다. 롱 아일랜드의 햄스테드(Hampstead)에서 구루 마아(Maa)는 신성한 어머니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스승이자 종교 지도자로, 그녀의 공동체 회원들은 그녀의 조언과 은총을 받기 위해서 그녀를 찾아갑니다. 플로리다의 아슈람(Ashram) 공동체의 마 자야 사티 바가바티(Ma Jaya Sati Bhagavati)도 마찬가지로 여신이 현현한 존재로서 그녀의 추종자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마 자야와 구루 마아 둘 다 신들에게 푸자를 행하는데, 특히 하누만, 쉬바, 데비에게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임에서 이 두 여성은 여신의 강력한 존재를 불러오고, 그렇게 함으로써 숭배를 받습니다.
미국에서 순회하는 “마”들 중의 한 명은 인도 케랄라(Kerala) 출신의 마타 암리타난다마이 (Mata Maritanandamayi)입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의 샌 라몬(San Ramon)에 아쉬람 공동체를 가지고 있고 미국 전역에 그녀의 추종자들로 구성된 많은 지역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신적 어머니의 보편적 현현”으로 여깁니다. 그녀는 여름에 주로 미국을 방문하는데, 그녀가 미국을 방문할 때 유럽계 미국인들과 인도 이민자들로 구성된 수백 명의 추종자들이 그녀와 함께 지내기 위해 모여듭니다. 그녀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은 종교적 바잔(bhajan)을 부르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다르샨을 받기 위해 종종 오랫동안 줄을 지어 앉아있는데, 그녀의 다르샨은 포옹과 축복을 내리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녀는 종종 “포옹하는 성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암마”(Amma) 또는 “암마치”(Ammachi)라 부르는데, 이 두 단어 모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데비 바바”(Devi Bhava)라 불리는 특정한 종류의 다르샨에서 그녀는 의상과 영혼 모두 여신의 현현으로 나타난다. 마이애미 지역에서 온 그녀의 추종자 중 한 명은 케랄라 출신의 이민자로 암마치를 만나러 멀리 뉴욕까지 왔는데, 그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암마치와는 언어 장벽도, 종교 장벽도 없습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아들과 딸이라고 불러요. 사람들이 그녀를 한 번 만나면,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머리를 그녀의 무릎에 놓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그 사람들을 어떤 언어로건, 모든 언어로 이해합니다. 암마치는 신의 현현이에요. 지금 그녀는 어머니의 형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파나야나는 주로 소년들을 위한 힌두교 통과 의례로 그들이 베다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고 전통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의례 중간에, 소년들은 전통적인 특별한 옷을 받는데, 이 옷은 종종 하얀색 실크로 된 새 도띠입니다. 보태어 소년들은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팔 아래로 매는 줄 모양의 “성스러운 실”도 받는다. 이것들은 소년들이 베다를 배우고 공부하며 제사 의식을 행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뉴저지의 브릿지워터(Bridgewater)에 있는 쉬리 벤카테쉬와라(Sri Venkateswara) 힌두교 사원의 일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쉬리다르(Shridhar)와 테자스(Tejas)는 3천년이 넘도록 힌두교 소년들의 귀에 속삭여진 성스러운 만트라를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가야트리 만트라”(gayatri mantra)라 불리는 것으로 내용은 “창조주 태양의 가장 뛰어난 빛에 대해 명상합시다. 부디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안내하고 깨닫게 해 주시길”. 이 만뜨라를 받는 것은 “우파나야나”(upanayana)라 불리는 종교 교육에 입문하는 특별한 의식의 정점입니다. 이 의식에서 소년들은 스승인 구루에게로 가르침을 받으러 인도됩니다. 이것은 베다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 탄생 의식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소년과 소녀들 모두 우파나야나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난 2500년간 이 의식은 우선적으로 남자 아이들을 위한 의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는 여자 아이들도 다시 우파나야나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쉬리 벤카테쉬와라 사원의 커다란 강당은 두 소년의 친족과 친구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 통과 의례의 첫 번째 단계에서 12살인 쉬리다르와 8살인 떼자스는 그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합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진짜로 남자 아이가 집을 떠나 구루와 공부를 하고 남자들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전 아이로서 어머니와 하는 마지막 식사였을 것입니다. 여기 브릿지워터에서는 이 마지막 식사는 종이 접시에 담긴 쌀 시리얼과 커리로 된 아침 식사로, 가족들이 모든 손님들과 함께 먹습니다.
의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에 앞서 소년들과 가족들은 홀을 가로질러 성소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바닥에 완전히 엎드려서 비스누신에게 그들의 경의를 표합니다. 그곳에서 소년들은 꽃 화환을 목에 걸고 머리카락 조금을 잘라내는데, 이것은 인도의 전통적인 우파나야나 의식에서는 머리를 다 깍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시 홀로 돌아와 소년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성스러운 불이 밝혀진 강연장의 앞에 설치된 대에 올라앉습니다. 구루는 불에 기름을 부으며 만트라를 암송하고 불꽃을 밝게 빛나게 합니다. 그리고 나면 의식이 시작되고 소년들이 성스러운 배움의 삶을 위하여 옷을 입는데, 이 옷들은 그들이 제자의 삶을 사는 기간 동안 입을 특별한 옷입니다. 구루와 아버지가 각 소년의 허리에 하얀색 새 실크 도띠를 둘러줍니다. 가장 중요하게, 소년들은 “성스러운 실”을 받아서, 그것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팔 아래로 내려뜨려 맵니다. 이것은 베다를 공부하고 많은 제사 의식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소년들은 그 실을 학생일 때, 그리고 나중에 가장이 되었을 때까지 평생 매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각 소년은 돌로 된 판에 올라가는데, 이것은 배움의 삶에 반드시 있어야할 굳건한 결심을 상징합니다.
의식은 성스러운 가야트리 만트라를 소년들에게 줄 때 정점에 달합니다. 이 만트라는 태양에게 깨달음을 주는 빛을 기원하는 것으로, 매일 암송해야만 합니다. 이 재탄생의 의식에서, 어머니, 아버지, 구루, 그리고 아들은 흰색 실크 덮개 아래로 모두 모여 앉습니다. 이때 성스러운 어구가 소년에게 가르쳐지고, 소년은 입문자로서 처음으로 그 어구를 욉니다.
우파나야나의 마지막 의례는 어린 소년들이 그들의 가족과 새롭게 가지는 관계를 표현합니다. 새로 입문한 브라흐마차리(Brahmachari), 성스러운 학문을 배우는 자는 탁발 그릇을 가지고 그들의 어머니에게로 가서 먹을 것을 보시해 달라고 합니다. 그들의 어머니들과 가족의 모든 여성들은 과일과 쌀을 가득 담아줍니다.
오늘날 우파나야나는 학생으로서의 고행의 삶을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파나야나는 성스러운 지식과 전통을 배우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조상의 전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파나야나는 많은 힌두교도들의 삶의 과정을 만드는 통과 의례인 상스카라(samskara) 중의 하나입니다. 상스카라에는 교육, 결혼, 노년의 완성을 위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의식을 치를 때, 힌두들은 인간 삶의 모든 단계에서 꽃피워야 할 성스러움을 강력하게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