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힌두교는 인도를 대표하는 민족종교입니다. 인도신화를 기반으로 하며, 오늘날까지 번성하고 있는 유일한 다신교 전통입니다.






힌두 미국인들 1세대와 2세대는 힌두 사원과 힌두 문화를 지속시키는데 있어서 힌두 가치에 대한 세대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많은 사원들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예를 들면, 아이와 부모가 사원에 같이 와서 제물을 어떻게 올리는지를 배우는 “어린이 푸자”, 여름 캠프, 청년 토론회, 춤과 언어 수업들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힌두교 사원 중 몇몇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들로 꼽힙니다. 사원의 제사 의식은 정교하고 미적으로 아름다운 푸자와 아비셰카로 꾸며지며, 인도에서 온 사제들이 주관합니다. 특별한 축제들은 종종 며칠 동안 계속되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의 리버모어(Livermore)에 있는 커다란 힌두교 사원 설립자 중의 한명은 “우리가 이것을 한 주된 이유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모든 힌두교 사원 설립자들은 그와 똑같이 말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집 바깥의 사회에 나가게 되는 순간부터 많은 미국의 힌두 부모들은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힌두 정체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다음 세대들을 위한 교육 자료와 기회들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아름다운 사원들을 지을 때에도, 그들은 “아이들이 자랐을 때, 이 위대한 사원들은 어떻게 될까?”라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민 2세대가 인도에 있었으면 더 노출되었을 종교적 지식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교육적 토대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염려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사원에서 제사 의식을 지낼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를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이들은 제사 의식에서의 행동은 알지만, 그것이 어떤 개념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이민 2세대가 문화적 가치들은 물려받았지만 종교적 가치는 물려받지 못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도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지 힌두교를 배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이민 2세대 힌두교도들은 성년이 되어 가정을 꾸렸습니다. 미국에 있는 힌두교 사원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이민 3세대에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2010년 6월에 파테오스 닷컴(Patheos.com)에 게재된 논문에서 캬띠 Y. 조쉬(Khyati Y. Joshi) 교수는 1990년대에 대두된 우려를 다시 나타내면서 종교적‧문화적 실천에 있어서 1세대와 2세대와 3세대 간의 차이를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사원이 1세대에게는 종교 생활의 능동적인 원천으로 남아있으며 1세대가 계속 지도자 역할을 하는 반면에, 2세대는 사원에 문화적‧사회적인 소속감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조쉬는 이민 2세대가 종교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단지 종교적 실천을 사원에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 여전히 집에서 종교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민 2세대는 이제 자신들이 이민 3세대의 부모가 되었으며 그들에게 가정의 종교 문화를 전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자신들이 지식이 부족하고, 1세대가 가졌던 모국어 실력도 부족하며 기타 다른 것들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쉬의 주장에 동의를 하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 어떤 사람들은 지난 20년간 젊은 층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운영 덕분에 2세대가 사원 공동체 내에서 매우 활동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조쉬는 질문 하나를 던지는데, 이것은 틀림없이 많은 힌두교 미국인들에게 염려가 되는 점일 것입니다. “사원이 자식 양육과 3세대와 관련되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원들은 이제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육과 설명에 대한 필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축제는 제사 의식을 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의 기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디왈리(Divali)의 락스미 푸자에서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빛의 축제와 관련된 많은 전통을 설명하려 한다면 푸자 자체가 방해받을 것입니다. “어린이 푸자”도 있는데, 이때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사원에 앉아 제물이 담긴 접시를 앞에 놓고 어떻게 제물을 바치는지를 배웁니다. 뉴욕의 가네샤 푸자에서 아이들은 마하 가나파티 만트라(maha ganapati mantra)를 배우고 가네샤에게 바치는 제물 접시에 쿰쿰(kumkum, 강황 등을 재료로 만든 분말)과 사과와 꽃을 올립니다.

 

피츠버그에 있는 쉬리 벤카테쉬와라(Sri Venkateswara) 사원은 젊은 세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모범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힌두교 공동체입니다. 2011년 11월에는 그 사원에서 자라났고 자신들의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젊은이들과 만나려는 특별한 모임이 열렸습니다. 사원은 수십 년간 매해 여름 캠프를 주최했는데 여기에는 미국 전역에서 온 청년들이 참여했고 사원은 그들에게 종교적‧문화적 가치들을 가르치려고 시도했습니다. 쉬리 벤카테쉬와라 사원은 일년 내내 인도 문화 이벤트를 후원하며, 인도인이나 인도계 미국인 연사, 음악가, 예술가, 공연자들을 초청했습니다. 또한 이 사원은 장학금을 주고, 요가, 명상, 춤 수업을 열고, 청년들이 주관하는 토론회를 후원하고, 심지어는 언어 수업과 SAT 수업을 열기도 합니다.

 

힌두 대변 단체 중 하나인 힌두 미국인 재단(HAF, The Hindu American Foundation)은 젊은 힌두 미국인들이 미국에서 그들의 힌두 공동체와 계속해서 함께하는 것을 독려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합니다. 매년 열리는 HAF의 후속세대(NextGen) 여름 에세이 대회에서 젊은 참가자들은 힌두 미국인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이 갖는 중요성을 드러냈고 다음 세대가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의 힌두 리더쉽의 잠재력을 증명했습니다. 2010년에 HAF는 젊은 힌두 미국인들이 미국의 정치 영역에서 힌두 공동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차원에서 힌두 미국인 의회 인턴쉽(Hindu America Congressional Internship)을 시작했습니다.

 

20년 전에 우마 마이소레카(Uma Mysorekar) 박사는 퀸즈에 있는 사원에서 “시계추가 돌아오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3, 4, 5년 전에 다음 세대의 세상에서 사원들이 살아남을 것인지를 질문했었지요. 이제 젊은 사람들이 사원에 오고 있어요. 아주 희망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배우기를 원해요. 그들은 앉아서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원해요.” 그녀의 말은 현재에도 적용됩니다. 2009년에 그 사원의 의장으로 그녀는 수백만 달러가 들어간 보수 공사를 완수했습니다. 보수가 마무리된 것과 그 공간을 다시 봉헌하는 것을 축하하는 행사인 마하 쿰바비셰캄(maha kumbhabhishekam)에 청년들과 성인이 된 젊은이들이 빼곡히 모여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거의 매달 수백만 달러가 들어가는 힌두교 사원 건립이나 확장 공사가 시작됩니다. 이 사원들의 미래는 곧 다음 세대의 손에 있을 것입니다. 광역 시카고의 힌두교 사원에는 “기다리고 있는”(In the Wings)라는 이름의 청년 모임이 있습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는” 다음 세대가 힌두교의 사원 생활에 대한 힘과 열정을 이어 받을지는, 많은 이민 공동체들이 그러하듯이, 미국계 힌두들이 계속해서 던질 질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독특한 맥락은 종종 미국 힌두교도들이 주장하는 신의 많은 현현들이 모두 하나라는 입장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제기해 왔습니다. 인도에서는 서로 다른 전통들이 자원이나 축제를 반드시 같이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 미국에 사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힌두들은 종종 자원을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떤 신이 그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힌두교 사원에서 제일 중심부의 공간을 차지하고 대표 신격이 될 것인가와 같은 문제들을 풀어가야만 합니다.



 

힌두 미국인들은 남아시아 전역으로부터 왔고 많은 종류의 힌두교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힌두교 공동체를 만들고, 힌두교 사원을 지으며, 힌두교 축제를 기념할 때에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직면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리버모어의 힌두교 공동체와 문화 센터(Hindu Community and Cultural Center)의 쑤딘 빋딸(Sudhin Vittal) 박사는 “이 사원은 인도와 전 세계에서 오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메릴랜드의 랜험(Lanham)과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 있는 힌두교도들과 마찬가지로 리버모어와 실리콘 밸리에 있는 힌두교도들은 “쉬바-비슈누” 사원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인도에 있는 사원에서 신들은 다른 신을 모시는 사원의 중심 성소 주변에 있는 신전에 모셔지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신들은 사원을 완전히 공유합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힌두교 전통의 발전에 따른 것이라고 여긴다는 사실은 미국에서 생겨난 혁신입니다.

 

사원을 짓기 시작할 때, 힌두 공동체는 불가피하게 많은 질문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쉬바를 섬기는 샤이바들과 비스누를 섬기는 바이쉬나바와 여신을 섬기는 샥타들이 다 같이 모일 때, 누가 주된 신이 되어야 할까요? 그리고 어떤 건축, 조각, 제사 의식 형태를 선택해야 할까요? 남인도 사원 스타일에서는 높은 탑 모양의 통로인 고푸람(gopuram)이 사원의 입구 위에 세워집니다. 반면, 북인도 사원 스타일에서는 제일 높은 첨탑은 제일 중요한 성소 위에 놓입니다. 남인도에서는 신의 형상들을 검은색 화강암으로 만들지만, 북인도에서는 흰색 대리석으로 만듭니다. 남인도에서는 신도들은 보통 성소 밖에 서서 사제를 통해 제물을 바칩니다. 북인도에서는 신도들이 경견한 태도로 성소에 들어가 직접 경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덴버의 한 공동체 멤버는 “우리가 마드라스(Madras)로부터 신들의 형상들을 가지고 올 때 의견의 불일치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사원을 가네샤 사원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느꼈어요. 또는 우리가 사원을 영구적으로 신들에게 봉헌하지 말고, 단지 인도 문화 센터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들은 남인도의 마드라스 남쪽에서 가지고 온 것들입니다. 그 형상들은 남부 특유의 검은 화강암으로 되어있지요. 북쪽의 흰색 대리석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부 출신인 우리가 너무 많이 우리 주장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힌두들은 다른 종류의 이질성에 직면하는데, 레이먼드 윌리암즈(Raymond Williams)가 “미국 사촌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 사촌들은 많이 존재하는데, 아마도 제일 대표적인 사촌들은 크리슈나 의식 국제 협회(ISKCON: International Society for Krishna Consciousness) 추종자들로, 이 협회는 때로는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s)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끄리스나 사원들은 많은 인도에서 온 새로운 힌두 이민자들이 미국 도시에서 인도 방식의 사원 경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이 ISKCON 사원들에서 그들은 일상적인 제물 올리기, 특별한 기도, 매년 열리는 축제 등을 통해 끄리스나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공동체로 시작한 ISKCON 사원 중 많은 수는 이제 하레 크리슈나와 바이쉬나바 이민자들이 섞인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내가 왜 그곳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죠? 그들은 힌두교 활동을 합니다. 그 사람들은 힌두교도들이에요. 차이가 뭐죠?”라고 덴버에 사는 한 젊은 힌두교 기술자가 말했습니다. “많은 면에서 나는 우리들이 그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 이 사람들, 미국인들은 우리 문화를 이곳에 가져오려고 노력합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의 필요에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고 새로운 생각들에 열려 있어요. ISKCON 대표는 인도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락스미의 108개 이름을 낭송하는 큰 디왈리 축제를 열었어요. 더 정통적인 힌두교도들 중 여럿은 그들과 부딪힙니다. 그들은 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지 않는데, 내 생각으로는 대부분 그들이 가진 안 좋은 인상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과 힌두교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걱정합니다.”

 

힌두 전통은 항상 종교적 방식의 다양성과 신의 많은 현현이 하나임을 인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인도에서 이 많은 방식들은 사원을 함께 짓거나 축제를 함께 기념할 필요 없이 전통의 제각기 다른 흐름을 따라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덴버나 디트로이트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힌두교도들은 이 오래된 주장을 새롭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구현해 나가야 하는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힌두교란 무엇인가”는 미국 힌두들이 직면한 제일 집요하고 도전적인 질문들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힌두교의 다양한 실행방식과 서로 다른 국가적, 세대적, 지리학적 정체성과 신념이라는 맥락에서 대답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한 시카고 여성은 “인도에 사는 많은 힌두들이 평생 힌두교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해외에서 다문화 상황 안에 소수민으로 사는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생각하도록 강요받는다.” 제일 근본적인 질문들 중 하나는, 간단히 “힌두교란 무엇인가?”입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힌두들은 인도에서는 이 질문에 답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의 문화와 종교적 방식들이 삶의 커다란 일부이고, 아주 극소수만이 힌두교를 어떻게 지키고, 정의하고, 설명할 것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맥락에서 전통을 “설명”해야 하는 필요는 많은 측면에서 생겨납니다. 친구들과 동료들은 “힌두교도들은 무엇을 믿어?”라고 질문합니다. 새로운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힌두교의 기본 신앙인가요?”라고 질문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2세대 힌두들은 부모에게 “힌두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라고 묻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그들에게 “힌두교가 뭐야?”라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강연 시리즈나 심지어 20분의 설명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짤막한 대답을 원합니다. 밧사 무코파디야이(Badsah Mukhopadhyay)는 그가 태어난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서 연구를 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베이 에어리어에 사는 대부분의 힌두 이민자들은 그들의 종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종교를 설명하는 것을 끊임없이 강요당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힌두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만들어 그것을 서구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힌두교의 믿음과 실천 방식을 최대한 포용적으로 만든다.”

 

복잡하고 많은 색채를 띤 전통을 어쩔 수 없이 단순화해야 하는 것은 디아스포라에서 살고 있는 종교 공동체가 해야 하는 타협의 일부입니다. 종교 전통은 역동적이고 새로운 상황에서 계속해서 재형성되기 때문에, 힌두 전통의 어떤 부분들을 강조해야 할지는 미국에서 중요한 도전입니다. 이 도전은 궁금해 하는 외부인들에게 전통을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에 사는 힌두로서의 자신들에게 전통을 설명하고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원에서 내는 뉴스레터와 소책자에는 종교 축제들, 경전, 신들, 싸나따나 다르마(Sanatana Dharma), 즉 전통의 “영원한 원리” 등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이 실립니다. 1988년에 뉴올리언즈에 사는 힌두교 공동체의 지도자는 Daddy, Am I a Hindu?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민자 아버지로 살면서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묻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적었습니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샤이바 싯단타 교회(Saiva Siddhanta Church)는 Dancing with Shiva라는 책에서 힌두교 전통에 대한 “현대적 교리문답”을 서술했습니다.

 

힌두교는 지금까지 특정한 믿음의 체계를 가진 “교리”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모호하지 않은, 종교에 대한 “정의”(definition)에 대한 요구는, 많은 종교 전통들에서 근본주의적인 목소리들이 커지다 보니 점점 더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맥락에서도 힌두들은 자신들이 힌두의 “믿음”을 관용, 채식주의, 비폭력과 같은 도덕적인 행동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덴버에 사는 한 청년은 “순수한 힌두교의 정수는 채식주의, 진리, 비폭력, 도둑질하지 않기,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그리고 다른 사람이 당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느끼게 하지 않기입니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들이 당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게 행동한다면, 당신은 진정한 힌두교도가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힌두교를 믿음보다는 인도와 동일시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힌두와 힌두교는 바라트(Bharat, 인도)의 문화와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고, 따라서 시크교, 자이나교, 불교를 포함합니다.”라고 미국 비쉬와 힌두 파리샤드(Vishwa Hindu Parishad of America)의 설립자 말레쉬 메타(Malesh Mehta) 박사는 말합니다.

 

지배적인 맥락은 종종 믿음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결정합니다. 워싱턴 D.C.에서 13개의 힌두교 사원들이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종교간 학회(ICMW, Interfaith Conference of Metropolitan Washington)에 참가하고자 함께 지원했을 때, 그들은 그들 종교를 요약해서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종교간 학회는 일신교 종교의 신도들, 보통 기독교도나, 유대교도, 이슬람교도를 의미하는 “성전의 사람들”이 주도하는 단체였습니다. ICMW의 로고는 열려 있는 성전 주변을 각 종교의 상징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워싱턴 D.C.의 힌두교도들은 그들의 종교를 다른 종교들의 틀에 맞추어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힌두교가 아주 강한 일신교이고 계시된 경전(기타: 5000년 전에 최고신 자신에 의해 계시된 신의 노래)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힌두교의 고유한 특징은 모든 종교와 성전을 똑같이 존중한다는 것입니다.”라고 시작했습니다.

 

힌두교를 간략히 설명하기 위해, 북캘리포니아 힌두교 기업가 협회(Northern California Hindu Businessman’s Association)는 “힌두교의 아홉 가지 믿음”(Nine Beliefs of Hinduism)이 적힌 정보 카드를 발행했습니다. 이 “아홉 가지 믿음”은 샌프란시스코의 히말라야 아카데미(Himalayan Academy)에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힌두교 전통을 제일 “교리적으로” 요약한 것일 것입니다.

 

힌두들은 창조주이자 드러나지 않는 현실이고 내재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하나의, 편재하는 최고 존재를 믿는다.

힌두들은 우주가 창조, 보존, 소멸의 영원한 순환을 한다는 것을 믿는다.

힌두들은 모든 영혼이 신과의 합일을 위해 발전하고 궁극적으로는 해탈(Moksha)을 찾을 것이라 믿는데, 이 해탈은 영적인 지식과 환생의 고리에서의 해방이다. 어떤 영혼도 이 운명에서 영원히 배제되는 일은 없다.

힌두들은 카르마(karma), 각 개인이 생각, 말, 행동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믿는다.

힌두들은 영혼이 다시 태어나고 모든 카르마가 없어질 때까지 많은 삶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을 믿는다.

힌두들은 신적 존재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과 개인적인 기도뿐만 아니라 사원 경배, 제례 의식, 성찬이 이 신적 존재들은 물론 신들과의 교감을 만든다는 것을 믿는다.

힌두들은 개인적으로 규율을 지키는 것과 선한 행동, 정화의식, 자아 탐구, 명상이 초월적인 절대자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깨달은 지도자, 즉 사트 구루(Sat Guru)도 초월적인 절대자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하다고 믿는다.

힌두들은 모든 생명은 신성하며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기에 아힘사(ahimsa), 즉 비폭력을 실천한다.

힌두들은 특정한 종교만이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참된 종교적 길은 신의 순수한 사랑과 빛의 일면이며 포용과 이해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불과 200년 전만해도 “Hinduism”은 힌두 단어가 아니었고, 힌두 “믿음”이 이런 식으로 표현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같이 교리의 전통이 있는 종교와의 접촉은 힌두 신앙이 새로운 형태로 표현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국, 오늘날 일어나는 것처럼, 종교 전통들이 더 완고하고 고정적인 형태로 변화할 때조차도, 전통들은 역동적이고 항상 변화합니다. “힌두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미국 힌두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힌두교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 덧붙여, 이 설명의 그림에 혼동이 추가되는데, 이 혼동은 힌두교와는 상관없이 인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많은 영적 운동들의 주장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초월명상(TM, Transcendtal Meditation) 운동은, 비록 오래된 힌두교 명상 전통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명상 수행을 “힌두교”적이라거나 심지어 “종교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TM을 설명할 때에 세속 과학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인도의 아부산(Mt. Abu)에 본부를 두고 있는 브라흐마 쿠마리(Brahma Kumari) 운동의 미국 지지자들 역시 자신들과 브라흐마 쿠마리 운동을 힌두교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싯다 요가 담(Siddha Yoga Dham) 공동체와 스승 구루마이(Gurumayi)도 마찬가지인데, 심지어 싯다 요가 스승들의 계보가 인도에서 많은 세대를 거쳤음에도 그러합니다. 뉴욕의 사우스 폴스버그(South Fallsburg)에 있는 그들의 아쉬람에는 많은 종교 전통에 속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각 전통의 종교 축일들을 지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원을 중심으로 하고 신들에게로 경도되어있으며 제사 의식에 빠져있다는 “힌두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이 힌두교를 거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일정 정도로는 힌두교를 다신교로 보는 관점이 힌두교라는 용어 자체를 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힌두교”가 점점 “믿음”과 “교리”로 폭이 제한됨에 따라 요가나 명상 수행을 하는 그룹들이 힌두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건 간에 “힌두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미국 종교에서 제일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힌두 공동체들은 여름 캠프를 여는데, 이것은 미국 청소년 문화의 일부분입니다. 여름 캠프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힌두 배경을 직접 경험하며 배울 수 있도록 합니다. 푸자를 행하고, 요가를 수련하며 춤과 음악을 배우고, 운동, 연극, 공연 등을 하는 것입니다. 스와미들이 이끄는 질의와 대답 시간은 핵심적인 캠프 행사들 중의 하나입니다. 질의응답은 캠프 참가자들이 그들이 힌두가 아닌 친구들과 지내며 그들이 마주치는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고정관념들에 대하여 질문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미국에서 여름 캠프는 청소년 문화의 일부분입니다. 테니스 캠프, 컴퓨터 캠프, 유대교 전통을 배우는 캠프가 있고 지금은 힌두교에 대하여 배우는 캠프도 있습니다. 1993년 여름 미국에는 80개가 넘는 힌두 여름 캠프가 있었습니다. 어떤 캠프는 특정한 힌두 사원들이 후원했는데, 예를 들어서 피츠버그에 있는 쉬리 벤카테쉬와라 사원은 슬리퍼리 락 스테이트 칼리지(Slippery Rock State College)에서 일주일간의 캠프를 주최했습니다. 롱아일랜드의 헴스테드에 있는 하누만 사원은 베다 문화 캠프를 열었습니다. 휴스턴 외곽의 주립공원에서 비쉬와 힌두 파리샤드(Vishwa Hindu Parishad)가 후원한 주말 캠프나 보스턴 외곽에 있는 엔디컷 컬리지(Endicott College)에서 친마야 미션(Chinmaya Mission)이 주최한 주말 가족 캠프도 있었습니다. 펜실베니아주 시골의 아르샤 비댜 구루쿨람(Arsha Vidya Gurukulam)에서는 청년 캠프와 가족 캠프 둘 다 열렸습니다. 이 센터는 포코노스(Poconos)에 있는 전 유대교 캠프에 위치한 피정 센터로 지금은 일년내내 힌두교를 가르치는 시설이 되었습니다. 컬리지 학생들을 위해서는 오하이오의 캠프 어메리카(Camp America)에 있는 힌두 학생 협회(Hindu Students Council)가 후원하는 캠프들도 있습니다.

 

많은 캠프들은 스와미들이 지도를 하는데, 예를 들면 인도에서 쉬리 벤카테쉬와라 사원 캠프로 온 스와미 수카보다난다(Swami sukhabodhananda)나 아르샤 비디야 구루쿨람(Arsha Vidya Gurukulam)의 영적 지도자인 스와미 다야난다(Swami Dayananda)가 있습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바가바드 기타』, 『라마야나』, 『마하바라타』를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언어로 가르칠 것입니다. 나이가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베단타 철학에 대한 강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질의와 응답 시간이 있어서, 청년들은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십대들이 전형적으로 묻고 반론하는 것을 넘어서는 절박함이 있는데, 왜냐하면 힌두 청년 중 많은 수가 학교 친구들에게서 소를 “숭배”하는 것에서부터 “옴”(Om)의 의미까지 모든 종류의 질문을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은 그들이 묻고, 자신들의 전통과 관계를 맺고, 전통에 대해 질문하고 반론하고,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하는 기회입니다. “우리는 아주 많은 전형적인 틀에 갖힌 사람들과 살고 있어요”라고 버팔로에서 온 한 소녀가 아르샤 비디야 구루꿀람 캠프의 질의 시간에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이들이 내가 소를 숭배하는지 물어요. 학교에서는 세계사 선생님조차도 불가촉과 우상숭배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들만 찾아서 그것이 힌두교라고 치부해버려요. 마치 모든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요.”

 

모든 연령층의 캠프 참가자들은 제사 의식 전통의 중심이 되는 약간의 만트라와 산스크리트어로 된 운문을 배웁니다. 그들은 푸자를 수행하고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스와미 다야난다(Swami Dayananda) 캠프의 한 참가자는 “우리는 수와미지(Swamiji)들과 푸자에 대해서 세 번의 토론을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푸자는 사실 의미가 없지는 않아요. 의미가 있어요. 단지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를 못할 뿐이에요.” 캠프에서는 요가 수업이 제공되기도 하는데, 많은 젊은 힌두들이 이 때 처음으로 요가를 경험합니다. 물론 그들은 바잔(bhajan)을 배우고 노래하기도 합니다. 롱아일랜드에 있는 큰 하누만 사원의 베다 전통 여름 캠프에서 참가자들은 “하누만 찰리사”(Hanuman chalisa), 즉 사원 전통에서 제일 사랑받는 성가인 “하누만을 찬양하는 40개 시행”을 배웁니다.

 

인도 음악과 춤도 새로 생겨나는 여름 캠프 전통의 공통적인 부분입니다. 바라트 나티얌(Bharat Natyam) 춤은 몇몇 캠프들, 예를 들어 내쉬빌의 힌두교 사원에서 열리는 3주 캠프와 버지니아의 사트치드아난다 아슈람(Satchidananda Ashram)에서 열리는 요가빌 댄스 캠프(Yogaville Dance Camp)와 같은 캠프에서 유일하게 강조하는 춤입니다. 요가빌에서 마드라스 출신의 춤의 대가 스리 다난자얀(Sri Dhananjayan)은 40명의 젊은 미국인들에게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춤을 가르쳤습니다. Hinduism Today의 1993년 11월 호에서 쉬리 다난자얀은 “문화적으로 이 캠프는 아이들이 인도와 힌두교의 정체성을 가지도록 할 수 있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목표는 달성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학생은 “나는 어떻게 구루를 존경하고 나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는지를 배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또 다른 이는 “날마다 경험들, 강연들, 그리고 단순한 움직임에서 벗어나 춤이 될 때까지 흘린 땀, 그것은 예술이었습니다. 나는 이 한 달, 실제로는 일 년 중의 짧은 기간이 일생을 바꾸는 힘을 가졌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과 마주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거의 모든 캠프에는 촌극, 연극, 공연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캠프 참가자 자신들이 힌두 전통의 창고에서 주제를 가져와 각색한 것입니다. 아르샤 비댜 캠프에서 그들은 위대한 베단따 철학자 샹카라(Shankara)의 삶에 대한 연극을 공연했습니다. 슬리퍼리 락 캠퍼스에서 열린 쉬리 벤카테쉬와라 사원 캠프에서는 캠프 참가자들이 『마하바라타』를 공부하고 거기에 나오는 유명한 “주사위 내기” 에피소드 중 영웅 판다바(Pandava)들이 주사위 내기로 그의 왕국과 형제와 아내를 잃는 장면을 공연하며 무대를 서사시의 드라마가 진행되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엔디컷 칼리지의 친마야 영성 캠프(Chinmaya Spiritual camp)에서는 10대 학생들이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행동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것의 철학을 탐구하는 철학적 연극을 쓰고 준비해서 공연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A 학점을 받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 가족에게 불명예입니다.”라고 미국 고등학교 학생의 역할을 하는 한 캠프 참가자가 한탄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모든 면에서 뛰어나라고 엄청 많은 압력을 가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타의 철학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행동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미국 전역에 있는 많은 캠프들에서처럼, 십대를 위한 힌두 캠프 참가자들은 배구와 축구 경기를 즐깁니다. 다른 캠프들에서처럼 늦은 밤에 캠프 파이어 주변에 모여앉아 즉석 토론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많은 인도계 미국 십대들이 경험하는 “두 개의 세계에서 사는” 것과 관련된 주제가 종종 다루어집니다. 불가피하게 이성간의 교제도 생깁니다. 몇몇 인도 이민자 부모들은 그들의 십대 자식들이 교제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리고, 물론 십대들도,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필사적으로 이성과 교제하기를 원하고 종종 부모 몰래 교제를 하기도 합니다. “두 개의 세계”에 살고 있는 다른 십대 친구들과 하는 토론은 진지합니다. 중매 결혼, 채식주의, 사원에서 하는 제사 의식도 오랫동안 계속되는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됩니다. “힌두교는 우리들 인생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끈이에요.”라고 아르샤 비디야 캠프 참석자 중의 한 명이 말했습니다. “여기 캠프에 오는 것은 우리가 일시적으로라도 소수가 아닌 다수가 되고, 고향에 있는 친구들 중 누구도 진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에요.”

 

모든 캠프 활동들, 운동, 강의, 연극 등을 뛰어넘어 캠프에서의 경험은 어린 힌두들에게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제공합니다. 몇몇은 수년이 지나도록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합니다. 결국 이들은 캠프에서 “졸업”하고, 아마도 컬리지 학생이 되면, 다시 캠프의 상담역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컬리지 학생들은 자신들의 캠프 전통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힌두 학생 협회(Hindu Students Council)는 수많은 학술 행사와 세미나와는 별도로 매년 여름 캠프를 주최합니다. 1994년 여름에는 오하이오의 옥스퍼드(Oxford)에서 캠프 아메리카(Camp America)가 열렸습니다. 이 캠프의 활동 중에는 한 시간에 걸친 하타 요가 수행과 “우리는 왜 기도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가정 폭력과 미국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공부와 토론 그룹도 있었습니다. 결혼식과 같은 기쁜 의식에 인기가 있는 전통 손공예인 메헨디(mehendi)를 배우는 재미있는 워크샵도 열렸습니다. 보트 여행, 농구 경기, 프리스비 경기가 있었고, 저녁에는 캠프 파이어에 둘러서서 바잔을 부르는 소리로 캠프 아메리카가 가득 찼습니다. 마지막 날인 7월 4일에는 국기게양식을 거행했습니다. 힌두 학생 협회는 오늘날 젊은 힌두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힌두-미국인들의 이슈를 다루는 여름 캠프를 매년 개최해왔고 2010년에는 스무 번째 여름 캠프를 축하하는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힌두 학생 협회의 뉴스레터 Samskar에 실린 1994년 캠프 보고서는 “학생들은 힌두 가족에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가지고 캠프를 떠났다.”라고 글을 맺고 있습니다.














요가(“멍에를 씌우다”, “연결시키다”를 의미)는 몸과 마음을 다양한 방식의 명상을 통해 합일시키는 정신적이고도 신체적인 수련법입니다. 요가는 무엇보다도 도덕성을 실천하는 것, 즉 폭력과 거짓과 물적 소유에 대한 강한 갈망을 자제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요가는 호흡에 중점을 두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신체의 유연성과 함께 정신의 안정과 집중을 키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요가”는 미국에서 잘 알려진 단어입니다. 어떤 미국인들은 요가를 운동, 건강, 체중감량 프로그램과 아주 쉽게 연결해 생각합니다. 요가에 대한 대중적인 잡지들, 책들, 비디오 테이프들은 유연성과 힘, 그리고 휴식을 위한 요가를 가르친다. 매사추세츠 서부의 끄리빨루 센터(Kripalu Center), 버지니아 버킹엄에 있는 인테그럴 요가 인스티튜트(Integral Yoga Institute), 플로리다 포트 로더데일(Ft. Lauderdale)에 있는 하리의 아쉬람(Hari’s Ashram), 펜실베이니아의 혼스데일(Honesdale)에 있는 히말라야 요가 과학과 철학 연구소(Himalayan Institute of Yoga Science and Philosophy)등은 대표적인 요가 센터들입니다. 이 센터들과 미국 도시들에 있는 수백 개의 요가 센터의 수업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유럽계 미국인들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입니다. Yoga Journal의 뒤에 있는 요가 지도자 명단을 통해 앨라배마주의 버밍엄에서 아입니다호의 보이시(Boise)까지에 있는 요가 지도자들을 알 수 있습니다. 요가 수련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인도에서 힌두교 이민의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보다 앞서 이미 미국에 자리 잡았습니다.

 

요가의 신체적 효과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입증되기는 했으나, 고대 인도 전통에 속하는 요가는 다양한 명상 방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결합하는 학문입니다. “Yoga”는 산스크리트로 “멍에를 씌우다”, “결합하다”의 의미를 가진 동사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요가는 사람이 자유롭게 자신에게 “멍에를 씌우는” 신체적, 정신적 학문이고, 동시에 영적인 변화를 위해 몸과 마음을 “결합시키는” 섭생입니다. 요가는 “정신-신체”의 연결을 전제하는데, 인간을 “전체적으로”보는 이 시각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정신-신체”의 연결을 탐구하는 것은 뉴 에이지(New Age)라 알려진 세계관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파탄잘리(Patanjali)가 기원전 2세기 경에 쓴것으로 알려진 고대 『요가 수트라』(Yoga Sutras)에 묘사되어 있듯이, 요가의 길은 도덕적 절제와 규율 준수에서 시작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요가 수행은 도덕성의 토대—비폭력, 진실 말하기, 물질적 소유를 추구하지 않기, 성적 도덕을 지키기, 도둑질 하지 않기—에 기반합니다. 이것을 넘어서, 요가는 “아사나”(asana)라 불리는 자세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자세는 서서 하는 것이고 어떤 자세는 앉아서 하는 것입니다. 많은 아싸나 중에서 제일 잘 알려진 것은 파드마사나, 다리를 꼰 “연꽃 자세”입니다. 요가 수련은 몸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몸을 유연하고도 안정적이 되도록 훈련하는 것은 영적인 탐구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가는 또한 호흡에 집중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평범하고 불규칙적이며 무의식적인 호흡 과정을 의식의 영역으로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호흡 자체가 지속하는 명상의 대상이 되고 정신이 가지는 생각과 연상의 흐름—무질서한 원숭이떼로 극명하게 비유되는—을 통제하고 안정시킵니다. 파탄잘리는 “요가는 정신의 소용돌이를 그치게 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표현했습니다. 몸과 호흡을 통제하는 것은 정신을 집중 상태로 만듭니다. 연꽃 자세로 앉아 있거나, 경배 자세로 서있는 요기의 흔한 형상들은 집중된 고요함과 몸과 마음 둘 다 한 곳에 모이는 것을 구현합니다.

 

요가와 소위 “미국적 기질”의 관계는 이미 백 년 전에 스와미 비베카난다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라자 요가(raja yoga), “왕의 요가”라 부르는 요가를 널리 가르쳤는데, 이 요가를 “신비적”이고 “심리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라자 요가를 집중 훈련에 기초한 영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베카난다는 “우리 몸의 현재 상태로는 우리는 너무 많이 산만해져 있고, 정신은 에너지를 수백 개의 일에 낭비하고 있다. 내가 나의 생각을 진정시키고 나의 정신을 하나의 지적 대상에 집중시키려고 시도하자마자 수천 개의 생각이 뇌로 빠르게 들이닥친다. 그것을 어떻게 제지하고 통제할 것인지, 이것이 라자 요가의 목적이다.”라고 썼습니다. 비베카난다가 말했듯이, 화학자, 천문학자, 교수, 노동자, 이 모든 사람들은 오직 집중에 의해서만, 정신을 한 곳에 모음으로써만 그들이 하는 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의 훈련은 신을 깨닫는 데에 있어서 명료함과 집중으로 이끌 것입니다.

 

1900년에 출간된 Raja Yoga는 몸의 자세와 호흡 통제를 어떻게 하는지를 간략한 형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거의 백 년 동안 출간되어 왔습니다. 스와미 요가난다(Swami Yogananda)는 1930년대부터 그의 자아 실현 공동체(Self Realization Fellowship)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했습니다. 비베까난다와 요가난다 둘 다 요가 수행을 “과학적”이라고 묘사했는데, 그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얻은 요가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내적인 영역은 2,500년이 넘게 요기들이 탐구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내적 영역을 보기 위해서는 그 길에 발을 들여놓아야만 합니다. 영성에 대한 이러한 실천적인 접근 방법은 미국인들에게 오랫동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미국 과학자들이 또 다른 형태의 입증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기들이 깊은 집중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의 혈압과 체온과 신진대사에 변화가 오는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의학은 실험을 통해 요가와 명상이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온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요기들과 명상가들이 “사마디”(samadhi, 삼매)라고 부르는 깊은 집중은 의학 연구가들에 의해 “대사저하” 상태라 불립니다. 이것은 깊이 집중하는 휴식 상태로 스트레스 증상을 줄이고 만성 고통을 완화시키거나 혈압을 낮출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학교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것은 많은 토론과, 가끔은 논란의 주제였습니다. 요가 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요가를 함으로써 얻는 건강상의 이익이 크므로 체육 교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반대쪽 사람들은 요가가 힌두의 것이라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와의 관계 때문에 학교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원전 2세기 인도의 파탄잘리에 의해 창시된 요가의 길은 의학 연구자들이 요가에 기반한 명상 기술의 생리학적 가치를 실험하는 미국의 연구실로, 많은 심신통합 치료센터와 생체 자기제어 프로그램으로 이어져서 그런 곳에서는 미국의 병원들에서 기초 명상법을 가르치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요가의 길은 또한 “정신-신체” 연관성을 인기 있는 문화로 탄생시킨 수많은 “뉴 에이지” 연구소들과 센터들로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뉴욕주 북부에 있는 오메가 연구소(Omega Institute)가 발행하는 계간지나 보스턴의 프로젝트 인터페이스(Project Interface)는 아주 다양한 정신-신체 워크샵들—몸과 움직임(Body and Movement), 쿤달리니 요가(Kundalini Yoga), 하타 요가(Hatha Yoga), 전인호흡법(Breathing into Wholeness), 변혁 호흡법(Transformational Breathing), 정서와 영적 신체 치유(Healing the Emotional-Spiritual Body)—을 진행합니다. 한 주말 학회에서는 뉴 에이지의 권위자들이 모여 “치유와 관련된 새 분야의 최근 발견들: 몸과 영혼의 연결”이라는 주제를 논하기도 했습니다. 요가가 기초하고 있는 “정신-신체”라는 전제는 미국에서 뉴 에이지의 영성을 가득 채우고 있고 힌두가 아닌 수백만의 미국인들을 인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신 수련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갠지스강 강둑에 위치한 카쉬 또는 바라나시, 바나라스는 화장장으로 잘 알려진 도시입니다. 이 이름은 플로리다의 카쉬 아슈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카쉬 아슈람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카쉬 아슈람은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인 미국 여성인 마 자야가 설립했습니다. 마는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봉사, 도시의 병원과 AIDS 호스피스 숙소 방문, 과자와 과일 제공, 병원 환자들, 특히 AIDS 환자들을 방문하고 안아주며 격려하는 등, 그녀의 헌신과 봉사로 기억됩니다. 




삶, 죽음, 봉사에 대한 힌두교의 시각이 오늘날 미국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플로리다의 카쉬 아슈람(Kashi Ashram)에서는 매일 밤 공동체가 힌디어로 그들에게 아주 익숙한 아라티(arati)를 부릅니다. “옴, 우주의 지배자에게 영광을. 당신은 가난한 자의 친구이며 고통을 없애주는 분입니다. 당신은 나의 수호자입니다. 당신의 손을 뻗어주세요, 나는 당신의 문에 엎드려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매일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그들의 손을 뻗습니다.

 

바라나시(Varanasi) 또는 바나라스(Banaras)로 더 잘 알려진 인도의 카쉬(Kashi)는 인도에서 제일 성스러운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카쉬는 순례자들이 목욕을 하러 오는 갠지스 강의 강둑에 있습니다. 힌두교도들은 카쉬에서 죽으면 영혼이 해방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쉬는 화장장으로도 유명한데, 이곳이 삶뿐만 아니라 죽음도 포용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갠지스강은 플로리다로 왔습니다. 이와 함께 유명한 도시 카쉬의 정신도 같이 왔습니다. 카쉬는 “빛을 내는”이라는 뜻으로, 초월적인 빛의 도시입니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유대교 후손 미국 여성 마 자야(Ma Jaya)는 1970년대 후반에 제자 몇몇과 함께 아슈람을 세웠는데, 아슈람의 이름을 카쉬로  명명했습니다. 그 후로 계속 공동체는 이름에 걸맞게 성장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 이 공동체 생활의 중심 활동입니다. 비록 마가 2012년 4월에 죽었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과 기억은 계속 살아있습니다. 마는 매주 웨스트 팜 비치(West Palm Beach)에 있는 병원들과 AIDS 호스피스 숙소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녀의 차에는 과자와 과일이 담긴 쟁반과 접시가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 과일은 특히 공공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플로리다에서조차도 과일은 사치품이었습니다. 음식물들을 카트와 수레로 옮기고 마와 그녀의 공동체 일원들은 병원과 가정들의 살균된 홀들을 여기저기로 지나다니며 음식을 날랐습니다. 과자와 과일은 사실 그들이 주는 진짜 선물에 비하자면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그들의 선물은 방문하고,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의 제도화된 삶과 죽음에서 오는 절망을 깨는 것입니다.

 

“세상에 버려진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마 자야는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신의 자식입니다. 다른 사람을 당신의 판단이 아닌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세요.” 희망의 집(Hope House)에서 마는 AIDS로 피골이 상접한, 키가 큰 흑인 남성에게 인사하고, AIDS에다가 결핵까지 생긴 히스패닉 남성에게도 인사를 합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반가이 인사하고 그들을 안아주며 그들의 어머니, 아이들에 대한 안부를 묻습니다. 마는 이들 가족 모두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군립구호대상자수용소(County Home)에서는 하반신 마비 환자인 토미(Tommy)가 휠체어에 앉아 문앞에서 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침을 닦아주면서 그에게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한 시간도 넘도록 토미는 아슈람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복도를 왔습니다갔다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비(Ivy)는 말하려 노력하며 소리 나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입을 우주처럼 크게 벌리고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마비된 수잔(Susan)도 있었습니다. 늦은 오후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코너의 탁아소(Conner’s Nursery)로 그곳에는 AIDS를 가진 아기들이 있는데, 모두 먹이고 안아줄 필요가 있는 아기들이었습니다.

 

카쉬 아슈람에 돌아와 마 자야는 AIDS로 죽은 젊은 동성애 청년 스콧(Scott)의 장례식을 거행했습니다. 스콧이 AIDS를 앓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다니는 교회에서 냉랭한 대접을 받았다. 그녀는 아들의 장례식이 따뜻하고 포용적인 곳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랬고 까쉬가 그런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와 가족 몇몇은 공동체 사람들 전체와 함게 갠지스라 불리는 작은 호숫가에 모였습니다. 장례식은 음악과 위로의 말로 시작했습니다. 마 자야가 직접 스콧을 사랑으로 기억하며 얘기를 했습니다. 스콧의 재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징적으로 갠지스에 뿌려졌습니다. 가족은 근처에 있는 숲으로 걸어갔는데, 그곳에는 AIDS를 추념하는 판자 길이 깔려있었고, 각 판자에는 AIDS로 죽은 형제, 아이, 아버지, 어머니 등의 이름이 새겨져있었습니다.

 

카쉬 아슈람은 이제 뉴욕, 애틀란타, 시카고, 산타페, 로스앤젤러스에 분원을 두고 있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봉사를 하고 싶어 하는 많은 단체가 집결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플로리다의 강(River)가에 노인을 위한 거주 시설을 짓는 것은 마 자야의 오랜 꿈이었는데, 마침내 200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시설은 가난하고 나이가든 사람들에게 정신적, 영적, 신체적 건강을 강조하는 친환경적인 환경에서 돌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마 자야는 그곳에서도 돌아가며 환자들을 만난다. “우주의 비밀은 사랑입니다”라고 그녀는 주장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인간, 신의 자식입니다. 당신의 병이 당신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봉사는 건조한 것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신의 사랑으로 가득차 젖어 있는 것입니다.”

 

리버 펀드(River Fund)는 카쉬가 설립한 기관 중의 하나로 1990년에 마 자야가 설립했습니다. 리버 펀드는 미국과 해외에서 오랫동안 투병을 하고 있는, 특히 AIDS 투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카쉬 아슈람 공동체는 거의 유럽계 미국인이 구성원으로 기독교도와 유대교들이 수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힌두 전통의 영적 지도자와의 관계도 중요시하는 다종교 공동체입니다. 봉사의 윤리는 강합니다. 갠지스라 불리는 작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신전과 사원들 중에서 공동체 활동이 제일 활기를 띠는 곳은 라마신의 하인 하누만의 사원입니다. 마 자야는 “하누만은, 예수님처럼, 하인이며 신의 존재와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그의 마음을 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비영리 힌두 학생 협회(HSC)는 미국에서 제일 큰 힌두 학생 조직입니다. 미국 전역의 대학교에 있는 이 조직은 회원들이 힌두교의 정신적 문화적 요소들을 배우도록 하고 교육과 봉사 활동의 기회들을 제공합니다. 힌두 학생 협회는 힌두교 전통을 함양시키기 위한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협회의 회원들은 협회가 힌두 국수주의 정책을 강령을 내세우는 미국의 비쉬와 힌두 파리샤드(VHP)와 관련되어있다는 것에 우려를 표명합니다.




힌두 학생 협회 (HSC, Hindu Students Council), 비영리 면세조항(501c3) 해당 단체는 뉴스레터와 인터넷 네트워크, 그리고 미국 전역에 30개의 학교 지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HSC는 미국에서 제일 큰 힌두 학생 조직입니다. 조직 강령에 따르면, 협회는 “힌두 유산의 영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에 바탕하여 ‘완전한 인성’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협회는 “힌두 유산과 문화에 대하여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공동체 봉사(seva)를 제공합니다. 보다 정치적인 맥락에서는 “힌두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이슈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약 60%에 이르는 HSC 회원의 대다수는 미국에서 태어난 힌두 학생들로, 이들에게 새로운 힌두 미국인의 정체성 문제는 시급한 사항입니다.

 

협회의 활동에는 경전을 공부하는 정기적인 공부 모임, 요가, 철학을 공부하는 모임 등이 포함되는데, 피츠버그대학교, 미시간주립대학교, 노스이스턴대학교와 같은 대학교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협회는 대학교에서 열리는 토론회를 후원하는데, 예를 들면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카스트 제도—이것은 경전에 나오는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있습니다. 협회는 또한 봉사 프로젝트도 후원을 하는데, 특히 힌두 미국인 봉사회(HASC, Hindu American Seva Charities)와 연계해서 활동을 합니다. HASC는 대학교에서 종교간 공동체 봉사를 촉진하기 위하여 2009년에 설립되었으며, 특히 다르마와 연관되는 종교 그룹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HSC는 2010년에 20주년 기념행사를 펜실베니아의 연례 청년 캠프(Annual Youth Camp)에서 치렀습니다. 이 행사가 지난 20년간 협회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자리이기는 했으나, 토론과 협의체와 워크샵에서는 세바(seva), 즉 “리더쉽”이 강조되었습니다. 기념식을 준비한 측에서는 캠프가 “청년들에게 교육적이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한 학생은 “토론은 정말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어요. 힌두 학생으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공유하고, 서로 제안을 주고받고 격려하면서 동기부여가 됐지요.”라고 평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에게, HSC는 미국적 맥락에서 힌두의 정체성을 주장, 아니 사실 재형성을 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에게는 HSC는 불편한 질문들을 제기하는데, HSC가 그들이 보기에는 힌두국수주의 조직인 비쉬와 힌두 파리샤드(Vishwa Hindu Parishad)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민 1세대의 자식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힌두 학생들이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대학교에는 인도나 남아시아 학생들 협회가 이미 오랫동안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힌두 학생 협회가 유대교 힐렐(Jewish Hillel) 단체와 기독교 학생 단체와 나란히 조직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힌두 학생 운동은 미국의 비쉬와 힌두 파리샤드(VHP, Vishwa Hindu Parishad)의 후원을 받았는데, VHP는 힌두 다르마(Hindu Dharma)의 증진과 인도에 있는 힌두국수주의 운동과의 연관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몇몇 힌두 학생들은 협회가 VHP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불편하게 느낍니다. 1994년 Little India에 실린 “힌두교 부흥이 대학 캠퍼스를 흔들고 있다”라는 제목의 면밀하고 균형 잡인 논문에서 다트머스대학교 학생 스리다르 탈라프라가다(Sridhar Tallapragada)는 HSC가 대학 캠퍼스에 끼치는 좋은 영향과 안 좋은 영향 둘 다를 파헤쳤습니다. 그는 컬럼비아대학교의 사나타나 다르마 상가(Sanatana Dharma Sangha)가 HSC에 가입하는 것을 완강히 거절한 힌두 학생 모임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 모임은 VHP와 연결되고 싶지 않았는데, 특히 1992년에 인도 아요디야(Ayodhya)에 있는 라마신의 출생지에 세워졌다고 말해지는 바브리 마스지드(Babri Masjid) 모스크의 파괴 이후에는 더 그랬습니다. 모스크를 폭력적으로 부순 것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폭력사태로 이어졌는데, 인도의 VHP는 모스크 파괴를 드러내놓고 지지했습니다. VHP 미국지부의 의장이었던 마헤쉬 메타(Mahesh Mehta) 박사가 비베카난다가 미국을 방문한 100년째 해를 기념하는 컬럼비아대학교의 행사에서 연설을 하며 모스크 파괴를 옹호하자, 많은 학생들이 강연장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VHP 힌두교의 이렇게 공격적이며 교조주의적인 형태가 “위험하고 겁이 날” 뿐만 아니라 “쓰와미 비베카난다의 메시지를 왜곡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이 보기에 VHP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인도의 종교 국수주의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힌두 학생 협회의 몇몇 학생 지도자들은 VHP와의 연계를 옹호합니다. 그들은 VHP가 오직 재정적 지원을 할 뿐이며 HSC의 학생들에게 완전한 자치권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이 학생들 중 많은 수는 VHP가 인도의 이익을 위해서 로비를 할 수 있는 강한 힌두 조직을 미국에 만들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미국에서 힌두 공동체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에 대응할 능력을 가지는 것 역시 중요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그들은 뉴저지에서 지역 조직폭력배 “닷버스터즈”(Dotbusters)에 의해 나브로제 모디(Navroze Mody)가 살해된 것과 같은, 인도인에 대한 증오범죄의 예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힌두들이 힌두 공동체를 국내외적으로 대변하여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유대교 공동체가 조직적으로 자리 잡고 미국 주류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을 통해 미국의 유대교 공동체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 조국인 이스라엘을 위해서도 주장을 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도에서 그러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VHP는 현대 세계에서 힌두교가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공언합니다. 탈라프라가다(Tallapragada)는 라비 P. 샤르마(Ravi P. Sharma)박사가 1994년 겨울 HSC 잡지 Samskar에 실은 문장을 인용합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둘 다 복음주의선교를 믿지만, 힌두교에는 그런 전통이 없다. 그러나 현대 힌두교가 이 문제를 직면해야 할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힌두교의 생존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1994년 5월 노스이스턴 대학교에서 열린 HSC 학회의 등록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습니다. “모든 공동체가 자신의 문화, 전통, 종교 유산을 지킬지 말지를 결정해야할 때가 되었다. 우리 미국 힌두 학생 협회는 우리 공동체가 이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문화들 중 하나인 우리의 문화를 보전하기 위한 도전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탈라프라가다는 곤란한 질문들을 제기합니다. 미국의 힌두 학생 운동이 많은 사람들이 인도의 우파 힌두교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조직에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할까? 미국 힌두들은 사실 미국 우파 기독교인이 종교의 자유에 위협을 하고 있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는가? 힌두교의 존립이 진짜 문제가 되고 있다 하더라도, 미국의 힌두들이 우파 기독교 국수주의의 애국주의와 똑같은 형태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하는가? 토론과 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리다르 탈라프라가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현재로선 VHP America와 HSC의 학생들이, 컬럼비아 대학교의 학생들과 같은 소수의 비회원 그룹을 제외하고는, 미국 전역에서, 적어도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다들 화합하여 좋은 의도로 이 대화를 시작한 유일한 조직입니다. 탁상공론을 하는 미국의 힌두들, 인도에서 한 세기 전에 존재했던 힌두의 삶이 여기 현대 미국에서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은 눈을 열고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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