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가장 근본적인 신앙고백인 샤하다(Shahada)는 “하나님(알라)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使徒)”라는 두 문장으로 이루어집니다. 영적인 세계로 초대하는 이 문장은 하루에 다섯 번 예배 때나 예배를 알릴 때 암송됩니다.
하루에 다섯 번 무에진(예배시간 알리는 사람)은 서서 모든 무슬림에게 예배를 하라고 아잔(예배 알림문)을 외칩니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한다.
하나님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한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한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한다.
기도하러 오라. 기도하러 오라.
성공의 길로 오라. 성공의 길로 오라.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 외에 신은 없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아슈하두 알라 일라하 일랄라.
아슈하두 알라 일라하 일랄라.
아슈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술룰라.
아슈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술룰라.
하야 알랏쌀라흐. 하야 알랏쌀라흐.
하야 알랄팔라흐. 하야 알랄팔라흐.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라 일라하 일랄라.
아잔에는 두 문장으로 무슬림 신앙을 증언하는 “하나님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이다”라는 샤하다가 들어 있습니다. 이 짧은 선언문으로 무슬림은 이슬람의 엄격한 유일신교적 특징을 강조하고 하나님이 인류에 내린 마지막 사도 무함마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선언합니다.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 하나인 샤하다는 전 세계 무슬림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히 정의합니다. 샤하다는 단순한 신앙 선언이 아니라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는 이슬람 신앙 실천의 핵심입니다. 샤하다는 하나님이 마련한 올바른 길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합니다. 이슬람을 받아들일 때 낭독하는 샤하다는 믿음과 실천을 하나로 묶은 길로 나가는 첫걸음입니다.
이슬람의 소명은 예배로 시작하여 예배로 끝나는데, 이는 인류를 진실하고 뜻이 있는 여정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이신 하나님이 사도를 보내셨다는 확신에 근거합니다. 무에진은 아침 예배 아잔에 “예배가 잠보다 낫다!”라고 덧붙입니다. 시아파 무슬림은 “기도가 최고이다”라는 문구를 포함시킵니다.
이슬람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킵니다.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따르는 이슬람은 창조주 하나님, 마지막 사도 무함마드, 하나님의 최종 말씀인 꾸르안을 인정합니다.
'이슬람'은 복종한다는 뜻의 아랍어입니다. 이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방식, 즉 행동입니다. '무슬림'은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하나님이 알려준 것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종종 동물 또한 하나님이 부여한 본성에 자연스레 순응하며 산다는 점에서 무슬림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호랑이는 온전히 호랑이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선택권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꾸르안 계시에 맞춰 하나님의 뜻을 따르거나 거부하는 것은 각 개인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사제나 중재자는 필요 없고, 각 개인이 스스로 결정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슬람과 어원이 같은 말은 아랍어로 평화를 뜻하는 '살람'이다. 전 세계 무슬림은 살람이라는 말을 써서 “앗살라무 알레이쿰(평화가 함께 하길)”이라고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스도교,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는 중동에서 시작했지만, 세계 종교가 되었습니다.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는 10억 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오랜 역사와 풍부한 지리·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하면, 이슬람을 한 가지 그림으로만 표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슬람의 다양성은 이슬람이 가진 힘의 한 부분이자 증거인데, 이슬람의 가르침은 시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실행과 적응이 모두 가능함을 입증했습니다.
이슬람은 역사상 예언자와 계시를 보내어 수많은 사람에게 사는 법을 알려 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무슬림에 따르면 하나님의 마지막 예언자이자 사도는 무함마드이고,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꾸르안입니다. 예언자 시대부터 신실한 무슬림 공동체는 각기 새로운 세기마다 다양한 문화적 맥락 안에서 이슬람의 길을 따라 하나님 말씀에 응했습니다.
꾸르안은 무슬림들의 성경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에 의해 밝혀졌고 아랍어로 쓰여졌습니다. “낭송”이라는 의미를 가진 꾸르안은 본래 구전 텍스트였고, 듣고 암송함으로서 보존되었습니다.
이슬람의 경전 꾸르안은 문자 그대로 경전을 여는 장이이라는 뜻인 알파티하로 시작됩니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찬미 받으소서, 온 세상의 주님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심판일의 왕이시여.
저희는 당신을 숭배하고 당신의 도움을 구하오니.
저희를 바른길로 인도하소서.
당신의 분노를 일으키거나 헤매는 사람들의 길이 아닌, 은총을 내리신 이들의 길로.
비스밀라히르 라흐마니르 라힘
알함둘리라히 랍빌 알라민
아르라흐마니르 라힘
말리키 야우밋딘
이야카 나으부두 와 이야카 나스타인
이흐디낫 시라딸 무스타낌
시라딸 라디나 안 암타 알라이힘 가이릴 마그두비 알레이힘 왈라 달린
파티하는 아랍어로 ‘쌀라’라고 부르는 예배에서 매일 낭송합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파티하가 꾸르안 가르침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랍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는 '알라'입니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인과 유대인 역시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알라로 부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고 통치하며, 모든 인간을 심판하고, 자비롭고 자애로우며, 믿는 이들을 정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 여겨집니다.
꾸르안은 문자 그대로 낭송이라는 뜻입니다. 무함마드는 꾸르안 말씀을 아랍어로 계시받은 후 추종자들에게 낭송했습니다. 꾸르안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는 있지만, 무슬림은 번역을 해석으로 간주할 뿐 꾸르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꾸르안은 앞부분에서 뒷부분으로 갈수록 길이가 짧아지고, 114개 장(수라)로 이뤄져 있는데, 각 장은 책의 한 장 또는 부문을 나타냅니다. 꾸르안에는 예배와 찬양, 창조한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징표 이야기, 무함마드 이전 예언자 이야기, 심판의 날이나 법적인 문제나 올바른 행동과 관련된 구절 등이 담겨 있습니다. 꾸르안은 반드시 듣고 낭송해야 하는 구전 텍스트입니다. 틸라와, 즉 꾸르안 낭송은 타즈위드(발음, 억양, 접근법)에 따라 이루어지는 과학이자 예술이며, 헌신의 표현입니다. 미국의 젊은 무슬림도 참가하는 꾸르안 낭송 경연 행사가 전 세계에서 열립니다.
오늘날 꾸르안은 아랍어 원문에서 수십여 언어로 옮긴 번역본까지 모두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데, 내용 해설이나 낭송 오디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꾸르안 온라인판에는 독자가 특정 단어나 구절이나 장을 찾을 수 있는 검색 엔진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꾸르안의 영어 온라인판에는 여러 학자의 다양한 번역본도 있습니다. 번역은 원문의 뜻을 바꿀 수도 있기에 어떤 번역도 아랍어 원문을 충실하게 옮길 수 없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꾸르안이 대단히 중요하기에 무슬림은 꾸르안을 배우고 최신 전자 매체와 다양한 언어로 꾸르안을 알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메카 외곽의 산 히라에서 매년 열리는 의례에 참가하던 중 첫 계시를 받았습니다. 7세기 다신교 메카 사회는 예언자가 가르친 타우히드(tawhid, 하나님의 단일성과 유일성)를 도전으로 여겨 무함마드를 박해했습니다.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hijrah 히즈라)하여 모범적인 무슬림 공동체를 설립하고 새로운 이슬람력을 시작했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무슬림에게 하나님의 사도이자 삶의 모범입니다. 570년 아라비아반도의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는 삼촌 집에서 고아로 자랐습니다. 그는 나이 많은 과부 카디자와 결혼했는데, 결혼 전에는 카디자에 고용되어 대상무역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인 무함마드는 알아민(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마흔 살이 되던 해, 깊은 종교 체험을 하면서 삶에 큰 변화를 겪고 이슬람 신앙을 확립했습니다.
무함마드는 매년 메카 외곽에 있는 히라 산에서 경배 의례를 행했습니다. 어느 라마단(Ramadan)월 밤, 무함마드는 동굴에서 반쯤 잠든 상태에서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에게 천사가 “낭송하라!”고 명령했고, 무함마드는 “무엇을 낭송하라는 겁니까?”라며 두 번이나 물었습니다. 세 번째로 천사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읽어라! 창조주 이름으로. 그분은 한 방울의 정액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읽어라! 주님은 가장 은혜로운 분. 펜으로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꾸르안 96:1-5).” 무함마드는 이를 낭송한 후 “마치 마음에 말씀이 새겨진 것”처럼 느끼며 잠에서 깼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던 중 무함마드는 하늘로부터 “무함마드, 너는 하나님의 사도이고, 나는 가브리엘이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수평선 위에서 천사의 형상을 한 이가 그런 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무함마드는 계속 계시를 받았고, 메카에서 믿는 사람이 늘기 시작하면서 아내와 따르는 이들에게 계시를 낭송했습니다.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는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앞선 예언자들이 알려 준 믿음의 길로 다시 들어서라는 초대장이었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7세기 메카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었습니다. 메카는 아라비아 다신교의 순례지였고, 그 중심은 360여 개의 우상을 모신 정육면체 모양의 핵심 신전 카바(Ka‘bah)였습니다. 이러한 다신교 세계에서 무함마드는 타우히드(하나님의 단일성과 유일성)를 가르쳤습니다. 부족 간 유대가 강하고 유혈 분쟁이 만연한 사회적 상황에서 무함마드는 보편적 공동체인 움마(Ummah)에 관해 말했습니다.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할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며 사회 정의와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소규모 무슬림 공동체는 계속해서 가혹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622년 무함마드와 추종자들은 메카에서 북쪽 메디나로 이주(아랍어로 ‘히즈라’)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모범적인 이슬람 공동체를 세웠고, 이것이 훗날 이슬람력의 원점이 되는 역사적 이주입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의 현세적, 영적 지도자가 되어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던 도시에 질서를 세우고 주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습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도 계속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 계시는 널리 퍼졌습니다. 적대적이었던 메카의 사람들과 전투와 협상을 벌인 끝에 630년 무함마드는 승리를 거두고 메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많은 메카 사람이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무함마드는 카바를 유일신 신전으로 만들었습니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632년에 아라비아반도 대부분 지역의 사람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였습니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 무슬림 공동체는 무함마드의 언행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데 가장 좋은 모범으로 기억하고 보존했습니다. 예언자의 말은 나중에 전승집, 즉 하디스(Hadith)로 집성되었는데, 이는 예언자의 말과 실천을 담은 예언자 순나(Sunnah)의 일부입니다. 순나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방법을 일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무슬림은 “무함마드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도에 불과하다”(꾸르안 3:144)고 말합니다. 무슬림은 예언자 무함마드를 언급할 때 존경의 뜻을 보이고자 이름을 말한 직후 대개 “무함마드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평화가 깃들길”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쌀랄라후 알레이히 왓 살람”(salla llahu alayhi wa sallam)이라는 구절을 덧붙입니다. 글로 쓸 때는 이를 줄여 (sa), SAW 혹은 PBUH (May the prayers and peace of God be upon him) 등으로 간략화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붓글씨 서체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이슬람 내 다양한 전통은 꾸르안, 하디스(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 이슬람 지도자 문제에 관해 서로 다르게 해석합니다. 몇몇 전통으로 순니, 시아, 수피를 들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여, 하나님과 사도와 너희 가운데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순종하라.
너희가 진정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믿는다면 분쟁 거리를 하나님과 사도에게 맡기라.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더 낫고 공평하다.”
(꾸르안 4:59)
무슬림은 하나님의 단일성을 서로 함께 증언하고, 예언자가 보인 모범적인 언행을 따르며, 하나님을 향한 기본적인 경배와 섬김을 수행하면서 하나의 움마(공동체)를 이뤄 단결합니다. 이러한 통일성 안에도 다양성이 존재하는데, 이는 꾸르안과 하디스를 다르게 해석하는 다양한 이슬람 법학파의 발전과 함께 정치적 권위와 영적 지도력 본질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슬림은 예언자의 패러다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여, 각기 예언자의 삶과 가르침의 특정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종종 서로 겹치기도 하고 보완하면서 다채롭게 경건함을 표현합니다.
이슬람 전통의 중요한 흐름은 종교적, 법적 가르침의 해석자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이를 샤리아(Shariah 아랍어로 '길')라고 부릅니다. 샤리아는 무슬림이 예언자의 패러다임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법, 윤리, 가치관을 포함합니다. 무함마드 사후 학자 그룹인 ‘울라마’가 등장했습니다. 일부 울라마는 샤리아에서 파생한 피끄흐(Fiqh 이슬람 법학)의 주요 학파를 세웠습니다.
수피 운동으로 이슬람 초기에 무함마드와 하나님 간 친밀한 관계를 모델로 삼아 경건한 수행과 신비주의 사상이 발전했습니다. 수피 운동은 이슬람이 전 세계로 퍼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수피는 이슬람의 여러 분파를 초월하여 조직을 구성하고, 예술적 표현으로 무슬림의 영적 자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순니파로 알려진 그룹과 시아파로 알려진 그룹 간 분열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입니다. 무함마드 사후 누가 지도자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가 어떤 권위를 가져야 하는지를 두고 초기 분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의 차이로 다양한 법과 신학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순니파 무슬림과 시아파 무슬림은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둘러싼 질문을 계기로 분리되었습니다. 시아 무슬림은 역사적으로 알리가 무함마드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족 내에서 후계자를 추대하여 인정했습니다. 순니 무슬림은 역사적으로 아부 바크르 앗시디끄를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주장했고, 공동체 내에서 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시아는 ‘알리의 당(黨)’을 뜻하는 시아트 알리(Shi’at Ali)에서 파생된 것으로, 첫 번째 단어 시아(트)에서 '시아'가 나왔습니다. 시아는 예언자의 후손만이 움마의 지도자요, 유일하게 합법적인 무함마드의 후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무함마드의 바라카(영적 은총 또는 영적 능력), 그리고 꾸르안을 해석하는 그의 특별한 지식이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사촌 동생인 알리에게 전해졌다고 믿습니다. 무슬림 공동체 지도자직은 예언자의 가족 내에서 후계자(이맘)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대물려 이어졌습니다. 시아파에 따르면, 예언자의 직접적인 계시가 없는 공동체에는 항상 이맘이 있어야 합니다. 이맘은 계시를 유지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여 공동체를 인도합니다.
시아 무슬림의 대다수는 12명의 이맘을 인정하기에 '12이맘파'라고도 불립니다. 12이맘파가 따르는 마지막 12번째 이맘은 9세기 후반에 사라졌습니다. 시아 무슬림은 인류 마지막 날에 진리와 정의를 확립하고자 12번째 이맘이 마흐디(올바르게 인도된 자, 또는 “메시아”)로 다시 돌아온다고 믿습니다. 12이맘파와는 달리, 자이디(Zaydi, 자이드파 시아 무슬림)와 이스마일리(Isma‘ili, 이스마일파 시아 무슬림)는 다른 형식의 이맘 계승을 주장합니다. 이스마일리는 마지막 이맘이 이스마일이라고 믿습니다. 자이디는 이맘이 무함마드의 딸과 사위인 파티마와 알리의 후손이어야 하지만, 반드시 이맘의 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믿습니다.
무하람(Muharram)월 10일 아슈라(Ashura)에서는 680년 순교한 무함마드의 손자 후세인(Husayn)을 기념하는 수난극이 열립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 시아 무슬림은 이맘들의 삶과 고난을 이야기와 의례로 기념합니다. 시아 무슬림에게 이맘의 말씀은 꾸르안과 예언자의 순나와 함께 이슬람법의 원천이 됩니다.
초기 공동체 무슬림 대다수는 능력, 경건함, 예언자와 친밀한 우정 때문에 아부 바크르 앗시디끄를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무함마드가 자신의 권위를 공동체 전체에 주었기에 공동체가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꾸르안, 예언자의 순나, 무슬림의 합의인 이즈마(ijma)를 따름으로써 종교적 권위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신앙 공동체를 ‘순나의 사람들’ 또는 ‘순니파’라고 불렀습니다. 순니파의 칼리파(무함마드를 이은 지도자)는 초기 무슬림 제국의 국경을 넓혔습니다. 우마이야(Umayya) 왕조는 661년부터 다마스쿠스에서 통치하며 칼리파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시아파, 수피, 이슬람 법학파 등 여러 운동의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수피 운동은 디크르(기억), 윤리적 수양, 마음과 자아를 정화해 하나님을 향한 신비로운 지식과 사랑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슬람의 내면적인 차원을 말합니다. 수피 운동은 개인이 시작했지만, 따리까(Tariqa, 수피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영적 지도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시, 예술, 전례, 전기, 철학서 및 여러 형태의 문학 작품도 나왔다. 오늘날 무슬림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피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타사우프(Tasawwuf, 수피가 된다는 뜻)는 이슬람의 별도 종파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비로운 사랑, 지식, 헌신의 내적 길을 강조하는 해석의 흐름입니다. 예언자 무함마드와 동료를 최초의 수피로 볼 수는 있지만, 수피 운동은 8세기 무함마드의 소박한 생활 방식과 영적 삶에 경의를 표한 일부 무슬림이 무슬림 공동체가 이러한 이상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던 시기에 공식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수피(Sufi)’라는 이름의 기원을 초기 고행자들이 입었던 거친 수프(Suf, 양털로 만든 옷)에서 찾는데, 수프는 물질적인 사치를 포기함을 상징합니다. 순결을 뜻하는 아랍어 ‘사파’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초기 수피 운동은 다양한 방향성, 교리, 의례, 문학, 공동체를 이뤘습니다.
수피 운동은 다양하지만, 본질적인 목표는 탐욕, 정욕, 허영과 같은 이기적인 감정과 욕망을 비우고, 관용, 사랑, 겸손과 같은 이타적인 특성으로 자아를 채워 하나님과 신비롭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수피의 여행길은 정거장(마까마트, maqamat)과 심리 상태(아흐왈, ahwal)로 이뤄집니다. 정거장은 여행의 랜드마크와 같은데,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윤리적 자질을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회개의 정거장에서 시작하여 포기, 겸손, 인내, 감사, 유익, 만족, 기쁨 등의 단계를 거칩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마침내 이기적인 특성을 완전히 비우고(파나 Fana) 하나님의 도덕성을 구현하는(바까 Baqa) 단계에 도달하는데, 이 시점에서 여행자는 목적지인 ‘하나님과 신비로운 결합’에 도달하여 그노시스(gnosis)와 신성한 사랑에 휩싸입니다. 여행길을 걸으면서 수축, 확장, 갈망, 횐희 등 일시적인 심리 상태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여행 중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심리 상태는 하나님이 주는 자연스러운 선물로 여깁니다. 수피의 길을 걷고 난 후의 변화를 가리켜 ‘성자가 되었다(wilaya 윌라야)’라고 하며, 그러한 사람을 성자(왈리 wali)라고 부르는데,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수피의 여정은 이생이나 사후에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서만 노정되어 있습니다. 8세기 이라크의 유명한 여성 수피인 바스라의 라비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시여, 제가 지옥행이 두려워 당신을 경배한다면 저를 지옥불로 태우십시오. 제가 천국에 가기 위해 당신을 경배한다면 천국행을 막아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당신을 경배한다면, 당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거두지 말아주십시오.”
성자(하나님과 가까운 이)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들 곁으로 학생과 제자가 결집하여 성자의 가르침을 영적 발전의 지침으로 삼는 수피교단(따리까)이 설립되었습니다. 수피교단은 수백 개가 있는데, 샤딜리(Shadhili), 나끄쉬반디(Naqshbandi), 까디리(Qadiri), 치쉬티(Chishti), 메블레비(Mevlevi), 티자니(Tijani) 등이 오늘날 가장 유명합니다. 이들 교단명은 모두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또한 수피교단은 모임과 공동생활을 위한 센터를 지었는데, 이를 아랍어로 자위야(Zawiyya), 페르시아어로 한까(Khanqa)라고 부릅니다. 무슬림 상인이나 떠돌이 수피를 위한 객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또 그 안에 창시자와 창시자 이후 스승과 제자의 묘를 조성하였는데, 일반 대중의 성자숭배와 순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피 의례는 “서 있거나 앉거나 누워 있을 때”(꾸르안 3:191)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가르치는 꾸르안 구절에 근거를 두고,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합니다. 이러한 의례를 총칭하여 디크르(기억 dhikr)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이름과 여러 문구 반복(타스비흐 tasbih), 침묵 명상(무라까바 muraqaba), 묵상(타파쿠르 tafakkur), 호흡법(파스 안푸스 pas anfus), 음악과 춤 등을 포함한 의식(사마 sama) 등 다양한 표현을 포함합니다. 이 모든 수행의 공통분모는 하나님을 직접적이고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빙글빙글 도는 데르비시’는 13세기 수피 성자 잘랄룻딘 루미를 따르는 메블레비 교단의 일원으로 사마의 한 형태인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는데, 메불레비의 사마는 수피 여정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데르비시가 쓴 황갈색 모자는 자아가 죽었다는 뜻으로 자아의 묘비, 흰색 넓은 치마는 수의를 가리킵니다. 검은 망토를 벗음으로써 이기심을 버리고 진리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을 향해 위로 벌린 오른손은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을, 땅을 향해 아래로 뻗은 왼손은 은총이 인류에게 전달되는 것을 각각 상징합니다. 빙글빙글 도는 동작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은 마음이 돈다는 것과 모든 인류를 사랑으로 포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수피는 꾸르안 주석, 유명한 수피의 전기, 행동과 수행 지도서, 예술 작품, 전례집, 문학, 철학, 우주론, 윤리 등 다방면에 걸친 서적을 저술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시가 가장 잘 알려졌을 것입니다. 시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우르두어, 말레이어 등 다양한 언어로 썼습니다. 수피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는 루미의 마스나비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이슬람의 내적인 뜻을 소홀히 다루고 율법주의적 측면만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참회하는 사람처럼 단식하고 예배를 드린다.
경배하고 자선을 베풀지만, 쓸데없는 일이다. 신비로운 상태를 맛본 적 없으니.
선행을 베풀고 경건하게 행동하지만 진정한 친밀감을 맛보지 못했다.
거짓말처럼 공허한 행동이며, 알맹이 없는 호두와 같다.
영적 풍요로움이 열매를 맺는다.
뿌린 씨앗에 알맹이가 있어야 하는데, 알맹이 없는 씨앗이 나무로 자랄 수 있을까?
영혼이 없는 것은 환상 속에만 존재할 뿐.
오늘날 미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수피가 존재합니다. 일부 미국 무슬림은 샤딜리나 티자니처럼 미국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수피 교단을 따르거나, 바와 무하이얏딘(Bawa Muhaiyaddeen) 모임과 같은 새로운 교단을 선택합니다. 인도의 수피 음악가인 이나야트 칸(Inayat Khan)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나야티(Inayati)처럼 좀 더 보편적인 교단에 가담하기도 합니다. 미국 무슬림은 개인의 영적, 윤리적 삶을 위해 수피 수행을 하면서도 공식적으로 교단에 참가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다니엘 압달-하이 무어(Daniel Abdal-Hayy Moore)와 같은 수피 시인과 바라카 블루(Baraka Blue)와 같은 수피 음악가 덕분에 토착 수피 문학 작품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피의 매력은 무슬림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시집 중 하나인 루미의 시는 수피의 여행길을 묘사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2005년 유네스코는 메블레비 교단의 사마 의식을 인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기로 결정했고, 루미 탄생 800주년을 기념하여 2007년을 ‘국제 루미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수피의 사상, 수행, 교단, 매체와 장소를 초월한 표현의 다양성은 진정으로 국가와 종파를 초월하는 매력이 수피의 길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샤리아는 무슬림의 실제 생활을 지배하는 이슬람의 법, 윤리, 지침 체계를 가리킵니다. 샤리아는 선지자 무함마드로부터 시작되었고 나중에 '울라마'에 의해 성문화되고 전파되었습니다. 학교, 판사, 법원, 통치자와 함께 샤리아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샤리아는 국가와 개인 수준 모두에서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되며, 이는 국가 및 순니파/시아파 등의 종파에 따라 다른 적용범위를 갖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무슬림 공동체를 위한 종교 교리의 해석자이자 메디나의 무슬림 국가 지도자였습니다. 예언자의 사후 여러 세기에 걸쳐 무슬림의 통치는 스페인에서 중국 국경까지 확대되었지만, 일부 무슬림은 지도자들이 무함마드의 메디나 공동체가 좇던 이상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언자가 살아있는 동안 사람들은 예언자의 하디스, 즉 순나(문자적인 뜻은 관습.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 행동, 생활 방식을 가리킴)를 수집하고 기록했습니다. 무슬림 통치자를 비판한 사람은 순나 연구의 권위자이자 존경받는 꾸르안 해석가였습니다. ‘울라마’라고 부르는 이들 학식 깊은 사람은 무슬림이 예언자의 모범에 따라 의례부터 상업, 개인위생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를 수 있도록 율법, 윤리, 태도와 관련한 샤리아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샤리아는 꾸르안과 순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유추에 따른 추론’이나 ‘공공의 이익’처럼 다양한 추론 방법(라이, ra’y)을 사용하여 법적인 결론을 도출합니다. 샤리아는 예배, 순례 방법부터 혼인, 상거래, 식음료 관련 가르침, 이웃, 가족, 고아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응대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사회 문제에 관한 포괄적인 법과 윤리 및 가르침을 제시하는 체제를 뜻합니다. 모든 계율은 해악을 피하고 이로움을 가져온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인류의 종교, 생명, 지성, 가족, 재산 등 다섯 가지 중요한 행복한 삶의 면면을 보존하고자 고안되어야 합니다. 일반 대중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형법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작습니다.
샤리아의 특징으로 마드하브(madhab)이라고 하는 법학파가 여럿 있고, 법 해석이 다양하며, 서로 다른 해석을 모두 유효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을 통칭하여 법학(피끄흐)이라고 합니다. 초기 순니 울라마는 여러 법학파를 발전시켰는데, 학파의 시조가 되는 위대한 학자의 이름을 따서 법학파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 등 4개의 법학파가 건재합니다. 시아파 울라마 역시 여러 법학파를 이루었는데, 가장 유명한 학파는 자파리(Ja‘fari) 학파입니다. 울라마는 당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이고 교정적인 세력으로 부상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슬람 세계 곳곳에 마드라사(학교)가 설립되어 울라마가 법, 철학, 신학, 예술,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이슬람 세계의 마드라사는 유럽 대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는 카이로에 있는 10세기 알아즈하르 대학으로, 여전히 세계적인 무슬림 교육 센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울라마는 이슬람 세계 전역의 샤리아 법원에서 판사(까디)와 법학자(무프티)로 활약했고, 통치자의 자문역할도 맡았습니다. 따라서 너른 시각으로 본다면 샤리아는 학자, 학교, 법원, 판사, 법학자, 통치자가 힘을 합쳐 하나님의 가르침을 사회 내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오늘날 샤리아는 무슬림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형식과 해석은 상황에 따라 다양합니다. 주로 순니파가 다수인 일부 무슬림 국가에서는 샤리아가 국가 헌법 안에 성문화되어 있고, 세속 법원과 샤리아 법원이 모두 존재하면서 법의 다양한 측면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 샤리아 법원은 주로 혼인, 이혼, 상속과 같은 개인 및 가족법을 다루며, 현대 국가가 후원하는 이슬람법적 해석 평의회(파트와 평의회, 다르 알이프타, Dar al-Ifta)는 종교와 관련된 새로운 사회 문제와 변화를 다루고자 샤리아 해석을 도출합니다. 울라마는 여전히 샤리아를 가르치고 여러 측면으로 발전시킵니다. 울라마는 남아시아의 다르 알울룸 신학교와 같은 마드라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맘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 대학교, 이집트의 알아즈하르 대학교와 같은 현대식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순니와 달리 시아 무슬림은 샤리아를 가르치고 도출하는 울라마를 계층적으로 세분화했습니다. 가장 높은 등급의 울라마는 마르자(따라야 할 모범, marja)입니다. 마르자가 아닌 시아 무슬림은 반드시 마르자를 따라야 합니다. 마르자는 “대(大) 아야톨라”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아 울라마는 호우제(종교 지식을 수호하는 장소, Hauze)라고 부르는 교육 기관에서 일합니다. 오늘날 중요한 호우제로는 이란의 곰 신학교와 이라크의 나자프 신학교가 있습니다. 시아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란은 샤리아를 적용하는 독특한 방식도 선보였습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샤리아 전문가이며, 헌법수호위원회와 함께 입법부와 사법부가 내린 결정이 샤리아에 부합하는가를 감독합니다. 따라서 시아 울라마는 순니 울라마와 비교해 훨씬 더 두드러지고 적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의 무슬림은 샤리아가 국법과 모순되지 않고 반드시 국법의 한 부분이 돼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애초에 샤리아는 비무슬림에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예배와 음식 규정부터 혼인과 윤리적 계율에 이르기까지 개인 생활에서는 샤리아를 적용합니다. 북미 이슬람법위원회(Fiqh Council of North America) 같은 현대의 이슬람법협의회, 소수자의 이슬람법이라는 연구 분야는 미국 무슬림에게 샤리아를 무슬림의 개인 생활에 적용하면서도 샤리아가 세속 정부와 양립하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미국 무슬림 중에는 다원주의 및 다양한 관습과 견해를 존중하는 미국에서 개혁적인 샤리아를 채택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자보다 율법의 정신을 강조하는 ‘마까시드 앗샤리아’나 아미나 와두드 박사가 고안한 페미니스트 접근법 등이 좋은 예입니다. 아지자 알히브리 박사가 설립한 카라마(Karamah) 등 여러 다른 단체는 성평등과 인권에 기반한 샤리아를 장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샤리아가 꾸르안과 순나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미국 무슬림은 미국과 이슬람의 공통가치를 찾으면서 도전과 기회가 공존하는 현대사회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순니 무슬림 사이에서 이슬람의 핵심 실천행위는 샤하다(신앙고백), 쌀라(하루 5번 예배), 자카(희사. 보통 연간 재산의 2.5%를 지역 모스크나 단체에 기부), 싸움(라마단 달에 일출부터 일몰까지 단식), 핫즈(둘힛자 달에 메카의 카바 순례) 등 다섯 기둥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른 종파에서도 이것을 준수하지만, 시아 무슬림은 여기에 쿰스(해마다 이맘에게 내는 희사)와 왈라야(이맘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행위) 등을 더합니다. 이슬람 실천행위는 끊임없이 사회변화와 발전상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동쪽이나 서쪽으로 얼굴을 돌린다고 의롭지 않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하나님, 최후의 날, 천사, 경전, 예언자를 믿는 사람이다.
재산을 소중히 여기지만 친척, 고아, 가난한 사람, 나그네, 거지에게 나눠주고 속박된 사람을 해방하는 사람이다.
예배(쌀라)하고, 정해진 희사(자카)를 하는 사람,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불행과 역경, 위험에도 꿋꿋한 사람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실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꾸르안 2:177, 압델 할림 번역).
무슬림은 하나님을 깊이 의식하고(타끄와), 타인을 올바르게 대하며, 정기적으로 경배행위에 참가하여 시간과 재산을 잘 사용하는 법을 배우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순니 무슬림은 이러한 경배행위를 “이슬람의 다섯 가지 기둥”이라고 부르는데, 이슬람 법학자(울라마)가 해석한 꾸르안과 순나를 기반으로 합니다. 다섯 가지 기둥은 샤하다, 쌀라, 자카, 싸움, 핫즈로, 이슬람의 근간이며, 전 세계 무슬림의 삶과 실천행위를 규정합니다.
샤하다: “증거” 또는 신앙고백을 뜻합니다. 샤하다는 예배에서 반복됩니다. “하나님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거한다.” 신의 단일성과 유일성(타우히드) 및 무함마드가 예언자임을 믿는 것으로, 무슬림으로서 평생토록 걷는 여정의 첫걸음이 됩니다.
쌀라: 무슬림은 무함마드가 했던 것처럼, 하루에 다섯 번 예배, 즉 쌀라를 수행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고개 숙이고,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꾸르안 구절을 암송하며 겸손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배웁니다. 예배는 새벽, 정오, 오후, 일몰, 밤 등 하루에 다섯 번 행하는데, 모스크에서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하는 예배가 바람직하지만 깨끗한 장소에서 혼자 예배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가족들이 적어도 아침과 저녁에는 집에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무슬림은 신발을 벗고, 씻은 후 예배합니다. 모스크에서는 이맘 또는 종교 지도자가 예배를 인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 때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절하는 일련의 동작을 라크아(rak‘a)라고 합니다. 무슬림은 어디에 있든 예배 방향(끼블라)인 메카의 카바를 향해 예배하는데, 보통 메카 방향은 모스크 벽의 틈새(미흐랍)로 표시합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공동 예배(쌀라툴 주므아)를 진행합니다. 설교와 함께 정오의 쌀라를 대체하는 특별 예배로 이뤄집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매일 5번씩 홀로, 또는 단체로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삶을 지향합니다.
자카: 자카는 말 그대로 ‘정화(淨化)’라는 뜻으로, 재산 일부를 기부하여 나머지 재산을 깨끗하게 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카는 지역 사회의 불우한 사람이나 올바른 대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용됩니다. 자카는 이슬람의 사회 정의 구현 가르침의 한 부분입니다. 이슬람은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장려하는 동시에 재산을 이타적으로 사용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가르칩니다. 자카의 비율은 일반적으로 저축액과 비필수적인 재산을 포함하여 연간 누적 재산의 2.5%이며,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에서 징수하여 분배합니다. 미국 무슬림은 종종 지역 모스크나 무슬림 단체에 자카를 냅니다. 오늘날 무슬림 구호 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무슬림은 자카로 무료 급식소에서 난민 구호까지 다양한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싸움: 꾸르안의 첫 계시는 라마단 달에 무함마드에게 내려왔습니다. 매년 라마단 달에 무슬림은 매일 단식(싸움)을 합니다. 무슬림은 단식하는 동안 음식, 물, 성행위, 악한 생각을 삼갑니다. 라마단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단련하며, 인내심과 헌신을 기르는 시간이 됩니다. 또한 단식하면서 매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사회 정의의 필요성을 깨닫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라마단 기간 한 달 내내 꾸르안 전체를 암송하는 특별 야간 예배(쌀라툿 타라위흐, Salat al-tarawih)를 합니다. 라마단은 해가 진 후 가족, 친구와 함께 식사하며 공동체 결속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핫즈: 이슬람의 마지막 기둥은 핫즈(Hajj)로, 이슬람력의 마지막 달인 둘힛자(Dhu’l-Hijjah) 달에 행하는 성지 메카의 카바 순례입니다. 핫즈에서 무슬림은 하나님이 준 시련이지만 명령에 따라 아들 이스마일(이스마엘)을 희생할 준비를 마친 예언자 이브라힘(아브라함)의 신실함을 기립니다. 기쁨과 신실함으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순례를 위해 메카로 모입니다. 핫즈는 건강하고 재정적 여유가 있는 무슬림이라면 누구든지 반드시 평생 한 번은 행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핫즈에 참가하면서 전 세계 무슬림 공동체(움마)가 하나가 되어 인종, 민족, 문화가 달라도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으며, 모두 같은 흰색의 단순한 옷을 입고 가장 거룩한 장소에서 함께 걷고 예배하고 식사합니다.
순니파가 아닌 종파에서도 다섯 가지 기둥을 실천하지만, 여기에 새 조목을 추가하거나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시아파에는 무함마드의 후손인 열두 이맘에게 연간 지출 후 남은 이익의 1/5을 납부하는 쿰스가 있습니다. 9세기 12번째 이맘이 사라진 이후 이맘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마르자(대아야톨라)에게 대신 쿰스를 냅니다. 쿰스는 가난한 사람과 고아에게 분배되고, 지역 사회 유지를 위해 사용됩니다. 이스마일리 시아 무슬림은 쿰스의 1/10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재 생존해 있는 이맘에게 직접 냅니다. 시아 무슬림은 자카의 의무 또한 준수합니다. 쿰스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가난한 사람과 고아에게만 제한적으로 지급합니다. 순니와 시아의 또 다른 주요 차이점은 왈라야입니다. 왈라야는 이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 외에도 이맘의 종교적, 영적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시아 무슬림은 이를 중요시하여 샤하다에 “나는 알리가 신의 왈리(대리자)임을 증언한다”는 세 번째 신앙고백을 추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실천행위는 초기부터 변함없이 유지돼왔지만, 실행방법과 세부 사항은 끊임없이 사회적, 기술적, 과학적 변화에 따라 유동적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무슬림과 이슬람 법학자들은 주식도 자카에 포함되는지, 의료용 주사를 맞으면 단식을 깨는 것인지, 증가하는 순례자를 수용하기 위해 핫즈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신앙은 전 세계 무슬림의 세계관, 생활 방식, 실천행위에 영향을 미칩니다. 순니 무슬림 사이에서 신앙의 핵심 교리는 하나님, 천사, 계시, 예언자와 사도, 심판의 날, 정명(定命)입니다. 시아 무슬림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믿음에 동의하지만, 이맘의 인도(引導)를 기본 믿음으로 추가하였습니다.
“믿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도는 주님이 내려주신 것을 믿는다.
믿는 이들은 모두 하나님, 그분의 천사, 그분의 경전, 그분의 사도를 믿는다.
그들은 ‘저희는 그분의 사도들을 구분하지 않습니다’고 말한다.
‘우리는 듣고 순종합니다. 주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저희는 모두 당신께 돌아갑니다!’”
(꾸르안 2:285, 압델 할림 번역)
이만(Iman), 즉 이슬람의 믿음은 신앙의 핵심 신조를 흔들림 없이 확신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안보, 안전, 평온을 의미하는 어근에서 유래한 이 핵심 신조는 전 세계 무슬림의 세계관, 생활 방식, 문화, 실천수행에 영향을 미치며, 고난의 시기에는 평온을, 절망의 시기에는 안전을 가져다줍니다. 이 신조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예배 행위의 기초가 됩니다. 그 핵심은 절대적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일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 무슬림 신학자인 이스마일 알파루끼(Ismail al-Faruqi)가 “이슬람의 모든 다양성, 부와 역사, 문화와 학문, 지혜와 문명은 ‘라 일라하 일랄 라(La ilaha illa Allah, 하나님 외에 신은 없다)’라는 짧은 문장에 압축되어 있다”라고 언급했듯, 이슬람 신앙의 핵심은 유일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순니 무슬림이 믿는 신앙의 핵심 신조는 ‘6가지 믿음(6신, 六信)’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하나님, 천사, 계시, 예언자와 사도, 심판의 날, 정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단일성과 유일성(타우히드): 하나님의 유일성, 즉 타우히드는 이슬람 전체를 역동적으로 만듭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랍어로 “알라”라고 부르는 하나님은 진정 단 한 분임을 뜻하지만, 사실 그 이상으로 의미가 확장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모든 것을 존재하게 만들었기에 공간, 시간, 물질, 피조물 세계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초월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를 다스리고, 어떠한 협력자나 동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자비, 사랑, 용서, 정의, 주권, 지혜의 자질을 가장 완벽한 형태로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 결국 돌아가는 곳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렇기에 무슬림은 하나님에게만 예배와 헌신, 희생을 드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슬림 믿음에 따르면, 하나님은 궁극적인 실재이며, 하나님에 대한 경배야말로 인류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목적입니다.
천사(말라이카): 아랍어로 ‘말라이카’라고 부르는 천사는 빛으로 만든 존재로, 우주를 관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천사는 성별이 없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자유 의지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미카일(Mika’il)은 비를 내리고,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는 이즈라일(Izra’il)은 죽었을 때 시체에서 영혼을 가져가고, 이스라필(Israfil)은 부활의 나팔을 울리고, 라낍(Raqib)과 아티드(‘Atid)는 모든 사람의 행위를 기록하고, 문카르와 나키르는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을 심문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브리엘(Gabriel)이라고도 알려진 대천사 지브릴(Jibril)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 즉 예언자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일을 전담합니다.
신성한 계시(쿠툽): 하나님은 인간이 직접 인식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천사에게 계시를 보내고, 천사는 계시를 예언자에게 전달하고, 예언자는 계시를 다시 인류에게 전했습니다. 무슬림은 무함마드가 꾸르안을 받았을 때 이전의 예언자들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두루마리로 된 경전을, 모세는 토라를, 다윗은 시편을, 예수는 복음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꾸르안은 모든 인류를 위한 최후의 경전이기에 부활의 날까지 이전에 모든 경전을 대체합니다. 거의 모든 무슬림이 꾸르안의 일부 또는 전체를 암송합니다.
예언자와 사도(루술): 예언자 또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도록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파견되었습니다. 즉, 인류 역사상 수십만 명의 예언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꾸르안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예언자는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을 포함해 25명에 불과합니다. 무슬림은 예언자를 다른 종교 전통과 공유하지만, 예언자가 ‘완전하고’ 죄가 없는 인간이라고 인정하지만, 하나님과는 신성의 어떠한 측면도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것 외에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본보기 역할을 합니다. 무함마드는 마지막 예언자이자, 이전부터 내려온 모든 예언자 계보를 밀봉하고 그 위에 찍은 봉인(封印)과 같은 존재입니다. 무함마드는 모든 시대, 모든 곳의 모든 인류에게 보내졌고, 계시 역사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심판의 날(야움 알아키라): 무슬림 신앙에 따르면 모든 예언자는 임박한 심판의 날을 경고하기 위해 왔으며, 심판의 날에는 사람이 한 행위를 심판해 인간을 천국(잔나)이나 지옥(자한남)으로 보냅니다. 지옥은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장소로, 천국은 영원한 기쁨과 위로, 행복의 장소로 묘사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언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고, 하나님을 의식하여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자를 거부하며 불경하고 부도덕한 삶을 살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천국행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기에, 하나님은 원하는 대로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은 하나님의 자비 없이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를 권합니다. 일부 신학자에 따르면 지옥은 결국 끝나서 텅 빌 것이고, 모두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명(까다르, Qadar): 심판의 날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결정할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운명에 관한 지식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은 순니와 시아를 막론하고 여러 위대한 무슬림 사상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슬림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의 선악을 결정하지만, 하나님은 완벽하게 정의롭기에 불공평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무슬림에게 인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시험이나 선택이기에, 비록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모두 알지만, 각 개인은 자신이 한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인 샤 알라”(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마 샤 알라”(하나님이 원하셨다)와 같은 문구는 이러한 믿음을 반영합니다.
시아 무슬림은 일반적으로 앞서 언급한 순니의 신념에 동의하긴 하지만, 순니와 달리 '이맘의 인도'라는 교리를 포함합니다.
이맘의 인도(이마마, Imamah, Imamate): 시아 무슬림은 “살아있는 꾸르안”인 예언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람들을 이끌 지도자를 남겼다고 믿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예로 알려진 일군의 '이맘'이 바로 무함마드 사후 신성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입니다. 이맘은 잘못을 범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가 왜곡되지 않도록 보호하며, 난해한 지식을 전수하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사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12이맘파 시아 무슬림에 따르면, 이들 이맘은 모두 12명이며, 만물은 12명의 이맘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빛에서 파생되었습니다. 12번째 이맘은 현재 은둔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빛으로 인류를 인도하고 있으며, 종말에 다시 등장하여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가져올 것이라고 합니다. 자이디파 이맘은 5명으로, 이들 이맘의 지도력은 역대 통치자가 계속 이어왔습니다. 자이디파 이맘은 무오류의 이맘은 아닙니다. 이스마일리파 시아의 경우 니자리(Nizari)파 이맘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의 이맘을 ‘시대의 이맘’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마일리파의 다른 분파는 다이(da‘i)로 불리는 대리자가 이맘들로부터 영적인 가르침과 지도를 받아 이맘의 지도력을 이어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슬람교는 이슬람 통치자들이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무슬림 통치자, 군인, 상인, 수피교도, 학자, 시인, 건축가 모두 독특한 이슬람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광범위한 이슬람 세계에 걸쳐 지역을 초월한 이슬람 문화가 지역 전통과 혼합되어 독특한 형태의 국정, 신학, 예술, 건축 및 과학을 만들어냈습니다.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쇠퇴하자, 최초 4명의 "올바른 인도를 받은" 칼리프가 시리아, 이집트, 이라크 및 페르시아 일부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아랍 무슬림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 후 661년부터 750년까지 다마스쿠스를 통치했던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는 이슬람 통치의 경계를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인도로 더욱 확장시켰습니다. 이 땅의 대다수 사람들이 무슬림이 된 것은 수 세기에 걸친 무슬림 통치 이후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선택에 의한 것이지 강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슬림 통치자, 군인, 상인, 수피교도, 학자, 시인, 건축가 모두 북아프리카, 스페인, 페르시아 및 인도에서 독특한 이슬람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서아프리카와 기타 지역에서 이슬람교는 상인 공동체와 수피 타리카(tariqa : 교단)를 통해 확산되었으며, 원주민 통치자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국경을 확장하려고 하면서 이슬람 제국이 탄생했습니다. 종교적, 사회적 관심을 하나로 묶은 이슬람 개혁 운동은 특히 이슬람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서기 750년에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바그다드에서 13세기까지 통치했습니다. 9세기 이후 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했지만 칼리프 국가는 여전히 무슬림 통합의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주요 하디스 컬렉션, 법률 학교, 신학 논쟁, 수피 교단, 페르시아 및 아랍 시의 전통 등 고전 이슬람 문명은 아바스 왕조 시대에 번성했습니다.
파티마 왕조는 서기 909년에 북아프리카에 왕조를 세웠고, 서기 969년에 이집트를 정복했습니다. 새로 설립된 수도인 알카히라(현재의 카이로)에서 이스마일리 파티마 왕조는 알-아자르와 같은 교육 및 문화 기관을 설립하고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파티마 왕조의 영향력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동쪽의 인도 국경지대에서 서쪽의 아틀라스 산맥까지 이르렀습니다.
중앙아시아의 몽골인들은 동부 이슬람 중심부를 가로질러 시리아까지 휩쓸었고, 서기 1258년에 바그다드에서 칼리프 통치가 종말을 맞았습니다. 많은 침략자들은 시아파 이슬람과 페르시아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수세기 동안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통치하며 페르시아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몽골의 침략 이후 새로운 제국이 등장했습니다.
1453년 이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기반을 둔 오스만 투르크는 14세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지속된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순니 이슬람교와 수피의 명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군사적, 건축적 업적으로 유명했습니다. 16세기와 17세기에 무굴 제국은 인도 북부를 지배했으며, 그곳에서는 인도-무슬림 문화가 번성하여 아름다운 건축물, 회화, 수피 시가 탄생했습니다. 사파비 왕조는 1499년부터 1722년까지 페르시아에서 시아파를 옹호하여 이슬람 예술과 철학을 장려했습니다.
각 제국 아래서 초지역적인 이슬람 문화는 지역 전통과 혼합되어 독특한 형태의 국가 술식, 신학, 예술, 건축 및 과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심지어 많은 연구자들은 무슬림 학자, 사상가, 문명의 창의성과 수많은 업적이 없었다면 유럽의 르네상스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유럽 식민지화는 종종 이슬람의 종교적 기초와 이슬람 교육, 법률 및 문화 기관을 대체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다양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독립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탈식민지 국가는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음을 반영하며, 일부 국가는 스스로를 세속 국가라고 선언하고(터키), 다른 국가는 국가 법률 시스템에서 샤리아 법을 엄격하게 성문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파키스탄).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의 식민지 확장 기간 동안 비무슬림 상인과 선교사, 군인, 식민지 행정가들이 무슬림 세계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는 모두 식민지 제국을 발전시켰고, 중국과 러시아도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지역으로까지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20세기에는 허약한 오스만 왕조와 페르시아 왕조만이 권력을 유지했고,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라비아 등 일부 지역만이 식민지 지배를 피했습니다. 프랑스는 북아프리카의 대부분과 서부 및 중앙아프리카의 일부를 통치했습니다. 영국은 이집트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무슬림 지역과 대규모 무슬림 소수민족이 사는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을 통제했습니다. 네덜란드는 현재 인도네시아 대부분을 통치했고, 스페인은 북아프리카와 필리핀 일부를 통치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어 영국(페르시아만 지역,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과 프랑스(시리아, 레바논)에 분할되었습니다.
그러한 외국의 지배는 무슬림의 자존심에 타격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통치자들이 전통적인 무슬림의 교육, 법률, 정부 기관을 서구의 기관으로 대체함에 따라 이슬람의 기초 자체를 위협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의 종교적 정신을 약화시켰고, 세속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문화를 그들에게 강요했으며, 움마에서 민족적, 국가적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 19세기 후반에는 이슬람 원칙과 제도의 부활과 서구식 민족주의에 의해 다양한 정도의 영감을 받아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독립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무슬림들은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국가 건설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튀르키예의 초기 지도자들은 1923년 세속 국가를 선언하여 칼리파제도를 폐지하고 샤리아를 유럽식 법규로 대체하며 수피 교단을 불법화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 후 파키스탄은 인도에서 떨어져 나와 이슬람 공화국이 된 후 단일 이슬람 법학파의 법적인 견해를 성문화하여 국법의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1970년대에 이르러 무슬림 세계는 여러 독립 국가로 나뉘었고, 1990년대에는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공화국이 무슬림 세계에 합류했습니다. 범이슬람 통합을 희망하는 무슬림이 많지만, 다양한 이념과 문화적 차이로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슬람의 다양성은 종교 내에서의 부흥/개혁 운동과 무슬림의 이주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이슬람의 부흥/개혁 운동의 예로는 전통 개혁가, 현대 개혁가, 샤리아의 엄격한 지지자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300만 명이 넘는 무슬림이 “이슬람은 하나이고 무슬림은 많다”는 격언이 진실임을 증명합니다.
오늘날 무슬림은 꾸르안의 신성한 말씀을 경청하고 해석하며, “다섯 가지 기둥”을 비롯하여 샤리아를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무슬림은 예언자의 모델을 따르며, 많은 사람이 수피의 가르침을 좇아 내면의 길을 추구합니다. 이는 시공을 초월하여 무슬림 세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통 이슬람의 모습입니다. 탈식민지 시대인 오늘날 무슬림 세계는 확장하고 있고, 무슬림은 이슬람 부흥과 전 세계적인 이주라는 두 가지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부 보수적인 무슬림은 현대적 삶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우면서 고전시대 이슬람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전통적인 학문을 다시 살리길 원합니다. 법학, 철학, 신학, 꾸르안 주석 등 고전적인 학문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압바스 칼리파조 시대(8~13세기)는 모범적인 시기입니다. 이슬람을 전통주의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노력은 지난 2세기 동안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무슬림 세계는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 서구의 교육, 민족주의, 기술을 받아들였습니다. 여러 무슬림 ‘현대주의’ 개혁가가 서구의 철학, 헌법, 복식을 받아들이며, 이슬람 사상이 새로운 시대 현실과 대화하도록 장려합니다. 또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수피 모델을 예로 삼아 서구 사상을 적당히 수용하는 것만을 제안하는 개혁가도 있습니다.
식민지 이전 시대에 뿌리를 내린 또 다른 유형의 개혁 운동은 샤리아를 엄격하게 적용할 것을 요구하며 서구의 영향과 수피, 전통 철학, 예술이 모두 초기 움마의 ‘순수’ 이슬람을 타락시켰다고 여깁니다. 이들 개혁가는 종종 꾸르안과 순나에만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샤리아에 내재한 다원주의와 지속적인 담론을 무시한 채 꾸르안과 순나를 단순하고 환원적으로 해석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집트와 수단의 무슬림형제단,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운동, 파키스탄의 자마아테이슬라미 등이 있습니다. 더 급진적인 이슬람 개혁 운동은 이슬람 전통에서 끌어낸 원리와 함께 정치 혁명 이데올로기를 채택하고 혁신을 추구합니다.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혁명이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단일하지 않고,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식민지 시대 이후 이슬람 세계가 이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주로 무슬림 국가에서 서유럽과 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 노동자, 학생, 정치적 난민 등이 이주행렬에 가담하였습니다. 현재 파리, 런던, 로마는 물론 뉴욕, 밴쿠버, 멕시코시에도 번성하는 무슬림 공동체와 웅장한 모스크가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착지에서 무슬림 이주민은 인종적, 종교적 편견에 따른 적대감을 자주 맛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무슬림 세계’는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이슬람은 미국에서 번성 중입니다. 미국에는 이민자와 토착 무슬림을 합하여 모두 3백만 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하나이고 무슬림은 많다”는 말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모든 종파, 국적, 법학파의 무슬림이 미국 사회에 존재하며, 함께 신앙 공동체(움마)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가장 근본적인 신앙고백인 샤하다(Shahada)는 “하나님(알라)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使徒)”라는 두 문장으로 이루어집니다. 영적인 세계로 초대하는 이 문장은 하루에 다섯 번 예배 때나 예배를 알릴 때 암송됩니다.
하루에 다섯 번 무에진(예배시간 알리는 사람)은 서서 모든 무슬림에게 예배를 하라고 아잔(예배 알림문)을 외칩니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한다.
하나님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한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한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한다.
기도하러 오라. 기도하러 오라.
성공의 길로 오라. 성공의 길로 오라.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하나님 외에 신은 없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아슈하두 알라 일라하 일랄라.
아슈하두 알라 일라하 일랄라.
아슈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술룰라.
아슈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술룰라.
하야 알랏쌀라흐. 하야 알랏쌀라흐.
하야 알랄팔라흐. 하야 알랄팔라흐.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라 일라하 일랄라.
아잔에는 두 문장으로 무슬림 신앙을 증언하는 “하나님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이다”라는 샤하다가 들어 있습니다. 이 짧은 선언문으로 무슬림은 이슬람의 엄격한 유일신교적 특징을 강조하고 하나님이 인류에 내린 마지막 사도 무함마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선언합니다.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 하나인 샤하다는 전 세계 무슬림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히 정의합니다. 샤하다는 단순한 신앙 선언이 아니라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는 이슬람 신앙 실천의 핵심입니다. 샤하다는 하나님이 마련한 올바른 길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합니다. 이슬람을 받아들일 때 낭독하는 샤하다는 믿음과 실천을 하나로 묶은 길로 나가는 첫걸음입니다.
이슬람의 소명은 예배로 시작하여 예배로 끝나는데, 이는 인류를 진실하고 뜻이 있는 여정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이신 하나님이 사도를 보내셨다는 확신에 근거합니다. 무에진은 아침 예배 아잔에 “예배가 잠보다 낫다!”라고 덧붙입니다. 시아파 무슬림은 “기도가 최고이다”라는 문구를 포함시킵니다.
이슬람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킵니다.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따르는 이슬람은 창조주 하나님, 마지막 사도 무함마드, 하나님의 최종 말씀인 꾸르안을 인정합니다.
'이슬람'은 복종한다는 뜻의 아랍어입니다. 이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방식, 즉 행동입니다. '무슬림'은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하나님이 알려준 것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종종 동물 또한 하나님이 부여한 본성에 자연스레 순응하며 산다는 점에서 무슬림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호랑이는 온전히 호랑이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선택권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꾸르안 계시에 맞춰 하나님의 뜻을 따르거나 거부하는 것은 각 개인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사제나 중재자는 필요 없고, 각 개인이 스스로 결정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슬람과 어원이 같은 말은 아랍어로 평화를 뜻하는 '살람'이다. 전 세계 무슬림은 살람이라는 말을 써서 “앗살라무 알레이쿰(평화가 함께 하길)”이라고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스도교,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는 중동에서 시작했지만, 세계 종교가 되었습니다.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는 10억 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오랜 역사와 풍부한 지리·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하면, 이슬람을 한 가지 그림으로만 표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슬람의 다양성은 이슬람이 가진 힘의 한 부분이자 증거인데, 이슬람의 가르침은 시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실행과 적응이 모두 가능함을 입증했습니다.
이슬람은 역사상 예언자와 계시를 보내어 수많은 사람에게 사는 법을 알려 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무슬림에 따르면 하나님의 마지막 예언자이자 사도는 무함마드이고,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꾸르안입니다. 예언자 시대부터 신실한 무슬림 공동체는 각기 새로운 세기마다 다양한 문화적 맥락 안에서 이슬람의 길을 따라 하나님 말씀에 응했습니다.
꾸르안은 무슬림들의 성경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에 의해 밝혀졌고 아랍어로 쓰여졌습니다. “낭송”이라는 의미를 가진 꾸르안은 본래 구전 텍스트였고, 듣고 암송함으로서 보존되었습니다.
이슬람의 경전 꾸르안은 문자 그대로 경전을 여는 장이이라는 뜻인 알파티하로 시작됩니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찬미 받으소서, 온 세상의 주님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심판일의 왕이시여.
저희는 당신을 숭배하고 당신의 도움을 구하오니.
저희를 바른길로 인도하소서.
당신의 분노를 일으키거나 헤매는 사람들의 길이 아닌, 은총을 내리신 이들의 길로.
비스밀라히르 라흐마니르 라힘
알함둘리라히 랍빌 알라민
아르라흐마니르 라힘
말리키 야우밋딘
이야카 나으부두 와 이야카 나스타인
이흐디낫 시라딸 무스타낌
시라딸 라디나 안 암타 알라이힘 가이릴 마그두비 알레이힘 왈라 달린
파티하는 아랍어로 ‘쌀라’라고 부르는 예배에서 매일 낭송합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파티하가 꾸르안 가르침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랍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는 '알라'입니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인과 유대인 역시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알라로 부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고 통치하며, 모든 인간을 심판하고, 자비롭고 자애로우며, 믿는 이들을 정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 여겨집니다.
꾸르안은 문자 그대로 낭송이라는 뜻입니다. 무함마드는 꾸르안 말씀을 아랍어로 계시받은 후 추종자들에게 낭송했습니다. 꾸르안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는 있지만, 무슬림은 번역을 해석으로 간주할 뿐 꾸르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꾸르안은 앞부분에서 뒷부분으로 갈수록 길이가 짧아지고, 114개 장(수라)로 이뤄져 있는데, 각 장은 책의 한 장 또는 부문을 나타냅니다. 꾸르안에는 예배와 찬양, 창조한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징표 이야기, 무함마드 이전 예언자 이야기, 심판의 날이나 법적인 문제나 올바른 행동과 관련된 구절 등이 담겨 있습니다. 꾸르안은 반드시 듣고 낭송해야 하는 구전 텍스트입니다. 틸라와, 즉 꾸르안 낭송은 타즈위드(발음, 억양, 접근법)에 따라 이루어지는 과학이자 예술이며, 헌신의 표현입니다. 미국의 젊은 무슬림도 참가하는 꾸르안 낭송 경연 행사가 전 세계에서 열립니다.
오늘날 꾸르안은 아랍어 원문에서 수십여 언어로 옮긴 번역본까지 모두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데, 내용 해설이나 낭송 오디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꾸르안 온라인판에는 독자가 특정 단어나 구절이나 장을 찾을 수 있는 검색 엔진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꾸르안의 영어 온라인판에는 여러 학자의 다양한 번역본도 있습니다. 번역은 원문의 뜻을 바꿀 수도 있기에 어떤 번역도 아랍어 원문을 충실하게 옮길 수 없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꾸르안이 대단히 중요하기에 무슬림은 꾸르안을 배우고 최신 전자 매체와 다양한 언어로 꾸르안을 알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메카 외곽의 산 히라에서 매년 열리는 의례에 참가하던 중 첫 계시를 받았습니다. 7세기 다신교 메카 사회는 예언자가 가르친 타우히드(tawhid, 하나님의 단일성과 유일성)를 도전으로 여겨 무함마드를 박해했습니다.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hijrah 히즈라)하여 모범적인 무슬림 공동체를 설립하고 새로운 이슬람력을 시작했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무슬림에게 하나님의 사도이자 삶의 모범입니다. 570년 아라비아반도의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는 삼촌 집에서 고아로 자랐습니다. 그는 나이 많은 과부 카디자와 결혼했는데, 결혼 전에는 카디자에 고용되어 대상무역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인 무함마드는 알아민(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마흔 살이 되던 해, 깊은 종교 체험을 하면서 삶에 큰 변화를 겪고 이슬람 신앙을 확립했습니다.
무함마드는 매년 메카 외곽에 있는 히라 산에서 경배 의례를 행했습니다. 어느 라마단(Ramadan)월 밤, 무함마드는 동굴에서 반쯤 잠든 상태에서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에게 천사가 “낭송하라!”고 명령했고, 무함마드는 “무엇을 낭송하라는 겁니까?”라며 두 번이나 물었습니다. 세 번째로 천사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읽어라! 창조주 이름으로. 그분은 한 방울의 정액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읽어라! 주님은 가장 은혜로운 분. 펜으로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꾸르안 96:1-5).” 무함마드는 이를 낭송한 후 “마치 마음에 말씀이 새겨진 것”처럼 느끼며 잠에서 깼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던 중 무함마드는 하늘로부터 “무함마드, 너는 하나님의 사도이고, 나는 가브리엘이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수평선 위에서 천사의 형상을 한 이가 그런 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무함마드는 계속 계시를 받았고, 메카에서 믿는 사람이 늘기 시작하면서 아내와 따르는 이들에게 계시를 낭송했습니다.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는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앞선 예언자들이 알려 준 믿음의 길로 다시 들어서라는 초대장이었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7세기 메카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었습니다. 메카는 아라비아 다신교의 순례지였고, 그 중심은 360여 개의 우상을 모신 정육면체 모양의 핵심 신전 카바(Ka‘bah)였습니다. 이러한 다신교 세계에서 무함마드는 타우히드(하나님의 단일성과 유일성)를 가르쳤습니다. 부족 간 유대가 강하고 유혈 분쟁이 만연한 사회적 상황에서 무함마드는 보편적 공동체인 움마(Ummah)에 관해 말했습니다.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할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며 사회 정의와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소규모 무슬림 공동체는 계속해서 가혹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622년 무함마드와 추종자들은 메카에서 북쪽 메디나로 이주(아랍어로 ‘히즈라’)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모범적인 이슬람 공동체를 세웠고, 이것이 훗날 이슬람력의 원점이 되는 역사적 이주입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의 현세적, 영적 지도자가 되어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던 도시에 질서를 세우고 주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습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도 계속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 계시는 널리 퍼졌습니다. 적대적이었던 메카의 사람들과 전투와 협상을 벌인 끝에 630년 무함마드는 승리를 거두고 메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많은 메카 사람이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무함마드는 카바를 유일신 신전으로 만들었습니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632년에 아라비아반도 대부분 지역의 사람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였습니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 무슬림 공동체는 무함마드의 언행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데 가장 좋은 모범으로 기억하고 보존했습니다. 예언자의 말은 나중에 전승집, 즉 하디스(Hadith)로 집성되었는데, 이는 예언자의 말과 실천을 담은 예언자 순나(Sunnah)의 일부입니다. 순나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방법을 일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무슬림은 “무함마드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도에 불과하다”(꾸르안 3:144)고 말합니다. 무슬림은 예언자 무함마드를 언급할 때 존경의 뜻을 보이고자 이름을 말한 직후 대개 “무함마드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평화가 깃들길”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쌀랄라후 알레이히 왓 살람”(salla llahu alayhi wa sallam)이라는 구절을 덧붙입니다. 글로 쓸 때는 이를 줄여 (sa), SAW 혹은 PBUH (May the prayers and peace of God be upon him) 등으로 간략화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붓글씨 서체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이슬람 내 다양한 전통은 꾸르안, 하디스(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 이슬람 지도자 문제에 관해 서로 다르게 해석합니다. 몇몇 전통으로 순니, 시아, 수피를 들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여, 하나님과 사도와 너희 가운데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순종하라.
너희가 진정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믿는다면 분쟁 거리를 하나님과 사도에게 맡기라.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더 낫고 공평하다.”
(꾸르안 4:59)
무슬림은 하나님의 단일성을 서로 함께 증언하고, 예언자가 보인 모범적인 언행을 따르며, 하나님을 향한 기본적인 경배와 섬김을 수행하면서 하나의 움마(공동체)를 이뤄 단결합니다. 이러한 통일성 안에도 다양성이 존재하는데, 이는 꾸르안과 하디스를 다르게 해석하는 다양한 이슬람 법학파의 발전과 함께 정치적 권위와 영적 지도력 본질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슬림은 예언자의 패러다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여, 각기 예언자의 삶과 가르침의 특정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종종 서로 겹치기도 하고 보완하면서 다채롭게 경건함을 표현합니다.
이슬람 전통의 중요한 흐름은 종교적, 법적 가르침의 해석자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이를 샤리아(Shariah 아랍어로 '길')라고 부릅니다. 샤리아는 무슬림이 예언자의 패러다임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법, 윤리, 가치관을 포함합니다. 무함마드 사후 학자 그룹인 ‘울라마’가 등장했습니다. 일부 울라마는 샤리아에서 파생한 피끄흐(Fiqh 이슬람 법학)의 주요 학파를 세웠습니다.
수피 운동으로 이슬람 초기에 무함마드와 하나님 간 친밀한 관계를 모델로 삼아 경건한 수행과 신비주의 사상이 발전했습니다. 수피 운동은 이슬람이 전 세계로 퍼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수피는 이슬람의 여러 분파를 초월하여 조직을 구성하고, 예술적 표현으로 무슬림의 영적 자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순니파로 알려진 그룹과 시아파로 알려진 그룹 간 분열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입니다. 무함마드 사후 누가 지도자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가 어떤 권위를 가져야 하는지를 두고 초기 분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의 차이로 다양한 법과 신학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순니파 무슬림과 시아파 무슬림은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둘러싼 질문을 계기로 분리되었습니다. 시아 무슬림은 역사적으로 알리가 무함마드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족 내에서 후계자를 추대하여 인정했습니다. 순니 무슬림은 역사적으로 아부 바크르 앗시디끄를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주장했고, 공동체 내에서 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시아는 ‘알리의 당(黨)’을 뜻하는 시아트 알리(Shi’at Ali)에서 파생된 것으로, 첫 번째 단어 시아(트)에서 '시아'가 나왔습니다. 시아는 예언자의 후손만이 움마의 지도자요, 유일하게 합법적인 무함마드의 후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무함마드의 바라카(영적 은총 또는 영적 능력), 그리고 꾸르안을 해석하는 그의 특별한 지식이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사촌 동생인 알리에게 전해졌다고 믿습니다. 무슬림 공동체 지도자직은 예언자의 가족 내에서 후계자(이맘)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대물려 이어졌습니다. 시아파에 따르면, 예언자의 직접적인 계시가 없는 공동체에는 항상 이맘이 있어야 합니다. 이맘은 계시를 유지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여 공동체를 인도합니다.
시아 무슬림의 대다수는 12명의 이맘을 인정하기에 '12이맘파'라고도 불립니다. 12이맘파가 따르는 마지막 12번째 이맘은 9세기 후반에 사라졌습니다. 시아 무슬림은 인류 마지막 날에 진리와 정의를 확립하고자 12번째 이맘이 마흐디(올바르게 인도된 자, 또는 “메시아”)로 다시 돌아온다고 믿습니다. 12이맘파와는 달리, 자이디(Zaydi, 자이드파 시아 무슬림)와 이스마일리(Isma‘ili, 이스마일파 시아 무슬림)는 다른 형식의 이맘 계승을 주장합니다. 이스마일리는 마지막 이맘이 이스마일이라고 믿습니다. 자이디는 이맘이 무함마드의 딸과 사위인 파티마와 알리의 후손이어야 하지만, 반드시 이맘의 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믿습니다.
무하람(Muharram)월 10일 아슈라(Ashura)에서는 680년 순교한 무함마드의 손자 후세인(Husayn)을 기념하는 수난극이 열립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 시아 무슬림은 이맘들의 삶과 고난을 이야기와 의례로 기념합니다. 시아 무슬림에게 이맘의 말씀은 꾸르안과 예언자의 순나와 함께 이슬람법의 원천이 됩니다.
초기 공동체 무슬림 대다수는 능력, 경건함, 예언자와 친밀한 우정 때문에 아부 바크르 앗시디끄를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무함마드가 자신의 권위를 공동체 전체에 주었기에 공동체가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꾸르안, 예언자의 순나, 무슬림의 합의인 이즈마(ijma)를 따름으로써 종교적 권위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신앙 공동체를 ‘순나의 사람들’ 또는 ‘순니파’라고 불렀습니다. 순니파의 칼리파(무함마드를 이은 지도자)는 초기 무슬림 제국의 국경을 넓혔습니다. 우마이야(Umayya) 왕조는 661년부터 다마스쿠스에서 통치하며 칼리파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시아파, 수피, 이슬람 법학파 등 여러 운동의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수피 운동은 디크르(기억), 윤리적 수양, 마음과 자아를 정화해 하나님을 향한 신비로운 지식과 사랑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슬람의 내면적인 차원을 말합니다. 수피 운동은 개인이 시작했지만, 따리까(Tariqa, 수피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영적 지도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시, 예술, 전례, 전기, 철학서 및 여러 형태의 문학 작품도 나왔다. 오늘날 무슬림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피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타사우프(Tasawwuf, 수피가 된다는 뜻)는 이슬람의 별도 종파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비로운 사랑, 지식, 헌신의 내적 길을 강조하는 해석의 흐름입니다. 예언자 무함마드와 동료를 최초의 수피로 볼 수는 있지만, 수피 운동은 8세기 무함마드의 소박한 생활 방식과 영적 삶에 경의를 표한 일부 무슬림이 무슬림 공동체가 이러한 이상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던 시기에 공식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수피(Sufi)’라는 이름의 기원을 초기 고행자들이 입었던 거친 수프(Suf, 양털로 만든 옷)에서 찾는데, 수프는 물질적인 사치를 포기함을 상징합니다. 순결을 뜻하는 아랍어 ‘사파’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초기 수피 운동은 다양한 방향성, 교리, 의례, 문학, 공동체를 이뤘습니다.
수피 운동은 다양하지만, 본질적인 목표는 탐욕, 정욕, 허영과 같은 이기적인 감정과 욕망을 비우고, 관용, 사랑, 겸손과 같은 이타적인 특성으로 자아를 채워 하나님과 신비롭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수피의 여행길은 정거장(마까마트, maqamat)과 심리 상태(아흐왈, ahwal)로 이뤄집니다. 정거장은 여행의 랜드마크와 같은데,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윤리적 자질을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회개의 정거장에서 시작하여 포기, 겸손, 인내, 감사, 유익, 만족, 기쁨 등의 단계를 거칩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마침내 이기적인 특성을 완전히 비우고(파나 Fana) 하나님의 도덕성을 구현하는(바까 Baqa) 단계에 도달하는데, 이 시점에서 여행자는 목적지인 ‘하나님과 신비로운 결합’에 도달하여 그노시스(gnosis)와 신성한 사랑에 휩싸입니다. 여행길을 걸으면서 수축, 확장, 갈망, 횐희 등 일시적인 심리 상태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여행 중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심리 상태는 하나님이 주는 자연스러운 선물로 여깁니다. 수피의 길을 걷고 난 후의 변화를 가리켜 ‘성자가 되었다(wilaya 윌라야)’라고 하며, 그러한 사람을 성자(왈리 wali)라고 부르는데,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수피의 여정은 이생이나 사후에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서만 노정되어 있습니다. 8세기 이라크의 유명한 여성 수피인 바스라의 라비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자(하나님과 가까운 이)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들 곁으로 학생과 제자가 결집하여 성자의 가르침을 영적 발전의 지침으로 삼는 수피교단(따리까)이 설립되었습니다. 수피교단은 수백 개가 있는데, 샤딜리(Shadhili), 나끄쉬반디(Naqshbandi), 까디리(Qadiri), 치쉬티(Chishti), 메블레비(Mevlevi), 티자니(Tijani) 등이 오늘날 가장 유명합니다. 이들 교단명은 모두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또한 수피교단은 모임과 공동생활을 위한 센터를 지었는데, 이를 아랍어로 자위야(Zawiyya), 페르시아어로 한까(Khanqa)라고 부릅니다. 무슬림 상인이나 떠돌이 수피를 위한 객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또 그 안에 창시자와 창시자 이후 스승과 제자의 묘를 조성하였는데, 일반 대중의 성자숭배와 순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피 의례는 “서 있거나 앉거나 누워 있을 때”(꾸르안 3:191)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가르치는 꾸르안 구절에 근거를 두고,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합니다. 이러한 의례를 총칭하여 디크르(기억 dhikr)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이름과 여러 문구 반복(타스비흐 tasbih), 침묵 명상(무라까바 muraqaba), 묵상(타파쿠르 tafakkur), 호흡법(파스 안푸스 pas anfus), 음악과 춤 등을 포함한 의식(사마 sama) 등 다양한 표현을 포함합니다. 이 모든 수행의 공통분모는 하나님을 직접적이고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빙글빙글 도는 데르비시’는 13세기 수피 성자 잘랄룻딘 루미를 따르는 메블레비 교단의 일원으로 사마의 한 형태인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는데, 메불레비의 사마는 수피 여정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데르비시가 쓴 황갈색 모자는 자아가 죽었다는 뜻으로 자아의 묘비, 흰색 넓은 치마는 수의를 가리킵니다. 검은 망토를 벗음으로써 이기심을 버리고 진리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을 향해 위로 벌린 오른손은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을, 땅을 향해 아래로 뻗은 왼손은 은총이 인류에게 전달되는 것을 각각 상징합니다. 빙글빙글 도는 동작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은 마음이 돈다는 것과 모든 인류를 사랑으로 포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수피는 꾸르안 주석, 유명한 수피의 전기, 행동과 수행 지도서, 예술 작품, 전례집, 문학, 철학, 우주론, 윤리 등 다방면에 걸친 서적을 저술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시가 가장 잘 알려졌을 것입니다. 시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우르두어, 말레이어 등 다양한 언어로 썼습니다. 수피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는 루미의 마스나비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이슬람의 내적인 뜻을 소홀히 다루고 율법주의적 측면만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수피가 존재합니다. 일부 미국 무슬림은 샤딜리나 티자니처럼 미국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수피 교단을 따르거나, 바와 무하이얏딘(Bawa Muhaiyaddeen) 모임과 같은 새로운 교단을 선택합니다. 인도의 수피 음악가인 이나야트 칸(Inayat Khan)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나야티(Inayati)처럼 좀 더 보편적인 교단에 가담하기도 합니다. 미국 무슬림은 개인의 영적, 윤리적 삶을 위해 수피 수행을 하면서도 공식적으로 교단에 참가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다니엘 압달-하이 무어(Daniel Abdal-Hayy Moore)와 같은 수피 시인과 바라카 블루(Baraka Blue)와 같은 수피 음악가 덕분에 토착 수피 문학 작품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피의 매력은 무슬림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시집 중 하나인 루미의 시는 수피의 여행길을 묘사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2005년 유네스코는 메블레비 교단의 사마 의식을 인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기로 결정했고, 루미 탄생 800주년을 기념하여 2007년을 ‘국제 루미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수피의 사상, 수행, 교단, 매체와 장소를 초월한 표현의 다양성은 진정으로 국가와 종파를 초월하는 매력이 수피의 길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샤리아는 무슬림의 실제 생활을 지배하는 이슬람의 법, 윤리, 지침 체계를 가리킵니다. 샤리아는 선지자 무함마드로부터 시작되었고 나중에 '울라마'에 의해 성문화되고 전파되었습니다. 학교, 판사, 법원, 통치자와 함께 샤리아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샤리아는 국가와 개인 수준 모두에서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되며, 이는 국가 및 순니파/시아파 등의 종파에 따라 다른 적용범위를 갖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무슬림 공동체를 위한 종교 교리의 해석자이자 메디나의 무슬림 국가 지도자였습니다. 예언자의 사후 여러 세기에 걸쳐 무슬림의 통치는 스페인에서 중국 국경까지 확대되었지만, 일부 무슬림은 지도자들이 무함마드의 메디나 공동체가 좇던 이상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언자가 살아있는 동안 사람들은 예언자의 하디스, 즉 순나(문자적인 뜻은 관습.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 행동, 생활 방식을 가리킴)를 수집하고 기록했습니다. 무슬림 통치자를 비판한 사람은 순나 연구의 권위자이자 존경받는 꾸르안 해석가였습니다. ‘울라마’라고 부르는 이들 학식 깊은 사람은 무슬림이 예언자의 모범에 따라 의례부터 상업, 개인위생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를 수 있도록 율법, 윤리, 태도와 관련한 샤리아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샤리아는 꾸르안과 순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유추에 따른 추론’이나 ‘공공의 이익’처럼 다양한 추론 방법(라이, ra’y)을 사용하여 법적인 결론을 도출합니다. 샤리아는 예배, 순례 방법부터 혼인, 상거래, 식음료 관련 가르침, 이웃, 가족, 고아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응대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사회 문제에 관한 포괄적인 법과 윤리 및 가르침을 제시하는 체제를 뜻합니다. 모든 계율은 해악을 피하고 이로움을 가져온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인류의 종교, 생명, 지성, 가족, 재산 등 다섯 가지 중요한 행복한 삶의 면면을 보존하고자 고안되어야 합니다. 일반 대중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형법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작습니다.
샤리아의 특징으로 마드하브(madhab)이라고 하는 법학파가 여럿 있고, 법 해석이 다양하며, 서로 다른 해석을 모두 유효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을 통칭하여 법학(피끄흐)이라고 합니다. 초기 순니 울라마는 여러 법학파를 발전시켰는데, 학파의 시조가 되는 위대한 학자의 이름을 따서 법학파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 등 4개의 법학파가 건재합니다. 시아파 울라마 역시 여러 법학파를 이루었는데, 가장 유명한 학파는 자파리(Ja‘fari) 학파입니다. 울라마는 당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이고 교정적인 세력으로 부상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슬람 세계 곳곳에 마드라사(학교)가 설립되어 울라마가 법, 철학, 신학, 예술,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이슬람 세계의 마드라사는 유럽 대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는 카이로에 있는 10세기 알아즈하르 대학으로, 여전히 세계적인 무슬림 교육 센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울라마는 이슬람 세계 전역의 샤리아 법원에서 판사(까디)와 법학자(무프티)로 활약했고, 통치자의 자문역할도 맡았습니다. 따라서 너른 시각으로 본다면 샤리아는 학자, 학교, 법원, 판사, 법학자, 통치자가 힘을 합쳐 하나님의 가르침을 사회 내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오늘날 샤리아는 무슬림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형식과 해석은 상황에 따라 다양합니다. 주로 순니파가 다수인 일부 무슬림 국가에서는 샤리아가 국가 헌법 안에 성문화되어 있고, 세속 법원과 샤리아 법원이 모두 존재하면서 법의 다양한 측면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 샤리아 법원은 주로 혼인, 이혼, 상속과 같은 개인 및 가족법을 다루며, 현대 국가가 후원하는 이슬람법적 해석 평의회(파트와 평의회, 다르 알이프타, Dar al-Ifta)는 종교와 관련된 새로운 사회 문제와 변화를 다루고자 샤리아 해석을 도출합니다. 울라마는 여전히 샤리아를 가르치고 여러 측면으로 발전시킵니다. 울라마는 남아시아의 다르 알울룸 신학교와 같은 마드라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맘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 대학교, 이집트의 알아즈하르 대학교와 같은 현대식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순니와 달리 시아 무슬림은 샤리아를 가르치고 도출하는 울라마를 계층적으로 세분화했습니다. 가장 높은 등급의 울라마는 마르자(따라야 할 모범, marja)입니다. 마르자가 아닌 시아 무슬림은 반드시 마르자를 따라야 합니다. 마르자는 “대(大) 아야톨라”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아 울라마는 호우제(종교 지식을 수호하는 장소, Hauze)라고 부르는 교육 기관에서 일합니다. 오늘날 중요한 호우제로는 이란의 곰 신학교와 이라크의 나자프 신학교가 있습니다. 시아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란은 샤리아를 적용하는 독특한 방식도 선보였습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샤리아 전문가이며, 헌법수호위원회와 함께 입법부와 사법부가 내린 결정이 샤리아에 부합하는가를 감독합니다. 따라서 시아 울라마는 순니 울라마와 비교해 훨씬 더 두드러지고 적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의 무슬림은 샤리아가 국법과 모순되지 않고 반드시 국법의 한 부분이 돼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애초에 샤리아는 비무슬림에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예배와 음식 규정부터 혼인과 윤리적 계율에 이르기까지 개인 생활에서는 샤리아를 적용합니다. 북미 이슬람법위원회(Fiqh Council of North America) 같은 현대의 이슬람법협의회, 소수자의 이슬람법이라는 연구 분야는 미국 무슬림에게 샤리아를 무슬림의 개인 생활에 적용하면서도 샤리아가 세속 정부와 양립하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미국 무슬림 중에는 다원주의 및 다양한 관습과 견해를 존중하는 미국에서 개혁적인 샤리아를 채택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자보다 율법의 정신을 강조하는 ‘마까시드 앗샤리아’나 아미나 와두드 박사가 고안한 페미니스트 접근법 등이 좋은 예입니다. 아지자 알히브리 박사가 설립한 카라마(Karamah) 등 여러 다른 단체는 성평등과 인권에 기반한 샤리아를 장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샤리아가 꾸르안과 순나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미국 무슬림은 미국과 이슬람의 공통가치를 찾으면서 도전과 기회가 공존하는 현대사회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순니 무슬림 사이에서 이슬람의 핵심 실천행위는 샤하다(신앙고백), 쌀라(하루 5번 예배), 자카(희사. 보통 연간 재산의 2.5%를 지역 모스크나 단체에 기부), 싸움(라마단 달에 일출부터 일몰까지 단식), 핫즈(둘힛자 달에 메카의 카바 순례) 등 다섯 기둥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른 종파에서도 이것을 준수하지만, 시아 무슬림은 여기에 쿰스(해마다 이맘에게 내는 희사)와 왈라야(이맘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행위) 등을 더합니다. 이슬람 실천행위는 끊임없이 사회변화와 발전상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동쪽이나 서쪽으로 얼굴을 돌린다고 의롭지 않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하나님, 최후의 날, 천사, 경전, 예언자를 믿는 사람이다.
재산을 소중히 여기지만 친척, 고아, 가난한 사람, 나그네, 거지에게 나눠주고 속박된 사람을 해방하는 사람이다.
예배(쌀라)하고, 정해진 희사(자카)를 하는 사람,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불행과 역경, 위험에도 꿋꿋한 사람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실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꾸르안 2:177, 압델 할림 번역).
무슬림은 하나님을 깊이 의식하고(타끄와), 타인을 올바르게 대하며, 정기적으로 경배행위에 참가하여 시간과 재산을 잘 사용하는 법을 배우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순니 무슬림은 이러한 경배행위를 “이슬람의 다섯 가지 기둥”이라고 부르는데, 이슬람 법학자(울라마)가 해석한 꾸르안과 순나를 기반으로 합니다. 다섯 가지 기둥은 샤하다, 쌀라, 자카, 싸움, 핫즈로, 이슬람의 근간이며, 전 세계 무슬림의 삶과 실천행위를 규정합니다.
샤하다: “증거” 또는 신앙고백을 뜻합니다. 샤하다는 예배에서 반복됩니다. “하나님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거한다.” 신의 단일성과 유일성(타우히드) 및 무함마드가 예언자임을 믿는 것으로, 무슬림으로서 평생토록 걷는 여정의 첫걸음이 됩니다.
쌀라: 무슬림은 무함마드가 했던 것처럼, 하루에 다섯 번 예배, 즉 쌀라를 수행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고개 숙이고,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꾸르안 구절을 암송하며 겸손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배웁니다. 예배는 새벽, 정오, 오후, 일몰, 밤 등 하루에 다섯 번 행하는데, 모스크에서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하는 예배가 바람직하지만 깨끗한 장소에서 혼자 예배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가족들이 적어도 아침과 저녁에는 집에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무슬림은 신발을 벗고, 씻은 후 예배합니다. 모스크에서는 이맘 또는 종교 지도자가 예배를 인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 때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절하는 일련의 동작을 라크아(rak‘a)라고 합니다. 무슬림은 어디에 있든 예배 방향(끼블라)인 메카의 카바를 향해 예배하는데, 보통 메카 방향은 모스크 벽의 틈새(미흐랍)로 표시합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공동 예배(쌀라툴 주므아)를 진행합니다. 설교와 함께 정오의 쌀라를 대체하는 특별 예배로 이뤄집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매일 5번씩 홀로, 또는 단체로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삶을 지향합니다.
자카: 자카는 말 그대로 ‘정화(淨化)’라는 뜻으로, 재산 일부를 기부하여 나머지 재산을 깨끗하게 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카는 지역 사회의 불우한 사람이나 올바른 대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용됩니다. 자카는 이슬람의 사회 정의 구현 가르침의 한 부분입니다. 이슬람은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장려하는 동시에 재산을 이타적으로 사용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가르칩니다. 자카의 비율은 일반적으로 저축액과 비필수적인 재산을 포함하여 연간 누적 재산의 2.5%이며,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에서 징수하여 분배합니다. 미국 무슬림은 종종 지역 모스크나 무슬림 단체에 자카를 냅니다. 오늘날 무슬림 구호 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무슬림은 자카로 무료 급식소에서 난민 구호까지 다양한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싸움: 꾸르안의 첫 계시는 라마단 달에 무함마드에게 내려왔습니다. 매년 라마단 달에 무슬림은 매일 단식(싸움)을 합니다. 무슬림은 단식하는 동안 음식, 물, 성행위, 악한 생각을 삼갑니다. 라마단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단련하며, 인내심과 헌신을 기르는 시간이 됩니다. 또한 단식하면서 매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사회 정의의 필요성을 깨닫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라마단 기간 한 달 내내 꾸르안 전체를 암송하는 특별 야간 예배(쌀라툿 타라위흐, Salat al-tarawih)를 합니다. 라마단은 해가 진 후 가족, 친구와 함께 식사하며 공동체 결속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핫즈: 이슬람의 마지막 기둥은 핫즈(Hajj)로, 이슬람력의 마지막 달인 둘힛자(Dhu’l-Hijjah) 달에 행하는 성지 메카의 카바 순례입니다. 핫즈에서 무슬림은 하나님이 준 시련이지만 명령에 따라 아들 이스마일(이스마엘)을 희생할 준비를 마친 예언자 이브라힘(아브라함)의 신실함을 기립니다. 기쁨과 신실함으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순례를 위해 메카로 모입니다. 핫즈는 건강하고 재정적 여유가 있는 무슬림이라면 누구든지 반드시 평생 한 번은 행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핫즈에 참가하면서 전 세계 무슬림 공동체(움마)가 하나가 되어 인종, 민족, 문화가 달라도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으며, 모두 같은 흰색의 단순한 옷을 입고 가장 거룩한 장소에서 함께 걷고 예배하고 식사합니다.
순니파가 아닌 종파에서도 다섯 가지 기둥을 실천하지만, 여기에 새 조목을 추가하거나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시아파에는 무함마드의 후손인 열두 이맘에게 연간 지출 후 남은 이익의 1/5을 납부하는 쿰스가 있습니다. 9세기 12번째 이맘이 사라진 이후 이맘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마르자(대아야톨라)에게 대신 쿰스를 냅니다. 쿰스는 가난한 사람과 고아에게 분배되고, 지역 사회 유지를 위해 사용됩니다. 이스마일리 시아 무슬림은 쿰스의 1/10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재 생존해 있는 이맘에게 직접 냅니다. 시아 무슬림은 자카의 의무 또한 준수합니다. 쿰스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가난한 사람과 고아에게만 제한적으로 지급합니다. 순니와 시아의 또 다른 주요 차이점은 왈라야입니다. 왈라야는 이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 외에도 이맘의 종교적, 영적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시아 무슬림은 이를 중요시하여 샤하다에 “나는 알리가 신의 왈리(대리자)임을 증언한다”는 세 번째 신앙고백을 추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실천행위는 초기부터 변함없이 유지돼왔지만, 실행방법과 세부 사항은 끊임없이 사회적, 기술적, 과학적 변화에 따라 유동적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무슬림과 이슬람 법학자들은 주식도 자카에 포함되는지, 의료용 주사를 맞으면 단식을 깨는 것인지, 증가하는 순례자를 수용하기 위해 핫즈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신앙은 전 세계 무슬림의 세계관, 생활 방식, 실천행위에 영향을 미칩니다. 순니 무슬림 사이에서 신앙의 핵심 교리는 하나님, 천사, 계시, 예언자와 사도, 심판의 날, 정명(定命)입니다. 시아 무슬림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믿음에 동의하지만, 이맘의 인도(引導)를 기본 믿음으로 추가하였습니다.
“믿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도는 주님이 내려주신 것을 믿는다.
믿는 이들은 모두 하나님, 그분의 천사, 그분의 경전, 그분의 사도를 믿는다.
그들은 ‘저희는 그분의 사도들을 구분하지 않습니다’고 말한다.
‘우리는 듣고 순종합니다. 주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저희는 모두 당신께 돌아갑니다!’”
(꾸르안 2:285, 압델 할림 번역)
이만(Iman), 즉 이슬람의 믿음은 신앙의 핵심 신조를 흔들림 없이 확신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안보, 안전, 평온을 의미하는 어근에서 유래한 이 핵심 신조는 전 세계 무슬림의 세계관, 생활 방식, 문화, 실천수행에 영향을 미치며, 고난의 시기에는 평온을, 절망의 시기에는 안전을 가져다줍니다. 이 신조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예배 행위의 기초가 됩니다. 그 핵심은 절대적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일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 무슬림 신학자인 이스마일 알파루끼(Ismail al-Faruqi)가 “이슬람의 모든 다양성, 부와 역사, 문화와 학문, 지혜와 문명은 ‘라 일라하 일랄 라(La ilaha illa Allah, 하나님 외에 신은 없다)’라는 짧은 문장에 압축되어 있다”라고 언급했듯, 이슬람 신앙의 핵심은 유일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순니 무슬림이 믿는 신앙의 핵심 신조는 ‘6가지 믿음(6신, 六信)’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하나님, 천사, 계시, 예언자와 사도, 심판의 날, 정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단일성과 유일성(타우히드): 하나님의 유일성, 즉 타우히드는 이슬람 전체를 역동적으로 만듭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랍어로 “알라”라고 부르는 하나님은 진정 단 한 분임을 뜻하지만, 사실 그 이상으로 의미가 확장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모든 것을 존재하게 만들었기에 공간, 시간, 물질, 피조물 세계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초월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를 다스리고, 어떠한 협력자나 동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자비, 사랑, 용서, 정의, 주권, 지혜의 자질을 가장 완벽한 형태로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 결국 돌아가는 곳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렇기에 무슬림은 하나님에게만 예배와 헌신, 희생을 드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슬림 믿음에 따르면, 하나님은 궁극적인 실재이며, 하나님에 대한 경배야말로 인류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목적입니다.
천사(말라이카): 아랍어로 ‘말라이카’라고 부르는 천사는 빛으로 만든 존재로, 우주를 관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천사는 성별이 없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자유 의지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미카일(Mika’il)은 비를 내리고,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는 이즈라일(Izra’il)은 죽었을 때 시체에서 영혼을 가져가고, 이스라필(Israfil)은 부활의 나팔을 울리고, 라낍(Raqib)과 아티드(‘Atid)는 모든 사람의 행위를 기록하고, 문카르와 나키르는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을 심문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브리엘(Gabriel)이라고도 알려진 대천사 지브릴(Jibril)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 즉 예언자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일을 전담합니다.
신성한 계시(쿠툽): 하나님은 인간이 직접 인식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천사에게 계시를 보내고, 천사는 계시를 예언자에게 전달하고, 예언자는 계시를 다시 인류에게 전했습니다. 무슬림은 무함마드가 꾸르안을 받았을 때 이전의 예언자들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두루마리로 된 경전을, 모세는 토라를, 다윗은 시편을, 예수는 복음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꾸르안은 모든 인류를 위한 최후의 경전이기에 부활의 날까지 이전에 모든 경전을 대체합니다. 거의 모든 무슬림이 꾸르안의 일부 또는 전체를 암송합니다.
예언자와 사도(루술): 예언자 또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도록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파견되었습니다. 즉, 인류 역사상 수십만 명의 예언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꾸르안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예언자는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을 포함해 25명에 불과합니다. 무슬림은 예언자를 다른 종교 전통과 공유하지만, 예언자가 ‘완전하고’ 죄가 없는 인간이라고 인정하지만, 하나님과는 신성의 어떠한 측면도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것 외에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본보기 역할을 합니다. 무함마드는 마지막 예언자이자, 이전부터 내려온 모든 예언자 계보를 밀봉하고 그 위에 찍은 봉인(封印)과 같은 존재입니다. 무함마드는 모든 시대, 모든 곳의 모든 인류에게 보내졌고, 계시 역사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심판의 날(야움 알아키라): 무슬림 신앙에 따르면 모든 예언자는 임박한 심판의 날을 경고하기 위해 왔으며, 심판의 날에는 사람이 한 행위를 심판해 인간을 천국(잔나)이나 지옥(자한남)으로 보냅니다. 지옥은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장소로, 천국은 영원한 기쁨과 위로, 행복의 장소로 묘사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언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고, 하나님을 의식하여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자를 거부하며 불경하고 부도덕한 삶을 살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천국행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기에, 하나님은 원하는 대로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은 하나님의 자비 없이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를 권합니다. 일부 신학자에 따르면 지옥은 결국 끝나서 텅 빌 것이고, 모두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명(까다르, Qadar): 심판의 날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결정할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운명에 관한 지식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은 순니와 시아를 막론하고 여러 위대한 무슬림 사상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슬림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의 선악을 결정하지만, 하나님은 완벽하게 정의롭기에 불공평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무슬림에게 인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시험이나 선택이기에, 비록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모두 알지만, 각 개인은 자신이 한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인 샤 알라”(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마 샤 알라”(하나님이 원하셨다)와 같은 문구는 이러한 믿음을 반영합니다.
시아 무슬림은 일반적으로 앞서 언급한 순니의 신념에 동의하긴 하지만, 순니와 달리 '이맘의 인도'라는 교리를 포함합니다.
이맘의 인도(이마마, Imamah, Imamate): 시아 무슬림은 “살아있는 꾸르안”인 예언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람들을 이끌 지도자를 남겼다고 믿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예로 알려진 일군의 '이맘'이 바로 무함마드 사후 신성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입니다. 이맘은 잘못을 범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가 왜곡되지 않도록 보호하며, 난해한 지식을 전수하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사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12이맘파 시아 무슬림에 따르면, 이들 이맘은 모두 12명이며, 만물은 12명의 이맘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빛에서 파생되었습니다. 12번째 이맘은 현재 은둔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빛으로 인류를 인도하고 있으며, 종말에 다시 등장하여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가져올 것이라고 합니다. 자이디파 이맘은 5명으로, 이들 이맘의 지도력은 역대 통치자가 계속 이어왔습니다. 자이디파 이맘은 무오류의 이맘은 아닙니다. 이스마일리파 시아의 경우 니자리(Nizari)파 이맘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의 이맘을 ‘시대의 이맘’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마일리파의 다른 분파는 다이(da‘i)로 불리는 대리자가 이맘들로부터 영적인 가르침과 지도를 받아 이맘의 지도력을 이어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슬람교는 이슬람 통치자들이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무슬림 통치자, 군인, 상인, 수피교도, 학자, 시인, 건축가 모두 독특한 이슬람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광범위한 이슬람 세계에 걸쳐 지역을 초월한 이슬람 문화가 지역 전통과 혼합되어 독특한 형태의 국정, 신학, 예술, 건축 및 과학을 만들어냈습니다.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쇠퇴하자, 최초 4명의 "올바른 인도를 받은" 칼리프가 시리아, 이집트, 이라크 및 페르시아 일부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아랍 무슬림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 후 661년부터 750년까지 다마스쿠스를 통치했던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는 이슬람 통치의 경계를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인도로 더욱 확장시켰습니다. 이 땅의 대다수 사람들이 무슬림이 된 것은 수 세기에 걸친 무슬림 통치 이후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선택에 의한 것이지 강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슬림 통치자, 군인, 상인, 수피교도, 학자, 시인, 건축가 모두 북아프리카, 스페인, 페르시아 및 인도에서 독특한 이슬람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서아프리카와 기타 지역에서 이슬람교는 상인 공동체와 수피 타리카(tariqa : 교단)를 통해 확산되었으며, 원주민 통치자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국경을 확장하려고 하면서 이슬람 제국이 탄생했습니다. 종교적, 사회적 관심을 하나로 묶은 이슬람 개혁 운동은 특히 이슬람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서기 750년에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바그다드에서 13세기까지 통치했습니다. 9세기 이후 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했지만 칼리프 국가는 여전히 무슬림 통합의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주요 하디스 컬렉션, 법률 학교, 신학 논쟁, 수피 교단, 페르시아 및 아랍 시의 전통 등 고전 이슬람 문명은 아바스 왕조 시대에 번성했습니다.
파티마 왕조는 서기 909년에 북아프리카에 왕조를 세웠고, 서기 969년에 이집트를 정복했습니다. 새로 설립된 수도인 알카히라(현재의 카이로)에서 이스마일리 파티마 왕조는 알-아자르와 같은 교육 및 문화 기관을 설립하고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파티마 왕조의 영향력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동쪽의 인도 국경지대에서 서쪽의 아틀라스 산맥까지 이르렀습니다.
중앙아시아의 몽골인들은 동부 이슬람 중심부를 가로질러 시리아까지 휩쓸었고, 서기 1258년에 바그다드에서 칼리프 통치가 종말을 맞았습니다. 많은 침략자들은 시아파 이슬람과 페르시아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수세기 동안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통치하며 페르시아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몽골의 침략 이후 새로운 제국이 등장했습니다.
1453년 이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기반을 둔 오스만 투르크는 14세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지속된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순니 이슬람교와 수피의 명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군사적, 건축적 업적으로 유명했습니다. 16세기와 17세기에 무굴 제국은 인도 북부를 지배했으며, 그곳에서는 인도-무슬림 문화가 번성하여 아름다운 건축물, 회화, 수피 시가 탄생했습니다. 사파비 왕조는 1499년부터 1722년까지 페르시아에서 시아파를 옹호하여 이슬람 예술과 철학을 장려했습니다.
각 제국 아래서 초지역적인 이슬람 문화는 지역 전통과 혼합되어 독특한 형태의 국가 술식, 신학, 예술, 건축 및 과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심지어 많은 연구자들은 무슬림 학자, 사상가, 문명의 창의성과 수많은 업적이 없었다면 유럽의 르네상스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유럽 식민지화는 종종 이슬람의 종교적 기초와 이슬람 교육, 법률 및 문화 기관을 대체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다양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독립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탈식민지 국가는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음을 반영하며, 일부 국가는 스스로를 세속 국가라고 선언하고(터키), 다른 국가는 국가 법률 시스템에서 샤리아 법을 엄격하게 성문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파키스탄).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의 식민지 확장 기간 동안 비무슬림 상인과 선교사, 군인, 식민지 행정가들이 무슬림 세계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는 모두 식민지 제국을 발전시켰고, 중국과 러시아도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지역으로까지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20세기에는 허약한 오스만 왕조와 페르시아 왕조만이 권력을 유지했고,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라비아 등 일부 지역만이 식민지 지배를 피했습니다. 프랑스는 북아프리카의 대부분과 서부 및 중앙아프리카의 일부를 통치했습니다. 영국은 이집트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무슬림 지역과 대규모 무슬림 소수민족이 사는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을 통제했습니다. 네덜란드는 현재 인도네시아 대부분을 통치했고, 스페인은 북아프리카와 필리핀 일부를 통치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어 영국(페르시아만 지역,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과 프랑스(시리아, 레바논)에 분할되었습니다.
그러한 외국의 지배는 무슬림의 자존심에 타격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통치자들이 전통적인 무슬림의 교육, 법률, 정부 기관을 서구의 기관으로 대체함에 따라 이슬람의 기초 자체를 위협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의 종교적 정신을 약화시켰고, 세속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문화를 그들에게 강요했으며, 움마에서 민족적, 국가적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 19세기 후반에는 이슬람 원칙과 제도의 부활과 서구식 민족주의에 의해 다양한 정도의 영감을 받아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독립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무슬림들은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국가 건설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튀르키예의 초기 지도자들은 1923년 세속 국가를 선언하여 칼리파제도를 폐지하고 샤리아를 유럽식 법규로 대체하며 수피 교단을 불법화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 후 파키스탄은 인도에서 떨어져 나와 이슬람 공화국이 된 후 단일 이슬람 법학파의 법적인 견해를 성문화하여 국법의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1970년대에 이르러 무슬림 세계는 여러 독립 국가로 나뉘었고, 1990년대에는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공화국이 무슬림 세계에 합류했습니다. 범이슬람 통합을 희망하는 무슬림이 많지만, 다양한 이념과 문화적 차이로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슬람의 다양성은 종교 내에서의 부흥/개혁 운동과 무슬림의 이주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이슬람의 부흥/개혁 운동의 예로는 전통 개혁가, 현대 개혁가, 샤리아의 엄격한 지지자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300만 명이 넘는 무슬림이 “이슬람은 하나이고 무슬림은 많다”는 격언이 진실임을 증명합니다.
오늘날 무슬림은 꾸르안의 신성한 말씀을 경청하고 해석하며, “다섯 가지 기둥”을 비롯하여 샤리아를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무슬림은 예언자의 모델을 따르며, 많은 사람이 수피의 가르침을 좇아 내면의 길을 추구합니다. 이는 시공을 초월하여 무슬림 세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통 이슬람의 모습입니다. 탈식민지 시대인 오늘날 무슬림 세계는 확장하고 있고, 무슬림은 이슬람 부흥과 전 세계적인 이주라는 두 가지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부 보수적인 무슬림은 현대적 삶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우면서 고전시대 이슬람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전통적인 학문을 다시 살리길 원합니다. 법학, 철학, 신학, 꾸르안 주석 등 고전적인 학문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압바스 칼리파조 시대(8~13세기)는 모범적인 시기입니다. 이슬람을 전통주의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노력은 지난 2세기 동안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무슬림 세계는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 서구의 교육, 민족주의, 기술을 받아들였습니다. 여러 무슬림 ‘현대주의’ 개혁가가 서구의 철학, 헌법, 복식을 받아들이며, 이슬람 사상이 새로운 시대 현실과 대화하도록 장려합니다. 또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수피 모델을 예로 삼아 서구 사상을 적당히 수용하는 것만을 제안하는 개혁가도 있습니다.
식민지 이전 시대에 뿌리를 내린 또 다른 유형의 개혁 운동은 샤리아를 엄격하게 적용할 것을 요구하며 서구의 영향과 수피, 전통 철학, 예술이 모두 초기 움마의 ‘순수’ 이슬람을 타락시켰다고 여깁니다. 이들 개혁가는 종종 꾸르안과 순나에만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샤리아에 내재한 다원주의와 지속적인 담론을 무시한 채 꾸르안과 순나를 단순하고 환원적으로 해석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집트와 수단의 무슬림형제단,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운동, 파키스탄의 자마아테이슬라미 등이 있습니다. 더 급진적인 이슬람 개혁 운동은 이슬람 전통에서 끌어낸 원리와 함께 정치 혁명 이데올로기를 채택하고 혁신을 추구합니다.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혁명이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단일하지 않고,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식민지 시대 이후 이슬람 세계가 이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주로 무슬림 국가에서 서유럽과 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 노동자, 학생, 정치적 난민 등이 이주행렬에 가담하였습니다. 현재 파리, 런던, 로마는 물론 뉴욕, 밴쿠버, 멕시코시에도 번성하는 무슬림 공동체와 웅장한 모스크가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착지에서 무슬림 이주민은 인종적, 종교적 편견에 따른 적대감을 자주 맛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무슬림 세계’는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이슬람은 미국에서 번성 중입니다. 미국에는 이민자와 토착 무슬림을 합하여 모두 3백만 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하나이고 무슬림은 많다”는 말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모든 종파, 국적, 법학파의 무슬림이 미국 사회에 존재하며, 함께 신앙 공동체(움마)를 형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