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툴 가완데 : 죽음과 의미에 관하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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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티펫) : 연약함과 죽음이라는 현실, 즉 필멸성이라는 근원적인 사실에 대해 말하고 받아들이기란 어렵습니다. 이번 세기 들어 서양 의학은 죽음을,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실패 지점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점차 벗어났습니다. 호스피스는 드문 것에서 예상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의사와 환자가 죽음과의 싸움을 멈추기로 결정하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종종 이는 삶의 마지막 시기의 질을 희생시키면서 이루어집니다.

한편, 노화라는 개념, 나아가서는 유한성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새로운 장수 산업이 등장했습니다. 외과 의사 아툴 가완데의 삶과 의료 행위를 변화시킨 간단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좋은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그가 깨달았듯이, 우리의 필멸성 앞에 경외심을 가지고 서는 것은 우리가 왜 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더 복잡하게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이 대화는 슬픔과 희망을 모두 불러일으킵니다. 코로나로 인한 전 인류 차원의 손실을 포함하여, 이러한 차원의 돌봄이 허용되지 않았던 너무나 많은 죽음에 대한 슬픔입니다. 

아툴 가완데는 <더 뉴요커(The New Yorker)> 잡지에 기고한 글과 책들로 수백만 명에게 사랑받아 왔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나는 죽음이 정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Being Mortal: Medicine and What Matters in the End)』입니다. 

그는 현재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국제 보건 담당 차관보로 재직 중입니다. 제가 인터뷰했을 때, 그는 보스턴의 브리검 여성 병원(Brigham and Women’s Hospital)에서 일반 및 내분비 수술을 시행하고 있었고, 하버드에서도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티펫: 바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저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아툴 가완데: 네. 주로 『나는 죽음이 정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에 대해 이야기할 건가요?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갈 건가요?


티펫: 음, 저는 그냥 당신이 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가완데: 그럼 당신이 저를 이끌어 주실 건가요? 알겠습니다.


티펫: 제가 당신을 이끌어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더 큰 주제들, 즉 필멸성이라는 주제에 관한 것이지만, 저는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수년 동안 <더 뉴요커>에서 당신의 글을 읽어왔습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에만 국한되기보다는 당신의 생각에 대해 더 광범위하게 다루고자 합니다. 

가완데: 네. 좋습니다. 


티펫: 아마 아시겠지만, 저는 항상 어린 시절의 종교적 또는 영적 배경에 대한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든, 어떻게 정의하시든 상관없이요.

가완데: 저희 부모님은 힌두교도입니다. 저는 오하이오주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오하이오주 아테네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라는 일은 고달픕니다. 웨스트버지니아 국경 근처 애팔래치아 산기슭에 있는 대학 도시인데, 오하이오 시골에서 힌두교도로 자라는 것도 고달픕니다. 

힌두교는 너무나 문화적인 종교입니다.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북인도의 대도시 출신으로 가족이 사원을 운영했던 저희 어머니의 방식부터, 인도 중부의 아주 작은 마을 출신인 저희 아버지의 방식까지요. 그리고 그들 자신의 힌두교 전통은 서로 매우 다릅니다. 그들이 가장 숭배했던 신들과 그들이 드렸던 기도가 다르죠. 

저는 그 언어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힌두교도로 자랐지만, 힌두교는 너무나 개방적이고 보편적이며 열려있는 종교여서 배교자라는 개념조차 알지 못하는, 그 자체가 일종의 배교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저 자신을 힌두교도라고 부르지만, 부모님은 매주 주말마다 기도하게 하시고 매일 기도하시며 저를 그런 분위기 속에 흠뻑 빠져들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실제로 종교 생활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티펫: 저는 이에 대해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힌두교는 실천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너무 개방적입니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죠. 제 말 이해하시죠?

가완데: 그것은 삶의 방식입니다. 너무나 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 그리고 기도하는 방식 사이의 경계 역시 자유롭습니다. 그것을 나누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책 위에 발을 올려놓지 않고 자랐습니다. 책은 영적이고, 지혜이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제가 실수로 책 위에 발을 올려놓으면, 책에 사과하고, 손을 얹고 사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하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날까지도 책 위에 발을 올려놓지 못합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자, 아마도 기도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티펫:  『나는 죽음이 정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라는 제목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점, 즉 살아있다는 것이 치명적인 조건이라는 점,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사람들이 거의 항상 놀라는지를 거듭 경험하고 쓰고 있다는 점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필멸성을 의식 속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가요, 아니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는 것인가요?

가완데: 제가 이 주제에 뛰어든 이유는 당신만큼이나 저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우선, 저는 필멸의 존재들을 위한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고칠 수 없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게 유능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유능함을 넘어서, 사람들이 죽는다는 문제에 대해 매우 ‘능숙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결국, 바로 그것이 제가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그런 질문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거나 제 수술적인 일만 해서는 곧바로 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밖으로 나가서—제가 "오늘 작가로서 당신을 만나러 갈게요"라고 말할 때—사람들에게 엄청난 질문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에게 남은 것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질문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는 일반적인 느낌입니다. 제게 가장 혼란스러웠던 상황은, 누군가가 병원에 왔을 때 그들의 병이 불치병, 즉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지만, "1년이 남았을까? 3년이 남았을까? 5년이 남았을까?"하고 모르는… 그런 상황입니다.


티펫: 그 기준은 지금도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가완데: 맞습니다. 새로운 기술들이 생기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시도합니다. 그리고 제가 자주 그런 상황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 번 더 시도해 봅시다"라고 말할 때 말입니다. 환자들은 나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음, 수술을 시도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들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의 삶이 필멸적일 수 있다는 사실,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들은 다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음 몇 주를 중환자실에서 보냈고, 우리는 기계의 플러그를 뽑았습니다. 그들은 작별 인사도, "사랑해요"라는 말도, 그라고 "미안해요"라는 말도 못 남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또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삶을 마감했을 때, 6개월 후에 남은 가족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과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그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더 자신감 있고 유능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가 서서히 깨달은 것은, 그것이 ‘좋은 죽음’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었었습니다. 저는 말기 질환과 그에 대한 경험에 대해 200명 이상의 환자를 인터뷰했고, 그다음에는 다양한 종류의 전문가들, 즉 완화 의료 의사, 호스피스 의사, 간호사, 가정 건강 보조원 등을 수십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은 실제로 죽음이나 죽어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죠. “무슨 일이 닥치든, 마지막까지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거기서부터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티펫: 그것은 “이 병을 어떻게 고칠까? 이것을 어떻게 치료할까?”라는 질문과는 너무나 다른 질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수년 동안 호스피스 운동의 시작에 있었거나 그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해 왔는데 — 당신도 이에 대해 썼습니다. 당신이 의사가 되고 의료 훈련을 받을 때조차도 그것은 “이것을 어떻게 고칠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곧 실패였습니다 — 누군가가 확실히 죽을 시점이 되면, 의학의 역할은 멈추었습니다.


가완데: 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제가 하고 있다고 느꼈던 대화는 "죽음과 싸울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였습니다. 제가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그것이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싸울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 아니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것’ 외에 다른 삶의 우선순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살고 싶은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왜냐하면 당신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든, 그 과정에서 우리가 그 목적을 희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가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삶의 마지막에 하는 대화가 "흉부 압박을 원하십니까? 인공호흡기를 원하십니까? 전기 충격을 원하십니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죽기 전에 전기 충격을 받겠다."라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 필요한 대화는 "당신이 직면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당신이 겪는 일을 겪으면서, 더 많은 시간을 위해 그 과정에서 무엇을 기꺼이 희생하고, 무엇을 희생하지 않을 것인가? 여기서 당신이 정말로 추구하는 최소한의 삶의 질은 무엇이며,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입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그 목적을 위해 당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저의 능력 범위 내에서, 오늘날 의학이 가진 능력 범위 내에서 말입니다."라고 물어야 합니다. 답은 종종 "예"이며, 때때로 답은 기술적이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 저는 아이들을, 손주들을 디즈니월드에 데려가고 싶어요. 제가 꼭 하고 싶은 한 가지는 손주들을 디즈니월드에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녀는 뼈만 앙상하게 마른 채 생의 마지막 날 병원에서 저에게 그 말을 했습니다. 그녀는 48시간 후에 사망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달 전이었다면, 우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티펫: 그 질문을 더 일찍 물었더라면?

가완데: 맞습니다. 그래서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싸움을 놓쳤던 것입니다. 진정한 싸움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녀가 손주들을 디즈니랜드에 데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티펫: 당신이 글을 쓸 때, 저는 당신이 의학의 목적을 재정의하는 순간들이 있다고 느낍니다. 당신이 배운 대로, 매우 현대적인 정의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의학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못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할이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큽니다. 그것은 웰빙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웰빙은 사람이 사는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생명을 연장하는 일이 아니죠. 

가완데: 저는 결국 스탠포드의 한 심리학자에게 책의 한 장을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그 심리학자의 논의로 책의 방향이 바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Laura Carstensen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삶의 과정을 추적해 온 심리학자입니다. 그녀는 18세부터 94세까지의 약 300명의 코호트(동질집단)를 가지고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삶의 마지막까지 추적했습니다. 

저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이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능 상실도 일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삶에서 만족감이 증가했습니다. 

다른 연구들에 따르면 65세 이후에는 사람들이 삶에서 사랑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고, 불안과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더 낮으며, 물질적인 것을 얻고 소유하는 것에 덜 집중하고, 더 많은 것에...


티펫: 이것은 또 다른 위대한 비밀 중 하나입니다. 늙어가는 것이 사실은 멋진 일인데, 우리는 모두 노화를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가완데: 맞습니다. 저는 저의 우선순위가 환자의 건강과 독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항상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환자들이 더 이상 건강하지 않거나 독립할 수 없을 때, 그들을 위해 제가 가져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 학자가 저에게 알려준 것은 웰빙, 즉 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과, 그들이 행복을 잃었을 때는 곧 자신들의 이야기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을 때라는 인식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그것이 병원에 있거나 많은 요양원(전부는 아니지만)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안전, 생존, 건강입니다.


티펫: 웰빙...그것은 또한 매우 구체적인 개념입니다.

 삶의 마지막을 향해 물을 다섯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질병에 대한 이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목표와 우선순위, 어떤 결과가 수용 가능한지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듭해서 나오는 다섯 번째 질문은 "좋은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입니다. 저는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우리의 삶을 보내는 방식이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람들이 웰빙감을 느끼게 해주는 단순한 것들을 아픈 날들에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부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완데: 네, 그리고 제가 또한 알아낸 것은, 삶의 마지막에만 그 질문을 한다면 너무 늦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훨씬 더 일찍 그 질문을 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좋은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다음 날을 살아남는 것 외에 당신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와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면, 그래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삶의 질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음, 가족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 아버지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가족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즐기고 대화를 나누며 연결감을 느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다른 사람에 대해 썼는데, 그 사람은 "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고 축구를 보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건부 장관도 만났습니다. 우리는 그의 사무실에 있었고, 방에는 그의 가족 사진들이 아름답게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럼 최소한의 삶의 질은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좋은 하루는 무엇입니까? 가족과 함께 있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음… 아니요. 복잡합니다. 솔직히, 좋은 책 한 권과 약간의 고요함만 가질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을 가질 수 있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것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티펫: 의료 옵션들은 너무 복잡하고 비싸고 정교한 반면, 좋은 책은 아주 아픈 사람이라도 읽을 수 있죠. 

가완데: 물론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의료적인 역량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저는 딸아이의 13살 때 피아노 선생님에 대해 쓴 적이 있어요. 그녀는 전이성 암을 앓고 있었고 몇 주 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암이 간과 골반으로 퍼져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요실금도 있었습니다. 어떤 치료도 효과가 없었고 혈구 수치는 떨어졌으며 매일 열이 났습니다. 

그 시점에 그녀나 저나 삶이 살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비참하고 분노에 차 있었어요. 결국 호스피스에 갔습니다.

호스피스 간호사가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좋은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목표를 하나만 잡읍시다. 좋은 하루라는 목표요." 

그들은 그 목표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어 했습니다. 정말 놀라웠어요. 그녀가 우리 집으로 전화해서 "헌터(인터뷰이 딸- 역주)가 다시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해주시겠어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4주 동안 제 딸은 정말 놀라운 피아노 레슨을 받았습니다. 

연주회도 있었습니다. 연주회에서 그들은 브람스, 쇼팽, 베토벤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 한 명씩을 따로 불러 각자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제 딸에게는 음악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 각자에게 한 명씩 "너는 특별해"라고 말해주었어요.

그 일은 제 딸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남기고 싶었던 유산이었습니다. 제 딸은 불과 2주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들은 불과 몇 년 동안 함께했지만, 그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간호사는 모르핀 용량을 어떻게 조절할지 알아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레슨을 가르칠 때 고통받지 않으면서도, 너무 멍해서 말이 어눌해지거나 아이들을 겁먹게 하지 않도록 하면서, 그녀를 일으켜 세워 그 순간에 도달하게 하고, 회복해서 다음 순간으로 나아가게 해야 했습니다.


티펫: 아름답네요. 

가완데: 그 일 역시 진정한 의료 전문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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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On Being with Krista Tippett :  Atul Gawande, On Mortality and Meaning”를 편집한 것입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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