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툴 가완데 : 죽음과 의미에 관하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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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펫: 흥미로운 점은, 환자들에게 우선순위를 묻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과정 자체가 매우 인간적이고 사려 깊은 방식으로 환자들이 원하는 치료의 한계를 명확히 해줍니다.

가완디: 네, 정말 중요합니다. 관련된 연구도 많습니다. 그중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의사인 제니퍼 테멜이 주도했던 연구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연구 대상은 4기 폐암 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11개월밖에 살지 못했고, 3년 이상 생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무작위 배정했습니다. 한 그룹은 일반적인 종양학 치료만 받게 하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치료와 함께 초기부터 완화 치료 전문의를 만나게 했습니다. 

보통 저는 암 외과의사로서, 환자가 "완화 치료 전문의를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 "아직 그럴 때가 아닙니다. 우리에겐 아직 선택지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완화 치료는 마지막 단계에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점에서 질병 초기에 이들을 만나게 한 것은 매우 급진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완화 치료 전문의를 일찍 만난 그룹은 결국 항암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이들은 삶의 마지막 3개월 동안 항암 치료를 받을 확률이 50% 더 낮았고, 마지막 2주 동안은 90% 더 낮았습니다. 또한, 생의 마지막 무렵에 수술을 받을 가능성도 적었죠. 이들의 의료비는 3분의 1 수준이었고, 호스피스를 더 일찍 시작했습니다.

또 병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며, 병원이나 중환자실에서 사망할 가능성도 적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이들이 전체적으로 고통이 덜했을 뿐만 아니라, 25% 더 오래 살았다는 것입니다.

 

티펫: 오, 세상에. 와.

가완디: 바로 이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티펫: 정말 매혹적이군요.

가완디: 그리고 환자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독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항암 치료나 수술이 '좋은 날'을 빼앗아갈 것 같고, 내게 더는 가치가 없다면, 멈추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더 오랫동안 더 잘 지내게 됩니다. 이것이 통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임상의들이 우리가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기 때문입니다.

 

티펫: 의사는 권위 있는 존재죠. 의사들은, 우리가 모든 것을 맡기고 또 가장 잘 안다고 믿는 사람들 중 일부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의사들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의사들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가완디: 의사들이 권위를 행사하는 방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매우 복잡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제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 우리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을 거부했습니다. "의사가 제일 잘 안다', '나는 그냥 당신에게 무엇을 할지 말하겠다'는 식 말이에요.

우리는 그 방식을 환자의 자율성과 그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체했습니다. 환자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식은 선택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당신의 상태가 있습니다. 여기 선택지 A, B, C가 있습니다. 각각의 장점, 단점, 위험, 이점이 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현실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환자들은 되묻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권위를 행사하는 방법을 그렇게 배웠는데도 말이죠. 환자들은 "음, 의사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되묻습니다.

 

티펫: 맞아요, 왜냐하면 여전히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가완디: 네, 그래서 우리는 환자의 주체성을 빼앗지 않기 위해 "아니요. 이것은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오직 당신만이 당신을 압니다. 저는 당신을 모르죠. 무엇이 당신에게 더 중요한지에 대해 당신이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라고 말하도록 배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은 결코 좋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완화 치료 전문의나 노인병 전문의들이 하는 일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선택지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묻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아, 당신은 집에 있고 싶군요. 좋습니다. 이제 선택지 A, B, C가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방안이 당신의 다양한 목표를 달성할 최고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제가 추천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의사는 진정한 상담가여야 합니다. 의사가 가진 지식과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때 관찰한 것을, 환자 가진 목표와 연결하는 것만이 지혜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요점은 '내가 충분히 잘 듣고, 이 대화로부터 당신이 정말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아내어, 당신에게 길을 따라 어떤 지침을 줄 수 있는가?'입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며, 저는 완화 치료 전문가들로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한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가족과의 대화는 시술입니다. 당신이 암 수술을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들이, 환자 가족과의 대화를 훌륭하게 하는 데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하세요."

 

티펫: 저는 올해 미네소타 의과대학에서 졸업 축사를 하도록 초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졸업생들이 학업을 시작할 때 작성했던 서약에 매우 감명받았습니다. 당신에게 그 일부를 읽어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완디씨가 학생이었을 때와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가족, 동료, 그리고 공동체 앞에서, 우리는 의사가 되는 영광과 특권을 인정하며 이 서약을 합니다. 우리는 겸손, 진실성, 그리고 우리를 의학 실습으로 이끈 모든 가치들을 보존할 것을 맹세하며 우리가 선택한 직업의 문턱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자기 반성을 하고, 탁월함을 위해 노력하되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며, 타인을 돌보듯 우리 자신을 돌볼 것입니다. 우리는 의학을 개선하기 위해 동료, 환자, 그리고 공동체와 협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의학 지식의 책임 있는 청지기로서 발견하고, 혁신하고, 배우고, 가르칠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기보다는, 온전한 사람을 치유하고자 노력하며, 환자들과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공감과 존중을 보여주는 동반 관계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치유하고, 자주 치료하며, 항상 위로할 것입니다."

 

가완디: 마지막 부분이 좋군요. 의사가 그 서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환자들이 가진 목표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할 때, 그것은 정말 흥미로운 대화가 됩니다. 왜냐하면 환자들은 종종 자신의 목표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거나, 모순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환자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잔소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계속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크고 장기적인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와, 일상적인 우선순위와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고 이 두 길 사이를 오갈 때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좋은 상담가라면, 저는 환자의 목표에 대해 환자와 논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심리학자, 교사, 목사 등 모든 상담가의 역할은 바로 그와 같은 깊은 대화입니다.

 

티펫: 제가 이 의대생들과 이야기하게 된 것 중 하나가 기억나네요. 50년 뒤의 사람들은 우리가 '마음, 몸,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방식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원시적이었는지를 생각할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이들 사이를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어떻게 정의하든 상관없이, 감정과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적인 것만큼이나 육체적입니다. 뇌는 육체적인 경로를 만들고 신체의 지시를 따르며, 트라우마와 기쁨이 감정적인 것만큼 우리 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주 말하지는 않지만, 당신의 성찰 속에서 인간 존재의 온전함과 신비로운 충만함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는 것 같거든요.

가완디: 저는 '영혼(spirit)'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항상 그것을 사용하지만…

 

티펫: 그것은 모호한 단어입니다, 맞아요. 애매한 단어입니다.

가완디: 네, 제가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이야기한 후에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들의 아픔과 통증, 그리고 그체온이 어떻게 변했는지 등에 대해 저에게 말해줍니다. 그런 뒤, "당신의 영혼은 어떠신가요?"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측면들은 영혼의 한 차원이죠.

그런 다음, 어떤 ‘초월적인 무언가’에 대한 감각과 관련있는, 즉 ‘영적인 것'이 되기 시작하는 차원이 있습니다. 책의 끝부분에서 그 문제와 씨름했어요. 제가 아버지의 유골을 갠지스 강에 가져갈 때 말입니다,

 

티펫: 맞아요.

가완디: 저는 ’이단적인‘ 힌두교도이고, 과학자이며 데이터를 묻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버니와 어머니에게는, 유골을 갠지스 강으로 가져가는 것은, 탄생과 재탄생의 순환에서 해방되어 열반의 상태, 일종의 천국은 상태로 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는 것, 갠지스 강 위에서, 작은 보트 하나를 타고, 수백 년 동안, 최소한 천 년 이상, 아마도 이천 년 동안 계속되어 온 의식을 치르는 것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있는 '영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가족의 유골을 가져오고 동일한 찬가를 부르면서 모든 세대에 연결됩니다. 제 아버지가 이전 세대들로부터 물려받아 완성한 것들이 있고, 그가 저와 제 여동생에게 넘겨주고 우리가 계속해야 할 것들이 있으며,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저는 책에서 그것을 충성심(loyalty)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하버드에 있었고, '충성심의 철학(The Philosophy of Loyalty)'이라는 책을 썼던 철학자 로이스에 대해 썼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살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련의 사고 실험을 거쳤습니다.

저에게 정말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당신이 죽은 후,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들었다면, 그 일은 당신에게 중요할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당신의 삶이 지닌 의미를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또 완전히 이기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것을 위해 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유일한 증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근거 중 일부입니다. 그것은 제가 영성과 연결, 그리고 자신의 삶을 초월하는 의미를 인식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례입니다.

 

티펫: 흥미롭군요. 종교적 형태를 갖추든 아니든, 우리가 산다는 것이, 우리 자신을 넘어 우리의 생애를 넘어 어떤 울림을 가진다는 직관적인 감각이 있다는 얘기군요.

 당신의 책에 아주 아름다운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 사슬의 한 연결 고리입니다. 그것은 죽음을 견딜 만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유한한 존재로 사는 것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완디: 우리가 우리의 상상력을 어디까지 펼쳐 우리의 존재 사슬을 넓힐 수 있을까요? 예컨대 사람들이나 심지어는 사람들도 아닌, 당신과 소통할 수 있는 생명체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존재 사슬을 상상해 볼 수 있나요?

또, 지구가 소멸되고 인류가 소멸되더라도, 우리가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영혼'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그런 존재 사슬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까?

모르겠어요, 저는 어느 정도 그것을 믿습니다. 그 상상은 제 마음을 확장하여 제가 더 큰 삶의 일부라고 느끼게 만들고, 인류가 사라진 후에도 우리의 작은 기여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아름다운 일이죠.


티펫: 때때로 당신은 스스로를 "공중 보건 저널리스트"라고 불립니다. 저는 당신을 '시민 의사’로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가 최근 들어 공공생활을 그저 정치생활로 환원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공공생활을 정치적 생활과 완전히 동일시한다면, 이는 절망적인 일이죠. 공공생활은 정치적 생활보다 훨씬 더 큽니다.

당신은 의학과 건강 관리, 그리고 우리가 간병인, 의사, 간호사, 심지어 가족까지 아우르는 이 관계의 그물망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가완디: 제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단어는 당신이 사용한 "시민"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시도하는 것은 문을 양방향으로 여는 일입니다.

우리가 평균 80년 이상을 사는 동안 겪는 일들, 즉 임상적인 관계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곧 그 자체가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제가 열고자 하는 문은 이런 것입니다. 제가 의사로서 바깥세상에다가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그 바깥세상을 의사, 간호사,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인 우리에게도 열어, 우리 자신을 그저 '시민'의 한 명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어 모든 것을 매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저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티펫: 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크고 오래된 질문입니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Being Mortal)'라는 단락의 에필로그에 아름다운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물학적 제약, 유전자, 세포, 살, 그리고 뼈에 의해 설정된 한계와 씨름하는 것이 인간이 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유한하다는 사실은 당신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유한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의학의 정의와 현실에 대해 씨름해 온 방식 전반을 형성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 즉 인간이 된다는 것은, 유한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라는 사실...이는 또한 우리가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현실이죠. 저는 당신이 그러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가완디: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 제가 하는 공중 보건 일에서 그것은, 우리는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있음으로써 거의 무한한 존재가 되는 방식이 있다는 사실에 관한 것입니다.

예컨대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서, 소아마비를 세상에서 근절할 때와 같이 말이죠.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는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모두 유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복잡한 수술과 치료를 성공시켜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되돌려주고 더 나은 이후의 삶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어쩌면 정반대입니다. 제가 세상을 걸어갈 때, 저는 한계와 씨름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그 한계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더 뉴요커' 만화를 보면 "그는 그의 선택지를 열어두었다"라고 쓰여 있는 묘비명이 나옵니다. 한계를 헤쳐 나가는 저의 방식은 가능한 한 제 선택지를 열어두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최소한의 위험만을 감수하려 하는 것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불완전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도약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앞으로 나아가고, 모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저는 100%의 정보와 확신 없이 이를 해내야 합니다.

여러 면에서 저를 외과 같은 분야로 이끌었던 힘은 저를 정치의 세계로 이끌었던 힘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즉, 제가 외과에서 본 최고의 의사들은 최고의 지도자들이나 정치인들과 같았는데, 그들은 우리가 유한하며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능력과 정보 또한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임을 알았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결과와 함께 살고 그것들로부터 배우고, 책임을 지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감각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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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On Being with Krista Tippett :  Atul Gawande, On Mortality and Meaning”를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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