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게이 : 기쁨을 고수한다는 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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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ippett: 저는 때때로 "하루를 좋게 만들다(made my day)"라는 말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의 말과 모든 작은 몸짓들이 가진 힘 말입니다. 앞의 두 사람이 무례하게 군 이후, 당신이 계산대에서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만들어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의 망가진 하루를 좋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걸으며 누군가의 하루를 좋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힘입니까?

Gay: 아주 부드러운 방식으로 말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Tippett: 그 얘기를 하다 보니 정원이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왜냐하면 그것이 단순한 은유를 넘어, 당신이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살아 있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복잡한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방식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블루밍턴 공동체 과수원(Bloomington Community Orchard)**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Gay: 블루밍턴 공동체 과수원은 에이미 컨트리맨(Amy Countryman)이라는 여성이 시작한 공공 과수원입니다. 그녀가 학부 졸업 논문을 썼는데, 지도교수가 그것을 도시 임업 담당관에게 가져가 보라고 제안했어요. 담당관은 "약간의 종잣돈과 함께 1에이커의 땅을 사용하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그녀가 모임 공고를 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곳은 과수원이 되었습니다. 약 100그루의 과일나무가 있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Tippett: 그전에는 불모지였죠?

Gay: 그냥 잔디밭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저희가 이 땅을 관리하는 것은 도시에도, 지역 사회에도 이익입니다. 저는 그곳이 마법 같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나무가 있고, 멋지고, 음식까지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점은, 그 안에서 많은 배움과 공동체 형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량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식량 안보에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생산하는 것은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것, 지식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Tippett: 과수원에 가실 때 어떤 나무를 보러 가십니까?

Gay: 블랙베리가 잘 자라서 저를 기분 좋게 합니다. 무화과나무도 있는데, 저는 항상 무화과나무도 확인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펜실베이니아주 레빗타운(Levittown)에 있는 제 친구 아버지의 마당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블루밍턴 지역에서 무화과 열매가 익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하지만 익기만 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Tippett: 당신은 무언가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 삶이 나아졌다고 말했습니다.

Gay: 네. 우선, 정원에 있는 것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꿈꾸는 일 말이에요. 5년 후에 제가 여기서 하는 일이 어떤 일이 될 수 있을지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일종의 신비로운 공간인 것입니다. 

또한 땅에 씨앗을 심고 그것이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하고, 그 무언가가 번성하고, 잠재적으로 계속해서 다른 무엇인가가 되는 과정은 감동적입니다.


Tippett: 훌륭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쁨을 말하고, ‘작지만 큰 것들’에 머무르는 좋은 예시입니다.

Gay: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꽃을 볼 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떤 꽃이든 말입니다. 우리는 요즘 민들레 작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정원은 당신이 꽃들의 냄새를 맡고, 또 맛보고 싶게도 합니다. 

당신은 꽃을 볼 때면, “이런 것은 처음 봅니다”라고 반응하게 될 겁니다. 또 당신은 꽃을 반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이 제 삶을 더 좋게 만들었습니다.


Tippett: 당신이 정원에 대해 말할 때, 저를 감동시키는 것은 공적 공간 또한 당신이 관심을 갖고, 찾아다니며, 생각하는 대상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그 점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정원 가꾸기가 흥미로운 방식으로 공적 공간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당신에게 정원은 사물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연구의 장이 됩니다. 어떤 식물의 씨앗들을 각각 두면 죽는 경우도, 둘을 함께 심으면 잘 자랄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엄격함과 정교함이 들어갑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많은 예상치 못한 일들도 일어나죠. 그것은 전체성(wholeness)의 작은 축소판이며, 그것의 복잡성과 사물들의 상호 관계를 보여줍니다.

Gay: 네.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끊임없이 상상하게 됩니다. "음, 이것이 여기에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것이 여기에 있다면 어떨까?” 저는 항상 제 식물을 먹는 벌레들과 상호작용할 방법을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우리가 식물들을 여기에 놓는다면 어떨까? 만약 우리가 벌레들을 정원으로 초대한다면 어떨까?"


Tippett: 저 역시 과수원을 공적 공간으로 생각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저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공공 생활을 정치적인 생활과 혼동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좁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공적 공간의 정의를 넓게 열어젖히는 방식입니다. 

Gay: 당신은 그곳에서 그냥 존재할 수 있습니다. 쫓겨나지 않고 어울릴 수 있는 장소를 갖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Tippett: 그것은 반드시 목적 지향적이거나 논의해야 할 의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여태껏 공적 공간에서 해왔던 일들입니다.

Gay: 네.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네. 이쯤에서 제가 글 하나 읽어도 될까요?


Tippett: 네, 부탁드립니다. 

Gay: 제목은 "어슬렁거림(Loitering)"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과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슬렁거림"


"저는 디트로이트의 한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문 창문에는 NO SOLICITING(호객 행위 금지), **NO LOITERING(어슬렁거림 금지)이라는 명령이 모적힌 표지판이 있습니다. 저는 커피를 구매함으로써 이 업소와 재정적 관계를 맺었으며, 이는 저를 후원자로 만듭니다. 

그래서 늦은 오후, 햇살이 차양 아래로 쏟아지는 동안 제가 잠깐 졸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쓴 2달러는 적어도 일시적으로 저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해줍니다. 

비록 충분히 오래, 또는 충분히 과시적으로, 또는 충분한 기쁨을 가지고 조는 것이 선 넘는   일 일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어슬렁거림은 게으름을 피우거나(fucking off),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doing jack shit), 일종의 자위 행위를 하는 것(jacking off)을 의미하며, 이 세 가지 용어 중 두 가지가 성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개념을 발명하고 죄악시한 것이 억압적 문화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비약이 아닙니다. 

이것을 읽는 누군가는 ‘어슬렁거림’이 사실이 아닌 개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기절할 수도 있습니다. 사전에서 어슬렁거림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뚜렷한 목적 없이 한가롭게 서 있거나 기다리는 것' 그리고 '자주 멈추면서 게으르게 여행하는 것'입니다.


Tippett: 저는 당신과 정의(justice)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그 현실, 그 열망, 그 개념과 어떻게 씨름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진화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정의를 갈망하고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 싸워야 하는 것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을 기리고 사랑하는 것을 돌보는 일을 하나로 결합시켰습니다.

Gay: 사랑하는 것을 돌보는 일이 핵심처럼 제게는 느껴집니다. 네, 저는 정의에 대해 매우 혼란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정의를 생각하는 방식이 종종 절대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느낍니다. 종종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기리는 가운데, 그와 함께 존재하는 정의라는 개념에 대해 궁금합니다.


Tippett: 당신이 어딘가에 쓴 글이 있습니다. 당신은 "저는 종종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정의를 위해 일할 때에 문제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 아름답고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싸우는 것은 잘하지만, 멋지고 숭배하고 보존하고 기려야 할 것을 상상하고 마음속에 품는 것은 우리에게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적 있지요? 

Gay: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교사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적(grades)"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부분의 경우, 성적을 매기는 것과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이 일종의 징벌적인 심리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Tippett: '충분히 잘했는가?'와 같은 것 말입니까?

Gay: 또는 심지어 '당신은 이것을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제 뼈 속에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지도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모두에게 A를 주고 싶은 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부터는 모두가 A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제 수업을 들으세요. (웃음)

하지만 여전히 저는 '이 사람이 저것을 하지 않았다면 어떨까? 저 사람이 저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또는 '저 사람이 저것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제가 '점수를 깎아야겠다'라고 말해야 할 때는 말이죠, 그것은 일종의 처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그 수업의 다른 사람들 또한 잠재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방식이 전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Tippett: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Gay: 아니고 말고요. 


Tippett: 코넬 웨스트(Cornel West)의 유명한 문구인 "정의는 공적인 사랑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혜가 담긴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다정함 프로젝트(The Tenderness Project)'와 같은 당신의 작업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라고 느낍니다. 즉, 공적인 사랑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정의'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정함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Gay: 그것은 열흘 정도마다 우리가 '다정함(tenderness)'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대상은 짧은 에세이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에세이나 시, 또는 짧은 영화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Tippett: 다정함은 우리 내면의 부드러운 장소라는 생각도 듭니다. 

Gay: 정확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회의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tender(다정한)'라는 단어를 사랑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제가 말하건대 부드러움 내지는 취약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한 "돌보는 사람(one who tends)"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또한 교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다정한'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합니다. 다정하다는 것, 다정함에 참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것들이 또한 타인(an other)을 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다정하다면, 다른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Tippett: 다정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 그것은 내면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범하지만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경험 중 하나입니다.

Gay: 저는 다정함을 생각할 때 종종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절이 몇 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늘 제 머리를 쓰다듬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다정함입니다. 


Tippett: 당신은 또한 미식축구에 대해서도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미식축구를 직접 뛰시기도 했죠? 

Gay: 네. 


Tippett: 그래서 당신은 우리 삶 속 폭력과 마주하면서 다정함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재미, 기쁨, 사랑, 그리고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이상하게 얽혀 있습니다.

Gay: 네, 저는 대학 미식축구를 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학금을 받았죠. 어떤 사람들은 "글쎄, 당신의 플레이가 능숙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실제로 제가 장학금을 받은 것은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모든 종류의 잔혹함과 어리석음 외에도 다정함이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생각하는 다정함 중 일부는 상대의 블로킹에 의해 제 오른쪽 내측 측부 인대(MCL)가 파열되었을 때, 제 친구 글렌이 저를 위해 달려온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그것은 제가 평생 동안 다정함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매우 관련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평생 동안 스포츠와 스포츠 내의 폭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데 몰두해 왔기 때문입니다. 


Tippett: 당신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당신은 정의에 대해서도 썼지만, 또한 자비(mercy)에 대해서도 써왔습니다. 당신은 <더 선(The Sun)>지에 아름다운 글을 썼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이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야기는 당신의 정원에서 시작되는데, 그것은 제게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이 감자, 근대, 마늘을 심고 있는데, 허리가 굳어버립니다. 그리고 당신은 결국 그것이 당신이 겪었던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몸이 전날 밤 경찰과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다정함과 마찬가지로 자비를 얘기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그것이 유일한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말해야 할 모든 것을 말하고, 드러내야 할 모든 것을 드러낸 다음, 정의를 넘어서는 어떤 다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Gay: 다시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Tippett: 글쎄요, 어떻게 애기할 수 있을까요? 분명 누군가가 당신에게 물어봤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기쁨' 같은 단어를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 당장 '자비'를 어떻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 예컨대, 흑인 남성으로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경찰관을 볼 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Gay: 솔직히, 모르겠어요. 아시다시피, 그 글은 저에게 여전히 숙제입니다. 그리고 그 에세이에서 저에게 흥미로운 점은 해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질문만 있습니다. 즉,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Tippett: 당신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서 벌어진, 용납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렇게 썼습니다. 

“(자비의 렌즈를 통해 보면) 우리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부패한 상상력이 보일 수 있습니다. 불평등이 보일 수 있습니다. 폭력이 보일 수 있습니다. 테러가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해왔던 일들이 보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그저 귀신들(phantoms)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귀신들끼리는 서로를 사랑하기는커녕 서로를 돌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Gay: 네, 그것이 제가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Tippett: 저는 인터뷰가 끝날 때 누군가에게 "오늘 당신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희망을 찾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당신에게 절망에 대해서는 묻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무엇이든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떠오릅니까?

Gay: 이 조명이 작동하는 방식은 꽤 놀랍습니다. 저 위에 비치는 몇몇 반사된 모습들도요. 여기에 매우 아름다운 웃음을 가진 분이 계셨는데,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웃는 방에 함께 있는 것은 참 좋습니다. 저 뒤쪽 방에는 소파가 하나 있었는데, 탈의실은 아니었지만, 아주 멋져 보이는 소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기쁨을 주는 것들이었습니다.


Tippett: 오늘도 케틀벨 운동을 하셨습니까?

Gay: 오늘 케틀벨 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일 할 것입니다.


Tippett: 좋습니다. 혹시 이 부분을 읽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책 <기쁨의 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Gay: "제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말 중 하나는 제 학생 베서니에게서 나왔는데, 그녀의 교육적 열망이나 정신, 교사로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그녀의 교실이 어떤 곳이 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야생성(wildernesses)을 함께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잠시동안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몸, 삶이 야생성, 즉 미지의 영역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야생성과 저의 야생성이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합쳐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 야생성, 그 안에 있는 가장 울창한 덤불, 늪, 건널 수 없는 계곡과 강(제가 은유를 명확히 했습니까?)이 우리의 슬픔과 같다면 어떨까요? 또는 스미스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견딜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저는 때때로, 아니 자주, 제가 알게 되는 모든 사람이 어떤 심오한 개인적인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형제는 술과 마약에 중독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살해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수술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가족에게 거부당했습니다. 암이 재발했습니다. 쫓겨났습니다. 태아가 괜찮지 않습니다...“ 항상, 모든 이들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모두 괴로워할 수 있는 실존적인 슬픔, 즉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곧 소멸될 것이라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는 실제보다 더 극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냥 죽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소멸의 이 슬픔이 바로 그 거대한 ‘야생성’인 걸까요? 슬픔이 진정한 야생성일까요?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을 합친다면, 당신의 야생성과 저의 야생성을 합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가 우리의 슬픔을 합친다면 어떨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쁨이 되지는 않을까요?"


Tippett: 로스 게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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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On Being with Krista Tippett: Ross Gay, On the Insistence of Joy”를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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