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크리스타 티펫: 신앙인으로서, 신학자로서 어떻게 그 문제와 씨름했나요? 반응은 또 어땠나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저는 어떤 신앙인이라도 항상 자신의 성(性)과 관련된 문제로 씨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한탄했듯이, 교회는 종종 우리가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룰 근거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성사화(sacramentalize)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됨, 아버지됨, 어머니됨, 그리고 연민의 감정까지도요. 그렇지만 우리의 성은 현대 기독교에서는 종종 고립되어 있습니다. 힘든 일이죠.
크리스타 티펫: 어떻게 말이죠?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것은 정말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그 과정은 남성의 성적 욕망에 내재된, 권력과 지배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를 “훈육”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봐여.
크리스타 티펫: 심지어 당신은 이콘화에서도, 또 그림에서도 기독교가 예수의 남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맞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예수는 너무 여성적이고 너무 온화한 나머지...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는 지나치게 달달하고, 귀엽고, 온화하고, 솜털 같은 모습입니다. 그에게 있어야 할 힘과 위엄이 전혀 없죠. 하지만 특히 여성들이 예수의 남성성을 문제 삼죠. 물론 저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봉사라는 소명의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어요. 그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그 힘을 포기할 수 있도록 권능을 부여받았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신부님께서는 이 모든 걸 이미 알고 계셨나요? 아니면 각종 텍스트들을 연구하면서 발견하기 시작한 건가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것은 발견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크리스타 티펫: 즉, 그것을 알긴 알았지만, 성경에 있는 줄은 몰랐다는 (건가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즉, 제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독신 사제가 아니에요. 결혼도 했고, 제가 마치 성사처럼 맺어진 한 여성을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은 항상 저에게 성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주 성스러운 것이죠,
크리스타 티펫: 그렇다면, '성사(sacrament)'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어떤 단어들로 설명하고 싶습니까? 신부님께서 그 단어를 워낙 많이 사용하다보니, 정의를 내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맞아요. 제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죠. 우리도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 자체가 ‘성사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부적이거나 감각적으로 경험되는 현상이 은총을 전달하고 신의 임재를 드러내는 모든 순간이 본질적으로 ‘성사적’인 것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여러분은 지금 펜실베이니아의 프랭클린 앤 마샬 대학의 영국 문학 교수이자 우크라이나 정교회 사제인 앤서니 우골닉과의 대화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는 교사로서 종종 존 던(17세기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의 시를 사용합니다. 그가 17세기 초에 쓴 소위 '신성한 명상'(Holly Sonnets)의 모음집은 강렬한 육체적 이미지를 통해 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앤서니 우골닉은 던이 400년전 사용한 단어들이 그의 학생들,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심장을 치소서
삼위일체의 하느님.
당신은 지금껏 내 심장을 두드리시고,
풀무질하고, 다듬고, 또 고치려 하셨으니,
그제서야 제가 일어서나이다. 저를 집어던지시고
당신의 온 힘을 기울여, 깨뜨리고, 때리고, 태우고...
새롭게 하소서.
나는 강탈당한 마을처럼, 또 다른 그날까지
당신을 받아들이려 애쓰나이다.
하지만,
아, 그날은 오는지요
내 안의 당신의 대행자인 이 선(善)을 나는 지켜야 하지마는
사로잡혀, 나약하고 또 거짓될 뿐입니다.
진실로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자 하지마는
당신의 적과 언약이 되어 있으니,
나를 파혼시켜 주시고, 가두어 주소서.
나는 당신이 구속하지 않으면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또 결코 순결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존 던의 "내 심장을 치소서"입니다. 앤서니 우골닉은 대담한 제안을 합니다. 평신도와 성직자 모두의 영적 건강을 위해 종교는 인간의 성을 길들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불편한 현실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톨릭 전통에서는 독신 사제직 때문에 성적으로 활동적인 남성의 목소리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는 매우 안타까워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고려하여, 저는 그에게 남성의 성에 관한 불편한 이미지로 가득한 가톨릭 교회의 스캔들에 개인적으로 어떻게 반응했는지 물었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고뇌로 반응했죠. 왜냐하면 저는 사제가 되기로 선택하고 그 선택과 함께 독신을 받아들인 수많은 가톨릭 사제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신과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수도사들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그 방식이 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 즉 일종의 ‘현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것이 폄하되고 더럽혀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문제 중 하나는 일종의 ‘죄악’으로서의 성이, 성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어쨌든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기독교 전통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종 성을 죄악시합니다. 그들은 성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일종의 수치심을 느낍니다. 심지어 성이 "허용"되든 안 되든 말이죠.
크리스타 티펫: 맞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럼 신부님께서는 그와 같은 방식이 독신에 대한 일종의 ‘그릇된 지지방식’이지, 올바른 방식은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렇습니다. 전혀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물론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가 독신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독신이 소명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하느님과 영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치 사제의 본질인 것인냥 독신을 사제직 소명을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과 성적으로 왕성하다는 사실이 완전히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군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저는 오히려 성적으로 활동적인 것과 사제직이 더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저의 사제직은 결혼 생활에서 제가 남성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왜 그런 거죠?
앤서니 우골닉 신부: 저는 지금 작은 러스트 벨트 타운에 있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매우 사랑해요. 그곳 사람들은 결혼한 사제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결혼한 사제가 이 사회, 이 문화 안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더 잘 이해한다고 믿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알겠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하지만 저희가 길을 걸을 때는 마치 가톨릭 사제처럼 보이기 때문에, 저스캔들이 터진 이후 저는 저희 사제들이 받는 일종의 냉대를 느꼈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톨릭 사제들과 그들이 지금 겪고 있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로요.
크리스타 티펫: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성'과 '종교'라는 단어를 같은 문장에서 말하고, 또 그 두 단어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이 관계가 왜곡된 것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은...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 둘을 양극단인 것처럼 다룹니다. 정말 문제죠.
크리스타 티펫: 알겠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성과 종교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성'과 ‘학대’라는 말이 결합되면 이것은 분명히 성을 죄악시합니다. 즉, 성을 죄스러운 것으로 만들죠. 하지만 성과 종교는 문제없습니다. 성과 영성도요.
크리스타 티펫: 그와 같은 메시지가 어디서부터 나올 수 있는지, 아니면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성과 종교에 대해 더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방법이 있을까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네. 저는 우선 전례 자체에서 더 감각적이고 성적으로 모호한 측면, 즉 예배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네.
앤서니 우골닉 신부: 즉, 동방 정교회 전통에서 그렇습니다. 가톨릭 전통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온갖 풍부한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고난주간 동안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신랑의 이미지입니다. 그것은 성과 전혀 관련 없는 것이 아닙니다. 즉, 제 말은 신랑으로서의 그리스도,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신부인 교회와 영혼. 이것들은 성과 성의 성화(deification)에 대한 온갖 풍부한 가능성들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신자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성을 피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수련회에 보낼 때마다 그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제발 혼전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마세요.” 더 이상 성에 관한 얘기로 자기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거죠.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그들을 좋은 섹스를 위해 준비시킨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즉, 이상적인 의미로서의 좋은 섹스입니다. 단지 도덕적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충만하고 풍요롭고, 우리의 존재의 중심과 사랑하는 존재의 중심에 가장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요즈음 광고판에서 보이는 피상적인, 그런 ‘가짜’가 아닙니다.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접근해야 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이 대담 전에 제가 원고를 요청했을 때 제게 편지를 보내셨더군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맞아요
크리스타 티펫: 신부님께서는 '솔직히, 그 문제로 씨름했던 것을 후회했다.'라고 말하셨죠?
앤서니 우골닉 신부: 네.
크리스타 티펫: “마치 지뢰밭 같았다. 나는 나의 솔직함에 충격을 받은 우파들도, 내가 남성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의심한 것에 불만을 느낀 좌파들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인들이 빠져든 이러한 범주들, 즉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가 성 담론을 둘러싼 문제의 일부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기쁘네요.
크리스타 티펫: 이러한 양극단과 긴장에 대해 이야기할 새로운 틀이 필요할까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물론이죠. 지금 티펫씨처럼, 중도적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군요. 주로 저를 가장 많이 인용하는 사람들은 주류 언론에서건 라디오에서건 간에 주로 두 극단에 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맞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하지만) 저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또 경계선에서 살아가며,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믿는 바대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 * *
(이 대화는 "On Being with Krista Tippett : Thomas Moore, Debra Haffner, and Anthony Ugolnik - Spirituality and Sexuality"를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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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타 티펫: 신앙인으로서, 신학자로서 어떻게 그 문제와 씨름했나요? 반응은 또 어땠나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저는 어떤 신앙인이라도 항상 자신의 성(性)과 관련된 문제로 씨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한탄했듯이, 교회는 종종 우리가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룰 근거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성사화(sacramentalize)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됨, 아버지됨, 어머니됨, 그리고 연민의 감정까지도요. 그렇지만 우리의 성은 현대 기독교에서는 종종 고립되어 있습니다. 힘든 일이죠.
크리스타 티펫: 어떻게 말이죠?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것은 정말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그 과정은 남성의 성적 욕망에 내재된, 권력과 지배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를 “훈육”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봐여.
크리스타 티펫: 심지어 당신은 이콘화에서도, 또 그림에서도 기독교가 예수의 남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맞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예수는 너무 여성적이고 너무 온화한 나머지...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는 지나치게 달달하고, 귀엽고, 온화하고, 솜털 같은 모습입니다. 그에게 있어야 할 힘과 위엄이 전혀 없죠. 하지만 특히 여성들이 예수의 남성성을 문제 삼죠. 물론 저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봉사라는 소명의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어요. 그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그 힘을 포기할 수 있도록 권능을 부여받았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신부님께서는 이 모든 걸 이미 알고 계셨나요? 아니면 각종 텍스트들을 연구하면서 발견하기 시작한 건가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것은 발견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크리스타 티펫: 즉, 그것을 알긴 알았지만, 성경에 있는 줄은 몰랐다는 (건가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즉, 제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독신 사제가 아니에요. 결혼도 했고, 제가 마치 성사처럼 맺어진 한 여성을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은 항상 저에게 성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주 성스러운 것이죠,
크리스타 티펫: 그렇다면, '성사(sacrament)'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어떤 단어들로 설명하고 싶습니까? 신부님께서 그 단어를 워낙 많이 사용하다보니, 정의를 내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맞아요. 제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죠. 우리도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 자체가 ‘성사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부적이거나 감각적으로 경험되는 현상이 은총을 전달하고 신의 임재를 드러내는 모든 순간이 본질적으로 ‘성사적’인 것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여러분은 지금 펜실베이니아의 프랭클린 앤 마샬 대학의 영국 문학 교수이자 우크라이나 정교회 사제인 앤서니 우골닉과의 대화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는 교사로서 종종 존 던(17세기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의 시를 사용합니다. 그가 17세기 초에 쓴 소위 '신성한 명상'(Holly Sonnets)의 모음집은 강렬한 육체적 이미지를 통해 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앤서니 우골닉은 던이 400년전 사용한 단어들이 그의 학생들,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심장을 치소서
삼위일체의 하느님.
당신은 지금껏 내 심장을 두드리시고,
풀무질하고, 다듬고, 또 고치려 하셨으니,
그제서야 제가 일어서나이다. 저를 집어던지시고
당신의 온 힘을 기울여, 깨뜨리고, 때리고, 태우고...
새롭게 하소서.
나는 강탈당한 마을처럼, 또 다른 그날까지
당신을 받아들이려 애쓰나이다.
하지만,
아, 그날은 오는지요
내 안의 당신의 대행자인 이 선(善)을 나는 지켜야 하지마는
사로잡혀, 나약하고 또 거짓될 뿐입니다.
진실로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자 하지마는
당신의 적과 언약이 되어 있으니,
나를 파혼시켜 주시고, 가두어 주소서.
나는 당신이 구속하지 않으면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또 결코 순결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존 던의 "내 심장을 치소서"입니다. 앤서니 우골닉은 대담한 제안을 합니다. 평신도와 성직자 모두의 영적 건강을 위해 종교는 인간의 성을 길들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불편한 현실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톨릭 전통에서는 독신 사제직 때문에 성적으로 활동적인 남성의 목소리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는 매우 안타까워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고려하여, 저는 그에게 남성의 성에 관한 불편한 이미지로 가득한 가톨릭 교회의 스캔들에 개인적으로 어떻게 반응했는지 물었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고뇌로 반응했죠. 왜냐하면 저는 사제가 되기로 선택하고 그 선택과 함께 독신을 받아들인 수많은 가톨릭 사제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신과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수도사들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그 방식이 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 즉 일종의 ‘현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것이 폄하되고 더럽혀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문제 중 하나는 일종의 ‘죄악’으로서의 성이, 성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어쨌든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기독교 전통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종 성을 죄악시합니다. 그들은 성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일종의 수치심을 느낍니다. 심지어 성이 "허용"되든 안 되든 말이죠.
크리스타 티펫: 맞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럼 신부님께서는 그와 같은 방식이 독신에 대한 일종의 ‘그릇된 지지방식’이지, 올바른 방식은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렇습니다. 전혀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물론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가 독신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독신이 소명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하느님과 영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치 사제의 본질인 것인냥 독신을 사제직 소명을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과 성적으로 왕성하다는 사실이 완전히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군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저는 오히려 성적으로 활동적인 것과 사제직이 더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저의 사제직은 결혼 생활에서 제가 남성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왜 그런 거죠?
앤서니 우골닉 신부: 저는 지금 작은 러스트 벨트 타운에 있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매우 사랑해요. 그곳 사람들은 결혼한 사제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결혼한 사제가 이 사회, 이 문화 안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더 잘 이해한다고 믿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알겠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하지만 저희가 길을 걸을 때는 마치 가톨릭 사제처럼 보이기 때문에, 저스캔들이 터진 이후 저는 저희 사제들이 받는 일종의 냉대를 느꼈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톨릭 사제들과 그들이 지금 겪고 있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로요.
크리스타 티펫: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성'과 '종교'라는 단어를 같은 문장에서 말하고, 또 그 두 단어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이 관계가 왜곡된 것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은...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 둘을 양극단인 것처럼 다룹니다. 정말 문제죠.
크리스타 티펫: 알겠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성과 종교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성'과 ‘학대’라는 말이 결합되면 이것은 분명히 성을 죄악시합니다. 즉, 성을 죄스러운 것으로 만들죠. 하지만 성과 종교는 문제없습니다. 성과 영성도요.
크리스타 티펫: 그와 같은 메시지가 어디서부터 나올 수 있는지, 아니면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성과 종교에 대해 더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방법이 있을까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네. 저는 우선 전례 자체에서 더 감각적이고 성적으로 모호한 측면, 즉 예배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네.
앤서니 우골닉 신부: 즉, 동방 정교회 전통에서 그렇습니다. 가톨릭 전통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온갖 풍부한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고난주간 동안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신랑의 이미지입니다. 그것은 성과 전혀 관련 없는 것이 아닙니다. 즉, 제 말은 신랑으로서의 그리스도,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신부인 교회와 영혼. 이것들은 성과 성의 성화(deification)에 대한 온갖 풍부한 가능성들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신자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성을 피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수련회에 보낼 때마다 그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제발 혼전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마세요.” 더 이상 성에 관한 얘기로 자기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거죠.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그들을 좋은 섹스를 위해 준비시킨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즉, 이상적인 의미로서의 좋은 섹스입니다. 단지 도덕적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충만하고 풍요롭고, 우리의 존재의 중심과 사랑하는 존재의 중심에 가장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요즈음 광고판에서 보이는 피상적인, 그런 ‘가짜’가 아닙니다.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접근해야 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이 대담 전에 제가 원고를 요청했을 때 제게 편지를 보내셨더군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맞아요
크리스타 티펫: 신부님께서는 '솔직히, 그 문제로 씨름했던 것을 후회했다.'라고 말하셨죠?
앤서니 우골닉 신부: 네.
크리스타 티펫: “마치 지뢰밭 같았다. 나는 나의 솔직함에 충격을 받은 우파들도, 내가 남성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의심한 것에 불만을 느낀 좌파들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인들이 빠져든 이러한 범주들, 즉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가 성 담론을 둘러싼 문제의 일부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기쁘네요.
크리스타 티펫: 이러한 양극단과 긴장에 대해 이야기할 새로운 틀이 필요할까요?
앤서니 우골닉 신부: 물론이죠. 지금 티펫씨처럼, 중도적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군요. 주로 저를 가장 많이 인용하는 사람들은 주류 언론에서건 라디오에서건 간에 주로 두 극단에 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맞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신부: (하지만) 저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또 경계선에서 살아가며,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믿는 바대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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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On Being with Krista Tippett : Thomas Moore, Debra Haffner, and Anthony Ugolnik - Spirituality and Sexuality"를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