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편 : '성스러움'과 종교성의 변화
서론(Tippett) : 성공회 신부이자 신학자인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Barbara Brown Tylor)는 1990년대 초 외교관직을 떠나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제가 알게 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는 조지아의 작은 교회를 이끌고 있었는데, 아주 특별한 설교를 했고 이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2006년에는 《교회를 떠나며(Leaving Church)》를 썼습니다. 회중 목회 생활을 떠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쓴 책입니다.
그녀는 이후 《세상 속의 제단(An Altar in the World)》, 《어둠 속에서 걷는 법 배우기(Learning to Walk in the Dark)》, 《신성한 질투: 타인의 믿음 속에서 신을 찾다(Holy Envy: Finding God in the Faith of Others)》와 같은 책들을 썼습니다.
이 모든 시간동안 우리가 그녀의 놀랍도록 현명하고 자유로운 정신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기쁨입니다. 종교적인 단어로는 "축복"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대화는 교회의 쇠퇴나 SBNR(종교적이지는 않으나 영적인)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널리 사용되는 이 용어가 신성함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파악하는 데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갈망은 우리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넘치지만, 이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형태가 바뀌고 있습니다.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는 종교성이 변화하던 초창기에 성장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교회 대신 도서관에 가도록 권했죠. 그리고 《타임(Time)》지 표지는 '신이 죽었는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Tippett: 안녕하세요, 크리스타입니다.
Taylor: 바바라 테일러입니다.
Tippett: 만나서 정말 기쁩니다. 직접 만나 뵐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못 뵀네요.
제가 탐구를 시작하면서 몇 년에 걸쳐 "순례(peregrination)"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걸 느꼈습니다. 찾아보니 라틴어로는 "해외에서 살거나 여행하다"에서 유래했고 실제로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여정"을 의미하더군요.
이는 바바라씨의 삶과 신앙, 그리고 소명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틀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아가 오늘날 종교와 종교성, 그리고 신 관념 등의 진화에 대한 좋은 틀로도 보였습니다. 이 역시 더 깊이 묻고 싶은 주제예요. 말 그대로, 당신은 ‘순례하는’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9학년이 되기 전에 9번이나 이사를 가셨죠?
Taylor: 사실입니다.
Tippett: 이사를 많이 다니셨어요. 그리고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종교를 보면, 신은 '공공연하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바바라씨는 신의 죽음 때문에 단념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신은 계속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찾고 있었나요?
Taylor: 여러 가지 답이 있죠. 먼저 고등학교 때는 친구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모든 친구들은 교회에 다녔고 그들은 저도 같이 교회에 가기를 바랐습니다. 일종의 소속감의 문제였죠.
그리고 그 이후로 저는 제가 소속감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제가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가 찾고 있던 것은 거기에 없었어요.
그럼 무엇을 찾고 있었냐고요? 세상에 대한 진리를 듣고 있다는 어떤 느낌, 그것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대신, 저는 종종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묘사나 경고 만을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으로서, 교단 차원에서나 신학적으로나 제 영혼을 위해 ‘로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신학대학원 중간 학년쯤 되어서야 뉴헤이븐 시내의 한 교회에서 드디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곳은 호그와트 같았습니다. 제가 그런 곳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지만, 그랬죠.
Tippett: 그 아주 엄숙하기로 유명한 성공회 교회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Taylor: 네. 아주 엄숙했죠. 성가대에조차 여자가 없었어요.
Tippett: 그렇습니다. “종소리와 향기"...제 말은 모든 종류의 고고한 의식들이 많이 있는 곳이죠. 이야기 재밌네요.
바바라씨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색하는 중에 여러 교회를 다니다가 20대 중반 쯤, 이 성공회 교회에 정착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당신이 신부님께 그 동안의 이야기에 대해 말하러 갔을 때 이렇게 말하셨다고요?
"바바라씨, 당신은 일종의 교회 ‘창녀’(이리 저리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에 대해 비꼬는 표현으로 보인다 – 역주)란 말이오. 이번에는 정말 사랑에 빠졌는지 확인해 봅시다.”
Taylor: 맞아요. 이제는 그분도 영원한 안식 중이시네요. 저는 그분이 제 나름의 방식으로 ‘독실하게’ 지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요.
Tippett: 그렇습니다. 당신은 사랑에 빠졌고, 결국 신부로 서품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책 《교회를 떠나며(Leaving Church)》는 베스트셀러죠.
저는 그 책의 구조가 마음에 듭니다. "찾기(Finding)", "잃기(Losing)", "지키기(Keeping)"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당신이 걸어온 여정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가 걷고 있는 여정을 설명하는 틀처럼도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1997년에 교구 사역을 떠나는 것에 관해 쓴 것 중에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그 후 대학 종교 교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 좀 해주시겠어요? 당신은 교회에서 교실로 옮겨간 것이 "신학적 굴욕의 시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Taylor: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티펫씨께서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것을 교구 사역을 떠난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셔서 아주 기쁩니다. 왜냐하면, 그 직후에 저를 ‘위로’하겠다는 식의 많은 편지를 받았고, 신께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을 돕겠다고 제안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저는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직업적인 변화가 필요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죠.
하지만 그것이 진정 의미하는 바는 제가 유일한 목회자였던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었어요. (그 때) 저는 특별한 예복을 입었고, 말하는 시간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차 공간도 있었어요.
하지만 종교학과조차 없고 인문대학만 있는 곳으로 옮겨가면서 제 사무실 문에는 이제 "바바라 테일러, 인문학과"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신학 석사(Master of Divinity)"…
Tippett: "신학 석사", 맞습니다.
Taylor: 제가 걸었던 길 하고는 딴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게는 이제 제단 대신 강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괴로웠던 점은 제 언어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어요. 예컨대,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와 같은 말들 말이에요.
제 모든 언어는 사라졌습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제 삶에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좋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기쁘기는 하네요.
Tippett: 당신은 가르쳤던 경험에 대해 ‘나에게는 "큰 선물"들이 다가왔다’라고, 그리고 그 선물들은 비신자들이 준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 수 있겠네요. 당신은 "내 수업에서 종교와 거리를 두는 학생들은 의심이 없는 학생들보다, 그들이 등지고 떠난 ‘신앙’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수업 시간에 비신자들이 준 큰 선물은, 내 자신을 역사의 맥락과 언어를 통해 (신앙이 가진) 현재의 의미를 탐구하게 한 것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의식적으로 말했던 것들을 이제 번역해야 했다는 것이죠.
이 얘기를 들으니 지난 몇 년 간 제 마음 속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르네요. 저는 교회가 텅텅 비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동시에, 신학적이고 전례적인 언어와 관행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시대에 더 큰 울림을 주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고해와 회개, 탄식과 구원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있는 자리에서 종교적이고 영적인 삶에 대한 모든 에너지와 호기심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그것이 "영적이되 종교적이지는 않은(SBNR)"이라는 문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풍부하다는 사실이에요.
Taylor: 맞아요. 저는 "Nones", N-O-N-E-S라는 범주에 기분이 나빴습니다. 공집합 같잖아요.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영적이되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경솔하고, 헌신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종교를 스스로 만들고 싶어 하는 개인주의자라고 치부하며 경멸했죠.
그런데 이제는 놀랍게도, 그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진화의 일부라는 것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그들을 부를만한, "Nones"보다 더 나은 단어를 찾기를 바라요. 단지 그들이 이제 미국 인구의 30%를 차지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Tippett: 그 용어는 심오하거나 깊은 의미가 없죠. 여론조사에서 나왔잖아요. 그 용어가 형성된 맥락이 부족합니다.
Taylor: "무소속(unaffiliated)"도 그리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른 말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순례자들(The peregrinaters)"은 어떤가요?
Tippett: 그렇군요. 그것이 바바라씨가 추천하고 싶은 범주입니까?
Taylor: 모르겠어요. 그들이 분명 스스로를 이름지으려 할 것이고, 저는 그 이름들이 많이 있기를 바라요. 여러 다른 이름들 말이에요. 왜냐하면 “N-O-N-E-S”는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는 범주이기 때문입니다.
Tippett: 맞습니다. 《교회를 떠나며》의 시작 부분에, 당신은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용문을 하나 넣었는데, 아주 좋더라고요. “이 시대에 다소간 부족한 것은 성스러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다."
그것은 제게 마치 '진행 중인 탐구'를 포찰할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설명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르겠어요, "성스러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라는 이 말이 바바라씨의 신학적 상상력을 어떻게 자극하는가요?
Taylor: 저는 너무나 많은 방향으로 끌리고 있어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저는 저의 나이와 제가 사는 지역, 그리고 ‘성스러움’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방식과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그 말은 대부분 오순절 성결 교회(Pentecostal Holiness churches)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유롭게 그 단어에 대해 떠올려 보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죠. '무엇인가에 단단히 뿌리박는 느낌'이라는 차원에서 성스러움에 대한 갈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땅이 우리 아래에서 계속 움직이는 동안 균형을 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저는 "종교적" 또는 "영적"이라는 단어보다 '신성한 것을 찾는 사람'이라는 말을 더 선호합니다. 그리고 제게 그것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실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물질적 실재가 아니라, 저 심층까지 이어지는, 그런 실재를 말하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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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On Being with Krista Tippett : Barbara Brown Taylor “This Hunger for Holiness”를 편집한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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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성스러움'과 종교성의 변화
서론(Tippett) : 성공회 신부이자 신학자인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Barbara Brown Tylor)는 1990년대 초 외교관직을 떠나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제가 알게 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는 조지아의 작은 교회를 이끌고 있었는데, 아주 특별한 설교를 했고 이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2006년에는 《교회를 떠나며(Leaving Church)》를 썼습니다. 회중 목회 생활을 떠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쓴 책입니다.
그녀는 이후 《세상 속의 제단(An Altar in the World)》, 《어둠 속에서 걷는 법 배우기(Learning to Walk in the Dark)》, 《신성한 질투: 타인의 믿음 속에서 신을 찾다(Holy Envy: Finding God in the Faith of Others)》와 같은 책들을 썼습니다.
이 모든 시간동안 우리가 그녀의 놀랍도록 현명하고 자유로운 정신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기쁨입니다. 종교적인 단어로는 "축복"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대화는 교회의 쇠퇴나 SBNR(종교적이지는 않으나 영적인)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널리 사용되는 이 용어가 신성함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파악하는 데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갈망은 우리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넘치지만, 이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형태가 바뀌고 있습니다.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는 종교성이 변화하던 초창기에 성장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교회 대신 도서관에 가도록 권했죠. 그리고 《타임(Time)》지 표지는 '신이 죽었는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Tippett: 안녕하세요, 크리스타입니다.
Taylor: 바바라 테일러입니다.
Tippett: 만나서 정말 기쁩니다. 직접 만나 뵐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못 뵀네요.
제가 탐구를 시작하면서 몇 년에 걸쳐 "순례(peregrination)"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걸 느꼈습니다. 찾아보니 라틴어로는 "해외에서 살거나 여행하다"에서 유래했고 실제로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여정"을 의미하더군요.
이는 바바라씨의 삶과 신앙, 그리고 소명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틀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아가 오늘날 종교와 종교성, 그리고 신 관념 등의 진화에 대한 좋은 틀로도 보였습니다. 이 역시 더 깊이 묻고 싶은 주제예요. 말 그대로, 당신은 ‘순례하는’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9학년이 되기 전에 9번이나 이사를 가셨죠?
Taylor: 사실입니다.
Tippett: 이사를 많이 다니셨어요. 그리고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종교를 보면, 신은 '공공연하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바바라씨는 신의 죽음 때문에 단념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신은 계속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찾고 있었나요?
Taylor: 여러 가지 답이 있죠. 먼저 고등학교 때는 친구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모든 친구들은 교회에 다녔고 그들은 저도 같이 교회에 가기를 바랐습니다. 일종의 소속감의 문제였죠.
그리고 그 이후로 저는 제가 소속감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제가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가 찾고 있던 것은 거기에 없었어요.
그럼 무엇을 찾고 있었냐고요? 세상에 대한 진리를 듣고 있다는 어떤 느낌, 그것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대신, 저는 종종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묘사나 경고 만을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으로서, 교단 차원에서나 신학적으로나 제 영혼을 위해 ‘로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신학대학원 중간 학년쯤 되어서야 뉴헤이븐 시내의 한 교회에서 드디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곳은 호그와트 같았습니다. 제가 그런 곳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지만, 그랬죠.
Tippett: 그 아주 엄숙하기로 유명한 성공회 교회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Taylor: 네. 아주 엄숙했죠. 성가대에조차 여자가 없었어요.
Tippett: 그렇습니다. “종소리와 향기"...제 말은 모든 종류의 고고한 의식들이 많이 있는 곳이죠. 이야기 재밌네요.
바바라씨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색하는 중에 여러 교회를 다니다가 20대 중반 쯤, 이 성공회 교회에 정착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당신이 신부님께 그 동안의 이야기에 대해 말하러 갔을 때 이렇게 말하셨다고요?
"바바라씨, 당신은 일종의 교회 ‘창녀’(이리 저리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에 대해 비꼬는 표현으로 보인다 – 역주)란 말이오. 이번에는 정말 사랑에 빠졌는지 확인해 봅시다.”
Taylor: 맞아요. 이제는 그분도 영원한 안식 중이시네요. 저는 그분이 제 나름의 방식으로 ‘독실하게’ 지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요.
Tippett: 그렇습니다. 당신은 사랑에 빠졌고, 결국 신부로 서품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책 《교회를 떠나며(Leaving Church)》는 베스트셀러죠.
저는 그 책의 구조가 마음에 듭니다. "찾기(Finding)", "잃기(Losing)", "지키기(Keeping)"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당신이 걸어온 여정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가 걷고 있는 여정을 설명하는 틀처럼도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1997년에 교구 사역을 떠나는 것에 관해 쓴 것 중에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그 후 대학 종교 교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 좀 해주시겠어요? 당신은 교회에서 교실로 옮겨간 것이 "신학적 굴욕의 시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Taylor: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티펫씨께서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것을 교구 사역을 떠난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셔서 아주 기쁩니다. 왜냐하면, 그 직후에 저를 ‘위로’하겠다는 식의 많은 편지를 받았고, 신께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을 돕겠다고 제안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저는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직업적인 변화가 필요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죠.
하지만 그것이 진정 의미하는 바는 제가 유일한 목회자였던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었어요. (그 때) 저는 특별한 예복을 입었고, 말하는 시간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차 공간도 있었어요.
하지만 종교학과조차 없고 인문대학만 있는 곳으로 옮겨가면서 제 사무실 문에는 이제 "바바라 테일러, 인문학과"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신학 석사(Master of Divinity)"…
Tippett: "신학 석사", 맞습니다.
Taylor: 제가 걸었던 길 하고는 딴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게는 이제 제단 대신 강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괴로웠던 점은 제 언어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어요. 예컨대,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와 같은 말들 말이에요.
제 모든 언어는 사라졌습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제 삶에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좋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기쁘기는 하네요.
Tippett: 당신은 가르쳤던 경험에 대해 ‘나에게는 "큰 선물"들이 다가왔다’라고, 그리고 그 선물들은 비신자들이 준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 수 있겠네요. 당신은 "내 수업에서 종교와 거리를 두는 학생들은 의심이 없는 학생들보다, 그들이 등지고 떠난 ‘신앙’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수업 시간에 비신자들이 준 큰 선물은, 내 자신을 역사의 맥락과 언어를 통해 (신앙이 가진) 현재의 의미를 탐구하게 한 것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의식적으로 말했던 것들을 이제 번역해야 했다는 것이죠.
이 얘기를 들으니 지난 몇 년 간 제 마음 속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르네요. 저는 교회가 텅텅 비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동시에, 신학적이고 전례적인 언어와 관행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시대에 더 큰 울림을 주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고해와 회개, 탄식과 구원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있는 자리에서 종교적이고 영적인 삶에 대한 모든 에너지와 호기심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그것이 "영적이되 종교적이지는 않은(SBNR)"이라는 문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풍부하다는 사실이에요.
Taylor: 맞아요. 저는 "Nones", N-O-N-E-S라는 범주에 기분이 나빴습니다. 공집합 같잖아요.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영적이되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경솔하고, 헌신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종교를 스스로 만들고 싶어 하는 개인주의자라고 치부하며 경멸했죠.
그런데 이제는 놀랍게도, 그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진화의 일부라는 것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그들을 부를만한, "Nones"보다 더 나은 단어를 찾기를 바라요. 단지 그들이 이제 미국 인구의 30%를 차지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Tippett: 그 용어는 심오하거나 깊은 의미가 없죠. 여론조사에서 나왔잖아요. 그 용어가 형성된 맥락이 부족합니다.
Taylor: "무소속(unaffiliated)"도 그리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른 말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순례자들(The peregrinaters)"은 어떤가요?
Tippett: 그렇군요. 그것이 바바라씨가 추천하고 싶은 범주입니까?
Taylor: 모르겠어요. 그들이 분명 스스로를 이름지으려 할 것이고, 저는 그 이름들이 많이 있기를 바라요. 여러 다른 이름들 말이에요. 왜냐하면 “N-O-N-E-S”는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는 범주이기 때문입니다.
Tippett: 맞습니다. 《교회를 떠나며》의 시작 부분에, 당신은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용문을 하나 넣었는데, 아주 좋더라고요. “이 시대에 다소간 부족한 것은 성스러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다."
그것은 제게 마치 '진행 중인 탐구'를 포찰할 수 있는 보다 더 나은 설명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르겠어요, "성스러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라는 이 말이 바바라씨의 신학적 상상력을 어떻게 자극하는가요?
Taylor: 저는 너무나 많은 방향으로 끌리고 있어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저는 저의 나이와 제가 사는 지역, 그리고 ‘성스러움’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방식과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그 말은 대부분 오순절 성결 교회(Pentecostal Holiness churches)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유롭게 그 단어에 대해 떠올려 보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죠. '무엇인가에 단단히 뿌리박는 느낌'이라는 차원에서 성스러움에 대한 갈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땅이 우리 아래에서 계속 움직이는 동안 균형을 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저는 "종교적" 또는 "영적"이라는 단어보다 '신성한 것을 찾는 사람'이라는 말을 더 선호합니다. 그리고 제게 그것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실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물질적 실재가 아니라, 저 심층까지 이어지는, 그런 실재를 말하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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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On Being with Krista Tippett : Barbara Brown Taylor “This Hunger for Holiness”를 편집한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