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무언가를 행하거나(doing) 얻기(getting)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내고(being) 특정한 존재가 되어가기(becoming) 위한 도구입니다." 이는 고(故)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의 말로, 그는 역사에 남을만한 성경의 해석자이자 교사였습니다. 그가 거의 30년 동안 목회했던 교회의 뒷자리에는 월리스 스테그너(Wallace Stegner)나 데니스 레버토프(Denise Levertov)의 책들이 낡은 채로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성경을 대하는 신도들의 상상력 부족에 답답함을 느끼고, 직접 성경 전체를 번역했으며, 그 번역본은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가 판매되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성경에 관해 가졌던 문학적 상상력은 수많은 목회자, 교사, 독자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현실적인 신앙은 비유에 대한 사랑과 성경의 시적 본질을 세계에 생생히 전달하는 일에 헌신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Greg Fromholz 사진, © All Rights Reserved.
모든 예언자들은 시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 하고
결국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은유(A Metaphor)는 무언가를 형성(formation)하기 위한 정말로 탁월한 수단입니다.
왜냐하면 은유는 누군가가 말해주는 내용과 말해주지 않는 내용을 동시에 의미하며,
이 두 가지가 한 데 모일 때 살아움직이는 상상력을 우리 안에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사태를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유진 피터슨
* * *
어린 시절 당신의 종교적, 영적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매우 분파중심적인 교회, 즉 오순절 교회(Pentecostal Church)에서 자랐습니다. 그 교회는 마을 중심에 있는 작은 교회였어요. 그곳은 흥미로운 장소였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일이 일어났고, 교회에 가는 것은 하나의 짜릿한 모험이었죠. 복음(Gospel)과는 크게 관련이 없었지만, 젊은 사람이나 청소년에게는 좋은 장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했어요. 나중에 그곳에서 얻은 경험의 많은 부분을 극복해야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었고, 신실하며 위선적이지 않았죠. 저는 그 배경 속에서 자랐고, 대학에 갈 때까지 그 경계를 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가 영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반면, 이 세상의 현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고 쓰신 것을 봤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느끼기에, 몬태나의 풍경 자체가 당신의 영적 상상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와 제 가족들은 웅장한 자연 속에 살았지만, 부모님은 그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어릴 때, 대략 7살에서 10살 정도였을 때,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산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이면 삶은 달걀 두세 개와 베이컨을 준비해 자전거를 타고 산 기슭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죠. 이 모든 것은 제가 스스로 경험한 것들이었어요. 부모님은 '하늘나라'에 더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경험이 저에게 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언어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시적 가능성에 대한 존경심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글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고 했지만, 명확하게 언급된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 제게 언어에 대한 사랑과 글쓰기를 가르쳐주신 선생님 두 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상당 부분은 우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시인을 발견하고 그 시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떠오르는 사건이 있어요. 열 살 즈음 저희 집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고, 제게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돈을 모아 성경을 사서 읽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이 시편을 읽어보라고 해서 시편을 읽기 시작했죠.
하지만 내용이 잘 이해 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반석이시다”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요? “내 눈물이 당신의 병에 담겨 있다”라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죠. 그래도 사람들이 시편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계속 읽었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시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는 ‘은유’라는 용어를 몰랐지만, 그것이 은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시편을 통해 시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목사가 되셨군요. 다만 처음부터 목사가 될 운명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때는 교수가 되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하지만 당신은 단순히 목사가 된 것에 그치지 않고, '목사 중의 목사'라고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의 신앙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책 『유진 피터슨』에서, 이제는 목사가 되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해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쓰셨죠.
이 단어 — “목사”라는 단어의 울림이, 지금 당신의 글을 읽는 현실 세계에서도, 교회 내부의 세계에서도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의 영적 상상력과 성경적 상상력을 끌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공적 신학자로서도 탐구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세상, 심지어 당신이 성장하고 당신의 생각과 글이 형성되었던 맥락과는 매우 다른 이 세상에도 깊이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사실 저는 교수가 되려고 대학원을 다니던 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려고 했죠. 그러다 결혼했고, 화이트 플레인스(White Plains)로 이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신학교에서 받은 월급이 너무 적어서 다른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존경하는 목사님 밑에서 일자리를 구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목사라는 부류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 마을에 와서 몇 년 동안 사냥과 낚시를 하다가 더 좋은 곳으로 떠나곤 했어요. 물론, 그분들은 재미있는 사람들이었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줬지만, 제 삶과 관련된 어떤 신앙적 연결점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 가르친 과목이 바로 요한계시록이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출발이네요.
맞아요, 그랬습니다. 제가 그 과목을 가르치는 과정을 꾸려나가면서, 요한계시록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한 교수님 — 사실 그 당시 교수로 봉직하셨던 분은 아니었죠. 이미 세상을 떠난 분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분이 쓴 요한계시록에 대한 책이 제 상상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요한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첫 번째 위대한 시가 바로 그 안에 있었던 거예요.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이미지와 상징,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것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그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 그때 제가 있던 곳은 뉴욕시였는데요 — 말하자면 바빌론(Babylon) 같은 곳이었죠. 그곳에서 저는 교실 밖의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혼, 자살, 가출한 아이들… 저는 제가 강의를 하는 화요일과 목요일을 빼고는 매주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어요.
조금 전에 말씀하신 시에 대해서 — 당신은 작가일 뿐만 아니라 번역가이기도 하잖아요. 『메시지(The Message)』라는 성경 번역본은 보노(Bono, 영국의 락밴드 U2의 리드보컬 — 역자 주)처럼 당신을 인터뷰했던 사람들부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저희 프로듀서 릴리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릴리의 아버지는 콜롬비아 출신의 목사님이셨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신도들과 『메시지(The Message)』를 사용하셨다고 하네요.
네, 릴리가 저에게 얘기해줬어요.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성경 본문의 시적 표현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접했던 많은 번역에서는 그 시적 요소가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텍스트가 페이지에 배열된 방식조차도요. 당신이 이 주제에 대해 쓰신 글을 읽으면 언어의 중요성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죠. 그런데 그런 맥락이 없다면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맞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 머무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모든 예언자는 시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르면 우리는 모든 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다가 결국 엉망으로 만들어버리죠.
예언자들을 읽거나 그들에 대한 상상력을 가질 때, 21세기 사람들에게 그들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그들이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어떤 차이를 만드나요?
그것은 은유(metaphor)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유는 무언가를 형성(formation)하기 위한 정말 탁월한 형식인데, 누군가 말하는 그대로의 의미와 말해주지 않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거든요. 이 두 가지가 한데 모이면 살아움직이는 상상력을 우리 안에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단순히 사태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사건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쓰게 되죠.
* * *
사랑받는 목사이자 문학적 소양을 지닌 신학저술가였던 고(故) 유진 피터슨의 성경 번역본 『메시지(The Message)』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의 잘 알려진 구절을 그가 어떻게 번역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요한복음 1:14 /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한글 번역: 킹제임스흠정역)
“그 말씀이 살과 피가 되어 우리가 사는 곳에 오셨다. 우리는 그 영광을 두 눈으로 보았다. 단 하나뿐인 그 영광은 아버지 같고, 아들 같아서 안팎으로 두루 충만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참된 영광이었다(The Word became flesh and blood, and moved into the neighborhood. We saw the glory with our own eyes, the one-of-a-kind glory, like Father, like Son, Generous inside and out, true from start to finish.).”
요한복음 1:14 / 메시지 성경(The Message, 한글 번역: 한글 메시지 성경)
* * *
당신이 시에 대해 쓴 글 중 하나를 읽어드릴게요. 정말 멋진 문장입니다.
“시인은 우리가 너무 많은 방황으로 흐릿해진 눈과 너무 많은 수다로 둔해진 귀로 인해 놓치는 것들 — 우리 주변과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시인은 단어들을 사용해 우리를 현실의 깊이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
“시는 급소에서 우리를 움켜잡는다. 그것은 화장품 같은 언어가 아니라 내장에 가까운 언어이다.” [웃음]
[웃음] 제가 그런 말을 썼나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이 주제를 좀 더 파고드는 이유는, 지금 이 시대에도 '예언자'라는 개념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 당신이 예언자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 특별히 말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그들의 언어가 지닌 독특성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우리의 기존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흔들어 깨운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건 저에게도 중요한 일이었고, 누구에게나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강렬한 울림을 주는 시인 몇 명을 찾아내고, 그들의 작품을 암기하고, 그들의 언어가 지닌 역동(dynamics)을 듣는 법을 배우는 거죠. 단순히 단어를 보는 것이 아니라요. 저에게는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 그리고 메리 올리버(Mary Oliver)가 그런 시인들이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그들의 시를 암기했어요. 그러면 그들의 음악이 제 머릿속에 들어오고, 저는 읽는지도 모르는 채 시를 읽고 있게 됩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는 데도 도움이 되죠. 제가 『메시지』를 저술했을 때, 제가 시무하고 있던 교회 신자들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전에 없던 방식으로 제 말을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 사실 저는 그것을 시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끊었을 테니까요. 저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교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당신이 이 대목을 지울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미국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죠. 언어를 경시하는 것 말이죠.
사실, 지금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들 중 많은 부분이 언어를 너무나도 부주의하게 사용한 결과의 극단적인 버전처럼 보이는데요…
맞아요, 정말 그렇습니다.
전반적으로 말이죠. 그런데 당신이 쓴 이런 문장이 있어요. 어디서 나온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사용하는 단어들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신중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단어를 사용하지만, 나중에는 단어가 우리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 말은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당신의 성경적 관점에서 비롯된 통찰이지만, 동시에 세속적인 현실에도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언어의 힘, 그리고 우리가 언어를 충분히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을 때 그 힘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세요.
언어의 힘이 잘 사용될 경우, 그것은 여러 층위로 작용합니다. 대부분의 단어들은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어느 단어를 그저 신문에서 쓰이는 수준으로만 축소한다면, 인간의 삶에서 상당 부분을 놓치는 겁니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시인이 우리를 도와줍니다. 시인은 우리가 이전에 들을 수 없었던 것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훈련시킵니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에요. 아이들은 언어를 발견하고,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죠. 유치원에 다니기 전의 아이들은 언어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단어를 배우고 익혀가는 과정을 지켜볼 때, 언어의 힘이 정말 분명히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습니다. 정말 그래요.
* * *
(이 대화는 "Answering God", On Being with Krista Tipett을 편집한 것입니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기도는 무언가를 행하거나(doing) 얻기(getting)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내고(being) 특정한 존재가 되어가기(becoming) 위한 도구입니다." 이는 고(故)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의 말로, 그는 역사에 남을만한 성경의 해석자이자 교사였습니다. 그가 거의 30년 동안 목회했던 교회의 뒷자리에는 월리스 스테그너(Wallace Stegner)나 데니스 레버토프(Denise Levertov)의 책들이 낡은 채로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성경을 대하는 신도들의 상상력 부족에 답답함을 느끼고, 직접 성경 전체를 번역했으며, 그 번역본은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가 판매되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성경에 관해 가졌던 문학적 상상력은 수많은 목회자, 교사, 독자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현실적인 신앙은 비유에 대한 사랑과 성경의 시적 본질을 세계에 생생히 전달하는 일에 헌신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Greg Fromholz 사진, © All Rights Reserved.
모든 예언자들은 시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 하고
결국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은유(A Metaphor)는 무언가를 형성(formation)하기 위한 정말로 탁월한 수단입니다.
왜냐하면 은유는 누군가가 말해주는 내용과 말해주지 않는 내용을 동시에 의미하며,
이 두 가지가 한 데 모일 때 살아움직이는 상상력을 우리 안에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사태를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유진 피터슨
* * *
어린 시절 당신의 종교적, 영적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매우 분파중심적인 교회, 즉 오순절 교회(Pentecostal Church)에서 자랐습니다. 그 교회는 마을 중심에 있는 작은 교회였어요. 그곳은 흥미로운 장소였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일이 일어났고, 교회에 가는 것은 하나의 짜릿한 모험이었죠. 복음(Gospel)과는 크게 관련이 없었지만, 젊은 사람이나 청소년에게는 좋은 장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했어요. 나중에 그곳에서 얻은 경험의 많은 부분을 극복해야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었고, 신실하며 위선적이지 않았죠. 저는 그 배경 속에서 자랐고, 대학에 갈 때까지 그 경계를 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가 영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반면, 이 세상의 현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고 쓰신 것을 봤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느끼기에, 몬태나의 풍경 자체가 당신의 영적 상상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와 제 가족들은 웅장한 자연 속에 살았지만, 부모님은 그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어릴 때, 대략 7살에서 10살 정도였을 때,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산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이면 삶은 달걀 두세 개와 베이컨을 준비해 자전거를 타고 산 기슭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죠. 이 모든 것은 제가 스스로 경험한 것들이었어요. 부모님은 '하늘나라'에 더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경험이 저에게 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언어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시적 가능성에 대한 존경심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글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고 했지만, 명확하게 언급된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 제게 언어에 대한 사랑과 글쓰기를 가르쳐주신 선생님 두 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상당 부분은 우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시인을 발견하고 그 시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떠오르는 사건이 있어요. 열 살 즈음 저희 집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고, 제게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돈을 모아 성경을 사서 읽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이 시편을 읽어보라고 해서 시편을 읽기 시작했죠.
하지만 내용이 잘 이해 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반석이시다”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요? “내 눈물이 당신의 병에 담겨 있다”라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죠. 그래도 사람들이 시편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계속 읽었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시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는 ‘은유’라는 용어를 몰랐지만, 그것이 은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시편을 통해 시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목사가 되셨군요. 다만 처음부터 목사가 될 운명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때는 교수가 되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하지만 당신은 단순히 목사가 된 것에 그치지 않고, '목사 중의 목사'라고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의 신앙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책 『유진 피터슨』에서, 이제는 목사가 되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해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쓰셨죠.
이 단어 — “목사”라는 단어의 울림이, 지금 당신의 글을 읽는 현실 세계에서도, 교회 내부의 세계에서도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의 영적 상상력과 성경적 상상력을 끌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공적 신학자로서도 탐구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세상, 심지어 당신이 성장하고 당신의 생각과 글이 형성되었던 맥락과는 매우 다른 이 세상에도 깊이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사실 저는 교수가 되려고 대학원을 다니던 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려고 했죠. 그러다 결혼했고, 화이트 플레인스(White Plains)로 이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신학교에서 받은 월급이 너무 적어서 다른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존경하는 목사님 밑에서 일자리를 구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목사라는 부류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 마을에 와서 몇 년 동안 사냥과 낚시를 하다가 더 좋은 곳으로 떠나곤 했어요. 물론, 그분들은 재미있는 사람들이었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줬지만, 제 삶과 관련된 어떤 신앙적 연결점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 가르친 과목이 바로 요한계시록이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출발이네요.
맞아요, 그랬습니다. 제가 그 과목을 가르치는 과정을 꾸려나가면서, 요한계시록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한 교수님 — 사실 그 당시 교수로 봉직하셨던 분은 아니었죠. 이미 세상을 떠난 분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분이 쓴 요한계시록에 대한 책이 제 상상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요한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첫 번째 위대한 시가 바로 그 안에 있었던 거예요.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이미지와 상징,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것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그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 그때 제가 있던 곳은 뉴욕시였는데요 — 말하자면 바빌론(Babylon) 같은 곳이었죠. 그곳에서 저는 교실 밖의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혼, 자살, 가출한 아이들… 저는 제가 강의를 하는 화요일과 목요일을 빼고는 매주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어요.
조금 전에 말씀하신 시에 대해서 — 당신은 작가일 뿐만 아니라 번역가이기도 하잖아요. 『메시지(The Message)』라는 성경 번역본은 보노(Bono, 영국의 락밴드 U2의 리드보컬 — 역자 주)처럼 당신을 인터뷰했던 사람들부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저희 프로듀서 릴리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릴리의 아버지는 콜롬비아 출신의 목사님이셨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신도들과 『메시지(The Message)』를 사용하셨다고 하네요.
네, 릴리가 저에게 얘기해줬어요.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성경 본문의 시적 표현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접했던 많은 번역에서는 그 시적 요소가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텍스트가 페이지에 배열된 방식조차도요. 당신이 이 주제에 대해 쓰신 글을 읽으면 언어의 중요성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죠. 그런데 그런 맥락이 없다면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맞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 머무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모든 예언자는 시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르면 우리는 모든 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다가 결국 엉망으로 만들어버리죠.
예언자들을 읽거나 그들에 대한 상상력을 가질 때, 21세기 사람들에게 그들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그들이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어떤 차이를 만드나요?
그것은 은유(metaphor)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유는 무언가를 형성(formation)하기 위한 정말 탁월한 형식인데, 누군가 말하는 그대로의 의미와 말해주지 않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거든요. 이 두 가지가 한데 모이면 살아움직이는 상상력을 우리 안에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단순히 사태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사건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쓰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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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목사이자 문학적 소양을 지닌 신학저술가였던 고(故) 유진 피터슨의 성경 번역본 『메시지(The Message)』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의 잘 알려진 구절을 그가 어떻게 번역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요한복음 1:14 /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한글 번역: 킹제임스흠정역)
“그 말씀이 살과 피가 되어 우리가 사는 곳에 오셨다. 우리는 그 영광을 두 눈으로 보았다. 단 하나뿐인 그 영광은 아버지 같고, 아들 같아서 안팎으로 두루 충만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참된 영광이었다(The Word became flesh and blood, and moved into the neighborhood. We saw the glory with our own eyes, the one-of-a-kind glory, like Father, like Son, Generous inside and out, true from start to finish.).”
요한복음 1:14 / 메시지 성경(The Message, 한글 번역: 한글 메시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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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시에 대해 쓴 글 중 하나를 읽어드릴게요. 정말 멋진 문장입니다.
“시인은 우리가 너무 많은 방황으로 흐릿해진 눈과 너무 많은 수다로 둔해진 귀로 인해 놓치는 것들 — 우리 주변과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시인은 단어들을 사용해 우리를 현실의 깊이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
“시는 급소에서 우리를 움켜잡는다. 그것은 화장품 같은 언어가 아니라 내장에 가까운 언어이다.” [웃음]
[웃음] 제가 그런 말을 썼나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이 주제를 좀 더 파고드는 이유는, 지금 이 시대에도 '예언자'라는 개념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 당신이 예언자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 특별히 말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그들의 언어가 지닌 독특성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우리의 기존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흔들어 깨운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건 저에게도 중요한 일이었고, 누구에게나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강렬한 울림을 주는 시인 몇 명을 찾아내고, 그들의 작품을 암기하고, 그들의 언어가 지닌 역동(dynamics)을 듣는 법을 배우는 거죠. 단순히 단어를 보는 것이 아니라요. 저에게는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 그리고 메리 올리버(Mary Oliver)가 그런 시인들이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그들의 시를 암기했어요. 그러면 그들의 음악이 제 머릿속에 들어오고, 저는 읽는지도 모르는 채 시를 읽고 있게 됩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는 데도 도움이 되죠. 제가 『메시지』를 저술했을 때, 제가 시무하고 있던 교회 신자들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전에 없던 방식으로 제 말을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 사실 저는 그것을 시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끊었을 테니까요. 저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교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당신이 이 대목을 지울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미국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죠. 언어를 경시하는 것 말이죠.
사실, 지금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들 중 많은 부분이 언어를 너무나도 부주의하게 사용한 결과의 극단적인 버전처럼 보이는데요…
맞아요, 정말 그렇습니다.
전반적으로 말이죠. 그런데 당신이 쓴 이런 문장이 있어요. 어디서 나온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사용하는 단어들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신중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단어를 사용하지만, 나중에는 단어가 우리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 말은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당신의 성경적 관점에서 비롯된 통찰이지만, 동시에 세속적인 현실에도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언어의 힘, 그리고 우리가 언어를 충분히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을 때 그 힘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세요.
언어의 힘이 잘 사용될 경우, 그것은 여러 층위로 작용합니다. 대부분의 단어들은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어느 단어를 그저 신문에서 쓰이는 수준으로만 축소한다면, 인간의 삶에서 상당 부분을 놓치는 겁니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시인이 우리를 도와줍니다. 시인은 우리가 이전에 들을 수 없었던 것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훈련시킵니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에요. 아이들은 언어를 발견하고,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죠. 유치원에 다니기 전의 아이들은 언어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단어를 배우고 익혀가는 과정을 지켜볼 때, 언어의 힘이 정말 분명히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습니다. 정말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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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Answering God", On Being with Krista Tipett을 편집한 것입니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