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niel Nielsen 사진 / Unsplash, ©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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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종교학자이자 종교비평가이다.
17살이 되던 해, 그녀는 성스러움에 대한 열망으로 가톨릭에 귀의해 수녀가 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규율과 순종과 엄숙함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7년 뒤 무신론자가 되어 환속한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지만, 학자의 길에서 낙마하고 또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지만 지병인 간질로 인해 사직하는 등 시련의 시간을 거친다. 이때까지의 경험을 펴낸 첫 자서전인 '좁은 문 사이로'가 반향을 얻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BBC의 한 종교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종교비평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녀는 방송을 위해 들렀던 팔레스타인에서 이슬람을 접하게 되면서 종교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벗어던지게 되었고, 세계 종교들의 서로 다른 교리와 믿음 속에 공통으로 자비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자신의 깨달음을 다양한 저술과 강연, 방송 등을 통해 나누면서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2008년에는 그간 종교적 자유를 위해 활동한 업적을 인정받아 프랭클린 루즈벨트 자유메달과 TED상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신의 역사', '이슬람', '마음의 진보', '신을 위한 변명', '성서' 등이 있다.
크리스타 티펫: 저는 크리스타 티펫입니다. 카렌 암스트롱은 종교에 대해 가장 도발적이고 독창적이며 포괄적인 현대의 사상가입니다. 하지만 한때 그녀는 기독교 신앙을 논파하려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기독교를 발견했고, 다른 종교들에서도 기쁨을 찾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암스트롱과 함께 종교적 성인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암스트롱: 이분들이 그저 앉아서 교리나 읊는다고 생각한다면,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신학을 논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신학적 관념에서도 밀턴이나 단테의 위대한 시를 읽을 때와 같은 울림을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티펫: 암스트롱의 새 베스트셀러 '신을 위한 변론(The Case for God)'이 나왔습니다. 저는 사상 이면의 인간으로서의 암스트롱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여기까지 이끌었고, 환멸에 빠진 젊은 수녀가 어떻게 독보적인 사상가로 어떻게 진화했는지 말입니다. 오늘 주제는 "암스트롱의 프리랜서 유일신론"입니다. 암스트롱은 자신을 아마추어 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녀는 '아마추어'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이 "자신의 주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항상 이런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기독교 외의 종교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그녀에 따르면, 젊은 여성으로서 수녀원에서 보낸 7년은 종교에 대해 사유하는 능력을 앗아갔습니다.
암스트롱: 제가 수녀원에 있던 시절에는 종교에 관한 지적 담론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신은 듣고 계시고, 존재하시고, 어떻게든 세상을 만드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 자신을 드러냈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사유와 탐구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순명이 핵심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당대의 종교 단체와 마찬가지로 상급자에게 복종해야 했으며, 그들을 신처럼 생각해야 했습니다. 자신만의 생각을 따르거나 능동적으로 사유하거나, 의심을 표현하는 것은 금기였습니다.
티펫: 당신의 글을 읽으면 비극적인 느낌마저 듭니다. 당신은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렸고, 명백히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그 종교 생활의 틀이 (당신에게는) 방해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암스트롱: 그럴 수도 있었죠. 저는 또한 제도에 잘 적응한 몇몇 수녀님들을 만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분들은 현명하고, 자비롭고, 연민이 많았으며, 심지어 유머러스했습니다. 그분들은 성숙하고 온전한 인간이었으며, 거룩한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란 사실 또한 알았습니다. 저는 슬프게도 여기저기 한눈 파는, 그저 흔한 유형의 수녀가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런 중대한 선택(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하기에는 정말 너무 어렸다고 생각합니다. 수녀원에 들어갔을 때 겨우 17살, 그러니까 완전 애였죠. 내 열망은 막연했고, 변화를 희망했습니다. 신이 제 삶에 깊이 들어와 제가 거룩하고 현명하며 평온한, 일종의 부처, 어쩌면 성인이 될 것이며 이 모든 것은 꽤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희망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죠.
티펫: 그리고 당신이 수녀원을 떠날 때쯤에는 마치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은 환속을 영적인 혼란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혼란을 수반하는 일종의 ‘망명으로’ 묘사했잖아요.
암스트롱: 저는 방향 감각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수녀가 되는 것은 교사나 방송인, 의사가 되기 위해 훈련하는 것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교사나 방송인, 의사는 기술을 배우지만, 그 기술이 자아와 삶을 흔들지는 않죠. (반면) 수녀가 되는 훈련은 평생 지속되도록 고안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수녀원을 떠났을 때, 저는 이런 구조 없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어요. 제 삶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변했다고 느꼈지만, 저는 여전히 같았습니다. 저는 그저 세속적인 옷을 입은 수녀에 불과했고, 수녀가 되기 위해 엄격하게 훈련했듯이 속인이 되기 위해 훈련해야 했습니다.
티펫: 그리고 그런 말조차도 환속이 필연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즉, 종교 단체를 떠나 속인이 되었을 때, 당신은 '완전한 속인'이 되었고 이제 영적인 차원은 당신의 삶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잖아요?
암스트롱: 글쎄요, 그뿐만이 아니었죠. 저는 영적인 면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티펫: 그렇게 느끼셨군요.
암스트롱: 수녀원에 있을 때 저는 기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녀에게는 영락없는 실패였죠. 저는 매일 아침 6시에 명상에 들어갔고 한 시간 동안 명상을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2분 이상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내면은 산만하기 그지없었고, 또 아니면 지루함이나 무기력함, 졸음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도할 수 없었고, 신은 완전히 멀리 떨어져 있고 닿을 수 없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하늘은 닫혀 있었어요.’ 제가 환속한 이후에도 가톨릭 교회에 머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신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분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죠.
티펫: 당신의 이야기에는 지성이 있어요. 당신은 ‘마음이 산만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지성에서 일종의 구원을 찾지 않았나요? 재능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요.
암스트롱: 글쎄요, 수녀원에서는 지성을 딱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바느질하고 청소하는데 보냈죠. 저는 그런 집안일을 지금까지도 혐오합니다. 하지만 옥스퍼드에 갔을 때, 다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순수한 기쁨이었어요. 종교에 입문하기 전에는 문학과 시를 사랑했습니다. 시를 읽으면 온몸으로 뛰어올라 시를 맞이하는 것 같았어요. 내면에서 울림을 느끼고, 나 자신을 초월하여 완전히 몰입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저는 지성을 발휘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신선한 아이디어, 독창적인 반응, 혹은 시에 대한 나만의 감상을 갖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으니까요.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누가 말해주지 않는 한 말이죠. 왜냐하면 수년 동안 저는 저만의 생각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억눌렀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 기도의 효능에 대한 의심, 시스템에 대한 의심 등 모든 것을 억눌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뇌를 손상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신경학적으로는 아니지만요.
티펫: 꽤 오랫동안 겪었죠?
암스트롱: 꽤 오랜 시간이었고,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2~3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 순간은 강사가 T.S. 엘리엇의 시 "재의 수요일"을 낭독했을 때 찾아왔어요. 우리 세대 옥스퍼드의 위대한 교수였던 헬렌 가드너 여사가 그 시를 멋지게 읽고 설명하고 해설하기 시작하자마자, 저는 그 시가 저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고, (잃어버렸던) 감상을 느꼈어요.
티펫: 재의 수요일"의 일부를 낭독해보죠.
“나는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사람의 재능과 저 사람의 능력을 갈망하며 더 이상은 그런 것들을 위해 애쓰지 않는다. (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펼쳐야 하는가?) 나는 왜 슬퍼해야 하는가. 사라진 평범한 통치의 힘을? 나는 다시 알기를 바라지 않는다. 긍정적인 시간의 허약한 영광을.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알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유일하고 진정한 일시적인 힘을.
나는 마실 수 없다. 나무가 꽃피고 샘물이 흐르는 그곳에서. 이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언제나 오직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소는 언제나 오직 장소일 뿐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리고 실제적인 것은 오직 한 번만 실제적임을. 그리고 오직 한 장소에서만 실제적임을 안다. 나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임을 기뻐하며, 복된 얼굴을 포기하고 목소리를 포기한다. 나는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뻐한다. 기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이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암스트롱: 그 시의 핵심은 엘리엇이 "나는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나는 기뻐한다. 기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제 제 행복과 삶을 스스로 구축해야 했고, 마치 엔지니어가 비행기나 복잡한 기술 장치를 조립하듯이 조심스럽게 기쁨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이것은 제 과업이었고, 또한 외부에서 오는 구원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정말로 좋아졌어요.
티펫: 이 시점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전혀 종교적인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고, 신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했죠?
암스트롱: 네. 런던으로 이사했을 때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다시는 교회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요. 종교에 관한 모든 일에 지쳐버렸습니다. 연을 끊고 싶었어요. 저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말했습니다. 분노가 아닌 탈진이었죠.
티펫: 그런데 직업적인 이유로 종교와 다시 마주하기 시작했을 때, 당신은 TV 프로그램에 나갔죠? 사실, 종교를 ‘폭로’하려는 목적으로 하지 않았나요?
암스트롱: 네. 맞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요?'라고 물어요. 글쎄요, 일련의 완전한 사회적 실패 때문이죠. 손대는 모든 것들에서 수년 동안 저는 실패를 맛봤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해 영문학 교수가 될 수 없었어요, 간질 진단을 받은 후에도 건강이 너무 악화되서 학교 교사라는 직업도 잃었습니다. 그때 새로운 TV 채널이 개국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종교 담당 편집자는 종교를 혐오하는 열정적인 무신론자였고, 다른 모든 주제와 마찬가지로 종교를 비중있게 다루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티펫: 그것은 종교를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었죠.
암스트롱: 종교를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었죠. 저는 일종의 종교론을 위한 ‘무기’였습니다. 그는 또한 "예수: 증거(Jesus: The Evidence)"라는 논쟁적인 시리즈를 의뢰했는데, 이 시리즈는 사실 시작 부분에서 실물 크기의 예수상을 폭파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냉소를 넘어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종교가 저지른 해악을 봐야 한다고 느꼈고, 저는 그들에게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첫 번째 사도 바울 시리즈를 들은 후 사람들이 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이제 교회를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글쎄, 도대체 어떻게?'라고 생각했습니다.
티펫: 하지만 당신은 또한 바울이라는 인물에게 매우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했죠…
암스트롱: 네.
티펫: …그리고 당신 자신이 거기서 발견한 것에 놀라지 않았나요? 교회에서 여성이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을 포함해서요…
암스트롱: 여성들, 그리고 또한, 그(바울)가 예수의 사랑의 교리를 왜곡하여 모든 것을 지적이고 신비적이며 교리적이고 가혹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역사적 증거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예컨대 바울 서신들은 바울이 쓰지 않았습니다.
티펫: 맞아요, 그리고 어떤 것들은 텍스트를 실제로 읽어보면 (바울이 썼다고) 말조차 하지 않죠. 재밌지 않아요?
암스트롱: 정확합니다. 그저 사도 바울과 어떤 식으로든 엉켜 있는 거죠. 여성 차별적인 말들 중 일부는 사도 바울이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등주의자였습니다. 제가 했던 프로그램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저는 그가 서 있었던 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와 매우 가까워졌죠.
티펫: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죠.
암스트롱: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저는 – 수녀원에서는 "여성스러운" 신학을 조금 배웠지만, 진정 도전적인 부분은 빼 먹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의 창시자였고, 예수에게서 영감을 받았으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예수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면서도, 특히 연민과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포함한 풍부한 유대교 전통을 가져왔다는 이 모든 사실은 저에게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실제로 쓴 서신들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 넘쳐요. 물론 산을 움직일 만한 신앙을 가지고, 또 순교자가 되어 몸을 불태울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오늘날 우리에게는 '끔찍한' 종류의 울림이지만 ), 동시에 자비가 없다면 아무 가치도 없다고 말한 것도 바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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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Freelance Monotheist", On Being with Krista Tipett을 편집한 것입니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Daniel Nielsen 사진 / Unsplash, ©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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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종교학자이자 종교비평가이다.
17살이 되던 해, 그녀는 성스러움에 대한 열망으로 가톨릭에 귀의해 수녀가 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규율과 순종과 엄숙함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7년 뒤 무신론자가 되어 환속한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지만, 학자의 길에서 낙마하고 또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지만 지병인 간질로 인해 사직하는 등 시련의 시간을 거친다. 이때까지의 경험을 펴낸 첫 자서전인 '좁은 문 사이로'가 반향을 얻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BBC의 한 종교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종교비평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녀는 방송을 위해 들렀던 팔레스타인에서 이슬람을 접하게 되면서 종교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벗어던지게 되었고, 세계 종교들의 서로 다른 교리와 믿음 속에 공통으로 자비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자신의 깨달음을 다양한 저술과 강연, 방송 등을 통해 나누면서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2008년에는 그간 종교적 자유를 위해 활동한 업적을 인정받아 프랭클린 루즈벨트 자유메달과 TED상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신의 역사', '이슬람', '마음의 진보', '신을 위한 변명', '성서' 등이 있다.
크리스타 티펫: 저는 크리스타 티펫입니다. 카렌 암스트롱은 종교에 대해 가장 도발적이고 독창적이며 포괄적인 현대의 사상가입니다. 하지만 한때 그녀는 기독교 신앙을 논파하려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기독교를 발견했고, 다른 종교들에서도 기쁨을 찾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암스트롱과 함께 종교적 성인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암스트롱: 이분들이 그저 앉아서 교리나 읊는다고 생각한다면,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신학을 논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신학적 관념에서도 밀턴이나 단테의 위대한 시를 읽을 때와 같은 울림을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티펫: 암스트롱의 새 베스트셀러 '신을 위한 변론(The Case for God)'이 나왔습니다. 저는 사상 이면의 인간으로서의 암스트롱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여기까지 이끌었고, 환멸에 빠진 젊은 수녀가 어떻게 독보적인 사상가로 어떻게 진화했는지 말입니다. 오늘 주제는 "암스트롱의 프리랜서 유일신론"입니다. 암스트롱은 자신을 아마추어 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녀는 '아마추어'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이 "자신의 주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항상 이런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기독교 외의 종교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그녀에 따르면, 젊은 여성으로서 수녀원에서 보낸 7년은 종교에 대해 사유하는 능력을 앗아갔습니다.
암스트롱: 제가 수녀원에 있던 시절에는 종교에 관한 지적 담론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신은 듣고 계시고, 존재하시고, 어떻게든 세상을 만드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 자신을 드러냈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사유와 탐구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순명이 핵심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당대의 종교 단체와 마찬가지로 상급자에게 복종해야 했으며, 그들을 신처럼 생각해야 했습니다. 자신만의 생각을 따르거나 능동적으로 사유하거나, 의심을 표현하는 것은 금기였습니다.
티펫: 당신의 글을 읽으면 비극적인 느낌마저 듭니다. 당신은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렸고, 명백히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그 종교 생활의 틀이 (당신에게는) 방해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암스트롱: 그럴 수도 있었죠. 저는 또한 제도에 잘 적응한 몇몇 수녀님들을 만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분들은 현명하고, 자비롭고, 연민이 많았으며, 심지어 유머러스했습니다. 그분들은 성숙하고 온전한 인간이었으며, 거룩한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란 사실 또한 알았습니다. 저는 슬프게도 여기저기 한눈 파는, 그저 흔한 유형의 수녀가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런 중대한 선택(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하기에는 정말 너무 어렸다고 생각합니다. 수녀원에 들어갔을 때 겨우 17살, 그러니까 완전 애였죠. 내 열망은 막연했고, 변화를 희망했습니다. 신이 제 삶에 깊이 들어와 제가 거룩하고 현명하며 평온한, 일종의 부처, 어쩌면 성인이 될 것이며 이 모든 것은 꽤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희망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죠.
티펫: 그리고 당신이 수녀원을 떠날 때쯤에는 마치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은 환속을 영적인 혼란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혼란을 수반하는 일종의 ‘망명으로’ 묘사했잖아요.
암스트롱: 저는 방향 감각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수녀가 되는 것은 교사나 방송인, 의사가 되기 위해 훈련하는 것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교사나 방송인, 의사는 기술을 배우지만, 그 기술이 자아와 삶을 흔들지는 않죠. (반면) 수녀가 되는 훈련은 평생 지속되도록 고안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수녀원을 떠났을 때, 저는 이런 구조 없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어요. 제 삶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변했다고 느꼈지만, 저는 여전히 같았습니다. 저는 그저 세속적인 옷을 입은 수녀에 불과했고, 수녀가 되기 위해 엄격하게 훈련했듯이 속인이 되기 위해 훈련해야 했습니다.
티펫: 그리고 그런 말조차도 환속이 필연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즉, 종교 단체를 떠나 속인이 되었을 때, 당신은 '완전한 속인'이 되었고 이제 영적인 차원은 당신의 삶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잖아요?
암스트롱: 글쎄요, 그뿐만이 아니었죠. 저는 영적인 면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티펫: 그렇게 느끼셨군요.
암스트롱: 수녀원에 있을 때 저는 기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녀에게는 영락없는 실패였죠. 저는 매일 아침 6시에 명상에 들어갔고 한 시간 동안 명상을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2분 이상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내면은 산만하기 그지없었고, 또 아니면 지루함이나 무기력함, 졸음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도할 수 없었고, 신은 완전히 멀리 떨어져 있고 닿을 수 없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하늘은 닫혀 있었어요.’ 제가 환속한 이후에도 가톨릭 교회에 머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신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분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죠.
티펫: 당신의 이야기에는 지성이 있어요. 당신은 ‘마음이 산만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지성에서 일종의 구원을 찾지 않았나요? 재능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요.
암스트롱: 글쎄요, 수녀원에서는 지성을 딱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바느질하고 청소하는데 보냈죠. 저는 그런 집안일을 지금까지도 혐오합니다. 하지만 옥스퍼드에 갔을 때, 다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순수한 기쁨이었어요. 종교에 입문하기 전에는 문학과 시를 사랑했습니다. 시를 읽으면 온몸으로 뛰어올라 시를 맞이하는 것 같았어요. 내면에서 울림을 느끼고, 나 자신을 초월하여 완전히 몰입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저는 지성을 발휘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신선한 아이디어, 독창적인 반응, 혹은 시에 대한 나만의 감상을 갖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으니까요.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누가 말해주지 않는 한 말이죠. 왜냐하면 수년 동안 저는 저만의 생각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억눌렀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 기도의 효능에 대한 의심, 시스템에 대한 의심 등 모든 것을 억눌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뇌를 손상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신경학적으로는 아니지만요.
티펫: 꽤 오랫동안 겪었죠?
암스트롱: 꽤 오랜 시간이었고,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2~3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 순간은 강사가 T.S. 엘리엇의 시 "재의 수요일"을 낭독했을 때 찾아왔어요. 우리 세대 옥스퍼드의 위대한 교수였던 헬렌 가드너 여사가 그 시를 멋지게 읽고 설명하고 해설하기 시작하자마자, 저는 그 시가 저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고, (잃어버렸던) 감상을 느꼈어요.
티펫: 재의 수요일"의 일부를 낭독해보죠.
“나는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사람의 재능과 저 사람의 능력을 갈망하며 더 이상은 그런 것들을 위해 애쓰지 않는다. (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펼쳐야 하는가?) 나는 왜 슬퍼해야 하는가. 사라진 평범한 통치의 힘을? 나는 다시 알기를 바라지 않는다. 긍정적인 시간의 허약한 영광을.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알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유일하고 진정한 일시적인 힘을.
나는 마실 수 없다. 나무가 꽃피고 샘물이 흐르는 그곳에서. 이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언제나 오직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소는 언제나 오직 장소일 뿐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리고 실제적인 것은 오직 한 번만 실제적임을. 그리고 오직 한 장소에서만 실제적임을 안다. 나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임을 기뻐하며, 복된 얼굴을 포기하고 목소리를 포기한다. 나는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뻐한다. 기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이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암스트롱: 그 시의 핵심은 엘리엇이 "나는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나는 기뻐한다. 기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제 제 행복과 삶을 스스로 구축해야 했고, 마치 엔지니어가 비행기나 복잡한 기술 장치를 조립하듯이 조심스럽게 기쁨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이것은 제 과업이었고, 또한 외부에서 오는 구원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정말로 좋아졌어요.
티펫: 이 시점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전혀 종교적인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고, 신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했죠?
암스트롱: 네. 런던으로 이사했을 때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다시는 교회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요. 종교에 관한 모든 일에 지쳐버렸습니다. 연을 끊고 싶었어요. 저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말했습니다. 분노가 아닌 탈진이었죠.
티펫: 그런데 직업적인 이유로 종교와 다시 마주하기 시작했을 때, 당신은 TV 프로그램에 나갔죠? 사실, 종교를 ‘폭로’하려는 목적으로 하지 않았나요?
암스트롱: 네. 맞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요?'라고 물어요. 글쎄요, 일련의 완전한 사회적 실패 때문이죠. 손대는 모든 것들에서 수년 동안 저는 실패를 맛봤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해 영문학 교수가 될 수 없었어요, 간질 진단을 받은 후에도 건강이 너무 악화되서 학교 교사라는 직업도 잃었습니다. 그때 새로운 TV 채널이 개국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종교 담당 편집자는 종교를 혐오하는 열정적인 무신론자였고, 다른 모든 주제와 마찬가지로 종교를 비중있게 다루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티펫: 그것은 종교를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었죠.
암스트롱: 종교를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었죠. 저는 일종의 종교론을 위한 ‘무기’였습니다. 그는 또한 "예수: 증거(Jesus: The Evidence)"라는 논쟁적인 시리즈를 의뢰했는데, 이 시리즈는 사실 시작 부분에서 실물 크기의 예수상을 폭파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냉소를 넘어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종교가 저지른 해악을 봐야 한다고 느꼈고, 저는 그들에게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첫 번째 사도 바울 시리즈를 들은 후 사람들이 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이제 교회를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글쎄, 도대체 어떻게?'라고 생각했습니다.
티펫: 하지만 당신은 또한 바울이라는 인물에게 매우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했죠…
암스트롱: 네.
티펫: …그리고 당신 자신이 거기서 발견한 것에 놀라지 않았나요? 교회에서 여성이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을 포함해서요…
암스트롱: 여성들, 그리고 또한, 그(바울)가 예수의 사랑의 교리를 왜곡하여 모든 것을 지적이고 신비적이며 교리적이고 가혹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역사적 증거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예컨대 바울 서신들은 바울이 쓰지 않았습니다.
티펫: 맞아요, 그리고 어떤 것들은 텍스트를 실제로 읽어보면 (바울이 썼다고) 말조차 하지 않죠. 재밌지 않아요?
암스트롱: 정확합니다. 그저 사도 바울과 어떤 식으로든 엉켜 있는 거죠. 여성 차별적인 말들 중 일부는 사도 바울이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등주의자였습니다. 제가 했던 프로그램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저는 그가 서 있었던 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와 매우 가까워졌죠.
티펫: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죠.
암스트롱: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저는 – 수녀원에서는 "여성스러운" 신학을 조금 배웠지만, 진정 도전적인 부분은 빼 먹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의 창시자였고, 예수에게서 영감을 받았으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예수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면서도, 특히 연민과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포함한 풍부한 유대교 전통을 가져왔다는 이 모든 사실은 저에게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실제로 쓴 서신들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 넘쳐요. 물론 산을 움직일 만한 신앙을 가지고, 또 순교자가 되어 몸을 불태울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오늘날 우리에게는 '끔찍한' 종류의 울림이지만 ), 동시에 자비가 없다면 아무 가치도 없다고 말한 것도 바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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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Freelance Monotheist", On Being with Krista Tipett을 편집한 것입니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