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niel Nielsen 사진 / Unsplash, © All Rights Reserved.
* * *
티펫: 오늘 우리는 종교학자 암스트롱과 신에 대한 사유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기독교 종교를 처음 접한 것은 1980년대 이스라엘에서 만난 유대교였습니다.
암스트롱: 이스라엘 영화 제작진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우습게도 돈이 없었어요. 전체 6부작을 10만 달러로 만들었죠. 하지만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매우 여기서 처음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접했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도 있죠.
저는 이제껏 제가 ‘전적으로’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유대교를 그저 기독교의 전신, 그것도 나중에 폐기된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는 끔찍한 진실도 알게 됐죠.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본 적 없고요. 하지만 예루살렘처럼 종교 전통들이 다소간 복잡하게 뒤엉켜있는 성지들을 가게 되면, 그 종교들 사이의 깊은 연결고리를 깨닫게 됩니다.
티펫: 당신은 스스로를 훈련받지 않은, 혹은 독학한 신학자라고 말하죠. 하지만 이 종교들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갔을 때,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죠…
암스트롱: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어요.
티펫: …그리고 당신은 그것에 대해 매우 솔직했죠.
암스트롱: 음..보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현장에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약간의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마추어’이고,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는 전문 용어를 알지 못했고, 또 그것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놀라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제가 나중에 몇 년 동안 강의하게 된 대학에서 유대인 학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종교는 믿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혁명적인 시각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는 저에게 예수의 동시대인이었던 힐렐 랍비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이방인들이 힐렐에게 한 발로 서서 토라 전체를 암송할 수 있다면 유대교로 개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힐렐은 한 발로 서서 말했답니다.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 그것이 토라이다. 나머지는 주석이다. 가서 배워라."
저는 이야기를 듣고 "좋은 얘기긴 한데, 그럼 유대인들은 무엇을 믿어야 했나요?"라고 반문했어요. 그러자 그분은 ”당신은 누가봐도 기독교인이군요“라고 답하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유대인들은 무엇을 믿는지를 중시하지 않는다. 종교는 행동하는 것이다. 힐렐이 말했듯이, 당신을 변화시키는 자비로운 방식으로 사는 것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후에 제가 이 모든 것을 더 깊이 탐구할수록, 그 얘기는 유대교에도, 이슬람교에도 해당되는 얘기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슬람교가 실천하는 것은 동의가 필요한 일련의 믿음이 아니라, 라마단 기간 동안 금식하고, 순례를 가며, 하루에 여러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의 지향을 확고히 하고, 기도할 때 몸을 엎드려 겸손과 순종을 익혀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우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죠.
이러한 실천들은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당신의 내면을 변화시키도록 고안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는 제게 대단히 혁명적인 것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녀원에서 제가 받았던 훈련과 다소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하루 동안의 모든 실천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가능성으로 여겨졌습니다.
티펫: 맞아요.
암스트롱: 그리고 복음서를 보면, 사실 우리가 후대에 알게 되는 교리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은 원죄나 삼위일체, 혹은 자신이 성육신한 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설교하며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그는 경멸받는 사람, 반역자, 불신자, 죄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 모두가 환영받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티펫: 맞아요. 그리고 당신이 지적했듯이 예수님은 유대인이었죠. 많은 영국인들은 모르지만요.
암스트롱: 복음서의 구절들을 초기 랍비들의 탈무드 구절들과 나란히 두고 보면, 예수님이 유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는 힐렐의 황금률을 자신만의 버전으로 가르쳤습니다. "너 자신에게 대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대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예수의 많은 말씀들은 동시대의 위대한 랍비들의 말씀이나 탈무드에서 발견되는 말씀들과 통합니다.
티펫: 당신은 세 유일신 종교 전통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암스트롱: 제가 다른 종교 프로그램도 진행한 것도 관련 있었죠. 저는 종교인들을 인터뷰해야 했고, 저는 그들이 무엇을 믿고 행하고 생각하는지, 수피즘이 무엇인지, 이슬람이 무엇인지, 불교가 무엇인지 빠르게 알아내야 했습니다. 일종의 ‘속성 과정’을 거쳐야 했죠. 그것은 예컨대 유대교나 이슬람교처럼 엄청나게 풍부하고 거대하고 복잡하며 영감을 주는 신비주의 전통,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탐구였습니다. 그 전통들은 서구 기독교와는 매우 다르며, 훨씬 더 신비적이고 실제로는 불교와 같은 종교에 더 가깝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종교에는 제가 수녀원 시절에는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공감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다른 종교 전통들의 맥락에서 볼 때,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 사이의 심오한 유사성을 볼 때, 저의 가톨릭 전통이 힘써 지향하고자 했던 바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서로 고립되고 또 종종 서로에게 치명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그리고 무슬림은 수 세기 동안 신과 영성, 기도, 윤리에 대해 계속해서 동일한 질문을 던져왔고, 또 놀랍도록 유사한 해결책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절대자와 마주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끄는지에 대해 말해줍니다.
티펫: 많은 서구 독자들이 최근 몇 년간 이슬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책을 찾았습니다. 암스트롱 본인은 이스라엘에서 우연히 이슬람을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암스트롱: 저는 정말이지 무지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죠. 그런데 유대인들이 '성전 산(Temple Mount)'이라고 부르고 무슬림들은 '가장 고귀한 성소(Haram al-Sharif)'라고 부르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바위 돔(Dome of the Rock)'을 보게 되었는데, 거대한 황금 돔 안에 큰 바위가 있었죠. 이 바위 위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희생했다고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브라함이 위대한 예언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모세, 예수, 아담도 모두 이슬람에서 위대한 예언자로 추앙받는다는 것을 설명해 주더군요. 무슬림이면서 예수와 모세, 아브라함이 가르친 진리를 부정할 수는 없으며, 이슬람 정신은 이러한 다른 전통에 대한 존중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수피즘에서 신비가가 황홀경에 빠져 자신은 더 이상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아니라고 외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당이든, 모스크든, 사원이든, 교회든 어디에나 똑같이 편안함을 느끼죠. 신성함을 느끼면 인간이 만든 구별은 덜 중요해집니다. 제겐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다른 전통을 기껏해야 '오류'로 보는 대신, 긍정적이고 풍요롭게 보는 시각은 제가 다른 전통들을 깊이 파고들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신적 자양분을 흡수하게 해주었습니다.
티펫: 그러고 나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어떤 파키스탄 학자가 당신의 책을 '러브 스토리'라고 했다면서요?
암스트롱: 네. 그러면서 제가 무함마드를 알았더라면 그의 15번째 아내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을 거라 말하더군요. 실제로 그랬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티펫: 조금 더 말씀해 주세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어떤 점을 사랑하게 되셨나요?
암스트롱: 그가 극도로 ‘인간적’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주요 종교의 창시자보다도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보다 훨씬 후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더 많은 문서 기록이 남아있죠. 그리고 그의 초기 전기 작가들은 진정으로 ‘역사’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2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와는 다르지만, 분명히 그의 장점과 단점까지 모두 보여줘요. 그를 미화하려는 시도가 없죠.
때로는 아내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축복’인 존재만은 아니었죠. 사람들은 종종 무함마드가 멋진 하렘을 가지고 관능적인 쾌락의 정원에서 방탕하게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내들은 종종 골칫거리였고 정치적인 이유로 맞이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폭력적이고 절망적이며 잔인한 사회에서 살았지만, 힘으로써가 아닌, 실제로 그 세상에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5~6년 동안 그와 무슬림들은 메카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메카 사람들이 무슬림 공동체를 전멸시키려 했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죠. 하지만 그는 폭력을 피하고 2년 동안 비폭력 캠페인을 실천함으로써 승리했습니다. 이는 간디나 다른 영감을 주는 평화로운 통치자들이 실천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약한 면도 엿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웃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거의 없죠. 반면 무함마드가 손자 하산과 후세인과 놀아주거나 어깨에 태우고 뛰어다니는 모습, 친구의 죽음에 울고, 딸들을 위로하며, 꾸란의 아름다운 말씀을 읊조리며 말 그대로 애쓰고 땀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꾸란을 번역하면 그 맛을 잃지만, 아랍어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티펫: 네. 무슬림들은 그 아름다움에 영적인 수준에서 반응하죠.
암스트롱: 정말 그렇습니다. 꾸란은 ‘들리는’ 것입니다. '꾸란(Qur'an)'이라는 단어 자체가 '암송(recitation)'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조용히 앉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듣는 것이죠. 무함마드는 위대한 예언자였을 뿐만 아니라 시인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게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와 가깝다고 느꼈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티펫: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기 외에도 암스트롱은 『붓다의 삶(A Life of Buddha)』도 쓰셨습니다. 그녀의 학문적 방법론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적인 엄밀함과, 위대한 종교적 인물 및 그들의 전통에 대한 공감을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대해요.
암스트롱: 저는 일찍이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슬람을 다룬 3권으로 된 학술적이고 훌륭한 책을 읽다가, 종교 역사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매우 건조하고 학문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각주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는 "공감의 과학(the science of compassion)"이라고 불리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과학(science)'은 '지식(scientia)'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즉, 공감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인 셈이죠. 그리고 공감은 물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공-감(Com-passion)', 즉 '함께 느끼는 것(com-pathein)'을 의미합니다.
그 각주에서 저자는 종교적 사상이나 신학, 혹은 무함마드와 같은 인물에 대해 논할 때. 계몽주의 이후 등장한 서구 합리주의라는 ‘우월한’ 관점에서 이러한 사상들을 성급하게 일축하지 말고, 무엇이 그 근원에 놓여 있었는지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합리주의적인 시각을 벗어던지고 이러한 신비가, 현자, 시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끊임없이 '왜? 왜?'라고 물으며 학술적인 지식으로 배경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스스로 그들과 같다고 또는 유사하다고 느끼거나 그들과 같이 믿을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리고 지적인 관념이 인격적인 차원에서 공명을 일으킬 때까지 말입니다.
티펫: 당신이 이러한 사상들과 그것을 탐구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가진 열정은 종교적 인물들의 열정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암스트롱: 저는 그들이 단순히 앉아서 교리 항목을 읊조리는 존재라고 상상한다면 그들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학은 시처럼, 꾸란처럼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티펫: 정말 멋진 생각이네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래요?
암스트롱: 저는 신학이 곧 시라고 생각합니다. 제 유대인 친구 차임 마카비가 오래전에 힐렐의 황금률을 인용하며 제게 말해주었죠. "네가 무엇을 믿든 상관없어. 신학은 시야."라고요.
시인은 자신의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서서히 단어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를 불러내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시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죠. 그리고 우리는 시에 감동합니다. 저는 우리가 신학을 쓸 때도 마치 그러한 시를 쓰는 것처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정통적인 공식이나 신에 대한 정통적인 정의, 혹은 교리문답의 답을 읊조리는 대신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신학적인 아관념을 들을 때, 밀턴이나 단테의 위대한 시를 읽을 때처럼 감동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 의례는 마치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처럼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극은 원래 우리를 초월로 이끌기 위해 고안된 종교 의례였습니다. 단순히 다양한 의식과 의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대신, 절대적으로 아름답고 영감을 주는 무언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종교를 일종의 예술 형식으로 보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스 정교회 신학자 중 하나인 4세기의 위대한 신비가,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yssa)에 관한 멋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와 그의 형제, 친구는 동방 정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이 교리는 의례적 맥락과 기도, 그리고 묵상의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합리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방정식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는 "내가 셋을 생각할 때, 나는 하나를 생각한다. 내가 하나를 생각할 때, 나는 셋을 생각한다. 그러면 내 눈은 눈물로 가득 차고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모든 감각을 잃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삼위일체를 신학적으로 정립하려는 시도는 이래야 합니다. 그러나 종종 그렇지 않죠. 불투명하고 다소간 영혼이 없습니다. 신학은 좀 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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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Freelance Monotheist", On Being with Krista Tipett을 편집한 것입니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Daniel Nielsen 사진 / Unsplash, ©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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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펫: 오늘 우리는 종교학자 암스트롱과 신에 대한 사유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기독교 종교를 처음 접한 것은 1980년대 이스라엘에서 만난 유대교였습니다.
암스트롱: 이스라엘 영화 제작진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우습게도 돈이 없었어요. 전체 6부작을 10만 달러로 만들었죠. 하지만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매우 여기서 처음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접했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도 있죠.
저는 이제껏 제가 ‘전적으로’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유대교를 그저 기독교의 전신, 그것도 나중에 폐기된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는 끔찍한 진실도 알게 됐죠.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본 적 없고요. 하지만 예루살렘처럼 종교 전통들이 다소간 복잡하게 뒤엉켜있는 성지들을 가게 되면, 그 종교들 사이의 깊은 연결고리를 깨닫게 됩니다.
티펫: 당신은 스스로를 훈련받지 않은, 혹은 독학한 신학자라고 말하죠. 하지만 이 종교들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갔을 때,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죠…
암스트롱: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어요.
티펫: …그리고 당신은 그것에 대해 매우 솔직했죠.
암스트롱: 음..보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현장에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약간의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마추어’이고,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는 전문 용어를 알지 못했고, 또 그것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놀라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제가 나중에 몇 년 동안 강의하게 된 대학에서 유대인 학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종교는 믿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혁명적인 시각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는 저에게 예수의 동시대인이었던 힐렐 랍비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이방인들이 힐렐에게 한 발로 서서 토라 전체를 암송할 수 있다면 유대교로 개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힐렐은 한 발로 서서 말했답니다.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 그것이 토라이다. 나머지는 주석이다. 가서 배워라."
저는 이야기를 듣고 "좋은 얘기긴 한데, 그럼 유대인들은 무엇을 믿어야 했나요?"라고 반문했어요. 그러자 그분은 ”당신은 누가봐도 기독교인이군요“라고 답하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유대인들은 무엇을 믿는지를 중시하지 않는다. 종교는 행동하는 것이다. 힐렐이 말했듯이, 당신을 변화시키는 자비로운 방식으로 사는 것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후에 제가 이 모든 것을 더 깊이 탐구할수록, 그 얘기는 유대교에도, 이슬람교에도 해당되는 얘기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슬람교가 실천하는 것은 동의가 필요한 일련의 믿음이 아니라, 라마단 기간 동안 금식하고, 순례를 가며, 하루에 여러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의 지향을 확고히 하고, 기도할 때 몸을 엎드려 겸손과 순종을 익혀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우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죠.
이러한 실천들은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당신의 내면을 변화시키도록 고안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는 제게 대단히 혁명적인 것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녀원에서 제가 받았던 훈련과 다소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하루 동안의 모든 실천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가능성으로 여겨졌습니다.
티펫: 맞아요.
암스트롱: 그리고 복음서를 보면, 사실 우리가 후대에 알게 되는 교리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은 원죄나 삼위일체, 혹은 자신이 성육신한 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설교하며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그는 경멸받는 사람, 반역자, 불신자, 죄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 모두가 환영받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티펫: 맞아요. 그리고 당신이 지적했듯이 예수님은 유대인이었죠. 많은 영국인들은 모르지만요.
암스트롱: 복음서의 구절들을 초기 랍비들의 탈무드 구절들과 나란히 두고 보면, 예수님이 유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는 힐렐의 황금률을 자신만의 버전으로 가르쳤습니다. "너 자신에게 대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대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예수의 많은 말씀들은 동시대의 위대한 랍비들의 말씀이나 탈무드에서 발견되는 말씀들과 통합니다.
티펫: 당신은 세 유일신 종교 전통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암스트롱: 제가 다른 종교 프로그램도 진행한 것도 관련 있었죠. 저는 종교인들을 인터뷰해야 했고, 저는 그들이 무엇을 믿고 행하고 생각하는지, 수피즘이 무엇인지, 이슬람이 무엇인지, 불교가 무엇인지 빠르게 알아내야 했습니다. 일종의 ‘속성 과정’을 거쳐야 했죠. 그것은 예컨대 유대교나 이슬람교처럼 엄청나게 풍부하고 거대하고 복잡하며 영감을 주는 신비주의 전통,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탐구였습니다. 그 전통들은 서구 기독교와는 매우 다르며, 훨씬 더 신비적이고 실제로는 불교와 같은 종교에 더 가깝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종교에는 제가 수녀원 시절에는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공감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다른 종교 전통들의 맥락에서 볼 때,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 사이의 심오한 유사성을 볼 때, 저의 가톨릭 전통이 힘써 지향하고자 했던 바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서로 고립되고 또 종종 서로에게 치명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그리고 무슬림은 수 세기 동안 신과 영성, 기도, 윤리에 대해 계속해서 동일한 질문을 던져왔고, 또 놀랍도록 유사한 해결책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절대자와 마주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끄는지에 대해 말해줍니다.
티펫: 많은 서구 독자들이 최근 몇 년간 이슬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책을 찾았습니다. 암스트롱 본인은 이스라엘에서 우연히 이슬람을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암스트롱: 저는 정말이지 무지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죠. 그런데 유대인들이 '성전 산(Temple Mount)'이라고 부르고 무슬림들은 '가장 고귀한 성소(Haram al-Sharif)'라고 부르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바위 돔(Dome of the Rock)'을 보게 되었는데, 거대한 황금 돔 안에 큰 바위가 있었죠. 이 바위 위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희생했다고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브라함이 위대한 예언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모세, 예수, 아담도 모두 이슬람에서 위대한 예언자로 추앙받는다는 것을 설명해 주더군요. 무슬림이면서 예수와 모세, 아브라함이 가르친 진리를 부정할 수는 없으며, 이슬람 정신은 이러한 다른 전통에 대한 존중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수피즘에서 신비가가 황홀경에 빠져 자신은 더 이상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아니라고 외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당이든, 모스크든, 사원이든, 교회든 어디에나 똑같이 편안함을 느끼죠. 신성함을 느끼면 인간이 만든 구별은 덜 중요해집니다. 제겐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다른 전통을 기껏해야 '오류'로 보는 대신, 긍정적이고 풍요롭게 보는 시각은 제가 다른 전통들을 깊이 파고들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신적 자양분을 흡수하게 해주었습니다.
티펫: 그러고 나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어떤 파키스탄 학자가 당신의 책을 '러브 스토리'라고 했다면서요?
암스트롱: 네. 그러면서 제가 무함마드를 알았더라면 그의 15번째 아내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을 거라 말하더군요. 실제로 그랬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티펫: 조금 더 말씀해 주세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어떤 점을 사랑하게 되셨나요?
암스트롱: 그가 극도로 ‘인간적’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주요 종교의 창시자보다도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보다 훨씬 후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더 많은 문서 기록이 남아있죠. 그리고 그의 초기 전기 작가들은 진정으로 ‘역사’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2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와는 다르지만, 분명히 그의 장점과 단점까지 모두 보여줘요. 그를 미화하려는 시도가 없죠.
때로는 아내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축복’인 존재만은 아니었죠. 사람들은 종종 무함마드가 멋진 하렘을 가지고 관능적인 쾌락의 정원에서 방탕하게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내들은 종종 골칫거리였고 정치적인 이유로 맞이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폭력적이고 절망적이며 잔인한 사회에서 살았지만, 힘으로써가 아닌, 실제로 그 세상에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5~6년 동안 그와 무슬림들은 메카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메카 사람들이 무슬림 공동체를 전멸시키려 했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죠. 하지만 그는 폭력을 피하고 2년 동안 비폭력 캠페인을 실천함으로써 승리했습니다. 이는 간디나 다른 영감을 주는 평화로운 통치자들이 실천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약한 면도 엿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웃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거의 없죠. 반면 무함마드가 손자 하산과 후세인과 놀아주거나 어깨에 태우고 뛰어다니는 모습, 친구의 죽음에 울고, 딸들을 위로하며, 꾸란의 아름다운 말씀을 읊조리며 말 그대로 애쓰고 땀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꾸란을 번역하면 그 맛을 잃지만, 아랍어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티펫: 네. 무슬림들은 그 아름다움에 영적인 수준에서 반응하죠.
암스트롱: 정말 그렇습니다. 꾸란은 ‘들리는’ 것입니다. '꾸란(Qur'an)'이라는 단어 자체가 '암송(recitation)'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조용히 앉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듣는 것이죠. 무함마드는 위대한 예언자였을 뿐만 아니라 시인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게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와 가깝다고 느꼈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티펫: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기 외에도 암스트롱은 『붓다의 삶(A Life of Buddha)』도 쓰셨습니다. 그녀의 학문적 방법론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적인 엄밀함과, 위대한 종교적 인물 및 그들의 전통에 대한 공감을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대해요.
암스트롱: 저는 일찍이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슬람을 다룬 3권으로 된 학술적이고 훌륭한 책을 읽다가, 종교 역사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매우 건조하고 학문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각주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는 "공감의 과학(the science of compassion)"이라고 불리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과학(science)'은 '지식(scientia)'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즉, 공감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인 셈이죠. 그리고 공감은 물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공-감(Com-passion)', 즉 '함께 느끼는 것(com-pathein)'을 의미합니다.
그 각주에서 저자는 종교적 사상이나 신학, 혹은 무함마드와 같은 인물에 대해 논할 때. 계몽주의 이후 등장한 서구 합리주의라는 ‘우월한’ 관점에서 이러한 사상들을 성급하게 일축하지 말고, 무엇이 그 근원에 놓여 있었는지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합리주의적인 시각을 벗어던지고 이러한 신비가, 현자, 시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끊임없이 '왜? 왜?'라고 물으며 학술적인 지식으로 배경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스스로 그들과 같다고 또는 유사하다고 느끼거나 그들과 같이 믿을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리고 지적인 관념이 인격적인 차원에서 공명을 일으킬 때까지 말입니다.
티펫: 당신이 이러한 사상들과 그것을 탐구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가진 열정은 종교적 인물들의 열정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암스트롱: 저는 그들이 단순히 앉아서 교리 항목을 읊조리는 존재라고 상상한다면 그들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학은 시처럼, 꾸란처럼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티펫: 정말 멋진 생각이네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래요?
암스트롱: 저는 신학이 곧 시라고 생각합니다. 제 유대인 친구 차임 마카비가 오래전에 힐렐의 황금률을 인용하며 제게 말해주었죠. "네가 무엇을 믿든 상관없어. 신학은 시야."라고요.
시인은 자신의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서서히 단어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를 불러내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시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죠. 그리고 우리는 시에 감동합니다. 저는 우리가 신학을 쓸 때도 마치 그러한 시를 쓰는 것처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정통적인 공식이나 신에 대한 정통적인 정의, 혹은 교리문답의 답을 읊조리는 대신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신학적인 아관념을 들을 때, 밀턴이나 단테의 위대한 시를 읽을 때처럼 감동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 의례는 마치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처럼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극은 원래 우리를 초월로 이끌기 위해 고안된 종교 의례였습니다. 단순히 다양한 의식과 의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대신, 절대적으로 아름답고 영감을 주는 무언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종교를 일종의 예술 형식으로 보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스 정교회 신학자 중 하나인 4세기의 위대한 신비가,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yssa)에 관한 멋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와 그의 형제, 친구는 동방 정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이 교리는 의례적 맥락과 기도, 그리고 묵상의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합리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방정식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는 "내가 셋을 생각할 때, 나는 하나를 생각한다. 내가 하나를 생각할 때, 나는 셋을 생각한다. 그러면 내 눈은 눈물로 가득 차고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모든 감각을 잃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삼위일체를 신학적으로 정립하려는 시도는 이래야 합니다. 그러나 종종 그렇지 않죠. 불투명하고 다소간 영혼이 없습니다. 신학은 좀 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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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Freelance Monotheist", On Being with Krista Tipett을 편집한 것입니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