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을 만나다 : "프리랜서 유일신론자"가 되기까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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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Nielsen  사진 / Unsplash, ©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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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펫: 요즈음, 특히 9.11 이후, 사람들이 '종교들의 공통분모는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종종 공통의 관념이나 교리에서 그것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종교를 연구하며 당신은 결국 ‘공감’이라는 일종의 리트머스지를 찾아냈죠. 즉, 관념보단 행동이라는 얘기죠.

암스트롱: 네. 종교는 일종의 ‘윤리적 연금술’과 같습니다. 당신이 자비로운 방식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당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이죠. 왜냐고요? 모든 위대한 스승들은 우리를 신성한 지식, 즉 하느님, 열반, 브라만, 성스러움으로 불리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기심, 탐욕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종종 자아를 보존하기 위해, 또는 단순히 깎아내리기 위해 타인을 파괴하죠. 공감이 하는 일은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에서 끌어내리고 타인을 그곳에 두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스승들 모두가 성스러움의 현현으로 이끌고, 신성함을 깨닫게 해준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조를 믿거나 이상한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요.

붓다는 자비를 실천하면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마지막 날, 병들고 헐벗고 굶주리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돌본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신성의 현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바른 신학이나 올바른 성 윤리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요. 공감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공감이 단순히 좋은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결론을 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가장 창조적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심지어 종교를 이용해서 자아를 강화하려 할 때 가장 무익하고 위험해집니다.

최근 저의 연구에서 발견한 것 중 하나는 인류를 계속해서 풍요롭게 하는 주요 종교 전통들이 모두 극도로 폭력적인 사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지금 우리 시대처럼 폭력으로 가득 차 있고 사회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던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폭력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고, 폭력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찾으려 했습니다.

 

티펫: 뿌리에서부터요?

암스트롱: 뿌리에서부터요. 주로 이기심, 두려움, 탐욕, 증오가 그 핵심에 놓여 있다는 것을 찾고자 했습니다. 증오는 자의식의 한 형태입니다. 종교 전통들은 깊고 심원하여 폭력을 피할 수 있는 정도까지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입문하지만, 솔직히 자신의 자아를 잃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꽤 만족하기 때문이죠.

 

티펫: 사람으로선 참 어려운 일이죠.

암스트롱: 아주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죠. 그리고 이러한 종교들이 모두 폭력적인 시대에 활동했기 때문에, 주변 세계의 폭력이 때로는 경전 속으로 스며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도 그렇습니다. 한 페이지에서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몇 페이지 뒤에는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의 모든 거주민을 전멸시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공격하지 말며,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펼치면 예수가 군대를 이끌고 대단한 기세로 하느님의 적들을 전투에서 파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꾸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함마드가 장군으로서 '너희는 열심히 싸워야 한다. 적을 발견하는 곳마다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떤 장군이든 그래야 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결국은 용서가 더 나은 선택입니다. 따라서 적이 평화를 추구한다면 즉시 무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를 둘러보면 많은 분쟁에서 종교가 이 분쟁들을 촉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이 만연해져 종교가 그 폭력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은 양측 모두에서 세속적인 갈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시오니즘은 원래 종교적인 유대주의에 대항한 세속적인 운동, 세속적인 혁명이었고,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본질적으로 세속적인 해방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아직 세속적일 때 (따라서 실용적인 해결책이 가능할 때)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쟁이 곪아 터져 신성시되어 문제가 절대적인 것이 되기 전에 말이죠.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을 우리의 두려움, 혐오, 증오를 지지하는 데 끔찍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9.11과 같은 끔찍한 일, 수세기 전 십자군 전쟁과 같은 잔혹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이 인간의 호불호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더 크고 더 나은 버전’의 우리 자신 같은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실재라는 것을 깨닫는 데 있어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티펫: 당신이 종교 전통에서 발견된다고 말하는 이 공감이라는 핵심 미덕이, 우리 시대에는 특히 흥미로운 방식으로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근본주의적인 사람들, 그러니까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사용하고 종교를 그 목적에 이용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종교가 남용되고 강탈당했다고 느끼는 나머지 사람들 사이의 충돌 때문이죠. 자신의 종교를 남용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의 미덕을 적용하기란 어렵습니다. 종교가 이런 식으로 분열되는 매우 현실적인 역동 속에서, 이 공감의 미덕이 어떻게 작용한다고 보시나요?

암스트롱: 저는 우리 모두, 즉 조금씩이라도 종교적인 면이 있는 우리 모두가 개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도자나 예언자가 나타나 경전을 살펴보고, 너무나 많은 곳에 뿌리내린 편협함이나 무지, 불안으로부터 종교의 미덕들을 되찾기를, 그리고 그 핵심에 있는 공감의 가치를 선포하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티펫: 당신이 예전에 저와 함께 패널로 나갔을 때 말했던 단순한 일화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주 단순한 이야기였는데, 저는 계속해서 생각납니다. 당신은 다른 토론의 일부였고, 한 근본주의 기독교인이 격렬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묘사했죠. 기억하시나요?

암스트롱: 네. 오리건 주립대학교에서 "God 2000"이라는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정말 멋진 컨퍼런스였습니다. 유대인 랍비, 무슬림 학자로부터 강연을 들었고, 우리 모두는 신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지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정말 훌륭했죠. 사람들은 기도와 영성의 본질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하고, 아주 아주 종교적인 아이디어들을 경청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전통만이 올바른 답이나 진리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매우 다원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패널에 있을 때, 갑자기 한 근본주의자가 홀에서 격렬하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유대인과 무슬림이 예수를 부정했으므로 지옥에 갈 것이고, 유대인과 무슬림 편을 드는 우리 모두도 지옥에 갈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분노와 절망에 찬 나머지 너무나 두서없이 말해서 많은 것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고통의 기색이 가득한 그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미치광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통받고 있으며, 우리의 대담으로 인해 깊은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완전히 말문이 막혔습니다.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그랬는데, 사실 당시 근본주의에 대한 저술을 막 마친 때였기에 더 잘 알았어야 했죠. 하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자는 밖으로 쫓겨났고, 사회자는 “그 남자 역시 컨퍼런스의 일부이고, '2000년에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이 대화의 일부이다. 얘기를 더 나눴으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남자는 두서없이 말했고,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쓸모없어지고 말았죠.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티펫: 말과 대화의 한계에 대해서도 말해주는 사례 같네요.

암스트롱: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 고통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속에서 고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근본주의 교리를 볼 때, 그 뿌리에 어떤 고통과 두려움이 놓여 있는지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웠듯이, 종종 매우 서투르고 해로운 방식으로 그들은 어떤 사회나 정부도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경청하는 법을 배우는 데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늦었을 수도 있습니다.

 

티펫: 다시 공감이라는 미덕으로 돌아가는군요.

암스트롱: 네. 그것은 '함께 느끼는 것(to feel with)'을 의미합니다. 그저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만약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나도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티펫: 당신의 회고록을 끝까지 읽었지만,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실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신은 스스로를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암스트롱: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작업, 저의 연구를 기도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책에서 그것을 묘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침묵과, 그리고 선입견에서 벗어나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공감의 과학(science of compassion)이라는 규율 모두를 말이에요. 이것은 당신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일을 사랑합니다. 연구하는 동안 때때로 경외감과 경이로움, 그리고 초월에 대한 암시를 받곤 합니다. 그리고 제 유대인 동료들 중 일부는 그것이 유대인들이 토라와 탈무드를 연구하고 성스러운 텍스트에 몰입할 때 정확히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네, 저는 종교적인 사람이고 여전히 탐구 중입니다. 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디에 다다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종교 전통으로부터 큰 양분을 얻고, 그것들을 흡수하는 법을 배우고, 저의 개인적인 연구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어두는 것을 저의 길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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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Freelance Monotheist", On Being with Krista Tipett을 편집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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