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틴 쉰은 배우이자 가톨릭 운동가이다. 황무지(Badlands), 아포칼립스(Apocalypse Now), 더 웨이 (The Way)를 포함한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으며, 텔레비전 시리즈인 웨스트 윙 (The West Wing)과 가장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인 그레이스 앤 프랭키 (Grace and Frankie)에도 출연했다. 아들 에밀리오와 함께 회고록 그 길을 따라: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 (Along the Way: The Journey of a Father and Son)을 공동 집필했다.
* * *
마틴 쉰: 가장 위대한 신비는 가장 단순한 것입니다. 매일 우리가 마주하는 것들이죠. 한 번은 여행 중에 아주 외딴곳에서 고해성사를 하러 갔다가 신부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어요. 갑자기 그분이 “음, 우리는 신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나요?” 하고 웃으시는 거예요.
크리스타 티펫: 맞아요.
마틴 쉰: 그와 같은 사실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신을 규정하려 할 때마다, 우리는 그분이 분명히 무엇이 아닌지 알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신의 천재성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우리의 얄팍함, 우리의 어둠, 우리의 인간성 속에 말이죠.
크리스타 티펫: 마틴 쉰은 '지옥의 묵시록'을 포함해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TV에서는 '웨스트 윙'에서 7시즌 동안 맡은 바틀렛 대통령 역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죠. 하지만 그는 사회 운동가로서 또 다른, 그러면서도 덜 알려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종, 전쟁, 핵무기와 관련된 시위와 집회에서 60번 넘게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깊으면서도 기쁨에 찬 신앙심에 이끌려 쉰은 행동하며, 또 이 신앙은 중년에 명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위기와 재각성을 겪으면서 그의 정체성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마틴 쉰과의 대화는 지혜와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마틴 쉰은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아일랜드인 어머니와 스페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11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그와 9명의 형제자매를 혼자 키웠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본인의 법적 이름, 즉 태어날 때의 이름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직접 듣고 싶네요.
마틴 쉰: 아, 네. 제 이름은 라몬 에스테베즈입니다. 마틴 쉰으로 알려져있고요.
크리스타 티펫: 좋아요. 흥미로운 점 한 가지는, 특히 '웨스트 윙'에서 바틀렛 대통령 역을 맡았을 때 기자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진보적인 정치관에 대해 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은 당신의 진보적인 정치관의 근간이 되는 종교적인 기반에 주목하기도 했죠. 저는 당신이 매우 통합된 사람, 즉 통합된 경험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보기에는 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마틴 쉰과 라몬 에스테베즈요. 저는 그 모두, 혹은 당신의 모든 면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틴 쉰: 알겠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는 그게 당신의 정체성이라고 보이지만, 이 면모가 항상 드러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보여요. 사실상 이 자리에는 세 명이 있네요.
마틴 쉰: 네, 좋은 설명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가끔 분열된 인격으로 살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크리스타 티펫: 그걸 통합해 보죠. 저는 인터뷰를 시작할 때 항상 이 질문을 하는데, 당신의 어린 시절의 종교적, 영적 배경을 어떻게 설명하시려는 지가 궁금합니다. 지금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마틴 쉰: 그건 정말로 제 남은 인생의 토대였습니다. 저는 이민자 출신의 아주 가난한 대가족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스페인계-아일랜드계 1세대였죠. 그건 정말로 제 남은 인생의 초점을 결정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공동체에는 '남을 먼저 섬김으로써 자신을 가장 잘 섬기게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남은 인생에서 꽤 좋은 지침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공동체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잘 살고 있다면, 즉, 정직한 삶을 살고 있다면 당신은 공동체의 일부가 되죠. 그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공동체에서 멀어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들락날락했죠. 하지만 소년 시절, 제 삶의 기본은 가족, 교회, 그리고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통합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었죠. 제 선생님들은 혈육만큼이나 제 가족과 같았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당신의 삶의 궤적과 성인이 된 이후 사회적, 영적인 양심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 아주 전형적인 사례로 보여요. 즉 고난이 있었지만, 그 고난이 종종 어떻게 선물이 되는지, 그리고 무엇을 받았느냐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루느냐가 중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로요. 당신은 언젠가 골프 캐디를 하며 사회적 양심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마틴 쉰: 아주 확실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모든 식구가 일해야 했으니, 그 일은 당신이 해야 했던 일이었겠죠.
마틴 쉰: 네, 그랬습니다. 저는 1949년에 개인 컨트리클럽에서 캐디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네, 그 시절은 정말 모든 것들이 형성되는 시기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내내, 적어도 매 여름,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골프장에서 수많은 특권층들을 위해 캐디를 했습니다. 주로 남자들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왜냐하면 그들이 제가 어떤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지를 크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인이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거의 보지 못했고, 한 명의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저는 마치 골프장 나무 위에 앉은 파리 같거나, 말하자면 벌이나 매한가지였죠.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몇몇 예외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특권을 누렸고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영감을 주지 못했어요.
크리스타 티펫: 당신이 어릴 때부터 일종의 영화적인 습관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또, 삶에서 모종의 육체노동을 할 것이라는 징조가 있었지만, 출생 시에 겸자 손상(forceps injury : 겸자는 출생 시 사용하는 의료도구이며 겸자 손상은 이 기구로 인한 부상을 말한다 – 옮긴이 주) 을 입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사실도요.
마틴 쉰: 네, 맞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당신의 영화 경력 역시 당신이 걷게 될 길이었을까요?
마틴 쉰: 흥미롭네요. 그렇게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저 역시 알고 있었고, 모든 아이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 자신에 대한 무언가, 아주 깊고 개인적인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에게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저에게도 이런 것이 있었고, 저는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제가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되었을 때였을 거예요. 그리고 점차 제가 영화 스크린에서 보는 그 사람들 중 하나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계시였고, 어린 저에게 큰 평화를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게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제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 사실, 제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제가 이미 그것이었다는 것이었죠.
크리스타 티펫: 배우가 되는 일이죠.
마틴 쉰: 그냥 그걸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마치 "아, 저게 나구나. 좋네." 이런 느낌이었죠. 저는 저 깊은 곳에 있지만,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는 없는 이 문제로 걱정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저 제가 그것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죠.
크리스타 티펫: 그리고 나서, 많은 사람들처럼 당신도 집을 떠나 직업을 구하면서 덜 종교적이 되거나, 조금은 덜 노골적인 종교인이 되었을 겁니다. 맞나요?
마틴 쉰: 네, 아주 많이요.
크리스타 티펫: 제 말은 이게(종교) 당신의 열정이었다는 얘기죠.
마틴 쉰: 네, 물론이죠.
크리스타 티펫: 당신이 뉴욕에서 가톨릭 일꾼 운동(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톨릭 평신도 중심의 사회 운동으로, 1933년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 옮긴이 주)을 발견했다는 것이 흥미로웠지만, 그때 당신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이 운동을 접했다기보다는 배고픈 배우로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마틴 쉰: 맞아요, 저는 맨해튼 로어 브로드웨이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회사에서 창고 정리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몇 주 전에 해고당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쯤 뒤에 줄리안 벡(미국의 배우, 시인, 화가, 작가, 극작가, 무대 연출가, 연극 배우)과 주디스 말리나(독일 태생의 미국 배우, 감독, 작가 급진적인 정치 극단인 The Living Theatre를 공동 창립 – 옮긴이 주)가 운영하는 리빙 씨어터(The Living Theatre)에 고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진정 제 첫 번째 스승 중 두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 정의 운동과 정치적 급진주의에 매우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들은 최초의 '핵무기 반대 운동가'이자 '평화를 위한 여성 파업' 운동가들이었죠. 정말, 그들은 저에게 큰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저는 극장에서 커튼을 당기는 일과 일반 대역으로 시작했는데, 극장은 돈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일주일에 5달러를 받았습니다. 1959년이었죠. 하지만 저는 돈 값은 제대로 했어요. 어쨌든,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 돈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근처에 친구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가 있어. 거기로 가면 아무것도 낼 필요 없고, 그냥 줄 서서 기다리면 일주일에 5일 밤을 먹여줄 거야." 그곳은 가톨릭 일꾼 운동이었죠.
크리스타 티펫: 그들의 친구가 도로시 데이(미국의 가톨릭 평화주의자, 작가, 언론인, 생태운동가, 사회운동가. 가톨릭 일꾼 운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 옮긴이 주)였나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었나요?
마틴 쉰: 네, 그 친구는 도로시 데이였습니다. 그녀는 주디스 말리나(독일 태생의 미국 배우, 감독, 작가 급진적인 정치 극단인 The Living Theatre를 공동 창립 – 옮긴이 주)와 감옥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아주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사실, 각자 자서전에 서로에 대해 썼죠. 그들은 당시 핵무기 반대 시위로 함께 30일을 보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정말 흥미롭네요.
마틴 쉰: 그래서 저는 거기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동안 그곳에 갔죠.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도로시 데이를 만났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에게 말할 수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배고픔을 채우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이유로도 그곳에 가지 않았으니까요.
크리스타 티펫: (청취자들에게 설명하며) 그의 돌파구는 테렌스 맬릭의 '황무지(Badlands)'에서 나왔습니다. 이후 1977년 필리핀에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아포칼립스'에서 주연으로 촬영하는 동안, 건강 악화와 실존적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영화 '간디' 작업을 위해 인도로 여행하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당신의 영화와 연기들이 개인적으로 당신이 있는 삶의 자리와 일치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것의 일부인지 궁금합니다. 당신은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 같고, 또한 당신에게 그 삶의 경험에는 영화와 극적인 역할들이 포함되어 있었죠. 그리고 그것들은 당신을 자신 너머로, 혹은 더 큰 곳으로 이끌었죠.
마틴 쉰: 네, 저는 종종 '아포칼립스'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면 안 했을 거라고 말해왔어요.
크리스타 티펫: 정말요?
마틴 쉰: 하지만 그 경험을 겪고 나서는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저 자신에게로 이끌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육체적 질병에서 살아난 적이 있어지만, 영적인 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위태로웠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아포칼립스'와 '간디' 사이에는 약 4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내적 성찰과 알코올 중독, 불안정, 분노, 원한으로 가득했고 가족과 거의 파탄에 이르렀던 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모두가 찾는 그 잡기 힘든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거울에 비친 그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모든 부서짐과 무명(無明) 즉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오직 자신만이 아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1년 인도에 도착하여 '간디'의 이 역할을 맡았을 때 저는 바로 그것을 다룰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는 약 5~6주 동안만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 에밀리오가 저와 동행했습니다. 그것은 전환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정도로 매우 가까이에서 빈곤을 보았고, 그것은 제 존재의 중심에 다가와 저를 내 자신 밖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제 삶을 바꾸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맞아요. 내면의 여정과 내적 판단이 있었군요. 그리고 이것 또한 당신을 다시 바깥으로 이끌었고, 말하자면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것 같네요.
마틴 쉰: 네, 저는 말 그대로 요동친 채 인도에서 돌아왔습니다. 인도 철학, 힌두교, 비폭력에 관한 책들을 가져왔고, 그 기간 동안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파리로 가야 했습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저는 저의 멘토가 된 오래되고 매우 소중한 친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는 바로 파리에 숨어 살고 있던 테렌스 맬릭이었죠. 그는 아마 저와 같은 종류의 여정을 걷고 있었을 겁니다. 그는 저의 내적 고군분투를 보았고, 저에게 영적인 조언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리고 그가 당신에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주었나요?
마틴 쉰: 네, 그는 제가 길을 가는 동안 자료를 주며 "음, 마틴, 이것을 읽을 준비가 된 것 같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료들을 주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책을 주었어요. 그리고 제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저를 사로잡았죠. 저는 밤을 새웠습니다. 그것을 읽는 데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죠.
유럽의 노동절인 5월 1일에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 날은 우리의 노동절과 같은 큰 기념일이고, 저는 쉬는 날이었습니다. 전날 밤에 그 책을 다 읽었고, 저는 이제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선 내면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저는 그때 센 강 좌안에 살고 있었는데, 작은 가톨릭 교회로 걸어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프랑스 전체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교회였고, 오스카 와일드가 개종한 교회였습니다. 그것도 나중에 알았죠. 저는 "음, 제대로 찾아왔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톨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제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 만족감은 이 모든 세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허니문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크리스타 티펫: 아름답네요. 궁금한 게...
마틴 쉰: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건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는 성사를 원했습니다. 공동체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치 제가 현미경 아래에 있고, 신이 저를 지켜보며 제가 실수를 저지르기를 기다렸다가 "이제 걸렸어!"라고 말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능동적인 영성이 필요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지금 청취자들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전혀 읽어보지 않았거나, 20년 또는 30년 전에 대학에서 읽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세요. 위대한 소설이긴 하지만...
마틴 쉰: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다면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좀 더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까 그 소설은 신과 자유의지, 도덕성에 대한 당대의 거대한 논쟁들을 다루는 위대한 소설이지만, 그 책에서 당신을 움직인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마틴 쉰: 그것은 헌신에 관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당신이 진실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를 아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족에 관한 것입니다.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것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려놓고서, 다른 책을 집어든 채 곱씹어보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당신은 계속해서 그 책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그것은 도로시 데이도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습니다. (계속)
* * *
(이 대화는 "Martin Sheen ; Spirituality of Imagination", On Being with Krista Tipett을 편집한 것입니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마틴 쉰은 배우이자 가톨릭 운동가이다. 황무지(Badlands), 아포칼립스(Apocalypse Now), 더 웨이 (The Way)를 포함한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으며, 텔레비전 시리즈인 웨스트 윙 (The West Wing)과 가장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인 그레이스 앤 프랭키 (Grace and Frankie)에도 출연했다. 아들 에밀리오와 함께 회고록 그 길을 따라: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 (Along the Way: The Journey of a Father and Son)을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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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쉰: 가장 위대한 신비는 가장 단순한 것입니다. 매일 우리가 마주하는 것들이죠. 한 번은 여행 중에 아주 외딴곳에서 고해성사를 하러 갔다가 신부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어요. 갑자기 그분이 “음, 우리는 신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나요?” 하고 웃으시는 거예요.
크리스타 티펫: 맞아요.
마틴 쉰: 그와 같은 사실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신을 규정하려 할 때마다, 우리는 그분이 분명히 무엇이 아닌지 알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신의 천재성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우리의 얄팍함, 우리의 어둠, 우리의 인간성 속에 말이죠.
크리스타 티펫: 마틴 쉰은 '지옥의 묵시록'을 포함해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TV에서는 '웨스트 윙'에서 7시즌 동안 맡은 바틀렛 대통령 역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죠. 하지만 그는 사회 운동가로서 또 다른, 그러면서도 덜 알려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종, 전쟁, 핵무기와 관련된 시위와 집회에서 60번 넘게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깊으면서도 기쁨에 찬 신앙심에 이끌려 쉰은 행동하며, 또 이 신앙은 중년에 명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위기와 재각성을 겪으면서 그의 정체성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마틴 쉰과의 대화는 지혜와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마틴 쉰은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아일랜드인 어머니와 스페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11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그와 9명의 형제자매를 혼자 키웠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본인의 법적 이름, 즉 태어날 때의 이름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직접 듣고 싶네요.
마틴 쉰: 아, 네. 제 이름은 라몬 에스테베즈입니다. 마틴 쉰으로 알려져있고요.
크리스타 티펫: 좋아요. 흥미로운 점 한 가지는, 특히 '웨스트 윙'에서 바틀렛 대통령 역을 맡았을 때 기자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진보적인 정치관에 대해 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은 당신의 진보적인 정치관의 근간이 되는 종교적인 기반에 주목하기도 했죠. 저는 당신이 매우 통합된 사람, 즉 통합된 경험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보기에는 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마틴 쉰과 라몬 에스테베즈요. 저는 그 모두, 혹은 당신의 모든 면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틴 쉰: 알겠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는 그게 당신의 정체성이라고 보이지만, 이 면모가 항상 드러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보여요. 사실상 이 자리에는 세 명이 있네요.
마틴 쉰: 네, 좋은 설명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가끔 분열된 인격으로 살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크리스타 티펫: 그걸 통합해 보죠. 저는 인터뷰를 시작할 때 항상 이 질문을 하는데, 당신의 어린 시절의 종교적, 영적 배경을 어떻게 설명하시려는 지가 궁금합니다. 지금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마틴 쉰: 그건 정말로 제 남은 인생의 토대였습니다. 저는 이민자 출신의 아주 가난한 대가족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스페인계-아일랜드계 1세대였죠. 그건 정말로 제 남은 인생의 초점을 결정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공동체에는 '남을 먼저 섬김으로써 자신을 가장 잘 섬기게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남은 인생에서 꽤 좋은 지침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공동체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잘 살고 있다면, 즉, 정직한 삶을 살고 있다면 당신은 공동체의 일부가 되죠. 그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공동체에서 멀어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들락날락했죠. 하지만 소년 시절, 제 삶의 기본은 가족, 교회, 그리고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통합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었죠. 제 선생님들은 혈육만큼이나 제 가족과 같았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당신의 삶의 궤적과 성인이 된 이후 사회적, 영적인 양심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 아주 전형적인 사례로 보여요. 즉 고난이 있었지만, 그 고난이 종종 어떻게 선물이 되는지, 그리고 무엇을 받았느냐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루느냐가 중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로요. 당신은 언젠가 골프 캐디를 하며 사회적 양심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마틴 쉰: 아주 확실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모든 식구가 일해야 했으니, 그 일은 당신이 해야 했던 일이었겠죠.
마틴 쉰: 네, 그랬습니다. 저는 1949년에 개인 컨트리클럽에서 캐디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네, 그 시절은 정말 모든 것들이 형성되는 시기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내내, 적어도 매 여름,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골프장에서 수많은 특권층들을 위해 캐디를 했습니다. 주로 남자들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왜냐하면 그들이 제가 어떤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지를 크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인이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거의 보지 못했고, 한 명의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저는 마치 골프장 나무 위에 앉은 파리 같거나, 말하자면 벌이나 매한가지였죠.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몇몇 예외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특권을 누렸고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영감을 주지 못했어요.
크리스타 티펫: 당신이 어릴 때부터 일종의 영화적인 습관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또, 삶에서 모종의 육체노동을 할 것이라는 징조가 있었지만, 출생 시에 겸자 손상(forceps injury : 겸자는 출생 시 사용하는 의료도구이며 겸자 손상은 이 기구로 인한 부상을 말한다 – 옮긴이 주) 을 입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사실도요.
마틴 쉰: 네, 맞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당신의 영화 경력 역시 당신이 걷게 될 길이었을까요?
마틴 쉰: 흥미롭네요. 그렇게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저 역시 알고 있었고, 모든 아이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 자신에 대한 무언가, 아주 깊고 개인적인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에게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저에게도 이런 것이 있었고, 저는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제가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되었을 때였을 거예요. 그리고 점차 제가 영화 스크린에서 보는 그 사람들 중 하나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계시였고, 어린 저에게 큰 평화를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게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제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 사실, 제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제가 이미 그것이었다는 것이었죠.
크리스타 티펫: 배우가 되는 일이죠.
마틴 쉰: 그냥 그걸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마치 "아, 저게 나구나. 좋네." 이런 느낌이었죠. 저는 저 깊은 곳에 있지만,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는 없는 이 문제로 걱정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저 제가 그것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죠.
크리스타 티펫: 그리고 나서, 많은 사람들처럼 당신도 집을 떠나 직업을 구하면서 덜 종교적이 되거나, 조금은 덜 노골적인 종교인이 되었을 겁니다. 맞나요?
마틴 쉰: 네, 아주 많이요.
크리스타 티펫: 제 말은 이게(종교) 당신의 열정이었다는 얘기죠.
마틴 쉰: 네, 물론이죠.
크리스타 티펫: 당신이 뉴욕에서 가톨릭 일꾼 운동(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톨릭 평신도 중심의 사회 운동으로, 1933년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 옮긴이 주)을 발견했다는 것이 흥미로웠지만, 그때 당신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이 운동을 접했다기보다는 배고픈 배우로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마틴 쉰: 맞아요, 저는 맨해튼 로어 브로드웨이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회사에서 창고 정리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몇 주 전에 해고당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쯤 뒤에 줄리안 벡(미국의 배우, 시인, 화가, 작가, 극작가, 무대 연출가, 연극 배우)과 주디스 말리나(독일 태생의 미국 배우, 감독, 작가 급진적인 정치 극단인 The Living Theatre를 공동 창립 – 옮긴이 주)가 운영하는 리빙 씨어터(The Living Theatre)에 고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진정 제 첫 번째 스승 중 두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 정의 운동과 정치적 급진주의에 매우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들은 최초의 '핵무기 반대 운동가'이자 '평화를 위한 여성 파업' 운동가들이었죠. 정말, 그들은 저에게 큰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저는 극장에서 커튼을 당기는 일과 일반 대역으로 시작했는데, 극장은 돈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일주일에 5달러를 받았습니다. 1959년이었죠. 하지만 저는 돈 값은 제대로 했어요. 어쨌든,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 돈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근처에 친구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가 있어. 거기로 가면 아무것도 낼 필요 없고, 그냥 줄 서서 기다리면 일주일에 5일 밤을 먹여줄 거야." 그곳은 가톨릭 일꾼 운동이었죠.
크리스타 티펫: 그들의 친구가 도로시 데이(미국의 가톨릭 평화주의자, 작가, 언론인, 생태운동가, 사회운동가. 가톨릭 일꾼 운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 옮긴이 주)였나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었나요?
마틴 쉰: 네, 그 친구는 도로시 데이였습니다. 그녀는 주디스 말리나(독일 태생의 미국 배우, 감독, 작가 급진적인 정치 극단인 The Living Theatre를 공동 창립 – 옮긴이 주)와 감옥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아주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사실, 각자 자서전에 서로에 대해 썼죠. 그들은 당시 핵무기 반대 시위로 함께 30일을 보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정말 흥미롭네요.
마틴 쉰: 그래서 저는 거기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동안 그곳에 갔죠.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도로시 데이를 만났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에게 말할 수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배고픔을 채우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이유로도 그곳에 가지 않았으니까요.
크리스타 티펫: (청취자들에게 설명하며) 그의 돌파구는 테렌스 맬릭의 '황무지(Badlands)'에서 나왔습니다. 이후 1977년 필리핀에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아포칼립스'에서 주연으로 촬영하는 동안, 건강 악화와 실존적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영화 '간디' 작업을 위해 인도로 여행하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당신의 영화와 연기들이 개인적으로 당신이 있는 삶의 자리와 일치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것의 일부인지 궁금합니다. 당신은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 같고, 또한 당신에게 그 삶의 경험에는 영화와 극적인 역할들이 포함되어 있었죠. 그리고 그것들은 당신을 자신 너머로, 혹은 더 큰 곳으로 이끌었죠.
마틴 쉰: 네, 저는 종종 '아포칼립스'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면 안 했을 거라고 말해왔어요.
크리스타 티펫: 정말요?
마틴 쉰: 하지만 그 경험을 겪고 나서는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저 자신에게로 이끌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육체적 질병에서 살아난 적이 있어지만, 영적인 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위태로웠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아포칼립스'와 '간디' 사이에는 약 4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내적 성찰과 알코올 중독, 불안정, 분노, 원한으로 가득했고 가족과 거의 파탄에 이르렀던 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모두가 찾는 그 잡기 힘든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거울에 비친 그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모든 부서짐과 무명(無明) 즉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오직 자신만이 아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1년 인도에 도착하여 '간디'의 이 역할을 맡았을 때 저는 바로 그것을 다룰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는 약 5~6주 동안만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 에밀리오가 저와 동행했습니다. 그것은 전환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정도로 매우 가까이에서 빈곤을 보았고, 그것은 제 존재의 중심에 다가와 저를 내 자신 밖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제 삶을 바꾸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맞아요. 내면의 여정과 내적 판단이 있었군요. 그리고 이것 또한 당신을 다시 바깥으로 이끌었고, 말하자면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것 같네요.
마틴 쉰: 네, 저는 말 그대로 요동친 채 인도에서 돌아왔습니다. 인도 철학, 힌두교, 비폭력에 관한 책들을 가져왔고, 그 기간 동안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파리로 가야 했습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저는 저의 멘토가 된 오래되고 매우 소중한 친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는 바로 파리에 숨어 살고 있던 테렌스 맬릭이었죠. 그는 아마 저와 같은 종류의 여정을 걷고 있었을 겁니다. 그는 저의 내적 고군분투를 보았고, 저에게 영적인 조언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리고 그가 당신에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주었나요?
마틴 쉰: 네, 그는 제가 길을 가는 동안 자료를 주며 "음, 마틴, 이것을 읽을 준비가 된 것 같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료들을 주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책을 주었어요. 그리고 제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저를 사로잡았죠. 저는 밤을 새웠습니다. 그것을 읽는 데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죠.
유럽의 노동절인 5월 1일에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 날은 우리의 노동절과 같은 큰 기념일이고, 저는 쉬는 날이었습니다. 전날 밤에 그 책을 다 읽었고, 저는 이제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선 내면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저는 그때 센 강 좌안에 살고 있었는데, 작은 가톨릭 교회로 걸어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프랑스 전체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교회였고, 오스카 와일드가 개종한 교회였습니다. 그것도 나중에 알았죠. 저는 "음, 제대로 찾아왔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톨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제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 만족감은 이 모든 세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허니문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크리스타 티펫: 아름답네요. 궁금한 게...
마틴 쉰: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건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는 성사를 원했습니다. 공동체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치 제가 현미경 아래에 있고, 신이 저를 지켜보며 제가 실수를 저지르기를 기다렸다가 "이제 걸렸어!"라고 말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능동적인 영성이 필요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지금 청취자들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전혀 읽어보지 않았거나, 20년 또는 30년 전에 대학에서 읽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세요. 위대한 소설이긴 하지만...
마틴 쉰: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다면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좀 더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까 그 소설은 신과 자유의지, 도덕성에 대한 당대의 거대한 논쟁들을 다루는 위대한 소설이지만, 그 책에서 당신을 움직인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마틴 쉰: 그것은 헌신에 관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당신이 진실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를 아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족에 관한 것입니다.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것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려놓고서, 다른 책을 집어든 채 곱씹어보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당신은 계속해서 그 책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그것은 도로시 데이도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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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Martin Sheen ; Spirituality of Imagination", On Being with Krista Tipett을 편집한 것입니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