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토마스 무어: 제가 종교를 공부했을 때, 특히 고대 그리스에 관해 공부했는데, 그리스에서는 성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저 괜찮을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되며 옳은 일을 하려는 삶의 노력의 일부였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는데, 아마 제가 전통적인 죄의식을 가진 가톨릭 신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이 분은 토마스 무어입니다. 그는 1992년 그의 저서 "영혼의 돌봄(The Care of the Soul)"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영혼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인 "성의 영혼(The Soul of Sex)"에 대한 또 다른 책을 썼습니다. 토마스 무어는 젊은 시절 12년 동안 독신 가톨릭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금욕은 자신이 존중하는 삶의 선택이며, 심지어 독신자와 기혼자 모두를 위한 선택으로서 영적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결혼하여 자녀가 있으며, 심리치료사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영혼과 성 사이의 신비로운 연결고리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토마스 무어: 성(性)은 영혼에 매우 중요한 많은 것들을 포함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 몸과 감각, 쾌락, 친밀함, 심지어 우정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영혼에 가장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이생에서 자기만 잘나가려는 자아의 소유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꽤 지적인 삶을 살고, 이제는 기계와 컴퓨터로 가득 찬 삶을 살 수도 있지만, 성(性)은 여전히 영혼에 특히 중요한데, 영혼에 관한 기본적인 가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함께 갑니다. 성과 영혼은 매우 가깝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아, 그것은 정말 멋진 생각이지만, 특히 우리 문화에서 인간이 그렇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부분적으로는 종교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죠?
토마스 무어: 압니다. 잘 알죠.
크리스타 티펫: 그럼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고 당신은 사람들이 그 지점에 어떻게 도달하기를 바라는가요? 도덕성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말입니다.
토마스 무어: 제가 관심 있는 한 가지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성은 신성하지만 잘못된 것이라고 믿도록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성이 신성하다고 들었지만, 그 문구 뒤에는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것이 신이 만들었거나 신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여겨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신성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의미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책 "성의 영혼"에서 이렇게 합니다. 저는 성(性)이 신성하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이유로, 그것은 삶을 에로틱하게 만들 수 있을 때만 진정으로 작동합니다. 그렇게 해야 쾌락과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몸을 돌보고, 함께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아낍니다. 성(性)은 단지 육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도 단지 육체적인 것은 없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좋아요. 그럼 그것들은 모두 성스러운 속성들...
토마스 무어: 네, 맞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알겠습니다. ‘아름다움’과 ‘관계’죠.
토마스 무어: 맞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크리스타 티펫: 심지어 창조물의 일부로서 몸을 존중하는 것도요, 그렇죠?
토마스 무어: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더 큰 상상력입니다.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정한 영적 상상력이고, 그리고 성은 그 상상력 안에서 제자리를 찾습니다. 마치 전체에 위협이라도 되는 것인냥 그 바깥에 있지 않고 말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것을 위협으로 본다면, 당신은 모든 도덕적 억압과 규칙, 그리고 그로 인한 기대와 결과 등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자랐고, 이 모든 일에 대해 별 탈 없이 헤쳐 나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마 제가 온 관심을 쏟는 것이 그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큰 노력 없이도 사람들이 앉아서 '내가 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뭐가 잘못된 거지? 거기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는가? 내 영성을 내 성(性)과 분리해야 하는가? 이 둘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사람들은 성(性)에 대해 지나치게 정의롭게 행동하는 데서 느끼는 미덕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일부를 포기한다면, 당신 자신과 인간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더 깊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에게 더 관대해집니다. 여기엔 좋은 점만 있죠. 우리의 영성은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깨끗하고, 인간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기독교 영성이 전해져 내려온 방식이 그렇다는 말씀이신가요?
토마스 무어: 기독교뿐만이 아닙니다. 온갖 종류의 영성들이 그렇습니다. 일부 불교 영성과 힌두 영성, 그리고 온갖 종류의 영성들이 여기에 사로잡힙니다. 기독교만이 아닙니다. 영혼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너무 흥미를 느끼고 사로잡히면 지나치게 멀리 가버린 나머지, 육체적인 삶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적당히 즐기다가 돌연 몸이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문제 되는 것이 바로 그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당신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 종교인으로서 당신에게 지금 중요한 텍스트나 음악, 그리고 성경에 대해 궁금합니다. 성에 대해 신학적으로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찾으시나요?
토마스 무어: 글쎄, 당연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의 아가서일 것입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감각적이어서, 사람들이 때로는 그것이 사실 감각적인 것이 아니거나 순수한 은유라고 설명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과장된 해석입니다. 저는 제 책 중 한 권에서 만약 제가 교회를 가지고 또 사제라면, 아마 아가서를 벽에 글자로 새겨 놓아서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자신들의 감각과 영성을 화해시킬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낭독자: 솔로몬의 아가서는 노래합니다." 내게 키스해 주세요. 그대 입맞춤으로 나를 취하게 해주셔요. 그대 달콤한 사랑은 포도주보다 나으니, 그대는 향기롭군요. 그대는 몰약과 알로에. 모든 젊은 여인들이 그대를 원하지요. 내 손을 잡고 함께 달려요. 내 사랑, 나의 왕이 나를 그의 침실로 데려갔어요. 그대와 나, 우리는 웃으며 우리의 키스가 포도주보다 낫다고 생각할 겁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의 책에서 토마스 무어는 현재 심리치료사로서의 그의 일이 영혼과 인간 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의 종교적 감각을 어떻게 더욱 발전시켰는지 설명합니다.
토마스 무어: 음, 치료사로서 제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제게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어떤 종류든 성적인 문제, 즉 성적인 고민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문제가 제게 던져졌을 때, 제 일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심지어 그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결코 느끼지 않았습니다.
제 문제는 이 사람의 삶에서 어떤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저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종교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거나, 결혼하거나, 병에 걸리는 것과 같은 통과의례를 거칠 때, 그 의식들이 종종 성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식에는 성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뒤집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성적인 문제로 찾아온 사람들을 볼 때, 저는 그것을 통과의례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즉, 그들의 성욕이 갑자기 불타올라 문제가 되어버린, 그 어떤 일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이나 현재의 관계를 위협하는 데는 많은 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해결해야 할 끔찍한 문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뤄야 할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삶은 스스로 계속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순히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의 성생활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 이상으로, 그 부분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다루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성적인 언어들을 이해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이해하고 또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구조에까지 상당히 위협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무섭기도 해요.
왜냐하면, 자녀를 양육하는 우리들이 한 가지 걱정하는 것은, 요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누군가는 “당신이 말하는 것은 성적으로 불타오르는 것인데, 그것이 정말로 파혼하거나, 또는 중요한 관계를 안 좋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토마스 무어: 글쎄요, 제 시각이 결혼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제게 와서 결혼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끌리고 그것이 정말 괴롭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건 다른 문제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파트너를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저 순전히 문자 그대로 성적인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에 대한 큰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고, 또한 삶의 단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결혼하여 정착하는 것이 단순히 잘못된 일일 수도 있는 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합니다. 그들은 잘못된 시기에 결혼을 하고 너무 늦게 발견합니다. 그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성욕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권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욕이 불타올랐다고 말할 때, 저는 행동으로 옮기라고 지지하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성욕을 진정으로 탐구하고 또 그것이 가져올 결과들을 보며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단순히 성 그 자체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볼 때, 제가 제안하는 것은 훨씬 더 질서 있는 성생활을 위한 더 깊은 동기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오늘 우리는 성(性)과 종교적 전통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동방정교회 사제 앤서니 우골닉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저는 크리스타 티펫입니다.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성 베드로 축일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요입니다. 일부 우크라이나 마을에서는 이 종교 기념일이 전통적으로 청혼과 결혼식으로 기념됩니다. 그리스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지배적인 종교인 동방정교회 기독교는 여러 면에서 서방교회보다 몸과 영혼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앤서니 우골닉: 동유럽 문화에서 유머와 노래, 춤에 대한 개방적이고 솔직한 태도로 자랐다면, 존재의 기쁨, 즉 자신의 육체화에 대한 기쁨을 느길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부족한 것이죠. 저는 그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앤서니 우골닉은 우크라이나 정교회 사제입니다. 동방정교회는 로마 가톨릭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앤서니 우골닉처럼 정교회 사제는 결혼할 수 있습니다. 많은 면에서 그는 매우 전통적인 기독교인이지만, 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관점은 많은 미국 기독교 교파를 분열시키고 있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분열을 거부합니다. 그는 요즘 남성의 성에 대한 원고를 쓰고 있는데, 저는 그 소식을 신학계 소식통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종교가 남성에게 지배되어 왔다는 페미니스트적 관점을 포함한 비판에 민감합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 성스러운 이미지의 대부분이 여성적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보편적인 마리아의 형상은 단지 한 예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한편, 그는 남성 신체가 기독교 영성에서 추방되었으며, 이것과 남성, 여성, 그리고 교회 자체에 폭력을 가했다고 믿습니다. 그가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미국 문화에서 시작됩니다.
앤서니 우골닉: 펜실베이니아 더치 컨트리에서 살면서 항상 보는 한 가지 모델이자 패러다임은 구애 기간 중 아미쉬(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 중부에 존재하는 재세례파 계통의 종교적/문화적 생활 공동체. 역자 주) 십대들이나 아미쉬 부부가 탄 말과 마차 뒤를 제 차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19세기 스타일로 옷을 입고 있고, 몸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이곳에 몰려와 보는 이런 이상화된 이미지 한가운데에, 거대한 광고판들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과 캘빈 클라인 광고 속 반바지를 입은 남자들이 등장하는 광고판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피부를 드러내고 몸을 과시하며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미쉬 사람들을 포함해 우리들의 에로스는, 성의 상업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방식으로 성과 우리 스스로의 섹슈얼리티로 사회화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서로 상충하고 충돌하는 방식들입니다.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교회에 헌신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교회가 성을 자기 방식대로 다루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 주제를 회피하고, 회피하는 사제들을 좋아합니다. 제게 큰 문제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하지만 정교회 전통, 당신의 전통에는 개신교 기독교보다 더 육체적인 성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그렇습니다. 그것은 풍부하고 감각적인 전통이며, 우리는 이 문제를 다룰 모든 종류의 자원을 우리 안에 담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육화된 전례를 살아가고, 예배와 시에서 우리의 감각을 사용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예배할 때 쓰는 찬송가의 시조차도 정말 감각적이고 섹시합니다. 하지만 다른 기독교인들과 대화할 때, 우리는 그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당혹스러워하죠.
크리스타 티펫: 그럼 이 주제에 대해 앉아서 생각하고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말해 주시겠어요?
앤서니 우골닉: 저는 10년에서 15년 정도 하키팀과 운동으로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음 위에서 제가 훈련시켰던 이 젊은이들이 자신의 남성성에 대해 매우 불편해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여성, 여성 문제, 여성의 몸, 인류학의 여성, 문학의 여성에 전념하는 수많은 강좌와 그룹, 센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젊은이들에게서 발전하는 남성성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우리가 2000년 동안의 남성의 특권과 우월이라는 유산을 학문적으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가르치는 이 젊은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완전히 새롭다는 것이죠. 그들은 기껏해야 2, 3년 동안만 그 몸으로 살아왔고, 그들은 몸의 활기 넘치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고, 호르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성에게 매력적인 남자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데, 문제는 그 매력의 구성요소에 대해 항상 상충되는 신호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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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On Being with Krista Tippett : Thomas Moore, Debra Haffner, and Anthony Ugolnik - Spirituality and Sexuality"를 편집한 것입니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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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무어: 제가 종교를 공부했을 때, 특히 고대 그리스에 관해 공부했는데, 그리스에서는 성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저 괜찮을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되며 옳은 일을 하려는 삶의 노력의 일부였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는데, 아마 제가 전통적인 죄의식을 가진 가톨릭 신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이 분은 토마스 무어입니다. 그는 1992년 그의 저서 "영혼의 돌봄(The Care of the Soul)"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영혼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인 "성의 영혼(The Soul of Sex)"에 대한 또 다른 책을 썼습니다. 토마스 무어는 젊은 시절 12년 동안 독신 가톨릭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금욕은 자신이 존중하는 삶의 선택이며, 심지어 독신자와 기혼자 모두를 위한 선택으로서 영적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결혼하여 자녀가 있으며, 심리치료사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영혼과 성 사이의 신비로운 연결고리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토마스 무어: 성(性)은 영혼에 매우 중요한 많은 것들을 포함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 몸과 감각, 쾌락, 친밀함, 심지어 우정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영혼에 가장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이생에서 자기만 잘나가려는 자아의 소유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꽤 지적인 삶을 살고, 이제는 기계와 컴퓨터로 가득 찬 삶을 살 수도 있지만, 성(性)은 여전히 영혼에 특히 중요한데, 영혼에 관한 기본적인 가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함께 갑니다. 성과 영혼은 매우 가깝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아, 그것은 정말 멋진 생각이지만, 특히 우리 문화에서 인간이 그렇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부분적으로는 종교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죠?
토마스 무어: 압니다. 잘 알죠.
크리스타 티펫: 그럼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고 당신은 사람들이 그 지점에 어떻게 도달하기를 바라는가요? 도덕성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말입니다.
토마스 무어: 제가 관심 있는 한 가지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성은 신성하지만 잘못된 것이라고 믿도록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성이 신성하다고 들었지만, 그 문구 뒤에는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것이 신이 만들었거나 신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여겨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신성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의미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책 "성의 영혼"에서 이렇게 합니다. 저는 성(性)이 신성하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이유로, 그것은 삶을 에로틱하게 만들 수 있을 때만 진정으로 작동합니다. 그렇게 해야 쾌락과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몸을 돌보고, 함께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아낍니다. 성(性)은 단지 육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도 단지 육체적인 것은 없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좋아요. 그럼 그것들은 모두 성스러운 속성들...
토마스 무어: 네, 맞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알겠습니다. ‘아름다움’과 ‘관계’죠.
토마스 무어: 맞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크리스타 티펫: 심지어 창조물의 일부로서 몸을 존중하는 것도요, 그렇죠?
토마스 무어: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더 큰 상상력입니다.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정한 영적 상상력이고, 그리고 성은 그 상상력 안에서 제자리를 찾습니다. 마치 전체에 위협이라도 되는 것인냥 그 바깥에 있지 않고 말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것을 위협으로 본다면, 당신은 모든 도덕적 억압과 규칙, 그리고 그로 인한 기대와 결과 등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자랐고, 이 모든 일에 대해 별 탈 없이 헤쳐 나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마 제가 온 관심을 쏟는 것이 그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큰 노력 없이도 사람들이 앉아서 '내가 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뭐가 잘못된 거지? 거기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는가? 내 영성을 내 성(性)과 분리해야 하는가? 이 둘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사람들은 성(性)에 대해 지나치게 정의롭게 행동하는 데서 느끼는 미덕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일부를 포기한다면, 당신 자신과 인간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더 깊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에게 더 관대해집니다. 여기엔 좋은 점만 있죠. 우리의 영성은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깨끗하고, 인간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기독교 영성이 전해져 내려온 방식이 그렇다는 말씀이신가요?
토마스 무어: 기독교뿐만이 아닙니다. 온갖 종류의 영성들이 그렇습니다. 일부 불교 영성과 힌두 영성, 그리고 온갖 종류의 영성들이 여기에 사로잡힙니다. 기독교만이 아닙니다. 영혼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너무 흥미를 느끼고 사로잡히면 지나치게 멀리 가버린 나머지, 육체적인 삶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적당히 즐기다가 돌연 몸이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문제 되는 것이 바로 그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당신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 종교인으로서 당신에게 지금 중요한 텍스트나 음악, 그리고 성경에 대해 궁금합니다. 성에 대해 신학적으로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찾으시나요?
토마스 무어: 글쎄, 당연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의 아가서일 것입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감각적이어서, 사람들이 때로는 그것이 사실 감각적인 것이 아니거나 순수한 은유라고 설명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과장된 해석입니다. 저는 제 책 중 한 권에서 만약 제가 교회를 가지고 또 사제라면, 아마 아가서를 벽에 글자로 새겨 놓아서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자신들의 감각과 영성을 화해시킬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낭독자: 솔로몬의 아가서는 노래합니다." 내게 키스해 주세요. 그대 입맞춤으로 나를 취하게 해주셔요. 그대 달콤한 사랑은 포도주보다 나으니, 그대는 향기롭군요. 그대는 몰약과 알로에. 모든 젊은 여인들이 그대를 원하지요. 내 손을 잡고 함께 달려요. 내 사랑, 나의 왕이 나를 그의 침실로 데려갔어요. 그대와 나, 우리는 웃으며 우리의 키스가 포도주보다 낫다고 생각할 겁니다."
크리스타 티펫: 그의 책에서 토마스 무어는 현재 심리치료사로서의 그의 일이 영혼과 인간 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의 종교적 감각을 어떻게 더욱 발전시켰는지 설명합니다.
토마스 무어: 음, 치료사로서 제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제게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어떤 종류든 성적인 문제, 즉 성적인 고민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문제가 제게 던져졌을 때, 제 일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심지어 그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결코 느끼지 않았습니다.
제 문제는 이 사람의 삶에서 어떤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저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종교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거나, 결혼하거나, 병에 걸리는 것과 같은 통과의례를 거칠 때, 그 의식들이 종종 성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식에는 성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뒤집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성적인 문제로 찾아온 사람들을 볼 때, 저는 그것을 통과의례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즉, 그들의 성욕이 갑자기 불타올라 문제가 되어버린, 그 어떤 일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이나 현재의 관계를 위협하는 데는 많은 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해결해야 할 끔찍한 문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뤄야 할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삶은 스스로 계속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순히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의 성생활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 이상으로, 그 부분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다루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성적인 언어들을 이해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이해하고 또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구조에까지 상당히 위협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무섭기도 해요.
왜냐하면, 자녀를 양육하는 우리들이 한 가지 걱정하는 것은, 요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누군가는 “당신이 말하는 것은 성적으로 불타오르는 것인데, 그것이 정말로 파혼하거나, 또는 중요한 관계를 안 좋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토마스 무어: 글쎄요, 제 시각이 결혼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제게 와서 결혼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끌리고 그것이 정말 괴롭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건 다른 문제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파트너를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저 순전히 문자 그대로 성적인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에 대한 큰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고, 또한 삶의 단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결혼하여 정착하는 것이 단순히 잘못된 일일 수도 있는 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합니다. 그들은 잘못된 시기에 결혼을 하고 너무 늦게 발견합니다. 그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성욕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권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욕이 불타올랐다고 말할 때, 저는 행동으로 옮기라고 지지하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성욕을 진정으로 탐구하고 또 그것이 가져올 결과들을 보며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단순히 성 그 자체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볼 때, 제가 제안하는 것은 훨씬 더 질서 있는 성생활을 위한 더 깊은 동기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타 티펫: 오늘 우리는 성(性)과 종교적 전통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동방정교회 사제 앤서니 우골닉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저는 크리스타 티펫입니다.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성 베드로 축일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요입니다. 일부 우크라이나 마을에서는 이 종교 기념일이 전통적으로 청혼과 결혼식으로 기념됩니다. 그리스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지배적인 종교인 동방정교회 기독교는 여러 면에서 서방교회보다 몸과 영혼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앤서니 우골닉: 동유럽 문화에서 유머와 노래, 춤에 대한 개방적이고 솔직한 태도로 자랐다면, 존재의 기쁨, 즉 자신의 육체화에 대한 기쁨을 느길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부족한 것이죠. 저는 그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타 티펫: 앤서니 우골닉은 우크라이나 정교회 사제입니다. 동방정교회는 로마 가톨릭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앤서니 우골닉처럼 정교회 사제는 결혼할 수 있습니다. 많은 면에서 그는 매우 전통적인 기독교인이지만, 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관점은 많은 미국 기독교 교파를 분열시키고 있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분열을 거부합니다. 그는 요즘 남성의 성에 대한 원고를 쓰고 있는데, 저는 그 소식을 신학계 소식통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종교가 남성에게 지배되어 왔다는 페미니스트적 관점을 포함한 비판에 민감합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 성스러운 이미지의 대부분이 여성적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보편적인 마리아의 형상은 단지 한 예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한편, 그는 남성 신체가 기독교 영성에서 추방되었으며, 이것과 남성, 여성, 그리고 교회 자체에 폭력을 가했다고 믿습니다. 그가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미국 문화에서 시작됩니다.
앤서니 우골닉: 펜실베이니아 더치 컨트리에서 살면서 항상 보는 한 가지 모델이자 패러다임은 구애 기간 중 아미쉬(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 중부에 존재하는 재세례파 계통의 종교적/문화적 생활 공동체. 역자 주) 십대들이나 아미쉬 부부가 탄 말과 마차 뒤를 제 차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19세기 스타일로 옷을 입고 있고, 몸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이곳에 몰려와 보는 이런 이상화된 이미지 한가운데에, 거대한 광고판들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과 캘빈 클라인 광고 속 반바지를 입은 남자들이 등장하는 광고판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피부를 드러내고 몸을 과시하며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미쉬 사람들을 포함해 우리들의 에로스는, 성의 상업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방식으로 성과 우리 스스로의 섹슈얼리티로 사회화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서로 상충하고 충돌하는 방식들입니다.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교회에 헌신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교회가 성을 자기 방식대로 다루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 주제를 회피하고, 회피하는 사제들을 좋아합니다. 제게 큰 문제입니다.
크리스타 티펫: 하지만 정교회 전통, 당신의 전통에는 개신교 기독교보다 더 육체적인 성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앤서니 우골닉: 그렇습니다. 그것은 풍부하고 감각적인 전통이며, 우리는 이 문제를 다룰 모든 종류의 자원을 우리 안에 담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육화된 전례를 살아가고, 예배와 시에서 우리의 감각을 사용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예배할 때 쓰는 찬송가의 시조차도 정말 감각적이고 섹시합니다. 하지만 다른 기독교인들과 대화할 때, 우리는 그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당혹스러워하죠.
크리스타 티펫: 그럼 이 주제에 대해 앉아서 생각하고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말해 주시겠어요?
앤서니 우골닉: 저는 10년에서 15년 정도 하키팀과 운동으로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음 위에서 제가 훈련시켰던 이 젊은이들이 자신의 남성성에 대해 매우 불편해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여성, 여성 문제, 여성의 몸, 인류학의 여성, 문학의 여성에 전념하는 수많은 강좌와 그룹, 센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젊은이들에게서 발전하는 남성성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우리가 2000년 동안의 남성의 특권과 우월이라는 유산을 학문적으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가르치는 이 젊은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완전히 새롭다는 것이죠. 그들은 기껏해야 2, 3년 동안만 그 몸으로 살아왔고, 그들은 몸의 활기 넘치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고, 호르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성에게 매력적인 남자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데, 문제는 그 매력의 구성요소에 대해 항상 상충되는 신호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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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On Being with Krista Tippett : Thomas Moore, Debra Haffner, and Anthony Ugolnik - Spirituality and Sexuality"를 편집한 것입니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