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교입니다.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를 중심으로 선과 악의 질서 및 세계를 구분하는 이원론적 일신관을 특징으로 합니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 자라투스트라의 가르침에 기초한 일신교입니다. 조로아스터교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찬가(讚歌), 가타(Gathas)는 선과 악이 충돌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윤리적 길인지를 설명합니다. 그 길은 인간에게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위를 하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합니다.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말을 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의로운 자에게 영원한 행복이 있기를.”

(야스나 28.11).


자라투스트라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예언자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정확한 생몰연대는 아직 학술적인 논쟁거리이지만, 기원전 1750년경에 살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그는 “조로아스터”로 알려졌고, 최고의 신 아후라 마즈다 또는 “생명과 지혜의 주(主)”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신성한 유일신의 계시에 근거, 개인의 이성과 지적인 행위의 중요성을 주창한 그의 윤리적 메시지는 온갖 신들을 숭배하며 부패한 지역 군주들과 종교 당국에 의해 통치되고 있던 당시 사회에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고대 경전에서 “선한 종교”(가타스, 야스나 44:10, 53:1)라고 일컬어진 이 새로운 신앙은 기본적으로 인간존재의 도덕적 이원론, 즉 선과 악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에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가르침이 기독교와 유대교와 같은 다른 고대 종교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아베스탄어, 고대 페르시아어, 팔라비어, 페르시아어, 구자라트어를 포함, 여러 언어로 쓰인 방대한 문헌과 해설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로아스터교와 관련된 고대 문헌은 많은 부분 사라졌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사산 왕조(224년-652년) 당시 존재하던 문헌 중 약 4분의 3이 침략과 박해의 여파로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아베스타』 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경전이며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타를 포함하고 있는 「야스나」, 축제 의식을 다루고 있는 「비스페라드」, 찬송가로 구성되어 있는 「야슈트」, 고대 정화 의례를 담은 「벤디다드」,  그리고 매일의 기도문이 실린 「코르데 아베스타」, 혹은 “작은 아베스타”라고 불리는 경전이 그것입니다.


가타는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남긴 찬가(讚歌)로 추종자들에 의해 구두로 전승이 되었으며, 아베스타 중에서도 가장 오랜 신성한 가르침에 해당합니다. 야스나에 통합된 다섯 개의 가타는 17개의 신성한 찬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많은 조로아스터교 학자와 오늘날 조로아스터교 공동체 지도자들은 신앙의 가장 정확한 내용으로 여겨지는 가타의 가르침이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가타의 원칙 속에는 과도한 의식주의(儀式主義 excessive ritualism)에 대한 경고와 신(神)의 ‘동료’[“co-worker” of God]로서 인간의 이성과 윤리적 행위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타의 가르침에 따르면, 유일무이한 신(神) 아후라 마즈다를 인간이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아후라 마즈다는 자라투스트라를 통해 자신의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속성을 계시했습니다. 선의(善意)를 뜻하며 보후 마나를 포함한 아메샤 스펜타스, 정의와 진리의 신성한 법인 아샤, 선한 통치권과 위엄을 뜻하는 크샤트라, 아후라 마즈다의 사랑과 자애로운 헌신을 상징하는 아르마이티, 행복과 완벽함인 하우마타트, 그리고 불멸인 아마라타트가 그것입니다. 인간은 이성과 행위를 통해 하느님의 이러한 속성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선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졌습니다. 이는 윤리적인 생각과 말과 행위라는 균형 잡힌 삶을 살아야만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자라투스트라의 윤리적 가르침의 실용적이고도 합리적인 성격은 후마타(선한 생각), 후크타(선한 말), 후바라슈타(선한 행위)라는 신앙의 삼위일체(三位一體)로 설명됩니다. 오늘날 일상생활과 자선활동을 통해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전 세계 많은 조로아스터교도들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경우, 그들의 대답은 필시 이 세 구절을 기본으로 할 것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결국 3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인 힘을 얻으면서 사산 제국의 국교로 부상, 그 절정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652년 사산 제국이 아랍 무슬림들에 의해 멸망하자, 조로아스터교인들은 피난을 떠나거나 개종하거나 아니면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르시(Parsis)로 알려진 한 무리의 조로아스터교인은 인도 구자라트 지방으로 피신, 그곳에서 이란에 남은 동료 교인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발전시켰습니다.




조로아스터교 역사는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학자들이 추정하듯이, “선한 종교”를 처음으로 계시하고 가르친 인물은 예언자 조로아스터였습니다. 그는 고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자신의 윤리적 일신교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그를 따른 작은 그룹의 헌신적인 남녀도 있었지만, 많은 수의 종교지도자와 군주는 그의 가르침에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조로아스터는 비슈타스프 왕의 초대를 받아, 어전(御前)에서 자신의 가르침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 왕은 중앙아시아의 많은 군주 가운데 이 새롭고도 혁명적인 신앙을 받아들인 첫 번째 통치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이후 조로아스터교는 점차 널리 받아들여져 키루스 대제가 세운 아케메니아 제국(기원전 550년-330년)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아케메니아인들은 언어적,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제국의 신민들에게 종교적, 민족적 관용을 실천, 인류 최초의 “보편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아케메니아 제국은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패배했고, 수도 페르세폴리스는 종교문헌을 수장하고 있던 도서관과 함께 화염에 휩싸여 파괴되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 치하에서 거의 한 세기 동안 그리스 통치를 받은 후, 현지에서 일어난 파르티아 왕조가(기원전 256년–기원후 226년) 새롭게 권좌에 올라 수 세기 동안 고대 이란을 통치했습니다. 이어 사산 제국(226년-652년)이 파르티아 왕조를 계승했고, 그 후 400년 동안 사산 제국은 조로아스터교를 다시 이란의 국교로 세웠습니다. 바로 이 시기가 조로아스터교의 “황금시대”로, 3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신앙을 실천했습니다. 이 시기 아베스타의 전례가 정교하게 정리되었고, 팔라비어로 된 새로운 문헌도 생산되었습니다.


사산 제국은 652년 아랍 무슬림들에게 패배했습니다. 대다수 조로아스터교인은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일부는 조용히 자신의 신앙을 실천했고, 종종 박해를 받았습니다. 소수의 조로아스터교인은 몇 척의 배를 타고 인도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들 가운에 많은 사람은 이란 파르스 지역 사람들이었습니다. 훗날 “파르시”로 알려지게 된 이들 난민이 인도 아대륙 구자라트 주 산잔에 도착하기 시작한 것은 936년부터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후 두 개의 서로 다른 공동체, 즉 이란인과 파르시들로 구성된 조로아스터 공동체가 각각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파르시들 사이에는 당시 조로아스터교인들을 태운 배가 어떻게 인도 산잔에 도착, 현지의 라자 혹은 왕을 만났는지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도인과 피난민들 사이에는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군주인 라자는 그들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는 의사를 담아 우유가 가득 찬 잔을 난민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조로아스터교인은 그 잔에 설탕 한 스푼을 넣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습니다. 설탕이 우유에 녹아들어 잔은 넘치지 않지만, 동시에 유유를 달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자신들도 주어진 환경에 녹아들어 유익함을 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입니다. 결국 조로아스터교인의 인도 정착은 조건부로 승인되었습니다: '모베드, 즉 사제(司祭)들은 라자에게 자신의 종교를 설명해야 한다. 결혼식은 일몰 후 조용하게 행해져야 한다. 이주자들은 현지 언어를 써야 한다. 여성들은 사리를 입어야 한다.' 그 결과 “선택적 동화(同化)”와 새로운 조국에 대한 창의적 기여를  특징으로 하는 독특한 파르시 공동체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란에서는 모스크로 개조되었던  아저리(불의 사원)가  인도 아대륙에서는 파르시들에 의해 하나 둘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교도와는 혼인을 하지 않았고 출산율도 낮아 공동체는 소규모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 대한 그들의 기여는 상당했고,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영국 치하에 있던 1800년대 초, 봄베이에는 불과 10,000명 미만의 파르시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현지 힌두교인이나 유럽인들보다 더 많은 회사를 소유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소녀를 위한 학교 설립을 포함, 교육과 자선 활동에 역점을 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르시들이 번영하는 동안 이란 내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상당한 역경과 종교적 박해에 직면했는데, 그 양상은 왕조마다 다소 달랐습니다. 우마야드 칼리프조 하에서는 비무슬림에 부과된 특별 세금인 지즈야를 통해 개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반면, 까자르 왕조 치하에서는 잔인하고도 폭력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란에서 조로아스터교인들은 - 말을 타거나, 예배장소를 만들거나, 유산을 상속받거나, 우산을 가지고 다니거나, 안경을 쓰는 것조차 금지가 되는 등 굴욕적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수세기에 걸친 가난과 역경과 학정에도 불구하고 조로아스터교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신앙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누리게 된 자유 덕분에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인도의 파르시들과 마찬가지로, 사업, 산업, 교육, 자선사업 등의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인도와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공동체들 사이에는 수세기 동안 제한된 접촉만 있었습니다. 1400년대 후반부터 1700년대 후반까지는 신앙적인 문제에 관한 논문이 교환되었습니다. 19세기 들어 파르시들은 이란 내 조로아스터인들을 돕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조로아스터교인 조건 개선 협회(Society for the Amelioration of the Conditions of the Zoroastrians)"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부 이란 조로아스터교인이 좀 더 우호적인 환경에서 동료 종교인들과 합류하기 위해 조금씩 무리를 지어 인도로 이민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수세기 동안 분리되었던 이 두 공동체는 서로 다른 의례와 관행을 발전시켰고, 서로 다른 달력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60여 년 전부터는 조로아스터교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세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947년 인도 아대륙의 독립과 분할 이후 삶의 여건이 불리해진 파르시들이 해외 탈출을 시작한 것입니다. 많은 파르시인들은 경제적, 교육적 기회를 찾아 과거 식민지 강국이었던 대영제국에 정착했습니다. 이보다 작은 숫자의 파르시들은 북아메리카와 전 세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란 조로아스터교인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민을 시작했으며, 대다수가 북아메리카로 이주했습니다. 오늘날 조로아스터교인은 20만 명도 되지 않으며, 전 세계에 흩어져 있습니다. 옛 러시아 공화국에선 일부 사람들이 조로아스터교 유산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가운데, 이란과 인도에 남은 공동체는 생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디아스포라 조로아스터교인은 남태평양에서 북미에 이르는 새로운 조국에서 그들의 독특한 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 파르시 조로아스터교 공동체와 이란 조로아스터교 공동체는 때때로 별도의 일정을 갖고 별도로 예배를 드리지만, 그보다 많은 이들은 예배장소를 공유하고 동일한 조로아스터교 단체의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국가 및 범국가적 차원에서 조직되는 각종 세미나, 청소년 프로그램 및 연합조직은 이 두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즙니다. 이러한 상호 작용은 미국 조로아스터교 공동체와 그들의 정체성 형성에 뚜렷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미국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각자 다른 길을 걸어 온 두개의 조로아스터교 공동체가 한 지역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이 고대 종교에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비록 핵심 신앙과 관습은 공유하지만, 이 두 공동체는 교리, 문화, 언어, 그리고 식생활에 있어서 수세기에 걸쳐 누적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도 아대륙에서 온 대부분의 파르시는 영어와 구자라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반면, 비교적 늦은 시기에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 이란 출신 조로아스터교인들은 페르시아어(Farsi)가 자신들의 모국어라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두 공동체는 현재 약간 다른 의례와 축제를 지키고 있으며, 종종 서로 다른 달력을 사용합니다.


사료에 따르면, 조로아스터교인이 처음 미국에 살게 된 시기는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동안 금을 찾아 나선 사람들 가운데는 카와지 자베리라는 이름의 조로아스터교인이 있었습니다. 1865년, 뉴욕 이브닝 포스트지는 노예제도에 항의하는 조로아스터교인 도사바이 파람지 카마의 편지를 게재했습니다. 다른 초기 조로아스터교인으로는 1892년 샌프란시스코에 온 파르시인 페스톤지 프람지 다버와 1926년 미국에 정착한 최초의 이란인 조로아스터교도 로스탐 케르마니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1929년 11월 10일, 뉴욕 지역에 거주하는 7명의 조로아스터교인이 피로즈 사클라트왈라라는 사람의 거실에 모여 결성한 것이 최초의 북미 조로아스터교도 모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역사 초기에 주어진 여러 경제적, 정치적 요인과 함께, 1900년대의 차별적 이민 관행은 조로아스터교인의 미국 유입을 제한했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엔 많은 파르시가 교육적, 경제적 기회를 얻기 위해 미국으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1965년 5월 23일, 30명의 시카고 지역 조로아스터교인들이 미국 조로아스터교 협회를 결성했습니다. 협회의 뉴스레터는 그들의 목표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 지금은 이 이동의 선봉에 선 우리가 미국적 삶의 방식에 완전히 참여하면서 우리의 정체성과 유산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계획해야 할 때이다.” 몇 년 후 이 그룹은 해체되었지만, 이후 태어난 조로아스터교 조직들의 미션도 이와 유사했습니다. 새로운 조국에서 비록 작긴 하지만 살아있는 종교공동체를 설립하는 것이었죠.


미국의 조로아스터교 단체들은 비공식적인 모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교류하거나 종교적 행사를 함께 거행하기 위해 개인 주택에서 모임을 가지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조로아스터교인의 수가 증가하면서 1970년대 후반에는 그 규모는 두 배가 되었습니다.


미국 조로아스터교 협회의 정식 설립은 1970년대에 시작되었고, 지역 예배센터 건립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뉴욕 사례로 1973년 조로아스터교 대뉴욕 협회(ZAGNY)의 설립과 1977년 아르밥 루스탐 기브 다르-에-메허 건립이 좋은 예입니다.


서부 해안 지역에서는 캘리포니아 조로아스터 협회가 197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되었고, 이는 1980년 캘리포니아 조로아스터 센터와 1987년 3월 25일 루스탐 기브 다르-에-메허 개관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전통적인 마즈다야스니 조로아스터교 안주만(또는 공동체)은 조로아스터교 의회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후반에 설립되었습니다. 북캘리포니아에서는 자르토슈티 안주만(ZANC)이 루스탐과 모르바리드 기브 다르-에-메허와 함께 1980년에 설립되었으며, 이 두 조로아스터 그룹의 노력으로 1992년엔 잠셰디 나브로즈(Jamshedi Navroz 봄맞이 새해 축제)가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중서부에서는 1975년에 조로아스터교 메트로폴리탄 시카고 협회(ZAC)가 공식적으로 허가되었습니다. 1983년 9월 3일엔 일리노이주 윌로우브룩에서 아르밥 루스톰 기브 다베 메어(조로아스터교 센터)의 개관식이 열렸습니다. 더 남쪽에서는 1976년 휴스턴 조로아스터교 협회(ZAH)가 설립되었고, 다시 그로부터 20년 여 후에는 조로아스터교 유산 및 문화 센터가 설립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그레이트 보스턴, 캔자스, 워싱턴 주, 애리조나,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델라웨어의 3개 주 지역과 같은 곳에서 추가적인 조로아스터교 협회의 설립이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공식적인 협회 외에도 디트로이트, 뉴올리언스, 중부 플로리다, 캐나다 마리타임즈 주 등의 많은 다른 미국 공동체에서 작은 조로아스터교 단체들이 형성되었습니다.


미국의 모든 조로아스터교 공동체는 이란 조로아스터교인과 파르시 조로아스터교인에게 모두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협회에서는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몇 개의 연간 행사를 제외하면 이 두 공동체가 계속 따로 모임을 갖도록 일정을 짜는 반면, 다른 협회에서는 공동체를 통합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워싱턴 D.C.에서는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주식회사(ZAMWI) 산하의 조로아스터교 협회에서는 1989년부터 2개 국어로 된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그곳에서 발행하는 모든 출판물은 페르시아어 번역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주에서는 1994년 워싱턴 조로아스터교 학회(ZSWS)가 종교행사의 공동기획을 장려하기 위해 파슬리(Fasli) 력을 채택했습니다. 이들 사이의 차이는 첨예하지만, 다음 세대의 등장과 함께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 샌프란시스코 만안(灣岸) 지역 조로아스터교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파르시 조로아스터교인이니 이란 조로아스터교인이니 하는 말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미국 조로아스터교인이 될 것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조로아스터교 협회들은 2017년 창립 25주년을 맞은 북미 조로아스터교 협회 연맹(FEZANA)의 후원으로 연합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계간지 FEZANA를 발행하고 수많은 상임 및 임시 위원회를 통해 운영되고 있으며, 의회, 청소년 행사, 종교 교육 세미나 및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특별 프로젝트를 후원합니다. 연맹의 목적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조로아스터 신학이 공존하는 공동체를 대표하는 한편, 논란이 많거나 분열적인 문제에 대해 중립성을 유지하고, 정관에 명시된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캐나다 조로아스터교 공동체는 FEZANA 회원단체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번창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북미 조로아스터교 협회들 중 일부는 캐나다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오늘날 캐나다에는 세 개의 다르-에-메허가 있는데, 하나는 토론토에, 다른 하나는 미시소가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밴쿠버에 있습니다.


미국 조로아스터교는 이미 자신만의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조로아스터교 청소년들은 밤샘 캠프로부터 “Z-Ski” 여행, 조로아스터교 올림픽까지 연례행사에 참여합니다. 바로 국경 너머 토론토에는 조로아스터교 스카우트 캠프가 있습니다. 1990년에 설립된 ‘토론토 캠프 100’은 오늘날에도 계속 번창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또한 북미 조로아스터교 FEZANA 회의, 북미 청년회의, 세계 조로아스터교 청년회의, 그리고 더 최근에는 조로아스터교 학자 평의회가 후원하는 북미 국제 가타/아베스타 회의 등과 같이 각종 조로아스터교 회의를 통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고대 신앙의 구성원들은 온라인에서도 활동적입니다. 수많은 웹사이트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에서부터 종교적인 텍스트와 그에 대한 번역 등 모든 것을 소개하고 있고, 그 가운데는 아베스타 알파벳을 가르치는 고급 사이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조로아스터교인들을 중매하는 사이트가 있는가 하면, “개혁주의” 조로아스터교도 회의에서부터 전통적인 마즈다야스니 조로아스터교도 안주만에 이르기까지 특정 학파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단체와 개인이 운영하는 페이지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온라인 조로아스터교 게시판과 다양한 토론 그룹이 있으며, “Z-mail”로 알려진 조로아스터교도 전용 이메일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의 존재가 종종 간과되곤 합니다. 이 공통체가 본격적으로 건너온 것이 50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간과되는 조로아스터교 신앙과 미국 사이의 가장 가시적인 연결고리는 의외의 곳에 나타납니다. “조로아스터 사원”이라는 이름을 지닌 2,175미터 높이의 바위 봉우리가 그것입니다. 그랜드 캐니언에 있는 이 바위 봉우리에 이러한 이름이 지어졌을 때, 북미에는 조로아스터교인으로 알려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15,000명 이상의 조로아스터교인이 미국에 있으며, 이들이 운영하는 6개의 조로아스터 사원, 다르-에-메허와 수많은 단체 및 협회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FEZANA 조로아스터교 스포츠 위원회는 이제 그랜드 캐니언으로의 여행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미국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예배 장소를 짓고, 조직을 만들고, 자신들의 독특한 방식으로 미국 모자이크 사회에 기여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두 고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조로아스터교 예배당은 다르-에-메허, ‘불의 사원’으로 불립니다. 사원의 주된 기능은 많은 조로아스터교 의식에 필요한 “영원한 불꽃”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다르-에-메허는 조로아스터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폐쇄적이지만, 미국에서는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예배와 배움의 장소로 쓰이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 조로아스터교인은 집이나 작은 모임장소에 모여 예배를 올립니다. 몇몇 큰 공동체에서는 예배당을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르-에-메허(dar-e-mehr 혹은 darbe mehr)'라는 이 예배당은 미국의 종교지형에 새롭게 추가된 것입니다. 이곳은 조로아스터교인이 불꽃 앞에서 기도를 하기 때문에 종종 ‘불의 사원’이라고 불립니다. 캘리포니아 조로아스터교 센터에서 출판한 소책자에서 모베드 샤자디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 빛, 그리고 모든 발광체는 우리에게 신성한 빛, 순수함, 그리고 아후라 마즈다의 사랑을 상기시킨다. 빛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시각적 상징이다. 그래서 우리는 촛불이나 등불, 혹은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게 되며, 같은 맥락에서 향기가 나는 나무가 활활 타오르는 화로를 마주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가타의 불은 또한 모든 인간의 마음에서 발견되는 내면의 불과 따뜻함을 상징한다.”


영원한 불꽃은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상징입니다. 불은 대단히 중요하며 절대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종교적 관습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숭배하는 종교[배화교(拜火敎)]고 조로아스터교인은 “불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불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경건하게 해주는 것일 뿐, 예배는 아후라 마즈다에게 향합니다. 인도와 이란에서는 모베드(Mobed), 모우베드(Mowbed), 혹은 모바드(Mobad)라고 불리는 사제(司祭)들이 하루 종일 불의 사원이 지킵니다. 가장 오래된 불의 사원 중 하나는 이란 야즈드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사산 제국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1,500년 동안 계속해서 타고 있는 불꽃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불의 사원이 작은 가정용 화로와 같은 불꽃, 혹은 점화용 불씨와 비슷한 크기의 작고 지속적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갖고 있습니다.


뉴욕주 뉴로셸과 버지니아주 비엔나에 있는 조로아스터교 예배당은 개조된 건물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리노이주 힌스데일,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및 웨스트민스터, 텍사스주 휴스턴에서는 그를 위해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미국의 많은 다르-에-메허는 조로아스터교 자선 신탁 단체인 기브 재단(財團)의 자금지원을 통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란계 자선사업가 아르밥 루스탐(Arbab Rustam)과 모바리드 기브(Morvarid Guiv) 부부에 의해 설립된 이 재단은 이란, 인도, 영국, 호주, 북미의 조로아스터교도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의 많은 조로아스터교 예배당이 '기브'로 명명되었습니다. 1983년 시카고 교외 힌스데일에 설립된 아르밥 루스탐 기브 다베 메어는 모바리드 기브 여사가 첫 번째 백단목을 제공하면서 문을 열었습니다. 이 사원은 조로아스터 시카고 메트로폴리탄 협회(ZAC)가 추진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북미에서 최초로 기초에서부터 이 목적으로 건립된 건물입니다.


이 사원은 지난 50년 동안 미국의 심장부에서 작지만 헌신적인 한 조로아스터 공동체가 어떻게 꾸준히 성장하며 변화를 거쳤는지를 확실하게 상기시켜주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에는 메트로폴리탄 시카고와 인접한 위스콘신주, 미시간주, 인디애나주, 아이오와주에 거주하는 총 600명의 조로아스터교인이 ZAC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아르밥 루스탐 기브 다르-에-메허에 들어서면 현대 세계에 생존해 있는 한 고대 신앙의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출입구 위에는 신의 영광을 상징하는 날개의 형상, 페로하르가 위치해 있습니다. 페로하르는 아후라 마즈다의 상징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신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아후라 마즈다는 어떤 형태를 지닌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인이 아닌 사람은 불의 사원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시카고 교외에 있는 이 사원에서는 모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예배당 자체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기도실, 집회장, 도서관, 세미나실, 주방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연구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은 공동체의 모임장소이기도 합니다. 주방시설에서는 대형 행사용 음식 준비는 물론 개별 가족도 고인의 추모모임에 필요한 음식을 여기에서 준비할 수 있습니다. 정문을 들어서면 다양한 수업과 활동, 그리고 각종 사회적 행사와 종교행사가 열리는 홀이 나옵니다. 기도실에 가기 위해서는 작은 복도를 지나 옆 건물로 가야 하는데, 이 방은 경건함과 평온함을 보장하기 위해 센터의 주요 활동으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기도실에 들어가기 전 모든 방문자는 신발을 벗고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기도실 장식은 단순해서 카펫이 깔려 있고 실물 크기의 예언자 조로아스터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정도입니다. 중앙에는 제단 즉, 높은 단 위에 설치된 화로, 아파르깐이 있습니다. 이 아파르깐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는 인도 수랏의 역사적 불의 사원에서 미국으로 운송되었습니다. 화로 양쪽에는 대리석 탁자가 하나씩 있는데, 한 탁자 위에는 기름 램프가 켜져 있고, 다른 한 탁자에는 공양을 위한 백단나무를 쟁반에 담아 놓아두었습니다.


기도실 밖에는 백색 제의(祭衣)를 입고 집전하는 모베드들을 위한 작은 방이 있습니다. 많은 미국 도시들과 달리 시카고에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모베드 간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베드들은 미국 조로아스터교 공동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원봉사 차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사제직과는 별도의 일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두 명의 모베드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고, 주식분석가, 회계사, 가게주인도 있습니다. 고위 모베드는 심리학자입니다. 이 외에도 모베드들은 종종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물론, 나브호테/수드레-푸시 의례나 자샨 추수감사절 등을 주도하기 위해 인근 주에 있는 다른 지역 공동체로 출장을 갑니다. 오늘날, 메트로폴리탄 시카고 조로아스터 협회는 모베드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공동체의 다르-에-메허는 1983년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교인들은 그를 위해 빵 바자에서부터, 복권, 세차 알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기금을 모았습니다. 센터 건설공사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개원식 일정에 맞추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주말마다 나와 광택 작업, 페인트 작업, 청소 등을 했습니다. 공동체가 수년간 성장하고 센터의 활용도가 확대됨에 따라 센터에서는 프로그램 개발과 공간 차원에서 계속 같은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불의 사원 방문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입구 대리석 명판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헌정사를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북미 미래 세대를 위해 조로아스터교의 성화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그러면 다르-에-메허 방문은 미국 조로아스터교인들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주어진 영원한 불꽃의 핵심 상징과 함께, 방문이 시작된 곳에서 끝나는 셈이 됩니다.







파르시 조로아스터교인들은 나브호테라고 부르고, 이란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수드레-푸쉬라고 부르는 조로아스터교 입문식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윤리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상기시켜주기 위해 평생 입어야 하는 신성한 속옷(수드레)과 신성한 허리띠(쿠슈티)를 착용하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들은 보통 7세에서 15세 사이에 하며, 입문의식은 남녀가 동일합니다.




두 공동체가 지리적으로 수 세기 동안 분리되었기 때문에 이란인과 파르시인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의식을 치르지만, 입문식의 기본적인 전제와 기능은 동일합니다. 입문식은 신앙생활을 시작, 조로아스터교도로서 살 것을 적극적으로 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입문식은 아이가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행해집니다. 파르시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전통적으로 7세에서 11세 사이에 이 의식을 행하고, 이란 조로아스터교인들은 12세에서 15세 사이에 이 의식을 행합니다. 입문식을 시작하기 전, 아이는 의례를 주관하는 모베드 혹은 사제가 소리 내어 기도를 올리는 가운데 나안(nahn)이라고 불리는 목욕재계를 합니다. 나안의 목적은 나브호테/수드레-푸쉬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가 (목욕을 통해) 육체적으로, 그리고 (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자신을 청렬하게 하는 것입니다. 입문식에는 입문자와 모베드가 아베스타어 기도문을 낭송하는 것과 수드레와 쿠슈티를 몸에 걸치는 절차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타 아후 바이료 기도가 올려지는 동안 아이는 손을 수드레의 소매에 얹고, 이어서 조로아스터교의 신앙선언인 딘 노 칼모를 암송합니다. 이 기도를 세 번 반복합니다. 그런 후 아이는 사제의 도움을 받으며 생전 처음으로 수드레를 입습니다. 그런 다음 사제는 쿠슈티 의식을 시작하기 전, 지혜의 주 아후라 마즈다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기도인 후르무즈드 야슈트의 헌정 부분을 낭송합니다.


다음으로 아이는 모든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비난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호르마즈드 코대 기도를 사제와 함께 낭송하며 쿠슈티 의식을 행합니다. 기도할 때 쿠슈티를 흔드는 행위는 모든 악을 멀리하겠다는 상징적인 제스처입니다. 쿠슈티는 허리에 세 번 묶는데, 이는 조로아스터 신앙의 기본 교리인 후마타(선한 생각), 후크타(선한 말), 후바라슈타(선한 행위)를 따르도록 끊임없이 상기시켜 줍니다. 그 후 입문자가 두 번의 야타 아후 바이료 기도를 암송하는 동안, 특히 샤오테나남(선행)이라는 단어를 암송할 때, 쿠슈티를 허리 앞쪽에서 이중의 매듭으로 묶습니다. 이것은 쿠슈티를 허리에 매는 것이 아후라 마즈다를 위해 행해지는 선한 행위 가운데 하나라는 믿음을 강화합니다. 이어 아셈 보후 기도를 암송하는 동안, 이번엔 쿠슈티를 허리 뒤쪽에서 묶습니다.


이어 입문자는 프라바란, 즉 신앙고백 조항을 낭송합니다. 한 신앙고백 조항의 번역을 보면 새롭게 마즈다야스니, 즉 (아후라) 마즈다의 추종자가 된 사람의 의무가 다음과 같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뉴욕 조로아스터교 협회에서 출판한 "선한 삶" 중에서)


아후라 마즈다여, 저를 도와주소서. 저는 마즈다의 사람, 조로아스터를 따르는 마즈다의 사람이나이다. 하여 저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굳게 선언하나이다. 저는 선한 생각, 저의 마음속 선한 생각에 대한 저의 믿음을 인정하나이다. 저는 선한 언어, 제가 내뱉는 선한 언어에 대한 믿음을 인정하나이다. 저는 선한 행위, 제가 취하는 선한 행위에 대한 믿음을 인정하나이다. 저는 싸움을 끝내고 폭력을 무력화시키는 마즈다의 선한 종교, 저희를 정의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종교를 제가 받아들인 것을 인정하나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가장 고귀했던 종교, 가장 훌륭했던 종교, 가장 숭고했던 종교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종교, 조로아스터가 저희에게 가져다 준 아후라 마즈다의 종교이나이다. 모든 선은 아후라 마즈다로부터 유래하나이다. 이것이 마즈다야스니 종교의 선언이나이다.


입문식은 사제(司祭)가 쌀과 장미꽃잎을 머리 위에 뿌려주고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탄다로스티 기도를 낭송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흰 모슬린 천으로 만든 속옷인 수드레는 신앙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상기시키는 용도로 매일 입어야 합니다. 수드레에는 선한 행위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기레반 또는 키세케르페(선행 주머니)라고 불리는 작은 주머니가 붙어 있습니다. 매일 밤, 착용자는 주머니의 내용물, 즉 하루 동안 축적한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위를 떠올립니다. 허리에 묶는 쿠슈티는 72개 가닥의 양털실로 만든 것으로 야스나 전례 72장을 상징합니다. 조로아스터교인은 수드레를 입고 하루 종일 일정한 시간,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일어나면, 샤워 후, 그리고 식사 전에 기도문을 암송하면서 쿠슈티 끈을 풀었다 묶었다 하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주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미국 조로아스터인은 그들의 지역사회에 훈련된 모베드가 부족해 종종 이 중요한 의식을 갖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많은 미국 파르시들이 입문식을 위해 인도나 파키스탄으로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입문식에 필요한 기도와 그 번역문을 가르치는 많은 교육자료 덕분에 미국 국내에서 입문식을 하는 것도 조금 수월해 졌습니다.


나브호테/수드레-푸시는 조로아스터교 신앙의 많은 핵심 요소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른 많은 종교전통과 달리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소녀와 소년을 위한 입문의식이 완전히 동일하며, 이 관습을 통해 양성평등이라는 핵심 신념이 강화됩니다. 또한, 입문식은 본인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으며, 이는 조로아스터교 신앙생활에서 중시하는 지적 성찰, 개인적 선택, 윤리적 책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또한 종교를 달리하는 사람과의 결혼이나 개종, 그리고 과연 누가 조로아스터교도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매우 예민한 문제들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조로아스터교도가 되기 위한 유일한 요건은 신앙에 대한 철저한 지식과 헌신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부터 두 조로아스터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입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까지 이 문제에 대한 반응은 다양합니다. 1983년 3월 5일, 유럽계 기독교인인 조셉 피터슨이 나브호테/수드레-푸시 의례를 통해 조로아스터교인이 된 이후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피터슨은 광범위한 연구와 교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통해 조로아스터교 신앙에 도달했습니다. 그의 입문식은 뉴욕 뉴로셸에서 두 명의 파르시 사제와 두 명의 이란인 사제, 이렇게 네 명의 사제들에 의해 거행되었습니다. 그 이후, 조로아스터교인이 아닌 부모에게서 태어난 많은 미국인이 로스앤젤리스 조로아스터교 총회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작은 조로아스터교 공동체 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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